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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사르트르의 생애와 작품 세계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 실존문학(實存文學)의 거장

사르트르를 제외하고 20세기의 문학과 철학, 사상사를 논할 수 없다. 그만큼 사르트르의 문학적 업적은 현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실존주의 문학의 창시자요 태두(泰斗)로서, 또한 참여문학의 열렬한 작가로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사르트르가 현대 문학사와 지성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시대를 초월한 그의 철학적 이론들과 소설, 희곡, 평론, 시나리오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는 그의 탁월한 문학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찬반의 반향을 일으키며 그 생명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인류사의 모순과 고정관념에 대항하며 사르트르가 걸었던 부정과 반항과 회의의 궤적은 바로 20세기가 겪은 혼돈스럽고 지난(至難)한 궤적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평생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존재를 외부 세계로 내던지려는 끊임없는 자기 지양(自己止揚)과 자기 반성(自己反省)의 정신적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투철한 자기 존재와의 싸움은 사르트르라는 이름과 그의 모든 저작(著作)들을 위대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사르트르의 작품 세계는 시기적·내용적 특성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미학적 논문인 《상상력L'Imagination》(1936)에서 표현되고 있는 심미주의적 세계이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는 존재의 무상성에 대해 진실된 상상의 세계만이, 예술적인 창조의 세계만이 의미와 구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서 나타난 사르트르의 두 번째 시기는 그의 최대 문학적 걸작인 《구토(嘔吐)La Nausee》(1938)와 철학서인 《존재와 무(無) L'Etre etle Neant》(1943)에서 나타나는 실존주의적 세계로서, 처음의 심미주의적 경향보다는 개인의 자유라는 문제가 더 중요시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상상적인 것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긴 하지만 (《구토》의 주인공인 앙투안 로캉탱이 결말 부분에서 예술 작품의 창조에서 삶의 구원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강렬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개인적 인간의 자유롭고도 의식적인 책임과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전쟁과 포로로서의 체험은 사르트르로 하여금 세 번째 단계인 참여문학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그의 변모는 그의 뛰어난 희곡인 《파리 떼Les Moiuches》(1943)를 위시한 대부분의 희곡 작품들과 그의 철학적 사상을 담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1946), 그리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Qu'est-ceque la litterature?》(1947)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는 개인적 인간보다는 사회적 인간을 주장하며, 역사적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은 사회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주의를 초월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1960년대를 지나 만년의 작품 세계에서는 정치적 활동에 심한 환멸을 느끼게 되고 다시 '문학'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젊은 시절 비판했던 플로베르나 말라르메의 작품을 새롭게 인정하며, 흔히 우상 파괴라고 부르는 행위에 전생명을 바치는 작가를 참여작가라고 명명한다. 즉, 우상 파괴는 비단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추구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작가의 작품들은 당연히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에서 무엇보다 정치적·사회적 행동으로서의 의미를 더 중요시 생각하던 사르트르는 문학이 사회의 변혁에 크게 기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이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문학의 본질적 의미를 재인식하게 된다. 자전적 소설인 《말Les Mots》(1963)은 그러한 사르트르의 심정적 절망과 갈등, 변화를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이렇게 사상적 변모의 단계를 거치면서 사르트르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개인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정한 역사적·사회적 상황 속에 처해 있으며, 자기 창조의 노력은 자유를 향한 그 상황의 변혁, 즉 사회 혁명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문학은 이러한 자기 창조·자유·혁명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위해서 바쳐져야 하며, 이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그 존재 의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르트르 문학의 본질은 '개인 속의 인간'과 '상황 속의 인간'이라는 대립되는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특성은 단순히 대립적인 평행선이 아니라 하나의 일치된 통일체로 사르트르의 작품들 속에 녹아 있다. 이 이중성은 사르트르의 문학을 예술에 의한 구원이라는 심미주의적 경향으로 이끌기도 했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참여문학으로 이끌기도 했던 것이다.

사르트르를 일약 세계적 작가로 부상시켜 준 《구토》 역시 이러한 사르트르 문학의 이중적 특성이 훌륭한 문학성으로 승화된 대표적 작품이다. 이 '소설 아닌 소설'은 이유 없이 존재하는 이 불안하고 부조리한 세계로부터 구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양심을 잃은 중심계급과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담은 사회 소설로서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실존주의 문학의 전형적인 작품인 《구토》는 사르트르 문학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시작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05년 6월 21일 프랑스의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전형적인 중류계층으로서 선조들 가운데에는 교육자, 의사 등이 많았다.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인 《말》이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아버지 장 밥티스트 사르트르는 이공과 대학을 마치고 해군 사관으로 복무하고 있었고, 어머니 안 마리 슈바이처(노벨 평화상을 탄 슈바이처 박사와는 사촌간임)는 검소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품의 여자였다.

