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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품속으로 가는 길
작성자 최유진 작성일 2020-12-31
작성일 2020-12-31

                                                        품속으로 가는 길

 

                                                                                                                     정혜교(신현고 1학년)

 

   2년 만에 되돌아가는 길이였다. 함께 가는 사람도, 평소 다니던 도로와는 다른 길로. 모든 것이 다르고 새로운 길이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시골마을에 내 고향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변함없는 그곳. 할머니 옆집에는 내 어릴 적부터 있던 하이얀 큰 진돗개가 목줄에 묶여 대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는 컹컹!’하며 우렁차게 짖던 개였다. 어릴 적에는 꿈이 수의사라며 무섭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며 그 집 앞을 지나갔었는데 지난 날 마주친 그 진돗개는 이제 많이 늙어보였다. 나를 보고 항상 짖던 그 놈은 이제 짖지도 않았다.

   그 곳, 밭과 산, 그 길은 내가 아는 그대로인데. 난 전보다는 좀 더 성숙해지고 자랐는데.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고향은 왜 늙어가는 걸가. 늦가을에 항상 할머니 뒷집에 있는 감을 따먹기도 하였는데 내가 찾은 날은 유난히도 다들 힘이 없었나보다. 홍시가 되어 떨어져버린 감들을 쳐다보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느 날은 아빠와 함께 또 어느 날은 엄마와 함께. 그 길을 걸으며 항상 감나무를 마주쳐왔다. 매년 봐오던 감나무를 2년 만에 나 홀로 그 앞에 서기까지에는 참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오는 듯 하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나의 고향은 참 아련하고 아득하다. 저 옆에 고여 있는 저수지조차 연꽃들이 다 시들어 힘이 없는 듯하였다. 가끔씩 새우깡을 사들고서는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였었다. 갈색으로 물들어버린 연꽃 아래 잉어들은 잘 있을까. 또 나만 자라서 너희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사람은 뒤를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반복한다. 나의 세상은 앞과 뒤 밖에 없지만 주변에 등 떠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을 기억하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와 같은 장소에 왔지만 나와 그곳은 달라져있었다.

   나의 고향은 계절이 변하고 강산이 변해도 그곳에 계속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시간이 지나 변해도 그 자리에, 고향과 나란히 있을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지나가는 철새일 뿐인가.

   늦가을 점점 시들해져 떨어지는 단풍잎들 속에 앞으로 푸르고, 더 푸르를 내가 있었다. 점점 시들고 있지만 생각할수록 아련한 나의 품.

   이 글의 감정을 표현하자면 마치 하나의 차를 끓인 뒤 밑으로 가라앉아 남는 가장 찐한 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다.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기분 말이다. 그런 향을 품은 차를 입 안에 한가득 넣고서는 다시 발걸음을 올렸다. 감나무를 지나 저수지까지. 감나무에서부터 저수지로 가는 길은 나에게 조금 멀게 느껴졌다. 감나무 앞으로 펼쳐진 여러 밭들과 그 뒤로 이어진 작은 길을 걷다보니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마치 엄마에게 땡강을 부리듯, 나도 그 위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밭을 지나 산 사이로 이어진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양 옆으로 작은 산을 두고 걷는 길은 참 맑았다. 그 자리를 몇 년동안 지키던 나무들도 나를 알아보았을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어다니던 작은 아이가 혼자서 그 곳을 찾게 되리라고 생각했었을까. 여러 감정들과 생각이 밀려온 순간이였다. 작은 언덕을 지나니 저수지가 보였다.

   그 저수지에서는 얼마 전 사진축제가 열렸다고 했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들과 마을을 지켜주는 듯한 하나의 큰 나무. 내가 어릴 적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간 사실에 놀라기도 하였다. 해가 지고 있던 그 시간, 그 나무 옆에서 잊지 못할 시간들을 나는 보내고 있었다.

   사진 축제가 끝나고 사람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그곳 의자에 누워 커다란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나무에는 전에 없던 말벌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집을 짓고서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곧게 뻗은 나뭇가지를 막은 것은 말벌의 집일까. 아니면 말벌을 살게 자비를 베푼 것이 나무일까. 익숙하던 큰 나무와는 달리 혹이 생겨버린 나무도 보기 싫지는 않았다.

   나의 마음속의 고향은 늙어가도 새로운 새 생명들에게 있어서 나의 고향이란 소중한 그들의 보금자리와 같은 듯하였다. 모든 생명들에게 그들의 고향이란 언젠가 아련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시간이 오래되고 오랜만에 찾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변화될 내일을 기약하며 지고 있는 태양을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저 앞 저수지에서 수면 아래로 고개를 까딱거리는 새끼 오리를 보며 다시금 웃음 지어 보았다. 2년 동안 정말 많이 달라진 나의 고향. 너무나도 그리웠다.

   나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