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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관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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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마디 -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한번 살펴봅시다. 우선 우리의 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먹어야 할 음식이 있어야 하고, 입을 옷이 있어야 하고, 살 집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이것을 의식주(衣.食.住)라 말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디에서 누가 만들까요? 그야 물론 농촌에서 땀흘려 일하는 농부들이 생산해냅니다. 농부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땀흘려 지은 곡식을 가져다가 우리가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중에는 외국에서 생산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외국의 농부들이 땀흘려 생산한 것입니다. 몇 년 전 고추파동이 있을 때 외국에서 고추를 들여온 것을 다들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밀가루도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쌀의 일부분은 외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생산해 냅니다. 방직공장의 노동자가 생산해 낸 옷의 일부는 우리나라 국민이 입고 또 나머지는 외국에 수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옷이 미국이나 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수출되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입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건설노동자가 만들어 냅니다. 산의 나무와 하천의 모래, 시멘트 등을 가지고 집을 만듭니다. 또 이때 부족한 재료는 외국에서 수입하기도 합니다. 호화저택의 대리석 같은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을 돌아다 보면 우리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만 생각해 보더라도 농촌의 농부, 방직공장 노동자, 건설노동자, 외국의 농부 등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렇지 만약 자세히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정신적인 면에 대해서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해서 읽는 책은 학자나 저술가들이 쓴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학자나 저술가는 정말로 자신의 독창적인 머리로만, 다른 사람의 영향은 받지 않은 채 그 글을 썼을까요?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선조들의 문화적 유산이나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사상, 학문적 업적, 또는 외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 그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발전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선조들의 업적이 계속 축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조들의 업적이 축적되지 않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인류의 발전은 있을 수 없겠지요. 이처럼 책 한권
을 본다 하더라도 그 책 뒤에는 많은 사람들, 선조들의 업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을 쓴 저자하고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많은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는 우리에게 따뜻한 햇빛을 줍니다. 또한 해의 햇빛을 받아 식물이 자람으로써 우리는 음식물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해산물을 주고 편리한 항해를 가능케 합니다. 산은 나무나 석탄같은 연료를 제공해 주고 또한 산의 나무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산소를 배출함으로써 공기를 맑게 해줍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사회적, 정신적, 자연적으로 끊임없는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정신적 관계, 자연적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사회적, 정신적, 자연적으로 외계의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서 혼자만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계 사물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관련성만을 강조하면 일면적인 사고방식에 빠져버립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봅시다.
일본의 속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 언뜻 이해가 안가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말이 나왔는가를 살펴봅시다. 바람이 분다 -> 모래가 날린다 -> 모래가 사람의 눈에 들어간다 -> 장님이 많아진다 -> 장님이 삼미선(일본의 악기 이름으로 고양이가죽으로 만듬)을 연주해서 돈을 벌어 생활한다 -> 삼미선에 쓰이는 고양이 가죽이 필요하게 된다 -> 고양이가 감소한다 -> 쥐가 늘어난다 -> 쥐가 통을 갉아 먹는다 -> 통 주문이 증가한다 -> 통장수가 돈을 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번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말이 우리의 현실 경험에 합치할까요? 우리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것처럼 이 말은 어딘가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경험과 합치하지 않는 점이 있는 것입니다. 말로 들으면 그럴 듯한데 막상 우리의현실적 경험과 비교해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기로 합시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막에 돌풍이 일어 모래 기둥이 생기는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포장된 도로에서도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릴까요. 