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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이름 모를 벌레
글쓴이 김현진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도 그 누군가의 소중하고, 귀중한 자식이었다. 작은 먼지만한 존재이긴 했지만 내 삶을 영위하며 나는 내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겼다. 같은 무리 속에도 뛰어나고 대단한 존재라고 스스로 칭하며 큰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그 땐 내가 이 세상 최고의 존재라고 여겼었다. 아니, 그 당시 나의 비좁은 시각 서속에서는 그랬었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면, 증오로 가득차서 내 모습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내가 다른 환경, 공간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모두가 동경하는 존재일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었다. 어쩌면 그 때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주변에 있던 존재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던 그 때가.



나는 새로운 환경에 도착한 후, 조금씩 잃어가는 내 모습과 능력들을 보며 그늘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았다. 내가 그 어둠 속에서 다른 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나, 이 상황을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나를 평가 절하하는 그 거머리들, 그리고 사실과 다르게 부풀리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내 날개를 갉아먹는 존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 가치를.



모두가 갈망하는 그 빛으로 악착같이 올라왔더니, 이미 많은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죽은 자들처럼 말없이 눈을 감고 있을 뿐. 어서 나에게 잘 왔다고 칭찬해줘야지. 이 자리에 올라오고 나서 자신을 무시하던 자들이 야비하게 바뀌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말해줘야지. 왜 다들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기분 나쁜 액체가 내 몸을 가득 적셨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다가가려고 하자 그 액체들은 더 큰 구름을 몰고 와 나에게 몰아쳤다. 순간 휘청거렸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내 숨통을 조이고 있지 않지만,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주변을 가자미눈으로 차차 둘러보고 있었는데, 불쾌한 눈빛을 뿜어내는 그 거대한 자는 나에게 그 구름들을 또 선사하려고 했다.



그 때 느꼈다. 차라리 일단 바닥을 기어 눈치껏 나가자고. 힘을 빼고 절대 흡수 될 일 없는 물들이 고여 있는 아스팔트 밑으로 내 몸을 던졌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더 괴로웠다. 모든게 다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내 머리 속에 자리 잡은 뜨거운 액체들이 한 쪽으로 쏠리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때 아까 그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자가 거대한 물체를 가져오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세상이 흐릿해졌다. 숨이 안 쉬어지며 허무했다. 아직 이루어낸 게 하나도 없는데. 나 아직 내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이런 게 죽음인건가? 살면서 제일 비참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누가 봐도 짜증이 날만한 시선을 하던 그 존재가 가까이 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죽었네?”



그냥 평범하게 살 걸 그랬나. 그들이 나를 향해 내뱉은 말도 안되는 소리들을 무시하고. 그냥 어둠 속에서 잠식해있던 게 차라리 나았으려나?



아니다. 나는 그 무식한 자들과는 아예 다르다. 그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더 이상 성장해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새하얀 독백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내 삶이 더 낫다.



내 죽음은 그 바보 같은 자들의 생명을 다 합친 것보다 값지리라.



(고등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