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라보기 혹은 시선의 자유
|
이왕주(철학자)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한 로미오가 독약을 먹고 죽는 장면이 있다. 이 죽음에 대해 사랑에 눈먼 로미오가 줄리엣을 따라 죽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로미오가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로미오가 한 발짝 물러서 상황을 살펴보았다면 줄리엣의 가짜 죽음을 알았을 테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 아니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맹목에 빠진 로미오와 관조하는 로미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과 시선의 자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1. 아직도 아침인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로미오가 제 정신으로 극중에 등장하는 적이 없다. 무대에 등장하여 로미오가 던지는 첫마디는 '아직도 아침인가(Is the day so young)?' 라는 반문이다. 이것은 사촌인 벤볼리오가 아침 인사를 건넨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 때 이미 로미오는 해가 어떻게 뜨고 어떻게 지는지 꽃이 어떻게 피었다가 어떻게 지는지 모를 정도로 거의 실성 상태에 있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한 자루 같은 로잘린에 대한 짝사랑에서 이미 이 지경이었으니 나중에 태양 같은 줄리엣을 만나고 나서 어찌 제정신으로 단 하루인들 보낼 수 있었겠는가.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에 '아직도 아침이냐,'고 묻는 실성한 사촌을 위해서 벤볼리오는 로잘린을 잊으라고 단호하게 충고한다.
로미오 : 아, 제발 어떻게 생각을 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게.
벤볼리오 : 자네의 눈에 자유를 주는 거지, 다른 미인들을 살피게.
벤볼리오는 말로만 충고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로미오를 미인들을 살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이것이 비극으로 들어서는 첫발이었다. 그 곳은 로미오와는 원수지간이었던 줄리엣의 집안에서 열리고 있는 연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볼리오의 판단으로는 베로나시의 모든 미인들이 집결하는 그 연회야말로 오직 로잘리만을 향해 있는 로미오의 눈에 자유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몬태규가의 두 청년은 가면으로 얼굴을 숨긴 채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처럼 대단히 사이가 나쁜 관계)인 캐퓰리트가의 연회장으로 잠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운명의 여자 줄리엣을 보는 순간 로미오의 눈은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죽음으로밖에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눈의 속박(bind of eyes)' 상태로 영영 묶여 들어가 버리고 만다. 로미오가 '아직도 아침인가.' 라며 응대했던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면서 로미오는 아예 시간 감각 자체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장소 감각도 온전치 않게 되었다. 들키면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원수 집안의 담을 겁 없이 들어간 만용도 순전히 이 때문에 저질러진 것이다.
2. 로미오의 눈
많은 사람들이 이 유명한 장면을 기억하리라. 이제 어딜 가나 보이는 것은 줄리엣의 환영 뿐인 로미오, 사랑에 눈먼 로미오가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간 줄리엣 집의 창 밑에서 그녀가 묻는다. 어떻게 이 곳을 찾아왔느냐고.
줄리엣 : 누구의 인도로 당신은 이 곳을 찾아내셨지요?
로미오 : 사랑이오, 그것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었소, 사랑이 내게 충고를 주었고 나는 사랑에게 내 눈을 주어 버렸다오. 이제 나는 파일럿이 아니오, 만일 당신이 먼바다의 광막한 해변에라도 가게 되면 나는 당신을 찾아 목숨을 걸고 헤매어야 될 거요.
'사랑에 눈먼다'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로미오의 이 말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로미오의 주장대로라면 눈을 이제 사랑에게 주었으니 보아도 로미오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보는 것이고, 눈물을 흘려도 로미오가 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흘리는 것이다.