약간 날릴 수는 있겠지만 깨끗한 도로라면 모래는 거의 날리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에 산다면 바람이 분다고 해서 꼭 장님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설령 모래가 많이 날리는 곳에 산다고 하더라도 안대를 한다든지 모래 바람을 피한다든지 해서 장님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어 장님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사막에 사는 모든 사람은 장님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분명히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고 그 모래가 사람 눈에 들어가면 장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설령 모래가 들어갔다 하더라도 치료를 받으면 장님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바람이 불어 모래가 날리는 것과 장님이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관계를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바람이 불어 모래가 날리면 장님이 될 수도 있지만 장님이 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다음의 논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장님이 되면 삼미선을 연주해 생활한다는 논리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거리 풍경에서도 기타나 하모니카를 연주해서 생활하는 장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장님들이 이러한 방법으로만 생활할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어떤 장님은 스스로 돈을 벌지 않고 남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안마를 한다든지 해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장님은 삼미선을 연주해서 생활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장님과 삼미선은 한편으로는 관계를 가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삼미선과 고양이 가죽의 관계에 있어서도, 만약 삼미선을 만들기 위한 가죽이 많이 필요하게 되면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삼미선뿐만 아니라 개의 가죽, 소가죽등으로 만든 삼미선도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양이 가죽만이 필요하다면 이에 따라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많게 될 것이므로 반드시 고양이가 줄어들어 쥐가 늘어난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통장수가 반드시 돈을 번다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설령 고양이가 줄어 쥐가 늘고 쥐가 통을 갉아먹어 통이 필요하게 된다 하더라도 통에는 나무로 만든 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쇠로 만든 통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통도 있는 것이어서 반드시 통 장수가 돈을 번다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라는 말이 현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을 한 사람은 어떠한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사물의 관련성만을 보고 관련되지 않은 부분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바람의 모래와 장님의 관계에서 현실적으로 바람이 불어 모래가 날리면 장님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데 장님이 되는 경우만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님과 삼미선의 관계에서도 장님이 되면 삼미선을 거리에서 연주해 생활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생활할 수도 있는데 삼미선을 연주해 생활하는 것만을 강조한 것입니다. 삼미선과 고양이, 고양이와 쥐, 쥐와 통장수의 경우에도 이러한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즉, 사물이 관계되어 있는 부분만을 보고 관계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보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사물은 관계하고 있음과 함께 관계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물의 관계된 부분만을 강조하게 되면,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식의 현실에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사물은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철학적으로는 `상대적 독립'이라고 말합니다. 절대적 독립이라 한다면 아무 관계도 없이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을 말하지만 상대적 독립은 한편으로는 관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얘기해 봅시다.
은으로 만든 조그만 공모양의 덩어리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공모양의 덩어리에 압력을 가하면 얇은 은박지가 됩니다. 이 경우 은의 체적은 변하지 않지만 표면적은 변합니다. 종이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종이풍선의 표면적은 변화하지 않지만 체적은 크게 변합니다. 이 경우 체적과 표면적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 쪽은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내에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즉, 체적과 표면적은 한편으로는 관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적과 표면적은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서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아! 그사람"하고 말하게 되고, 또 그사람을 언제 만난다 하더라도 옛날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노인으로 변합니다. 이에 따라 그가 입는 옷의 크기도 달라지고 하는 일도 달라집니다. 즉, 그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을 옛날의 그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즉, 같은 사람인데도 그 겉모습이나 하는 일이 변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적인면과 현상*적인 면은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 본질.현상 : 현상이란 사물이 외적인 조건에 따라 나타내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모습을 말하고, 본질이란 현상의 배후에서 현상을 규정하는 동일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다음 예를 보기로 합시다.
A : 사복을 입은 사람이 경찰복장을 한 사람에게 끌려가고 있다.
B : 경찰복장을 한 사람이 사복을 입은 사람에게 끌려가고 있다.
A의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도둑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B는 어떤 경우일까요? 언뜻 보면 도둑이 경찰을 잡아 끌고가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가짜 경찰이 사복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A와 B는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외관상으로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본질은 같은데 현상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경우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본질과 현상은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한다.
