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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재미나는 인생

지은이
성석제
출판사
페이지수
189
대상
우리 삶과 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는 소홀할 수 있는 사회 여러 문제들을 풍자한다. ‘재미나는 인생1’은 거짓말에 관하여, ‘재미나는 인생2’는 뇌물에 관하여, ‘재미나는 인새3’은 폭력에 관하여, ‘재미나는 인생4’는 운동에 관하여로 나누어 썼으며 웃음 속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내었다. 독자서평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내가 처음 성석제의 글을 접한 것은 벌써 10년전 <낯선 길에 묻다>라는 그의 첫 시집을 통해서였나보다. 시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닌 내가 어떻게 그의 시집을 샀고 아직까지 내 책꽂이에 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나는 그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는데 처음 읽는 것 같이 생소했다. 시의 내용은 거의 모두가 가난, 고통, 죽음, 외로움 등을 소재로 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슬프고 우울하고 가슴이 답답한 한 이야기들, 하지만 보태어지거나 왜곡되지 않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의 우리들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단지 내가 그 속에 속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후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가 내놓은 글을 가끔 접했을때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우리 소시민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주 재미있고 말솜씨로 조금은 밝고 부드러워진 시각으로 글을 쓰는것 같았다. 이번에 읽은 성석제의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 속에서 본 여러가지 삶의 모습들은 반가운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웃음짓고 때로는 잠시 심각한 상념에 빠질 수 있게 하는 바로 즐거운 감동을 주는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그는 시 보다는 소설에 더 재주가 많은것 같다. 그의 소설은 아주 재미있고 쉽게 잘 읽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달필 실력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시 속에 가두기는 아까운것 같기 때문이다. 그도 이젠 중년을 바라보는 안정된 시기에 접어든 탓일까, 세월의 연륜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은 편안해 보인다. 이제는 구태여 직접적으로 삶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책 속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사람' 은 이런 글이다. '퀘벡의 에스키모들은 비버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비버를 잡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에스키모들은 훌륭한 비버 사냥군이 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비로소 비버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사냥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늙은 에스키모, 두 주먹을 쥐고 눈사람 되어 환한 어둠에 쌓이 숲을 향해 서 있는 것'. 그 에스키모가 비록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노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내온 그의 일생이 재미있었고 또 그가 그것을 행복이라 느꼈다면 목표달성 후의 허망감이야 말로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그는 이 책속의 글들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느끼는 재미와 행복이 거창한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가 얘기한 많은 재미나는 인생 이야기가 내게 잠시 시원한 청량제가 된것 같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글을 통해 그의 재미난 인생이야기를 듣고 싶고, 그 재미난 이야기 속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 <인터넷서점 http://www.yes24.com / smkim0928 님이 쓰신 서평> 완전주의자를 위하여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고 시작하니, 갑자기 약장수 생각이 난다. "이 책 한번 읽어 봐. 사는게 재미 없는 사람들, 이 책 한번 읽어 봐. " 나도 그랬다. 사는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사정으로 한차례 동료 직원들이 회사를 정리한 마당이어서 더더욱 출근을 하는 일이 두렵기까지 하였고, 아침에도 간신히 일어났다. 도통 사는데 희망 같은게 보이지 않았던 거다. 성석제의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들 당시만 해도 제목이 눈에 띄었을 뿐, 이 책이 나를 재미있게 해 주리라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웃기겠다고 먼저 말하고 나서 제대로 웃기는 경우는 못 보았으므로, 제목을 오히려 수상쩍게 여긴 게 사실이다. 출 퇴근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나는 주로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하하.. 그런 내가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뻔했다. 크게 웃고 싶은 걸 참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나는 그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이 소설집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묶여 있다고만 말하는 데에서 이 글을 마친다면 나는 아마 독자 서평을 잘못 써도 단단히 잘못 쓴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책이 재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유효적절하게 꼬집고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음을 다음의 일화를 통해 밝히는 것이 제일 좋겠다. 일화란 나의 이야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습지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와 함께 교정을 보고 편집을 하는 선배 언니 중에 도가 지나칠 정도의 특유의 꼼꼼함과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두손두발 다 들게 하는 놀라운 마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래서 그 언니를 완전주의자라고 부른다. 물론 소리내어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석제의 이 소설집에 <완전주의자를 위하여>라는 단편이, 마치 '나를 읽어보라'는 듯 내 눈앞에 버젓이 있는게 아닌가.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완전주의자'는 이런 식이다. '류 박사' 로 불리는 이 분은 무슨 학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되, 텔레비전의 심야 토론에 나오는 어떤 박사보다도 더 박사처럼 생겼다. 그는 그가 사는 동네의 문관의 제왕이자, 배지없는 보안관에 정치평론가, 경제사가, 거기다가 유일무이한 언어학자이다. 특히, 언어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것이, 그 동네의 약수터 옆에 만남에 광장이라는 푯말을 동사무소에 호통을 쳐서 '만남의 광장'으로 바꾸게 하였다. '뇌쇄(惱殺)'를 '뇌살'로 읽은 어떤 사람을 된통 망신을 주기도 하고, 그 동네 음식점의 차림표에서, '떡복기'를 '떡볶이'로, '김치찌게'를 '김치찌개'로 '육계장'을 '육개장'으로 일일히 지적하여 바꾸게 해 놓는다. 심지어 동네 미용실의 '스트레스 파마'가 '스트레이트 파마'로 까지 바르게 고쳐지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런 완전주의자의 완전치 못한 일화를 하나 챙기는 데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저녁 연기>로 잘못 알고 있는 일화와, 빨대를 영어로 '스트롱'으로 발음했던 일이다. 이 글을 읽고, 나에게 변한 게 있다면, 우리 회사의 완전주의자에게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완전한 사람은 진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 회사의 완벽주의자 언니도 내가 보지 않는 어느 곳에서 가끔 이런 가당치 않은 실수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게 아니겠느냐는, 다 그렇게 완벽하지 못하니깐 서로 부족한걸 채워 주며 어울리고 살아가는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 말이다. 40편의 소설이 묶어져 있는 소설집이지만 총 페이지가 200페이지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글들이 사람을 옭죄었다가 풀었다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던지. 게다가 뒤틀리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우리들의 일상을 객관화시켜서 코믹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 작가 놀라운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혹세무민에 천박해질대로 천박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원인이야 어떠하든, 모처럼 그야말로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되어 축 처져 있던 어께에 힘이 들어가고, 찌푸린 이마가 맑게 펴지면서 코바람에 흥이 넘치게 된 건 사실이다. '혹시나...' 했던 것이, '바로 이 거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직도 누가 재미없음을 말하는가..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꺼리로서의 재미가 아니라, 요절복통할 인생의 아이러니로서의 재미를 위하여 말이다. <인터넷서점 http://www.yes24.com / icaru 님이 쓰신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