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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사물함
글쓴이 김나영

"네가 그럴줄은 몰랐어."

"그래. 내가 잘못한 거 인정할게. 그런데 너도 잘한 거 없지 않아?"

1교시 시작하기 전, 절친이었던 나와 임유영은 학생들이 잘 쓰지 않아 조용한 화장실에서 처음으로 말다툼을 벌였다.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다른 애들에게 떠벌리며 뒷담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실수를 저지르자마자 나도 바로 사과했고,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사과를 받아들인 듯한 제스처를 취해 잘 수습된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곧 예비종 울리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손목시계를 흘끗 본 후 일부러 통보처럼 말하고 화장실을 나와 반으로 갔다.

내가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유영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뒤 선생님이 자리바꾸기용으로 제작한 번호가 적힌 나무 막대기를 담은 통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자리 얼마 전에 바꿨는데 또 바꿔요?"

"아니. 마니또 하려고 갖고 왔어. 뽑은 나무 막대에 적힌 번호에게 5일 동안 마니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해. 모둠 대표로 아무나 한명씩만 나와서 거위바위보로 뽑을 모둠 순서 정하자."

선생님들까리 마니또 했는데 재밌었다고 하시더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나보다.

애들이 빠르게 진행한 덕에 일사천리로 모둠 순서가 정해진 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었을 때 어떤 애가 나오든 남들에게 부럽단 말을 듣게 해 줄 생각으로 번호를 뽑았다.

자신있게 뽑은 나무 막대에 적힌 번호는 10번. 임유영이었다.

운명은 나더러 어쩌라고 이 번호를 뽑게 했을까.

이 일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마니또 끝난 다음날 이 시간에 마니또 밝히기 할 거야."

선생님은 잘 해보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1교시 수업을 위해 반을 나가셨다.

반 애들은 들떠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데 나만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어떻게 하면 이 고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머리에 쥐나도록 생각해본 결과, 유영이가 좋아하는 젤리와 마음을 담은 편지를 사물함에 넣어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자는 결론을 냈다.

학교 끝나고 유영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사는 걸 잊지 않도록 '젤리 사기'라고 손바닥에 볼펜으로 적고, 1교시 과목의 교과서를 꺼내려 사물함으로 갔다.

사물함을 열자 눈에 띈 것은 수많은 교과서가 아니라 내가 넣어둔 적 없는 유영이 취향의 작은 봉지과자와 그 과자에 붙여둔 포스트잇이었다.

누가 준건지 알 것 같은 과자를 꺼내 포스크잇에 쓰인 글을 읽었다.

'1교시 끝나고 할 말 있어.'

아침마다 유영이가 사왔던 작은 봉지과자에 이어 내 마니또는 유영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다.

1교시 끝난 후 유영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 예측해보고 수업하기를 반복하다보니 1교시가 끝났다.

포스트잇에 써준대로 유영이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가윤이 네 번호가 적힌 나무 막대를 뽑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무지하게 고민했어."

40분 전과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내기 속죄하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로 했어."

친구는 닮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우리 화해할래?"

자신의 눈을 내 눈에 똑바로, 그러나 부드럽게 마주치며 물었다.

"그래."

속죄한다는 유영이의 눈동자에서 진심을 읽었다.

"나도 이제 실수 안 할게."

이번처럼 말다툼의 원인을 만들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 관계가 더 돈독해졌기를….

(이목중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