예를 하나만 더 들어봅시다. 책상 위에 산에서 죽은 친구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해봅시다. 사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찍혀지는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친구가 없었다면 친구의 사진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은 친구의 사진은 카메라앞에 섰던 친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찍힌뒤 그친구의 모습이 바뀐다든지 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라도 그것에 관계없이 그 사진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그 친구와 사진은 관계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 친구와 사진은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친구와 사진은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는 몇가지 경우의 예만 들었지만 사실 모든 사물은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합니다. 즉, 상대적 독립이란 서로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한 쪽이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하며, 모든 사물은 이러한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상대적 독립이란, 서로 분리할 수 없지만 한 쪽이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대적 독립을 무시하게 되면 일면적인 사고방식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일면적 사고방식이란 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동자적 입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노동자답게 생각하고, 노동자답게 바라보고, 노동자답게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노동자답다는 말은 어떠한 뜻일까요? 노동자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기계나 건물, 토지같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자본가는 생산수단이나 설비를 갖추어 놓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팔므로써 그 이윤을 획득하는 사람입니다. 즉,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람입니다.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노동력을 산다는 말입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파는 사람이고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는 되도록이면 자신의 노동력을 비싸게 팔려고 하고 자본가는 되도록이면노동력을 싸게 사려고 합니다. 이는 시장에서 손님과 상점 주인이 물건을 놓고 흥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노동력을 얼마에 팔고, 살 것인가 하는 점에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노동자답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보다 좋은 조건으로 팔므로써 자신의 권익을 세우려는 것이 노동자의 입장입니다. 또한 이러한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노동자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노동자는 이러한 노동자적 입장에 서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활은 노동자로서 하면서도 생각이나 행동은 비노동자처럼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세우기 위해 주위 동료들과 토론하고, 연구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본가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봉급만 타면 사장과 같이 돈 많은 사람들의 아들들이나 다니는 고고장에나 가고, 노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존재와 의식이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존재는 노동자이면서 의식은 비노동자적이기 때문입니다. 관념이 사용자의 선전에 영향받아 비노동자적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노동자는 회사에 아부하여 노조간부의 움직임을 회사에 은밀히 알려주고 심지어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나서서 방해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상대적 독립을 무시한다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존재와 의식의 관련성만을 강조한다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번에는 노동조합의 문제를 다루어 봅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세우기 위하여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만든 단체입니다. 사용자와 비교해 볼 때 노동자 개개인의 힘은 약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고,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노동자인 경우 노동조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노동자 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가정에 돌아가면 집안의 가장일 수도 있고 다른 친구를 만나면 그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가장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노동자로서의 그는 노동조합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가장이나 친구로서의 그는 노동조합과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진 않은 것입니다. 즉,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이나 친구로서의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이나 친구로서의 그는 노동조합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노동조합의 어떤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봅시다. 그가 노동조합의 회의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그날의 회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회의였고 또한 집안에 몸져 누워 있는 어머님의 병환이 위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만약 노조의 조합원들이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한다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 까요? 그는 아마도 노동조합 자체가 싫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자기를 이해해 주지않는다고 실망할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노조를 탈퇴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적 사정이 있는 조합원의 경우에는 모든 조합원들이 합심하여 그를 도운다든지 할 때 비로소 그 노동조합이 힘있는 노동조합이 될 수 있습니다.만약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상대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조합과의 관련성만을 강조하여 노동조합에 성실치 않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기만 한다면 그 노동조합은 점차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적 독립이라는 개념은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물의 관련성만을 강조하여 관련되지 않은 부분을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는 일면적 사고방식에 빠게 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상대적 독립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대적 독립이 인간의 정신 구조에 있어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살펴봅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각각의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서 상이한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의 동료라든지 친구들을 대할 때는 매우 민주적인 사람이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봉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인색하게 구는 사람이 자기 가족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아주 인정많은 아버지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험실에서는 아주 과학적인 태도로 사물을 분석하고 실험하고 관찰하는 사람이 일단 실험실을 나오면 비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 구조도 상대적 독립의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즉, 인간의 의식도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정신 구조와 의식이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정신 구조가 매우 다면적이며 정신 구조의 각 부분의 발전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한 인간의 의식속에 서로 용납될 수 없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경우조차 있는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관념은 봉건적이고, 자신의 목적 의식은 개인의 출세하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의식이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신 구조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가를 알고 그 부분에 정신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전체적인 정신혁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물은 관련을 맺고 있지만 동시에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합니다. 즉,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 쪽은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대적 독립을 무시하면 일면적 사고방식에 빠져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마디 - 서로간의 서로
우리는 `매개한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흔히 듣습니다. 매개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아래의 그림과 같은 관계를 가리킵니다.
