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 조금 더 자라자, 할아버지는 제일 먼저 호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단정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먹을 가는 것과 선을 긋는 법, 점 찍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호가 한 획씩 그을 때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칭찬해 주며 흐뭇해 했습니다.

“명필가가 될 소질이 있구나, 우리 호는!”

할아버지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흐뭇해 할 때면, 호도 웃으며 좋아했습니다.

‘여보, 호가 아주 잘 자라요. 보고 계시죠? 의젓하고 착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힘껏 노력할게요. 호가 마음껏 글씨를 쓰도록 말이에요.’

호의 어머니는 날마다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은 더욱 어려워져서 호는 종이에 마음껏 글씨를 쓸 수 없었습니다.

호는 친구들과 함께 연을 하늘에 띄우며 놀 때에도 하늘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종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 가야겠다, 얘들아.”

“호야, 좀더 놀다가려무나.”

“아냐, 난 글씨를 써야 해.”

호는 집에 돌아와서는 하늘에다 글씨를 쓰듯 낙엽마다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낙엽은 많으니까 얼마든지 써도 괜찮다고 호는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호에게 대나무를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호야, 이 대나무를 봐라.”

“예.” 

“사람은 이 대나무처럼 마음이 곧아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저 소나무처럼 늘 푸른 마음으로,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글씨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란다. 하지만 마음이 있고 실력이 뛰어나도 건강이 나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죽은 호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다던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호는 글씨를 썼습니다.

“호야, 너에게 석봉이란 호를 지어 주고 싶구나. 한석봉이란 이름이 마음에 드느냐?”

“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글씨를 가르쳐 주면 꼼짝 않고 앉아서 열심히 쓰는 호를 보며 할아버지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이것 보라고, 저 집 손자가 쓴 글씨래.”

“한 노인의 손자가 쓴 글씨라네.”

호가 낙엽에 쓴 글씨들을 보며 마을 어른들은 그 힘찬 필체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음…… 이제 막 배우는 어린아이의 글씨라고 할 수 없네그려.”

호의 할아버지는 호가 쓸 붓, 벼루, 종이 등을 샀습니다.

호는 어려운 살림중에서도 공부에 필요한 것들을 아끼지 않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