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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코리안 티처>, 서수진 지음, 한겨레출판, 2020
작성자 고청훈 작성일 2020-09-05
작성일 2020-09-05

노동자의 권리 돌아보기

 

2015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일반계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 노동 관련 내용의 비중은 2%’라고 한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87559.html)

2018년 경향신문에 [교육에노동은 없다]“알바의 권리, 학교에선 왜 가르쳐주지 않죠?”라는 기사 실린 것으로 봐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2041831001)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오면 절대 다수는 노동자로 살아감에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임에도 학교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 사회도 노동자에게도 주인 의식과 경영자 마인드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강조하지 않는다. 경제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경제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의 목표는 이루는데 기여했지만, 양극단으로 계층화된 불안한 노동시장을 만들며, 선진국에 사는 노동자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코리안 티처>는 선진국 노동시스템이라는 노동 시장 유연화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약탈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계층화하고 학력의 높고 낮음을 떠나, 비정규직은 불안한 일상과 함께 영혼마저 갈아 넣는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동자로서의 개인이 고용 관계에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일깨워 준다.

 

선이는 그 순간 새로 시작한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월급을 떼먹는 악덕 사장에게 따질 수 있도록 한국어를 익혀야 한다.
비인간적인 욕설을 할 때 알아챌 수 있도록,
불법적인 시급을 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아니, 처음부터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45)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원장)이 을이고,
바로 옆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이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편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면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121)

 

왜 우리가 마음 졸여야 하는 걸까.
우리는 월급을 떼먹혔을 뿐인데,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했을뿐인데.
도대체 왜, 내가 일한 돈을 달라고 하는 게 협박이 되지 않을지,
내가 일한 돈을 못 받았다고 말하는 게
명예훼손이 되지 않을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걸까.(236)

 

법언 중에 법은 권리위에 잠자는 자를 구제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권리는 누군가가 대신 챙겨주지 않으니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명시된 권리를 모른다면 정당한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없다.

 

<코리안 티처> 속 한희의 남편은 체불된 임금을 돌려받고자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근로감독관은 일부는 소액체당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차용증으로 대신하자며 마치 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구슬려 제안한다. 하지만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일부는 소액체당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소송을 통해 1순위로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근로감독관이 소송을 하면 1순위로 변제 받고, 차용증을 쓰면 후순위로 밀려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한희와 한희 남편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법을 모른다는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님을 깨닫는다.

 

체불임금등사업주확인서를 확인하고는 왜 고소 취하를 했냐고()
진정 취소하지 않아도 소액체당금은 받을 수 있는데…….
700
만원에 대한 판결문을 받은 후에
소액체당금 400만 원 받고, 나머지 300만 원은 체불 임금으로
민사소송하면 1순위로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차용증 쓰면 순위에서 한참 밀리죠.(
)
완전 엉터리로 안내를 했네.”
(251~252
)

 

<코리안 티처>는 노동자의 정당한 대가인 임금을 체불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노동 현실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했지만, <코리안 티처>의 무대가 한국어학당인 만큼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도 여럿 등장한다. 한국어 문법에 결과를 나타내는 문법보다 이유를 나타내는 문법이 현저히 많다는 것과 한국어에는 미래 시제가 없다는 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에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
결과 표현은 ‘-()ㄴ 결과’, ‘-()ㄴ 끝에’, ‘-()ㄴ 나머지정도로
적은 걸 보면 정작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
이미 벌어진 일에는 순응하면서도,
그 일의 이유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173)

 

한국어에는 미래시제가 없다’()
한국어의 미래는 시간을 말하고 있지 않다.
미래는 한없이 개인적인 의지에 기생해 존재하고,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포함한 추측 속에서 떠돈다.(219~220)

 

한국어 문법은 때로 예정된 미래, 혹은 확실한 미래를 현재형으로 표현한다.
너무나 확실하기에 현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선명한 미래라고 해도,
절대로 바뀔 리 없는 예정이라고 해도, 이 역시 부서져버릴 수 있다.(
)
결국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과거뿐이다.(220~221)

 

한희에게 필요한 미래시제는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하다. 모두가 온전한 미래를 가진 세상을 꿈꿔본다.

 

한희에게는 미래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