┌───┐
┌──>│ B │────┐
│ └───┘ │
│ │
│
┌───┐ ┌───┐
│ A │>│ C │
└───┘ └───┘
이러한 예는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는 남자가 직접 신부될 여성을 찾지 못하고 결혼상담소에 가는 경우 결혼상담소에서는 이와 똑같은 사정에 있는 여성을 남자에게 소개시켜 줍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상대방을 좋게 생각하고 결혼할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이 때, 두 사람의 중간에 서서 두사람을 맺어준 결혼상담소는 두 사람을 매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하는 말로는 `중매선다'라고 하는데 `중매'라는 말 속에는 `매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산다든지 방을 구하고자 할 때는 제일 먼저 복덕방에 갑니다. 복덕방에서는 방이나 집을 내놓은 사람에게 소개시켜 줍니다. 우리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무언가를 진정하려고 할 때 시간이 없어 만나주지 못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할 수 없이 비서에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A양은 C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A양과 C양은 얼마 전에 다툰 일이 있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A양이 직접 C양에게 얘기를 하면 오해가 생길까봐 A양은 자신의 친구이자 동시에 C양의 친구이기도 한 B양에게 얘기를 해서 C양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A지역에서 C지역으로 직행하는 철도가 사고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면 할 수 없이 A지역서 B지역을 통해 C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됩니다.
앞에서 든 예중에서 결혼상담소라든지, 복덕방, 비서의 전달, B양의 전달 등은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개의 형태들입니다. 이처럼 직접적인 관계를 취하지 않고 중간에 다른 것(매개자)을 놓고 그것을 통해 관계가 이루어지는 경우 우리는 `매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매개는 직접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든 결혼상담소의 경우 결혼상담소와 남자, 결혼상담소와 여자의 각각의 관계는 직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덕방과 방을 구하는 사람, 복덕방과 방을 내놓은 집주인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하고자 찾아간 사람과 비서, 비서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관계, A양과 B양, B양과 C양의
관계 등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러한 직접성이 없다면 매개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누구를 소개시키고자 하는 경우에 내가 두사람과 직접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모든 매개는 직접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이란 말에 대해서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에서 말하는 `직접'이라는 말은 우리가 보통 상식적으로 말하는 `직접'이라는 말과는 그 쓰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그림을 톱니바퀴 A, B, C 세 개가 맞물려 있는 것으로 가정해봅시다.
(빼긴이 주 : 문서편집기의 한계상, 톱니바퀴를 네모로 그렸습니다. 널리 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네모난 톱니바퀴도 있나?)
┌─────┐
┌───┐│ │
┌──┐│ ││ │
│ A ││ B ││ C │
└──┘│ ││ │
└───┘│ │
└─────┘
A를 화살표방향으로 회전시키면 B에서 C로 점차 회전이 전달됩니다. A와 B, B와 C는 각각 회전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즉, A의 회전을 C의 회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B를 매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B의 매개는 앞에서 설명한 매개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A의 회전은 A의 존재형태에 있어서 특수한 한 형태입니다. 회전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전하고 있는 A로부터 회전이라는 성질만을 분리할 수는 없지만 A 그 자체와 회전 자체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일단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경우 A자체로서 볼때 회전이라는 다른 성질을 자기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톱니바퀴 A를 제거하면 회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자신이 동시에 다른 성질을 가지면서 그 성질을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철학에서는 `직접'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생산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생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우선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생산이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게 생각해 봅시다.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이 있어야 하고, 원료가 있어야 하고, 인간의 노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 경우 생산을 하는 과정 자체가 사실은 생산수단의
마모를 가져오고, 원료의 소비를 가져오고, 인간의 노동력의 소비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생산은 동시에 소비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산은 동시에 소비이기도 한 것입니다. 만약 두 성질을 분리한다면 생산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산수단이나 원료, 인간의 노동이 없이 생산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직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매개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들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아들이라는 존재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한 사람이 있을 때 그는 아들이라는 매개자를 통해서만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아들 역시 아버지라는 매개자를 통해서만 아들로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른이 되어 아들(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손자)을 낳았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아들은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성질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직접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직접이란 상식에서 말하는 직접과 달리, 자기자신이 동시에 다른 성질을 가지면서 그 성질을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윗 사람의 언행이 올바라야 아래사람이 그 본을 받아 아랫사람도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만 그 친구의 본을 받아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우리가 주위에 있는 사물이나 인간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위의 사물이나 인간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면 `현재의 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말할 줄도 모르고 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이나 인간의 영향을
받음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모든 사물은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물은 단지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 문제에 관해 의논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서 보다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경우에 자기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될 뿐더러 다른 사람과 함께 의논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함께 의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보충하고, 또 자신이 잘못 생각한 점을 수정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들으면서 만들어진 해결책은 본래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즉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견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함으로써 보다 좋은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의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한 바를 자기 것으로 하여 본래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보다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보다 좋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지요.
