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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 불꽃처럼 살다간 고흐 - 해바래기의 비명


해바래기의 비명
― 청년화가(靑年畵家)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래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래기는 늘 태양(太陽)같이 태양(太陽)같이 하던 화려(華麗)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출처: 『시인부락』, 1936. 11

* 함형수(1916~1946): 함북 경성 출생, 시 「해바래기의 비명」,「홍도」

* 도움말
평론가인 김흥규의 글을 인용해보자.
“함형수는 짧은 생애 동안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였으면서도 이 작품이 주는 강력한 인상으로 하여 여러 독자들에게 길이 기억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의 단호한 어조와 굵고 뚜렷한 주제의 효과는 강렬하다. 이 작품은 죽음을 넘어선 삶의 의지를 노래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청년 화가는 육체의 삶이 끝나 비록 땅 속에 묻힐지라도 뜨거운 삶의 의지를 버릴 수 없기에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차가운 비석을 거부하고 그 대신 정열의 상징인 해바라기를 심어 항상 태양을 향해 얼굴을 돌리도록 한다.


그는 육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사랑이 기억되고 정열적인 생명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세상을 사는 자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색깔도 없고 주관도 없이 사는가 하면,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폭발력을 지닌 삶을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관련 내용
늦은 가을의 깊은 밤.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들이 몇몇 떠 있습니다. 그 몇 개의 등불들이 정답게 보입니다. ‘저기에 또 <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답다가도, ‘그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오히려 외로움은 더해갑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진실로 의미 있는 삶일까.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이런 질문들은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하잘것없는 일로 부대끼며, 그저 하루 분의 약을 타 집으로 돌아오는 환자와 같은 삶.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점점 작아지는 삶. 이것이 나의 인생이란 말인가. 이렇게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늘 낯선 인물만 침울하게 거기 있을 뿐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를 리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우리는 가을밤을 불면으로 밝히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일상의 반복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나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가위눌린 아이가 비명을 지르듯, 음악을 듣고 글을 끄적거려 봅니다. 모차르트에서 말러, 그리고 훼라리와 연애까지 들어도, 구겨진 종이들이 방 안 가득히 널려도, 여전히 마음은 허전하기만 합니다. 아, 잠 못 이루는 밤, 누군가와 깊은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만 있다면…….


고흐가 처음부터 화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종교에, 아니 인간에 헌신하고자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화가의 길도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더욱 성스러운 것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 고 평생의 정신적 반려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말했을 만큼, 그는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했던 따뜻한 사랑의 소유자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보리나쥬의 탄광지대에서 비인가 전도사로서 탄광의 막장 끝까지 몸소 가보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합니다. 마침내 그들의 비참한 대우에 항의한 그는 전도사 자리를 잃고 맙니다.


인간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그러기에 자신의 슬픔조차 자화상으로 그렸던 비극적인 영혼의 소유자, 반 고흐. 고흐의 작품에 자연과 생명,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눈길이 어리는 것은 이런 전기적 맥락에서 쉽게 이해됩니다. 고흐에게 있어서, 세속의 삶은 끝없는 실패의 연속이요 거부되는 과정이었지만, 그는 끝내 따뜻함을 잃지 않은 뜨거운 사랑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고흐의 사랑은 인간과 자연, 우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그 애정의 표현은 오랜 방황끝에 마침내 화가의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끝없는 추구 정신으로 자신과 모든 존재의 내면을 그리고 힘을 씁니다. 실제로 그의 이런 표현형식은 그가 가진 사랑과 슬픔의 폭과 깊이에 의하여 “단순한 환희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있는 생명의 고양을,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존재의 눈부신 신비, 우주론적인 심정의 표출”로 나타납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이란 색채와 선과 구도의 집합체가 아닌, 그의 열정과 고통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뜨거운 몸짓이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관습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영혼을 표현합니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유럽 회화에서는 황색이 쓰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타오르는 태양과 생명력에 넘친 보리밭과 해바라기를 그리기 위해 거리낌 없이 황색을 사용하였습니다.


그에게 황색은 자유의 색입니다. 아니 그에게 있어 모든 색은 자유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의 색채는 작품마다, 인생의 시기마다 내면적으로 소화되며 강렬한 터치와 선으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고흐는 색에 정신과 영혼을 부어 넣은 몇 안되는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고흐라는 인간의 영혼이 소진(燒盡 : 타서 모두 없어짐)된 표현이며 고뇌의 흔적입니다. 27살에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37살에 권총 자살을 하기까지 불과 10여 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모든 존재의 내면 깊숙이 생명을 불어 넣고자 하였던 몸부림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특히 아를르, 생 레미, 오베르 시절의 마지막 3년간은 그의 슬픔과 사랑과 열정이 모두 폭발되던 때였습니다. 한 인간이 그 존재 의미를 충분히 찾고 스스로를 구원해 나가는 시기였습니다. 자화상들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찾고자 노력했고, 자기 외부의 모든 존재들과 합일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그림만을 위해 존재한 인간이 아니고, 모든 존재의 구원을 위해 그림이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간입니다.
(허병두, 「불꽃처럼 살다간 고흐」)

* 관련 어록 및 어휘
지혜는 목숨을 오래 이어 가게 하고, 정열은 삶을 살게 한다.《S.샹포르》


세계에서 정열없이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었다고 확신한다.《G.헤겔》


정열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얼마나 이성이 약한 것인가가 입증된다.《J.드라이든》

* 생각 거리
1. 고흐의 삶을 기록한 전기를 찾아서 읽고 독후감을 써보자.
2. 나의 자화상은 어떠한지 스스로 종이 위에 그려보거나 글로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