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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두렵지만 사랑하고, 무섭지만 사랑하기에.
글쓴이 권규린

나는 어렸을 때, 모두가 잠들어있던 그 밤을 그렇게 무서워 했다. 생각에 잠겨 잠들지 못하는 내가 무서워서, 초등학교 내내 한참을 밤과 다투어야 했다. 가끔은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에도 밤은 언제나 무섭다는 말을 쓰곤 했는데, 선생님은 내게 생각이 많은 것은 좋은 거라 말씀하시곤 하셨다. 밤과 깊은 마음을 무서워 했지만 밤은 불꽃처럼 내 발등에 튀었다가, 나의 아픔을 모르는지 금방 발등에 피어나고는 했다. 나는 그렇게 아무런 손을 못 쓰고 그저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내갔다. 


내가 무서워하던 밤을 가만히 두고, 나를 가만히 두니, 정말 시간이 약인건지 내가 무서워하던 밤은 온데간데 없고, 깊은 마음을 너무 많이 품어 마음을 두려워하던 소녀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밤에서 나왔는데, 이미 발등에 꽃 피운 '밤'이라는 불꽃에 정이 들었는지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졌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같은,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 내게는 필요했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날들은 나에게 필요 없었고, 삶의 이유를 찾게 해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고뇌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에 진심이고, 사랑에 진심이고, 인생에 진심인 나를 좋아한다. 좋아해버렸고 좋아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더 성장할 줄 알았던 소녀는, '성장'이 두려움이 없는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나이를 먹고 깨달은 성장은 그저 많이 고뇌하고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겁쟁이였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나를 잘 모른다. 그토록 헤엄치던 밤에서 나왔는데, 헤엄치던 밤에서 나오니 아무런 시간이 없다. 시퍼런 봄에서 나왔더니, 봄의 끝에는 아무런 계절이 없었다. 


어쩌면, 밤과 밤의 사이를 걸으면 사랑하던 내가 나올까. 밤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워도, 그래도 웃던 내가 거기에 있을까. 밤과 밤을 겹쳐 누르면, 낮이라는 밤이 보일까. 낮이 사라지면 금방 밤을 잊을까. 


고뇌하던 밤과 무료하던 밤의 사이를 걸으면 중간에 서있는 사랑하는 내가 나올까. 무서워도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까. 밤과 밤을 겹쳐 누르면, 낮이 보일까. 혹시 낮이 사라지면, 나는 금방 밤을 잊고 밤을 낮이라고 알까. 아니면 밤을 잊고 낮도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릴까. 


내가 그토록 고민하던 밤에 대해 생각하니 

내가 사랑하는 나의 타인들이 생각나서 슬퍼진다. 

만약 그들이 사라지면, 나는 금방 그들을 잊고 다른 이들을 그들로 보면 어떡하지. 나를 기록하다 보면 타인을 기록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나를 기록하다가 세상을 잊고 나를 잃고 사람을 모르게 되면 어떡할까. 


수 많은 밤과 밤의 사이를 걸어도 별이 보이지 않을까봐 두렵고, 수 많은 밤과 밤의 사이를 걷고도 보이지 않는 별을 사랑할 내가 나라서 슬프다. 


권규린 (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