이처럼 두 사물이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철학에서는 `상호침투'라고 말합니다. 위에서 든 예로 설명해 봅시다. 지금 당면의 문제를 놓고 얘기하고 있는 두 사람은 당면의 문제를 매개로 하여 만났습니다. 즉, 매개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한편 문제에 봉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다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 중 좋은 점이 자기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앞에서 말한 용어를 빌어서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 중 좋은 점과 자신의 관계가 `직접'의 관계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직접'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매개관계에 있는 두 사물이 `직접' 상대방의 성질을 취하고 또 이러한 관계가 심화됨으로써 발전하는 관계를 상호침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든가 지식과 행동의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하여 이론만으로는 안된다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배운 것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론과 실천의 상호침투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론과 실천이 각기 독립하여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론을 이 만큼하고 다음에는 실천을 이만큼하고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기계론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두뇌의 활동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고, 한편 실천하는 것 자체가 지식이나 이론의 올바름을 증명하고 구체화한다는 의미에서 또한 실천으로부터 얻은 새로운 경험에 의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양자는 `직접'
결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론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행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 자체가 이론이나 지식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침투를 간과함으로써, 한편에 이론이 있고 다른 한편에 실천이 있으며 이러한 이론과 실천이 결합하는 것이라는 식의 기계적인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먼저 책을 충분이 읽어 이론을 튼튼히 하고 그
다음에 실천으로 넘어간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는 것 자체가 동시에 학습이기도 하다는 이론과 실천의 상호침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도 상호침투가 일어납니다. 그 상호침투의 구체적 내용을 다음의 예를 통해 알아봅시다.
A씨는 자기가 집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은행에 예금하였습니다. 그 돈은 자기가 일을 해서 받은 임금의 일부를 쓰지 않고 절약해서 모은 돈입니다. 또한 그돈을 은행에 예금한 이유는 우선 집에 두면 도둑이 들어 훔쳐갈 염려도 있고 해서 안전한 보관을 위하여 은행에 예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A씨가 은행에 예금을 하려고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갔더니 자기가 예금한 금액에 약간의 돈이 더 붙어 나왔습니다. 이자가 붙은 것입니다. 은행에 예금을 하면 이자가 붙는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자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자는 어디로부터 나올까요? 만약 A씨가 은행에 이자의 지불을 요구하면 은행은 금고에 있는 돈다발 속에서 이자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돈을 지불해 줍니다. 그 돈은 다른 예금자가 예금한 돈일수도 있고 중앙은행에서 막 찍어낸 새돈일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돈 그 자체가 어디서 온 것이든 간에 이자에 해당하는 일정액이 지급됩니다. 이 경우 어떤 돈이 지급되느냐 하는 것은 우연적인 일로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여 A씨에게 이자가 지급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A씨가 은행에 예금을 할 때 A씨와 은행간에는 이자를 지불한다는 계약이 성립하기 때문에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은행이지만, 은행 금고 속에 있는 지폐가 저절로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자의 출처는 다른 데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자의 전정한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요?