아버지는 사르트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주고 만다. 그러나 이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죽음은 사르트르에게 불행보다는 오히려 축복이 된다. 즉 사르트르는 아버지가 주는 어떠한 형태의 권위나 중압도 겪지 않고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특권적인 환경을 태어나면서부터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젊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게 되도록 운명지워져 있는 존재라는 그의 실존 철학의 뿌리를 어려서부터 감지하게 된다.

아버지가 죽자 사르트르는 외가에서 그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이곳에서 사르트르는 문학에 대해 거의 종교적인 경의를 가지고 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의 세계와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혼자 있으면서 자주 공상의 세계에 잠기곤 하던 사르트르에게 문학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린 사르트르에게 있어 문학이란 일상의 세계와 전혀 다른, 초월적 위치로 자신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훗날 '내 인생은 책 속에서 시작되었고, 또 아마도 그 속에서 마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사르트르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르트르는 7세 때부터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비롯해 코르네유의 작품믈 읽었으며, 이미 8세 때에 비록 표절소설이지만 《나비를 위하여 Pour un Papillon》와 《바나나 장수 Le Marchand de Bananes》같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1916년 사르트르가 11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파리 이공과 대학 출신으로 라 로셸의 해군 조선소 소장인 망시라는 사람과 재혼을 했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어머니를 따라 파리를 떠나 라 로셸로 간다. 어머니의 재혼이라는 충격에다 그 동안 정들은 외가를 떠난 허전함으로 사르트르는 이곳에서의 4년여 동안 생애 중 가장 불행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보낸 이곳에서 사르트르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의 허영과 위선, 자기 기만(自己欺瞞)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의 부정적인 모습은 후일 그의 모든 작품, 특히 《구토》와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1938)에서 신랄한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15세가 된 사르트르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명문인 앙리 4세 고등 중학교에 복학한다. 이곳에서 폴 니장을 만나 우정을 맺는다. 세계 혁명의 정열에 불타고 행동의 세계로 뛰어든 이 친구는 사르트르로 하여금 중산 계급의 허위와 자기 기만에 대한 강렬한 의식을 갖게 한다. 고등 중학교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사르트르와 니장은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나란히 합격해, 프랑스의 수재들만이 모이는 파리 고등 사범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이 시절 동인지 「표제 없는 잡지」를 주관하며, 여기에 그의 본격적인 첫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단편 <병든 자의 천사L'Ange du Morbide>와 <어떤 패배Une Defaite>(1927)를 발표하기도 했다. <병든 자의 천사>는 어느 고등학교 교사의 비열한 연애에 대한, 그리고 <어떤 패배>는 니체와 코지마의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1928년 고등 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르트르는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했으나 예상 외로 떨어지고 만다. 그즈음 시몬 드 보부아르와 만나 다시 그녀와 함께 교수 자격시험 준비를 하여 이듬해에 나란히 합격하게 된다. 이 일을 인연으로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2년간의 계약 결혼을 제의한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군에 입대하여 기장 관측대에 배치되어 복무한다.

군복무를 마친 사르트르는 지방의 소도시인 르 아브르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수로 부임한다. 이 시기에 그는 《진리의 전설 Legende de La Verite》(1931)을 발표한다. 1933년 사르트르는 레이몽 아롱의 후임으로 베를린에 있는 프랑스 학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독일로 간다. 그는 이곳에서 훗설의 현상학,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등을 심도 깊게 연구한다. 그러는 한편 몇 년 후 《구토》란 제목으로 발표하게 될 작품 《우울Melancholia》을 구상하기도 한다.

1935년 다시 파리로 돌아온 사르트르는 환각제의 일종인 메스칼린 주사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반 년 동안이나 신경쇠약과 환각 증상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해 그는 철학 논문인 《상상력》(1936), 《자아의 우월성》(1937) 등을 집필하여 철학적 연구에 전념한다. 그렇다고 문학에 대한 지향과 신념이 한순간이라도 그의 의식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N.R.F」지에 우수한 단편인 <벽Le Mur>(1937)과  《방La Chambre》(1938) 등을 발표하면서 문학에 대한 강한 열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 틈틈이 다듬어 온 《구토》가 1938년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출판됨으로써, 사르트르는 비로소 찬란한 문학의 대장정에 오르게 된다.