자기 눈을 사랑에 넘겨줘 버린 로미오, 줄리엣이 로미오라는 이름을 던져 버리라고 요구했을 때 그에게는 촌각(寸刻, 얼마 안 되는 시간)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줄리엣 : 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은 로미오이신가요. 당신의 아버지를 거부하고 이름을 포기하세요. 그러면 나도 더 이상 캐퓰리트의 딸로 남지 않을 테니까요.… 로미오, 아아 이 이름은 내 원수의 이름이에요. 몬태규가의 아들이 아니어도 당신은 당신에요. 도대체 몬태규가 뭐죠. 그것은 손도 발도 팔도 얼굴도 도대체 사람에 속한 어느 부분도 아니에요. 오 제발 다른 이름을 가지세요. 대체 이름 안에 뭐가 있죠? 우리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변함없이 달콤해요. 로미오, 당신도 로미오라고 부르지 않아도 그 이름과 상관없이 지녔던 사랑스러운 완전성을 똑같이 지니게 될 거예요. 로미오. 이름을 버리세요. 그 허망한 이름 대신 나를 가지세요.
로미오: 그대의 말 그대로 따르겠소. 나를 그저 사랑이라고 불러요. 나는(사랑의 이름으로)새롭게 세례를 받았으니, 이제부터 나는 로미오가 아니오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 로미오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거부된 로미오'로 남는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아주 자유를 잃어버린 눈이 보아야 할 것조차 보지 못할 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빠져들게 된다. 잠시 약을 먹고 가사 상태에 빠진 줄리엣이 깨어날 때까지 그 잠깐의 시간을 로미오가 기다리지 못하고 그토록 서둘러 죽음의 길로 내달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태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유가 그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이미 가짜 죽음과 진짜 죽음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의 자유는 다른 것을 본다는 것, 즉 다른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우리의 눈이 자유를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을 조금 더 친절하게 풀면 이렇게 표현되리라.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제대로 살펴보면 살길이 보인다. 눈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 제대로 살핀다는 것은 생각처럼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종종 삶과 죽음을 갈라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3. 관조하는 사람
야구장에 가 보면 대체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그라운드에서 자기 이름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그들의 목표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투수는 힘을 다해 던지고 타자는 열심히 치고 야수들은 부지런히 받는다. 이들에게서 가장 바쁜 것은 손과 발이다. 둘째는 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환호하거나 탄식하는 관중들이다. 이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는 이유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들에게는 특히 입술이 바쁘다.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선수,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에게는 환호를, 실책을 저질러 게임을 그르치게 만드는 선수에게는 야유를, 심지어 석연치 않은 선수 기용에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감독권까지 간섭하느라 이들의 입술은 한 순간도 닫혀 있지 않다. 공수(攻守) 교대로 틈이 생기거나 게임이 소강 상태에 들어가면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시느라 바쁘고 또 가끔은 치어리더의 사인에 따라 함성을 지르느라 바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구장 어딘가에 앉아서 묵묵히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손 한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 일, 아주 조그만 동작)을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시종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는 그들은 대체로 건성으로 손뼉을 치는 것 이외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 날카로운 눈매와 빛나는 눈동자만이 기민하고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그들의 눈은 심지어 선수들의 경기뿐 아니라 관중들의 응원 동작까지 그라운드 안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살핀다. 운동장 안에 있는 것들로 그들의 눈길에서 비껴 선 것은 없다.
행동하는 첫 번째 사람이나 향락하는 두 번째 사람은 무엇엔가 빠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눈을 무엇엔가 빌려 주고만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로미오처럼 '아직도 아침인가.'하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관조(觀照, 사물의 이치나 현실을 분명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하는 세 번째 종류의 사람은 다르다. 그는 빠져 들지 않는다. 자신의 눈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으로써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는 수학에서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定理)만 남겼던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헝클어진 철학에 대한 정의들도 다음과 같이 간단한 말로 정리하였다. "철학은 보는 것이다(Philosophy is to see)."
