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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잃어버린 영혼 - 올가 토카르추크 / 사계절
작성자 황초롱 작성일 2020-08-10
작성일 2020-08-10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가만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읽었다.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이 남자가 기다리는 무언가가 '영혼'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정도로 병을 얻은 남자는 의사의 지침대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영혼을 기다리는 일만 하고 있다.

우리는 바쁘다. 바쁜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빠야 잘 산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바쁘게 지내고 있다.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기 계발을 하며, 퇴근해서는 부업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책을 읽거나 SNS를 하거나 유튜브를 한다. 갈수록 빨라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더 빠르게 움직이고 일을 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챙기지 않고 일에 열중하다 소진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영혼> 속 주인공 남자처럼 말이다.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는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자신이 어딘가에 떨어뜨리고 온 영혼을 떠올렸을까, 너무 열심히 일한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을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을까. 적어도 '오늘 뭘 해야지, 내일 뭘 해야 해'라며 해야 할 일에 얽매여 있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만큼 여유를 앗아가고 휴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건 없으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는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지나가는 구름을 구경하고, 자라나는 식물을 바라보고 언젠가 찾아올 영혼을 기다렸으리라.

바쁘게 사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영혼과 같은 속도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너무 빠르게 살았다는 것을 자각하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한창 돈을 벌어야 할 청년의 때에는 영혼이 뒤쫓아 오든 말든 상관없이 앞만 보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돈 벌려고 정신없이 일하는 행위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길로 이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나도 영혼을 잃어버린 남자처럼 내가 하는 일, 나의 목표에만 집중하고 살았던 시간이 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길만 보고 승승장구하는 내 모습에 취해 가족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족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줄도 모르고 회사에 다니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다.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지내며 부지불식간에 내 영혼은 나와 멀어졌고 결국 나도 영혼을 기다리며 나를 돌아보는 생활을 갖게 되었다. 일하러 가는 시간에 나를 위한 식사를 정성껏 차리고 허겁지겁 먹어 치우던 인스턴트 대신 건강한 식사를 여유롭게 즐겼다. 친구들을 만나고 자기 계발하느라 빠듯했던 시간을 조정해 부모님께 연락하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고 가족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때론 차를 마시며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면서.

처음에는 <잃어버린 영혼> 그림책 속 영혼을 잃어버린 남자가 망연자실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영혼을 놓쳐서 아무 일도 못 한다는 건 무력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집에서 지내며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회사가 주던 소속감이 사라지고 해야 할 업무가 사라지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집에 있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찾고 나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며,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신도 인정하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 여유롭게 기다리는 모습으로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일시적으로는 무기력을 동반하겠지만 새롭게 자신을 바라보고 다독이며 충전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결국 영혼을 기다리던 남자는 영혼을 만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통해 성공을 향해 전력 질주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영혼의 속도에 발맞추어 살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영혼이 남자를 찾아왔다. 남자는 영혼을 만나고 난 후 다시는 바쁘게 살지 않게 되었다. 시계와 트렁크는 땅에 묻어버리고, 시계에서 피어난 꽃을 보며 미소 짓고 트렁크에서 열린 호박을 먹으며 겨울을 보냈다. 그래도 남자와 영혼은 행복했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는 여유와 쉼을, 잠시 쉬어가는 사람에게는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각자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속도로 살아가도록 독려한다. 나는 <잃어버린 영혼>이 주는 독려가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와 조금 천천히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보듬을 수 있었고, 지금의 속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빨리 살아서 여유가 없는 분께,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아 불안한 분께,

자신을 찾는 시간이 필요한 모든 분께 <잃어버린 영혼> 그림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