《구토》, 실존문학의 탄생

원래의 제목이 《우울》이었던 《구토》는 처음 몇 번이나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했다. 기존 문학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과감한 내용과 형식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제목을 《구토》로 고친다는 조건으로 완성된 지 2년여 만에 어렵게 출판이 된다. 《구토》의 출현은 프랑스 문단에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다. 간행 당시 출판사에서 '소설'이라는 단서를 부기했을 정도로 실험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졌던 《구토》는 문단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주기도 했으며, 그에 따라 많은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보다는 찬사와 호평이 더 쏟아졌으며, 당시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 후보에 오르며, 일약 프랑스 문단의 중심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20세기 초의 정신적 성취는 편견과 인습을 타파하고 전적인 자유와 환상을 열망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맹목적인 자유와 이상은 경제 위기와 파시즘의 회오리에 휩쓸리면서 비극적인 의미로 변해 버렸다. 한 고독한 지식인이 실존적 의식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린 《구토》는 이러한 무분별한 자유가 이제는 허망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탄생한 것이다. 사르트르가 성공한 이유는 그가 현세기의 가장 명철한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정열의 꿈과 초현실주의가 풍미했던 그때까지의 시대에 파산을 선고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존 문학의 고정된 테두리로부터 탈피하려는 끊임없는 모색에 의해 창출된 《구토》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재양식에 대한 사르트르의 문학적 사상서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존재의 우연성과 무상성, 잉여물이라는 이른바 실존주의의 핵심적인 사상을 검증하고 있다.

사르트르 문학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라 할 《구토》의 테마는 크게 세 가지이다. 즉, 존재란 무엇이냐에 대한 성찰이며, 존재의 진상을 모르는 속한(俗漢)들에 대한 고발이며, 마지막으로 그 진실을 아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가능성이다.

《구토》는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존재 이류를 모르는 한 지식인이 적어온 일종의 형이상학적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직업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유인 로캉탱은 욕망도 희망도 없는 의식의 영점(零點) 상태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다만 18세기의 방탕아며 음모가였던 르 롤르봉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부빌에 머물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철학자처럼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대하고 있는 인간의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등을 통하여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의 본래 모습은 아무런 뜻도 이유도 없이 내던져져 있는 상태임을, 즉 존재의 우연성, 무상성, 비정당성을 깨닫는다.

이 나무가 저 돌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일체의 설명은 존재의 본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위장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사물을 은폐하려는 기만에 불과하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로캉탱은 18세기의 기인 드 롤르봉에 대한 연구를 포기한다. 과거의 인물을 연구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은 그 인물 자신과는 상관없는 '나의 생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의 신비로운 존재는 영원히 밝혀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우리와 상관없이 설명을 거부하면서 그대로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은 특별한 존재 이유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과 무상성은 단순히 허무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나 세계가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실존이다. 이 실존과 마주서는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는 한편, 이미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로 말미암아 부과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구토'란 바로 이렇게 추악하게 널려져 있는 모든 이유 없는 존재들 앞에서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메스꺼움이다. 사물과의 만남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흔들릴 때 로캉탱이 느끼는 관념적인 증세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의미가 박탈되고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는 이 부조리한 존재성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사르트르는 존재 이유가 없음을 깨닫지 못한 부빌의 속한들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답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존이 태어났을 때부터 정당화되고 있고, 생존을 위한 권리가 보장되어 있고, 인생에 확고한 목적이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런 행동들은 존재의 근본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허위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며,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본원적인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위선인 것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서 과거의 인습, 기존의 모든 가치관에 의존하여 주체성을 잃고 그 속에 비겁하게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로캉탱은 일요일의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 속에서, 도서관 앞 광장에 세워진 아카데미 장학관 앵페트라즈의 동상에서, 그리고 도시의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명사들의 근엄한 초상화 속에서 존재의 진상을 감추려는 속한들의 가련한 자기 기만을 꿰뚫어 본다.