피타고라스에 따르면 올림피아 광장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기 위해 뛰는 자나, 스탠드에서 즐기는 자는 지혜와 상관없는 자들이다. 오직 바라보는 자만이 지혜로운자, 즉 철학자의 이름에 값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4. 바라보기 혹은 이데아
피타고라스는 소크라데스(Socrates, B.C. 470?∼399)처럼 플라톤(Platon, B.C. 427?∼347)을 직접 가르친 스승이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피타고라스로부터 깨우쳐 얻은 것들은 절대 과소 평가될 수 없는 것들이다. 플라톤 사상이 중심 기둥을 이루는 영혼 불멸설 이나 이데아론 등은 바로 피타고라스의 영향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영원 불변의 진실 존재'라는 뜻을 가진 '이데아(idea)'라는 말이 아주 어려운 철학 전문 용어쯤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어원을 따져 말하자면 이 말은 그저 고대 그리스어에서 '바라보다'라는 뜻을 가졌던 동사 '이데인(idein)'의 명사형일 뿐이다.
그러니 이 어원대로라면 이데아는 '바라봄'이라는 뜻 이외의 어떤 복잡한 뜻도 갖지 않는다.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리라. 당시 아테네의 시장이나 저잣거리가 아고라(그리스의 도시 국가에 있었던, 중심 시가의 광장. 시민들은 이 곳에서 정치ㆍ학문 등을 토론했다.) 같은 데서 마구잡이로 쓰이던 말을 플라톤은 무슨 재주로 지금처럼 심오하고 난해한 말로 둔갑시켜 놓았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길을 충실히 따라 그 일을 이루어 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생각을 이어 받아 철학을 바라봄으로 믿었고, 그 바라봄에 보다 진지한 의미들을 부여했던 것이다.
바라봄은 피타고라스가 말했던 대로 올림피아 광장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사람처럼 결국 삶의 모든 것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지혜로운 자의 생각들로 바뀌었다. 그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조금은 복잡한 내용들로 변화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이제는 '참을 수 없는 일상어의 가벼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것이 아무리 심오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근본에서 보면 단순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없이 투명한 시선으로 꿰뚫어 본다면,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에 어떤 식으로든 닿아 있게 된다는 말이다.
------------------------------------------------------------------------------------
*영혼 불멸설 : 죽은 뒤에도 인간의 영혼이 영원토록 지성과 의지에 힘을 발휘하여 존속한다는 설. 플라톤은 영혼을 신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혼과 사물을 있게 하는 근원인 이데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피타고라스의 '영혼 윤회설'을 계승한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죽은 뒤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의 혼(魂)이 3 천년 간 동물 속을 돌아다니다, 인간의 육체에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
이데아는 우리가 현실에 있는 사물 하나 하나를 현실의 사물로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눈 (雪)'을 생각해 보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그냥 보기에 다 똑같이 보인다. 그런데 눈의 결정을 보면 그 모습은 제각기이고 공통된 모습을 볼 수 없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따르면 제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 눈은 있게 하는, 즉 모방의 근원이 되는 완전한 형태의 눈이 있다. 그것이 눈의 이데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ㆍ선ㆍ미 등도 이데아가 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져도 꽃의 아름다움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고 불멸하며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데아론의 중심 생각이다.
5. 소리 보기 혹은 관음(觀音)
불가(佛家)에는 깨달음의 한 차원을 표현하는 말로 '관음(觀音)'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왜 관음, 즉 소리를 본다고 했을까. 청음(聽音)으로 해야 되는 게 아닐까. 혹시 이것은 관과 음이 잘못 결합된 개념의 사생아는 아닌가. 그러나 잘못된 결합처럼 보이는 이 말에는 의표(意表. 생각 밖)를 찌르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본래 관음은 자비와 사랑의 지극한 경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해탈한 보살(菩薩, 불도를 닦아 올바른 깨달음을 구하고 뭇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의 다음가는 지위에 있는 성인)이나 열반 상태에 이른 고승 대덕(高僧大德, 학식과 덕이 높은 중)들이라고 다 이런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관음보살(觀音菩薩)만이 이 차원에 도달해 있다. 그는 삶의 온갖 고통들 속에 부대끼는 중생들의 자질구레한 하소연을 듣고서야 아는 보살이 아니다. 그저 어디서라도 중생이 관세음보살(관음보살)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그 한마디로 사태의 전말을 단번에 알아채서 그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해 애쓰는 자비로움에 넘치는 보살이다.
