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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그토록 길었던 그 해 봄은,
글쓴이 권규린

그토록 길었던 그해 봄은,


나는 우리의 특별한 봄을 기억한다.

나는 나의 하나뿐인 봄을 기억한다.

따뜻하고도 조금 쌀쌀한 봄이라는 계절은 너를 만난 이후로 지속되었다.

갈색의 나무가 형체 없이 떠도는 바람에 흔들리고,

그 무엇보다 맑은 하늘이 나의 마음을 온몸으로 감싸올 때 나는 봄이었다.

차가운 온도의 하얀색 눈이 내리고, 너와 힘겹게 눈사람을 만들었을 때도

너와 함께라면 나는 예쁜 꽃이 활짝 피는 봄이었다.

너와 마주치게 된 그때부터 나는 쭉, 어떤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따뜻한 봄이었다.

너는 나에게 봄이었다. 그토록 길었던 봄.


오늘도 내가 너보다 먼저 학교에 온 것인지 너의 신발장에는 신발은 온데간데없고 쓸쓸한 먼지만 돌아다녔다.

역시, 평소와 다름없이 텅텅 비어있다.

먼지만 나뒹굴고 있는 너의 텅텅 빈 신발장을 바라보다 나는 너와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던 작년 겨울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 만들었다!”

너는 이 말을 하고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왜 눈사람이 2개야?”

나는 2개가 아닌 눈사람에 의문을 품게 되어 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맨 왼쪽에 있는 건 너의 왼쪽에 있는 나. 맨 오른쪽에 있는 건 너의 오른쪽의 있는 나야.”

네가 다시 한 번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나에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너에게 왠지 이런 말이 하고 싶어졌다.

“그럼 가운데에 있는 건 나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떤 곳에 네가 있든 난 너를 볼 수 있겠다.”

“난 언제나 여기에 있을래. 눈사람처럼 여기에 서서 너를 지켜볼게.” 라고 말이다.

눈사람처럼 언제나 여기에 서서 너를 응원하겠다고, 지켜보겠다고.

그렇게 멍을 때리며 생각하다 차가운 눈이 내 뺨 언저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너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하고 있지 않아도 똑같이 밝은 표정의 미소를 짓고 있는 너는 따뜻한 봄도, 더운 여름도, 쓸쓸한 가을도, 차가운 겨울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너만의 계절이 있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너로 인해 나는 너를 만난 그 이후부터 쭉 봄이라는 계절로 살아갈 수 있었다.

너를 만날 때 나는 항상 밝은 햇빛을 받고 있는 행복한 봄이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먼지가 굴러다니는 너의 신발장은 괜히 나를 웃음 짓게 하였다.

여전히 똑같은 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나의 계절은 아직도 길고 긴 봄인 것 같아서.

너와 함께 있으면 나의 계절은 항상 봄일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밝게 웃음 지었다.

너라는 봄 때문에. 너라는 하나의 계절 때문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하얀 눈이 펄펄 내리던 작년 겨울.

손이 시려도 꿋꿋이 서서 너와 함께 여러 개의 눈사람을 만들 때도 나는 노란색의 봄이었다.

올해 첫 계절에도, 비가 많이 오던 여름에도, 잎이 떨어지는 가을에도 여전히 나는 혼자 봄이었다.

추웠던 작년 겨울 우리가 만들었던 3개의 눈사람은 이미 녹아 사라져버렸지만, 그 3개의 눈사람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을 채워 따뜻한 온기를 주었다.

그러니 그것들은 다 우리의 마음속에 쌓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메일이 기대된다.

그토록 길었던 우리의 봄은 언제 끝이 날지, 길었던 그해 봄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우리가 이번에도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지, 내일도 내가 너의 신발장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어볼 수 있을지.

그토록 길었던 나의 봄은 언제 다른 계절을 맞게 될지.

너라는 봄과, 너라는 하나의 계절과 함께 있으면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우리의 봄이. 앞으로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토록 길었던 그 해의 봄이 올해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가 너무나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건조한 땅에 수만 개의 비가 내려꽂힐 때, 그토록 맑은 하늘이 내 마음을 감싸올 때 나는 봄이었다.

하얀색의 차디찬 눈이 눈 앞을 가리고, 그 하얀색의 눈으로 투명하고 순수한 우리가 눈사람을 같이 만들었을 때도 너와 함께라면 나는 봄이었다.

너를 만난 이후로 나는 쭉 여러 색의 꽃이 이 세상을 물들이는 그런 계절인 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런 계절의 봄이다.

그토록 길었던 그해 봄은, 그토록 길었던 너라는 봄은 앞으로 나로 인해 그토록 길고도 긴 봄을 맞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그토록 긴 봄을 우리가, 너와 내가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권규린(중학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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