이 자기 기만은 로캉탱이 매일처럼 도서관에서 만나는 독학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부빌의 시민들보다 더 가련하고 불행한 인간이다. 그들이 세속적인 명예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위안을 찾는다면, 독학자는 지식의 화신(化身)이 되기 위한 금욕적 생활을 한다. 학문에 대단한 신앙을 가진 그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모든 책을 A로부터 Z까지 샅샅이 읽고 나면 세계와 인간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갖고 산다. 지식의 무체계적인 습득이 곧 삶의 전부하고 믿고 있는 이 철없는 환상가는 한 번도 지식과 삶의 관계를, 자아의 실존적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반성 이전의 인간이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참다운 고뇌를 겪으면서 운명과 대결하는 대신에 안이하게 기성의 편견과 관습의 굴레에 매여 살면서 자기 존재를 정당한 것으로 믿고 있는 속한들의 자기 기만 행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캉탱은 진실로 구원의 길은 없느냐는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그는 우연적이고 정당화될 수 없는 자신의 존재가 필연성을 가질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준비한다. 그는 소설의 첫 부분에서부터 음악이 갖고 있는 세계의 견고한 구조에 반하고 그 속에서 어떤 필연적인 세계의 존재를 느껴 왔는데, 이제 예술 창조야말로 자신을 절대적 경지로 들어서게 하는, 존재한다는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술의 세계, 그것은 소리나 말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어떠한 우연도 끼여들 여지가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로캉탱은 음악과 같이 순수한, 강철처럼 아름답고 견고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말은 사르트르가 어려서부터 줄곧 지녀온 문학을 통한 삶의 구원, 그 집념의 재현인 것이다. 비록 예술의 아름다움과 상상의 세계가 인간을 영원히 부조리한 존재의 현실에서 끌어내 줄 수 있음을 사르트르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의 초월을 통해서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사르트르는 이 소설의 결말처럼 심미적 방향으로 들어섬으로써 존재의 우연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인 행동과 실천을 무기로 한 참여문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사르트르의 이후 문학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구토》와 같은 시기에 발표되었던 그의 뛰어난 단편들은 담은 작품집 《벽》(1939)에 대해 알아본다. 이 작품집은 《구토》와 함께 사르트르의 개인적 실존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집 《벽》에 드러난 실존적 고뇌와 자기 기만의 문제

이 작품집에는 사르트르의 초기의 어둡고 음산한 작품들인 <벽>, <방>, <은밀Intimite>, <에로스트라트Erostrate>,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 등 5개의 소설이 실려 있다. 1939년 1월에 출판된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의미의 주제를 담고 있다. 하나는 《구토》와 마찬가지로 존재의 고뇌와 마주친 인간의 절망감에 대한 상징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자기 기만과 자아의 망각에 대한 고발이다. 이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삶의 궁극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며, 결국에는 절망과 부조리의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그 주인공들은 자기의 존재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또 어떤 행동지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충격을 느끼고, 그 충격을 넘어서기 위해서 삶의 자기 기만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매우 상징적인 제목을 지닌 <벽>은 부조리의 벽에 갇혀 극대화된 삶의 절망을 맛보게 되는 사형수의 체험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토》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사르트르의 집요한 시선이 감지되는데, 결말 부분의 극적인 반전(反轉)은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보여 준다.

<방>은 정신착란증에 걸린 남편과 함께 밀폐된 어두컴컴한 방에 갇혀 사는 한 여인의 음산한 일상을 통해 존재 일반의 어둡고 갑갑한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의 방을 떠나지 못하는 에브의 심리 상태는 사르트르가 혐오한 또 다른 형태의 자기 기만이요 허영인 것이다.

이 작품집에서 색다른 분위기의 작품인 <은밀>은 삶의 내적 이유를 찾는 대신에 자기가 빚어내는 허상을 믿음으로써 운명을 회피하려고 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리레트는 '포즈'를 꾸미기만 하고 타인의 눈에 반영된 자기만을 생각한다. 그녀가 포즈를 꾸미는 것은 표면적 허영심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스스로 그 무엇이 된 듯한 느낌, 즉 자기의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인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자기 창조에 힘쓰지 않고 허식적인 외관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에로스트라트>의 주인공 역시 이러한 자기 기만과 위선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유명해지고 싶은 일념으로 세계의 7대 기적의 하나인 에페즈 사원을 불태운 에로스트라트를 존경하는 폴은 자기의 테두리 안에서만 사고하고 판단한다.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로 범행을 계획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무관한 사람을 죽이고 자살을 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도 못하는 주인공의 절망은 바로 존재 이유를 상실한 사르트르적 인간의 극대화된 모습인 것이다.