이 보살의 눈은 어떤 형상일까. 그것은 석굴암에 있는 석가모니처럼 초연히 내려다보는 눈도, 달마도의 달마 대사처럼 형형하게 부라리는 눈도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 삶 가까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눈, 가령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랑하는 사람을 침묵 속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그런 눈이 아닐까.
여러분이 병으로 앓고 있을 때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어머니의 눈동자를 본적이 있는가.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그러하리라. 그 때 어머니는 오직 지극한 사랑으로 단숨에 그 경지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의 처치나 진통제의 약효로도 다 잠재우지 못한 육신의 고통은 오직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로만 잠재워지게 되어 있다. 의사나 간호원도 그리고 문병 온 사람들도 오직 내가 고통을 하소연해야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엄마' 하고 부르는 작은 목소리로도 내가 하려는 모든 말들을 헤아려 낸다. 왜 그럴까.
어머니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관음보살의 형상을 어찌 먼 곳에서 찾을 것인가. 종교가 사랑의 지극함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이 때의 어머니는 차라리 종교의 또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투명한 시선으로 꿰뚫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랑과 정성을 다해 보는 차원에 이르면 얻게 되는 앎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움직여서 이 일 또는 저 일을 하게 하고 우리의 다리 근육을 움직여서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플라톤을 가르친 스승 소크라테스가 '알면 행동하게 되어있다.'고 했을 때,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앎은 이런 관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앎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일상에서 목격하는 앎과 삶, 지(知)와 행(行), 이론과 실천의 숱한 불일치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6. 세계관의 시선
앞선 현자(賢者,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 다음 가는 사람)들에 따르면 아는 것이나 실천하는 것 모두가 결국은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런 물음을 던져 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피타고라스가 말한 세 종류의 사람 즉 행동인, 향락인, 관조인 모두가 다 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지 않나.
물론이다. 보는 것은 눈 가진 인간이 일상 생활 속에서 늘 수행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데아가 이것으로 붙잡히고 관음의 차원이 이것으로 열린다니 무슨 말인가. 여기서 다시 벤볼리오가 로미오에게 한 충고를 기억해 보라. '눈에 자유를 주라(give liberty to eyes).' 로미오처럼 사랑에, 운동 선수들처럼 승리에, 관객들처럼 향락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눈은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대상들을 스쳐볼 뿐이다.
로미오가 표현하고 있듯이, 그 때 주체자는 눈을 사랑이나 승리나 향락 같은 것에 주어 버렸다. 그런 다음에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눈으로 내 눈의 자유로움 가운데서 무엇을 볼 때에만 나는 그것을 '본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살아 있는 모든 시간을 다 보는 것으로 보낼 수는 없다. 로미오처럼 순수한 사랑에 빠져 보기도 하고 우상에 열광해 보기도 하고 또 취미 생활에 미쳐보기도 하며 아침 인사하는 친구에게 '아직도 아침인가.' 라고 답례하며 살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눈의 자유로움을 필사적으로 확보해서 무엇을 단호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또는 직업관, 결혼관, 연애관 등등의 언어들을 쓰곤 한다. 말을 하는 사람의 눈에 신뢰가 가지 않을 때 그런 개념들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우리는 인생을, 세계를, 가치를 직접 마주해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눈이 있는가. 우리는 충혈된 눈을 이미 사랑에, 돈에, 권력에, 출세에, 대학 입시에 주어 버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만을 속절없이 굴려 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우리의 눈이 자유로울 때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런 것들을 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이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한 관점의 진정한 주체로 서서, 인생관을 토로하고 가치관을 다투며 세계관을 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독서평설)
철학하는 이유는 철학함으로써 우리가 사고하는 문제를 명확히 하고, 선택하여야 할 것을 구별하여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아는 것이 무지보다 우월한 것이며, 자각과 반성이 몽매함보다 큰 가치를 지닌다는 원칙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철학함으로써 참과 거짓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또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구별할 줄 알게된다.
『철학(진교훈 외)』교과서P.8에서
|
|
|
|
|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