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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서평] 『기억과 증언』, 이병수/윤여환/남경우/김종군/김종곤/박재인/한상효/곽아람/박성은/전영선 지음, 씽크스마트, 2020
작성자 고청훈 작성일 2020-04-30
작성일 2020-04-30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조선의 역사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한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외면하지 않았다면 기억되어야 한다.”
-
영화 <청야>의 대사 중에서
(172)

 

대한민국은 일제의 지배에 항거한 1919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를 시작으로 국민이 주인인 국가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했지만, 청산하지 못한 친일 세력이 친미 반공을 기치로 재기용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일제의 앞잡이로 나라와 민족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한 자들이 척결되지 않고 재기용된 것도 기가막힐 노릇인데, 반공을 명분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데 앞장서게 되니 이 보다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싶다.

 

<기억과 증언>은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의 기획으로 소속 연구원 10명이 소설로 읽는 분단의 역사라는 주제로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빨치산’, ‘대구 10월 사건’, 제주 4.3’, ‘여순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기간 중의 마을 전쟁등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양민학살 사건들을 다룬 소설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공저자 김종군은 서문에서 <기억과 증언>분단의 역사가 누적해온 고통과 상처를 공감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고 밝히고, 소설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 머물지 않고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분단의 역사를 이해하면, 분단과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실체에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역사적 사건에서 한 단계 더 파고들어 사람을 주제로 한
경험한 이야기형태로 분단의 역사를 이해하고,
분단과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머리말)

 

분단과 관련된 사건을 다룬 소설을 먼저 소개하고, 그 작품의 배경 사건에 대한 전후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등장 인물들의 입으로 당시의 경험 등을 전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역사의 증언과도 같은데, 역사 교과서로는 결코 전할 수 없는 큰 울림을 준다. 양민을 도륙하는 장면을 되뇌어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기까지 했다.

 

대구에서 해방 직후 최초로 군과 경찰이 일반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자행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공식적으로는 대구 10월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진상규명을 비롯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50)

 

9월 총파업을 계기로 시작된 대구 10월 사건은
그 성격상 대중 투쟁의 성격을 지닌 민중 봉기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을 위한 생존 투쟁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
대구 10월 사건은 대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경북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충청, 강원, 경기, 호남지역까지 확대되고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대구를 넘어 이남 전역에서 발생한
전국적민중항쟁이었다.(71~72)

 

일반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빨갱이가 되지 않지만
보도연맹원의 유가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죄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피해자가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마치 가해자인 듯
잠재적으로 낙인찍히고 감시의 대상이 되면서
또다시 삶을 침범당하는 순간이다.(168)

 

<기억과 증언>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한번쯤 들어는 봤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비극적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조선의 역사적 사건은 왕과 연대까지도 줄줄 외우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조선의 역사보다 고려의 역사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한다. <기억과 증언>은 분단으로 가려진 역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도 많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섣불리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며 묻어두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을 마무리부터 하자는 억지스런 주장이다.

 

광주민주항쟁의 양민학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위권 발동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최근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 탄흔이 발견되며 그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법의 시판에서는 공소시효가 있을지라도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