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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감상문

제목 엄마의 엄마 / 스즈키 루리카
글쓴이 노문희


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정상이란 기준이 존재한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마찬가지. 보통 부모와 자녀가 있는 가족을 정상이라고 한다면,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하는 상황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게 비정상일까? 아주 어렸을 적의 나라면 불편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라면서 보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떠올려보면, 이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아니라 그냥 다름의 시선이었다. 누구나 같을 수 없는 형태,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가족의 개념도 변화한다. 있는 그대로 보면서 인정해주면 될 일이다.


작가는 전작에서도 그 다양한 시선과 다름을 인정하게 하는 이야기로 모녀의 일상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그동안 돌아가신 줄로 알던 할머니의 등장으로 이 가족의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마치 연작소설처럼 태양은 외톨이, 신이시여, 헬프, 오 마이 브라더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청소년기를 지나는 하나미의 또 다른 일상을 보여준다.


태양은 외톨이는 집에서 자기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이런 가족도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하나미. 그 집에서 나올 시기를 보면서 돈을 마련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하나미는 현실적이지 못한 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하나미 모녀에게 돈 때문에 생긴 일을 보고 친구의 의견에 동조한다. 하교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 하나미는 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노인을 본다. 엄마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던 노인은 하나미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였다. 돌아가신 줄 알던 할머니가 갑자기 등장하고, 엄마와 할머니는 데면데면, 게다가 할머니는 못 받은 돈을 받으러 왔다는 뻔뻔함까지 발휘한다. 알고 보니 엄마가 매달 얼마씩 할머니에게 송금하고 있었던 것. 하나미의 중학교 입학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서 할머니에게 돈을 보내지 못하자 냉큼 돈 받으러 오신 할머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엇보다 엄마와 할머니는 보통의 모녀 사이 같지가 않았다. 서로 모른 척 원망의 눈빛으로, 세상 나 혼자 산다는 느낌으로.


낯선 할머니의 등장으로 혼란스럽던 하나미는 엄마에게 과거 이야기를 조금씩 듣는다.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 엄마가 할머니를 왜 원망하는지, 할머니는 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많은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하나미가 엄마나 할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역사가 있고 사정이 있다. 할머니를 외면하고 살아왔던 엄마에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고,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니, 원망도 미움도 애정도 다 제각각일 테다. 어쨌든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힘들다. 하나미는 돈만 있다면 할머니한테 드리고 나가라고 하면 될 것 같아서 친구와 함께 돈을 벌기 위한 계획을 한다. 그게 잘될까 싶다만...


하나미를 좋아했던 미카미의 이야기인 신이시여, 헬프는 집안에서 머물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해서 신학교로 진학한 그가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된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이제 신밖에 없으며, 신과 함께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다시 마주친 하나미 때문에 그의 의지는 순간적이지만 흔들린다. 신만 바라보겠다던 그는 하나미를 다시 만난 이후로도 여전히 신과 함께일까.


이어지는 오 마이 브라더는 의외의 내용에 조금 놀랐다. 하나미의 초등학교 담임이었던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던 형이 어느 날 사라지고, 오랜 세월 동안 가족들은 사라진 형을 찾으러 다닌다. 처음처럼 적극적으로 다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형을 찾고 있으며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형이 사라진 것을 두고 그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떠올리고 파고든다. 차원을 건너 어딘가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사라졌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있다고, 어떻게 사라졌든 형이 다시 돌아올 거로 믿으며 패러렐 월드에 심취한다. 병행해서 존재하는 여러 세계,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에 똑같이 존재하는 우리를 상상한다. 그런 상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꿈꾸기도 하고, 여기에서 불행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삶을 저기에서는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가 저기에서는 연예인을 하고 있을지도.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한 반전은 놀라웠지만, 사라진 형 역시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간 건지도 모르겠다.


세 작품 모두 가족과 자리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하나미의 가족은 가난하고 항상 돈에 쪼들리지만 그들의 자리가 있다. 마음 편히 몸 뉘고 잠들 수 있는 곳. 가족이라고는 엄마뿐이지만, 부족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훌륭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 역시 엄마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하나미의 친구도 여전히 자기만의 자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채로 성장해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고민하는 여학생의 고민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 이 자리가 나의 몫이 아니라면 내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한 노력을 누구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건상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해도, 그 언젠가를 위한 고민과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질 테지. 기도 선생님의 사라진 형 역시 그만의 자리를 오랫동안 찾아다녔을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혼자서 많이 고민하고 있었는지도.


얼핏 들어보면 중학생 하나미와 하나미 주변 사람들 각각의 사연 같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곰곰 생각하면 결국 가족의 이야기다. 어떤 가족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지, 그 가족 구성원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생각으로 머물고 있는지 말이다. 어른으로 향하는 시간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글을 써냈을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작가가 바로 스즈키 루리카다. 가끔은 빨리 철든다는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부모의 고충과 집안 상황에 따라 때로는 포기하고 다른 가족을 배려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일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어가는 걸 보는 것 같은 일들이 떠오른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환경이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빨리 철드는 상황을 이해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어서 말이다. 나머지 두 작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이다. 누구나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쌓아왔는지도 중요하다. 저마다의 상처일 수도 있지만, 그 상처를 안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부모와 자식이라면 사이가 좋으면 좋겠고, 부모와 자식이라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싶다. (108페이지, 태양은 외톨이)


끝나지 않을 고민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 같지만, 어떤 상처도 한 번에 쉽게 치유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거로도 충분하다.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어떤 일이 생겨도 살아갈 것이고, 또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삶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