은행은 자선단체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자본가가 경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가를 금융자본가라고 합니다. 은행에는 대부업무가 있어 은행이 예금자들로부터 모은 돈을 산업자본가에게 빌려줍니다. 은행은 돈을 빌려 주기 때문에 당연히 일정한 이자를 요구하는데 그 이자율은 은행이 A씨 등의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이자율보다 높습니다. 따라서 은행은 산업자본가로부터 받은 이자에서 예금자에게 은행 이자를 지급하고 남는 나머지 돈을 이윤으로서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업자본가는 아무런 계획없이 돈을 빌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빌린 돈으로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팔므로써 남는 이윤을 염두에 두고 돈을 빌립니다. 만약 이윤이 은행에 지급하여야 할 이자보다 크지 않다면 산업자본가는 돈을 빌리지 않을 것입니다. 즉, 산업자본가는 자기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만든 상품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중 그 일부를 은행에 이자로서 납부하는 것이고, 그 중 일부가 예금자인 A씨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윤을 획득한다는 데 자본가의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A씨 등이 예금한 금액은 아무리 소액일지라도 산업자본가에게 자본으로서 공급되고 또 아무리 소액일지라도 이자를 받는 이상 A씨 등이 자본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노동자인 A씨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자본가로서의 일면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호침투의 일례입니다.
한편 자본가도 자신의 사업을 계획하고 이것을 실행합니다. 즉 경영하고 관리합니다. 자본가는 노동의 명령자로서 생산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본가도 역시 노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가의 노동자적 성격이며 이것 역시 상호침투의 일례입니다.
자본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노동의 명령자로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자본가는 사업의 경영이나 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산업의 발전에 따라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그에 대한 경영. 관리도 복잡해 지기 때문에 자본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일을 해낼 수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본가는 경영.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중간관리인이며, 이들은 본래 자본가가 맡았던 경영.관리 노동을 자본가를 대신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간관리인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음으로써 생활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자입니다. 즉, 자본가로서의 노동을 노동자가 맡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침투의 또 다른 일례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대중운동에서 나타는 상호침투에 대하여 얘기해 봅시다.
산간 벽지에 발전소를 만들기 위하여 댐을 건설하는 경우 기술자는 자기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다 하더라도 현지의 사정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댐의 설계도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댐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의 작성을 위해서는 기술자는 현지로 가서 충분한 조사를 행하여 현지의 여러가지 조건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현지 조사의 결과 만들어진 설계도는 다시 현지로 되돌려져서 댐으로서 실현됩니다.
대중운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운동의 지도자가 대중운동에 대해서 세우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침은 댐의 기술자가 만드는 설계도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대중운동의 지도자는 먼저 현지의 대중에 관해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지의 대중에 관해서 연구한 결과 만들어진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침은 다시 대중으로 되돌려져 대중운동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중운동의 지도자 중에는 구체적인 현지의 대중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론이나 방침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대중들의 전체적인 지적수준이 낮다고 하여 대중에 대한 우월감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대중운동이란 대중의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의사를 존중하면서 대중의 자각을 고양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대중의 생활 감정이나 구체적인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대중의 지적 수준이 지도자의 지적 수준보다 낮다고 하는 것은 대중의 인식이 부분적으로 지도자의 인식보다도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중은 대중의 구체적인 생활 경험, 생활 감정, 운동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중의 구체적인 생활 경험, 생활 감점, 운동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대중이 전문가이고 지도자는 문외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외한이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가서 그 부분에 대하여 충분히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전문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의와 예의,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대중운동의 지도자는 대중에 대하여 열의와 예의,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 일반적인 이론이나 전체적인 정세에 있어서는 지도자가 전문가이고 대중은 문외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대중이 지도자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즉, 대중은 문외한이면서 동시에 전문가이고 지도자도 역시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문외한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자는 결합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배움과 동시에 가르친다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지도자와 대중은 서로간에 배움의 대상이 됩니다. 지도자는 대중의 생활경험이나 생활 감정, 그리고 운동의 구체적인 방식에 관하여 배우고 그것을 `직접'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대중화'할 뿐만 아니라, 대중도 또 지도자의 일반적인 이론이나 전체적인 정세판단, 방침 등에 관하여 인식하고 그것을 `직접' 자기의 것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지도자화'합니다. 이러한 지도자와 대중간의 매개관계의 발전은 자기자신을 완성하므로써 상대방을 창조하고 그리하여 스스로도 새로운 존재로서 창조되어 나가는 발전입니다. 이처럼 지도자와 대중은 상호침투함으로써 서로 창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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