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코스모스-칼 세이건
작성자 최혜련 작성일 2020-05-06
작성일 2020-05-06


우주에 대한 책, 그 자체가 우주인 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자신이 경외하는 두 가지를 밤하늘의 별과 도덕법칙이라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은 시<별 헤는 밤>의 윤동주를 떠오르게 하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 공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마치 머릿속이 암전되며 별과 우주의 이름으로 맥락 없는 연상들이 궤도를 그리다가 어딘가에 불시착하며 사라진다. 우주는 하늘 저 너머의 세상일 뿐, 나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은 의미 없는 회전에서 정확한 궤도를 따라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칼 세이건의 명저인 코스모스는 나에게는 우주에 대한 책 이상으로, 우주 그 자체인 책이었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p.36)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마치 무한하게 배율이 조절되는 훌륭한 망원경을 바라본 느낌이었다. 우선 코스모스의 망원경으로 광활한 우주를 본다. 은하와 행성을 관찰하고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를 마주한다. 그리고 배율을 통해 좀 더 근접하게 지구에 초점을 맞추고 역사를 관통한다. 이를 통해 진화의 비밀을 만나는 것이다. 이어 우리보다 먼저 밤하늘을 바라본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와 아이작 뉴턴이다. 칼 세이건은 케플러의 신이 코스모스를 창조한 권능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신은 어떤 신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우주과학의 역사 안에서 찾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칼 세이건은 케플러와 뉴턴을 과학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중대한 전환을 대표하는 인물(p.160)로 설명한다. 그들의 관측과 연구가 지식을 추구하는 인류의 자세를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월한 배율을 자랑하는 망원경은 어느덧 라는 존재를 들여다본다. 마치 현미경이 되어 광활한 우주를 어렵게 읽어나가는 어리숙한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주를 바라본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어서 코스모스의 세계를 소개한다. 근사한 제목의 소제목과 시적인 은유로 금성, 화성, 목성을 말한다. 그러나 감미로운 묘사는 정확한 관찰과 연구가 동반한다. 우리의 태양계는 우리의 머릿속에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동시에 우주과학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와 화학, 또한 생명과학의 지식까지도 아우른다. 과학의 경계는 우주 안에서 포섭된다. 물론 이러한 질서를 부여한 것은 칼 세이건이다.

아마도 석기 시대의 인류가 별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를 상상하는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하다. 별이 다른 세상의 사냥꾼이 피운 불 혹은 구멍 뚫린 검정 동물의 가죽이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수사와 기술적 글쓰기로 가능하지 않다. 별에 대한 지적호기심과 경외감은 그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고 자유로우나 진실한 그의 태도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줬다. 13부작의 다큐멘터리와 이 책 코스모스, 그리고 아내인 앤 드루얀과 공저로 저술한 많은 저서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진심 어린 경고와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구는 우주에서 결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곳은 더더욱 아니다.” (p38)

 

그는 우주 안에서 지구화’(외계 행성의 환경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것 p.271) 가능성을 탐색한다. 물론 지옥이나 붉은 행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탐색의 원인은 의미심장하다. 지구가 모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공동체(p.577)’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은 윤리적 당위에서 요구되는 것이었다.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생명에 대한 외경을 강조하고 결국에는 대지윤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위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신비롭고 광활한 우주를 대면하면 자연스럽게 인간 중심의 협소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지구는 그의 언급처럼 참으로 연약하며,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p.215)’이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수많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던 이들은 각각의 생각을 했던 것처럼 코스모스라는 책은 전 세계 수백만의 독자들에게 저마다 다른 생각의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동시대의 사람들이 읽었지만 우리는 각각 하늘을 보고 우주를 상상하며 다른 배율의 망원경으로,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보낸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우주라는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우주를 타자화하지 않고 나를 포함하는 개념임을 이해하고 감탄하는 것 그리고 존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가치를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