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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1-03-31
작성일 2021-03-31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

(이은규의 '속눈썹의 효능' )

 

몇 년 전에 한 번 읽고 스친 것 같았던 시의 구절. 흘러가듯 잊고 있다가도 이 구절은 생각이 나곤 했다. 그렇게 어김없이 잊고 있다가 이웃 블로거가 올려놓은 시 달력으로 다시 기억이 났다. 딱 이 계절에 유독 생각이 나는 구절이었는데, 하면서...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 '가는 봄'

이별하는 대상은 사람이나 사물이 전부일 거로 여겼던 마음에 계절이라는 대상을 하나 더 넣은 순간이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계절과 계절 사이. 점점 짧아지는 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 때 더 기분이 엉망이 되기도 하는, 마치 잃어버린 것을 아무리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하는 순간인 것만 같은.

 

화요일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계속 밖에서 보냈다. 3월이 끝나가는 이때, 이제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햇살은 너무 뜨거웠고, 입고 나간 얇은 겉옷을 벗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밖에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을 걸어서 다녔으니 땀이 날 법도 한데, 그래도 그렇지. 아직은 3월인데 그렇게 더운 게 말이 되나 싶어서 괜히 화도 나고, 계절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아서 쓸쓸해지고 그랬다.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에 계절이 있더라는, 유독 이번 봄이 그렇더라. 그리고 지난 주말, 거의 이틀을 채워서 내린 비 때문인지 다시 추워졌다. 패딩까지는 아니어도 도톰한 외투를 들고 나선 길에서 아직은 봄의 기운을 느낀다. 헤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는, 사라져버린 계절이 아니라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계절이라는 생각에 혼자 배시시 웃음이 났다. 마치 나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싫어하는 비를 뿌리고 가는 봄을 붙잡아준 것 같아서 하늘을 봤다. 내 말 듣고 있었나 봐?

 

힘든 계절, 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겨울이었던, 3월이었다. 사실 이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갈수록 뭔가 쌓이는 것만 같은 부담이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었고, 꼼꼼하다고 불렸던 성격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뭔가를 빠트리고, 다시 찾으러 왔다 갔다 하는 횟수가 늘었고, 그래서 같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몸무게가 2kg이나 빠졌다. 그렇게 살을 빼고 싶다고 할 때는 절대 빠지지 않던 게 정신없이 보낸 시간에는 저절로 빠진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마른 체형이 아니라 몸에서는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얼굴은 해골처럼 추레해졌다. 보는 사람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곤 하는 걸 보면, 내 얼굴이 엉망이긴 엉망인가 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에 얼굴은 얼마나 더 망가질까 걱정을 하면서도, 이대로라도 좋으니 좀 고요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다. 언니가 아니지만 언니 같은 여동생과 의논하는 시간이 늘었고,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면서 처리했던 일들에 누군가의 의견을 들으며 참고하고 도움을 받는 일도 늘었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사람의 고마움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위치가 변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자식의 보호자가 되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자식을 낳아놨으면 키우는 건 당연하고,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만 하고점점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그 역할이 변하는 걸 느낀다. 부모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에 보호자가 되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그런 일의 대부분은 병원에 드나드는 일이며, 한 사람의 목숨에 관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의사의 역할이지만,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은 의사 혼자 지는 게 아니더라. 서로의 입장에서 갖춰야 할 온갖 서류가 같이 책임져야 하는 일임을 시사한다. 묻고 답할 게, 알아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런 것을 배워서 나쁠 것 없을 일이겠지만, 모르고 살아갈 때가 편한 시간이었음을 그때야 비로소 안다. '000님 보호자 분~' 그 부름에 나는 대답을 하고 간다. 담당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해야 더욱 좋은 방법인지 의논하고, 서로의 의견에 합의를 본다. 처음에는 그 호칭이 너무 부담스럽고 답답했다. 한 사람의 목숨에 내가 간여하는 게 무서웠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 많은 서류에 보호자 사인을 하고, 나는 말 그대로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게 된 거다. 부모가 늙어가고 있었음을 알면서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엄마는 우리 집의 가장이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우리 집에 일어나는 많은 일을 처리하고 결정하고, 부모의 위엄이 있었다. 엄마는 무서운 존재이며, 엄마 말에 잘 따라야 하며, 보호자였다. 먼저 태어나 사는 사람의 현명함도 있었다. 믿고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무언가가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는데, 그건 최근 몇 년간 도드라졌다. 살면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나에게, 다른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묻는다. 내가 뭘 안다고... 아니, 묻는다고 하기보다는 자식의 의견을 따르는 일이 많아졌다.

- 이거 이렇게 할까?

- 니가 알아서 해.

- 나 혼자 어떻게 알아서 해? 엄마가 결정을 해줘야지.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데...

-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니가 하는 말이 괜찮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 엄마가 어른이니까 엄마가 결정해 줘야지. 어떻게 내 맘대로 해?

- 나도 잘 모르겠어. 니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

이런 일이 빈번해졌다. 어쩌면 엄마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니가 알아서 해' 이 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책임이라는 무게도 그렇지만, 엄마가 늙고 나약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 같아서 아프다. 점점 자식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자기의 고집을 내려놓는 일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보호자였던 자리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신 같은 존재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무게감이 달라졌다. 자기 의견을 내놓고 자기가 결정하며 자식들이 따르는 게 아니라, 이제는 집안의 많은 일에 따르는 입장이 된 거다. 그렇게 점점 자기 지분을 줄여가는 게 눈에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늙어가고, 여기저기 아픈 곳은 더 늘어가겠지. 엄마의 이름 옆에 보호자로 사인하는 일도 더 많아질 테고.

 

헤어질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계절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그렇게 이별을 한다. 연인, 가족, 오래된 물건, 그리고 시인의 말처럼 계절이 그러하겠지. 그런데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게 아닐까. ‘헤어질 줄 알고있지만, ‘헤어지길 바라지 않아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헤어질 줄 모르고 헤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싶은 바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던 건 아닌가 하고.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이별이란 게 우리 삶에 상주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상기하면서 오늘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그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이 한 번씩 기억날 때마다 헤어짐을 떠올렸다가, 다시 잊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억을 묻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