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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클럽2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글쓴이 최혜련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의 내가 기대했던 미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오딧세이나 어린 시절 즐겨본 만화인 2020 원더키디의 시기를 이미 지나왔다. 우주여행이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일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상’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우리가 과학기술적으로 진일보한 현실에 안착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편리를 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SF적 상상력은 허구의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과 무관하게 비약한다. 오히려 현실에서 무한히 탈주하고 궤도를 이탈하기 위한 즐거움을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가 현재가 되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상과학소설은 단순히 재미의 차원을 넘어야할 지점에 도달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비워놓고 새로운 작가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의 통찰과 사유 덕분에 이런 생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 김초엽이다.

 김초엽 소설의 세계는 과학적 상상을 인간의 삶에 섬세하고 정확하게 안착한다. 우주비행, 외계의 지성 생명체, 데이터 시뮬레이션 등 상상과 허구의 산물이지만 이 또한 인간의 차원에서 독자에게 전해진다. 독특한 공상과학의 소재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안으로 끌어안아 미래의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났던 영웅의 표준과 거리가 있다. 건강하고 지적인 백인 남성 과학자가 아니라 여성, 장애인, 비혼모 등이며 순조롭지 않은 임무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시도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맥락없이 철학의 어원인 philosophy를 떠올렸다. 지혜에 대한 사랑. 이 책은 지혜에 대한 사랑과 윤리적 고백이다. 앎의 세계가 삶과 괴리되지 않을 때, 그 실천으로 하여금 사랑으로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100년이 넘게 우주선을 기다리는 노년의 우주비행사(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나 외계 지성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말을 증거없이 남기는 우주연구원(스펙트럼)의 삶을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사랑의 마음이 100년의 지다림을 지속하게하고 우정의 비밀을 평생 간직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년에 올해의 책으로 여러 곳에서 선정되었다. 2019년이라는 시간의 구획에서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나에게는 평생에 가장 소중하게 남을 과학소설이다. (앞으로 김초엽 소설가가 작품활동으로 갱신해주시겠지만) 우리가 꿈꿔온 미래가 현재가 되는 지금,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미래소설을 만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