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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클럽2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 채사장
글쓴이 김지인

지식이 영(0)인데 왜 읽는 거예요? 한 아이가 물었다. 푸핫, 소리 내어 웃었다. 한참을 둘이서 키득거리다 와, 진짜 그러네 싶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 얻은 결론은-물론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이 다룬 것의 이전을 담은 것이라 ‘제로’라는 수를 붙인 것이겠지만- 우리가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라 영, 이라는 것이다. 21세기의 첨단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오래된 고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대한 스승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지혜를 참고함으로 오늘 내 안의 혼란을 멈추기 위해.


단순한 오기라고 하기엔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지난 2015년. 무려 5년 전으로(말도 안 돼!) 되돌아가 보자. 채사장 작가가 <지대넓얕> 그 첫 번째 책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을 때, 열풍에 휩쓸려 읽었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 얕은 지식인지. 나는 이런 얕은 지식조차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덮었다. 아직 이 책을 읽기엔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신간 제목이 제로라서 도전했다(생각해보니 나 정말 단순하네). 처음부터 읽으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내 안의 빛나는 질문들을 던지며 내 안의 아기 코끼리와 돌아가기 위하여. 우리가 왔던 그곳으로. 위대한 스승들과 그들의 사상을 기억하며.


입 닥치고 그냥 계산해! 읽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약속이라 꾸역꾸역 읽었다. 체하는 느낌은 여전했고, 이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대한민국의 교양 수준은 상당히 높군, 하는 마음으로 감탄하는 것도 여전했다. 근데 이 체하는 느낌을, 다 읽어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화끈한 한 방을 날려주신 분이 등장했다. 네, 그냥 잠자코 읽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해하게 됐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도 까먹은 양자역학 교수님, 당신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땡큐!


아마도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는 비슷한 고민과 슬픔을 가졌으리라.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해답은 없는 것인가?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종교, 철학, 과학, 수학, 역사 등 정말 다양한 분야들을 다루었는데 이 모든 걸 헷갈리지 않고 정리했다는 데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도 있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있기에 세계는 굴러가는 법!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위대한 스승들이 나에게 남긴 메시지는 이해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자아의 마음이 그려내는 것이고, 세계란 자아의 마음 안에 담긴 것이며, 자기의 내면으로 깊게 침잠했을 때 비로소 세계의 실체와 조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위대한 스승들의 보편적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이거라도 남아 있으니 어디야. 다행이다.


세계 속에 당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당신 속에 세계가 있다는 진실, 세계의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진실.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찬란히 빛나는 우주의 본질과 마주해야 한다. 복잡한 설명과 디테일, 사람 이름이나 지명 같은 것은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이 사실 하나만은 기억하고 가길. 그것이 바로 채사장 작가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무려 제로까지 집필한 이유일 테니.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전에 포기했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지대넓얕>을 살 생각이다. 뭐, 두면 언젠가 읽겠지! 제로를 어떻게든 읽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