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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장녀(醬女) / 황의건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1-01-09
작성일 2021-01-09


주인공 엄마의 이름은 '사메주'다. 본명이란다. 엄마의 별명이 어느 정도 유추가 된다. 옥떨메.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내가 어렸을 적에 옥씨 성을 가진 친구에게 붙여진 별명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를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다. 단지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이름 때문에? 못생긴 외모의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 써졌을 그 단어가 주인공 엄마에게도 붙여졌다. 그런데 이 무슨 모순인지, 주인공의 엄마는 누구보다도 예뻤다. 누가 봐도 예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외모의 여자에게 왜 옥떨메라는 별명이 붙여졌을까. 아마도 이름 때문이겠지? 기어이 개명까지 했건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처음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는 동안 엄마의 인생을 지배했다는 이름. 그리고 주인공에게도 엄마의 인생이 지배한 듯하다.


세 자매의 장녀인 샘. 엄마가 낳은 딸 셋은 모두 생물학적 아버지가 다르다. 그렇다면 성이 모두 다를 텐데, 무슨 일인지 엄마는 딸 셋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었다. 사샘, 사강, 사솔. 택배 일을 하는 장녀 샘은 두 동생과 떨어져 살지만, 항상 동생들을 염려하는 맏이의 마음을 안고 산다. 동생들을 걱정하고 돌본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파도가 친다. 자식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간 엄마가 십몇 년 만에 돌아와서는 집을 팔겠다고 한다. 자식들 내팽개치고 남자 따라 미국으로 간 엄마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겨우 자식이 사는 집을 팔겠다는 건가? 이 억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해하던 중 엄마가 죽었다. 이미 병을 앓던 엄마는, 어쩌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볼 핑계를 찾던 건 아니었을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식들 버리고 떠날 때는 그때의 간절함이 엄마를 휘감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몸은 병들고, 죽기 전에 한 번쯤 자식들을 보고 싶은 간절함이 또 엄마의 한국행을 만들었겠지. 그렇게 억지 쓰듯 자식들에게 돌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간 엄마. 샘은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엄마의 자격도 선뜻 동의할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알지 못하고 더더욱 믿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샘에게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리운 엄마지만 자식을 버리고 갔으며, 보란 듯이 돌아와 죽어버린 사람.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 샘은 시골 장터에서 메주를 발견하고 들고 온다. 한 번도 장을 담가본 적이 없는 그녀가 장을 담그겠다고 메주를 들고 오다니, 뜬금없다. 하지만 무언가 기대되기도 한다. 엄마를 보내고 메주로 불렸던 엄마와 같은 메주를 들고 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렴풋이 어렸을 적 할머니가 담그던 장을 떠올린 그녀는 소중하게, 천천히 메주로 장을 담근다. 장을 담그는 것 그 자체보다, 장을 담그고 난 후가 더 어려운 나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장을 직접 담가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무언가가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일. 가슴에 조급증이 일겠지만 참고 기다려야만 마주할 수 있는 결과.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에 이런 기다림이 항상 필요하지 않았을까?


소설은 그녀가 엄마를 보내고 장을 담그고 난 후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한쪽에서는 장이 발효되어 가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녀의 일상이 무심하게 펼쳐진다. 택배 일을 하면서 변태로 생각했던 사람이 끝내 누군지 밝혀지면서 놀라웠던 일, 세 자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감정의 문제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일들이 그녀를 짓누르고 오늘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장이 익어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스스로 성장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매라는 관계로 끈끈하게 다시 엮어가는 마음을 인정한다. 사랑 그게 뭐라고 한 인간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싶었던 그녀가 사랑을 알아간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면서, 발효되는 장이 제 역할을 다할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녀는 배운다. 정성을 가득 들여 장이 맛있게 익어가게 하는 노력이, 관심이 인간의 일상에서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인간은 성장하고 배워가고 있다고 말이다. 거기에 따스한 햇볕과 제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기다리는 시간이 진짜 장을 만든다고.


사실, 장 담그는 일 자체는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장을 담그고 난 후가 더 어려운 나날의 연속인 것을 동생들은 아직 잘 몰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다보고, 장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온갖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만 장이 맛있게 익는다. 장은 사람이 담그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사람은 그저 메주와 소금물을 적당한 비율로 조립하는 역할을 할 뿐, 시간이, 바람과 볕이 장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동생들처럼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다. 파주댁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이 도가지 속에 니거미랑 이름이 똑같은 메주, 그거시 딱 드러가 있어붕께, 니거미라고 생각함서 잘 봐라잉, 알았재?" (64~65페이지)


엄마에게 자식으로써 배신당하고, 세상에 믿을 거 없다고 스스로 격리하듯 외면하면서 살아온 그녀가 점점 세상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솔직하게 들려온다. 우리가 어떤 테두리 밖에서 머뭇거리고 마음을 닫아걸고 있을 때, 어느 선 안으로 들어가면 삶이 더 생생해지고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그 선을 넘어가지 못하는 마음을 샘에게서 그대로 발견한다. 더불어 샘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그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그대로 확인하게 된다. 그녀의 인생과 상관없다고 여겼던 장 담그는 일 하나가 삶의 태도를 바꿔놓았다. 이럴 수도 있을까? 장을 담그고, 장꽃이 피어나고, 간장이 발효되어 제 색깔을 내고 익어가듯, 변화되어 가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울하고 슬픈 경험으로 꽉 닫힌 마음, 사랑을 알거나 배울 기회조차 없던 시간,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을 알기 어려웠던 일들. 동생의 사랑이 힘들게만 보였던 시선이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것도 볼만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을 한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몰랐던 세상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가 좁혀져 가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되면서 타인의 사랑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앎이 대단해 보였다.


장이 발효되는 과정 자체가 기적 같았다. '평범한 소금물이 메주를 만나면 일상을 초월하는 간장이라는 액체로 발효해 간다는 사실이 새삼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말처럼, 듣는 나도 너무 신기했다.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과정에 덧대어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본다. 장녀(長女)이자 장녀(醬女)인 샘이 걸어갈 내일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그녀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