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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감상문

제목 완벽한 아이 / 모드 쥘리앵
글쓴이 노문희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312페이지)


15년간 아버지에게 감금당하듯 살아온 소녀가 그 집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끔찍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현재의 삶을, 그녀가 잃은 많은 것을 찾아가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회복은 더뎠다. 쉽게 꺼낼 수 없는 기억이 되어 일상을 마비시켰다. 사십여 년이 지나고 이 책이 나온 이유가 그 고통의 시간을 증명한다. 선뜻 말할 수 없던 시간이 그렇게나 길었다. 정신적인 학대가 한 인간의 성장과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보여주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의 딸을 초인으로 만들겠다며 시작된 아버지의 계획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세상은 한없이 위험하며, 배신자로 들끓고, 어디서 공격해올지 모를 적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훈련처럼 아버지는 딸을 훈육한다. 가두고, 씻지도 못하게 하면서, 연장을 쥐여주며 일을 시킨다.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상처에 독한 술을 부어 소독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소변보는 일을 어린 딸에게 수발들게 하고, 딸이 당하는 성폭력을 보고도 외면한다. 아버지가 행하는 모든 일은, 딸이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당연했다.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모드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방식에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 더없이 사악한 인간이 우글거리는, 더없이 위험한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말고,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갈 존재로 만든다는 그의 신념을 누가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광기에 휩싸인 아버지 손에서 자란 모드가 세상으로 뛰쳐나오기까지 버티게 한 건,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동물들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개, 두 마리의 말, 무리에게 공격당하던 오리. 그리고 책과 음악이었다. 아버지는 전쟁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음악을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모드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쳤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혔다. 그런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모드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위기를 감지한 좋은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발휘한 모드의 의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아버지 역시 잔인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 광기의 시작은 모드의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드의 아버지 역시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인물이며, 그가 겪은 두 번의 전쟁은 큰 상처를 남겼고, 그로 인해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릇된 방식이라는 게 그 계획의 오류였지만. 모드의 어머니 역시 부모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했으며, 남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딸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는 존재가 된다. 모드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드. 세 사람 모두 희생자와 피해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이기고 버티며 존재하려고 애쓰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모드의 아버지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잘못된 신념은 어린 딸을 어떻게 망쳐가고 있는지 보여주었으니까. 그런데도 강인한 정신력의 모드는 이 이야기의 의미가 된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삶이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해준 것보다 훨씬 끔찍하다는 것을, 온통 폭력과 오욕과 복수와 배신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 반대로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 잠기고, 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 (157페이지)


조금씩 버티고 나아가는 그녀의 의지는 아버지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그녀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문을 연다. 트라우마를 이겨낸 그녀가 이 책으로 현재 그녀의 삶을 보여주었듯이, 우리에게 닥칠 불행과 위기를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지 미리 증명하는 답이 된다. 그녀 옆에서 의지가 된 동물들과 책(문학), 음악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자유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321페이지)라는 신념이 그녀에게 완전한 치유를 선사해주었기를 바란다. 충격으로 시작했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면서 페이지를 덮게 하는 책이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절망이 아니라는 희망을 남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