비교적 긴 중편인 <어느 지도자의 어린 시절>은 존재의 자기 기만과 위선적인 상황에 역사적인 조명을 비춘 작품이다. 인간이 각 개인의 책임하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스스로 이룩한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회적 가치와 효율성, 다시 말하면 순전히 집단적이고 형식적인 도덕에 휩쓸려 들어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양 대전간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삼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확고한 사회적 기반을 가진 부친의 후계자인 주인공 뤼시엥 프뢰리에가 차츰 밝아오는 의식을 배반하고 기성 가치와 허구성에 사로잡혀 가는 이 과정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의식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에서 표현되고 있는 모든 조소, 야유, 혐오, 폭로의 이면에는 사르트르의 도덕적 성실성이 밑받침되어 있다. 사르트르는 이 단편들을 통해 진부한 표면상의 질서를 정신 생활에 대치시키지 말고, 매 순간마다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명철성에 따라 각자의 가치를 창조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참여문학으로의 방향 전환

제2차 대전의 발발을 기점으로 사르트르 사상과 문학적 방향은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1939년 9월 독일의 침공이 개시되자 파리의 파스퇴르 고등학교의 철학교수로 있던 사르트르는 위생병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1940년 6월에 독일군의 포로로 붙잡히고 만다. 다행히 오른쪽 눈이 반실명인 그는 평형 장애자라는 신체상의 이유로 1년여 만에 석방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사르트르로 하여금 지식인의 임무와 문학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이때의 체험에서 연유한다. 이제 사르트르는 개인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공동체에 속해 있는 인간의 생존 문제로 그의 사고의 지평선을 확대시켜 나간다. 그리고 참여문학을 통해 그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 넣으려고 하는 독일의 나치즘에 강력히 저항한다. '전쟁은 나에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사르트르는 얘기한 바 있다. 그는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문학적 수단으로 강한 호소력의 힘을 지닌 희곡이란 장르를 선택한다.

사르트르는 이미 포로수용소에서 《바리오나Bariona》(1940)라는 희곡을 써서 직접 상연하기도 한다. 예수의 탄생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성공으로 사르트르는 희곡이야말로 정치적·사회적 관심을 대중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단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 이어 그의 또 다른 문학적 성과물인 희곡 《파리 떼》가 탄생한다.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사르트르는 오레스트라는 영웅적 주인공의 행위를 통해 한 인간이 자신과 공동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주요 논제는 자유이다. 사르트르의 자유는 무상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자유로운 것은 아무런 초월적인 가치나 규정의 구애를 받지 않은 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되어야 할 존재,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사르트르는 자유를 자기 창조를 위한 가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 자유를 부정하려는 세력들에 저항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자유의 개념은 존재의 차원에서 가치의 차원으로, 그리고 개인적 의미로부터 사회적 의미로 넓어져 나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주인공 오레스트의 변신의 과정을 통해서 힘차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레스트는 세계에의 참여와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상징하는 실존적 자유의 영웅이다.

한편 1943년 여름에는 그의 사색의 정수를 집약시킨 철학적 대작인 《존재와 무》를 출간한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존재와 무》를 출간한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존재와 무》는 출간 당시에는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사르트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사상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1945년 1월에 사르트르는 「콩바」지와 「르 피카로」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5월까지 그곳에 머무르면서 루스벨트 대통령 등 숱한 인사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면서 아메리카 문명을 비판하는 에세이를 쓴다. 이때의 인상은 다음 해에 발표한 흑인문제를 다룬 희곡 《공손한 창녀La Putain Respectueuse》(1946)의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지배계급인 백인 앞에서 공포와 무력감만을 지닌 흑인의 절망과 좌절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1945년 10월에는 「현대」지를 창간하고 그 창간 취지문을 통해 '문학인은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 창작이나 행동에 있어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전진적인 자유의 실현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글을 통해 실존주의 사상을 전파한다. 이 강연 이후 실존주의가 세계적으로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며,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인간은 전인류의 이름 아래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운명지워져 있는 존재이다' 등의 표현들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공산주의자와 종교인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실존주의는 전쟁으로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진 세계에서 휴머니즘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르트르는 미국의 여러 대학의 초청을 받아 순회 강연을 하기도 한다.

《구토》의 관념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 참여의 길로 들어선 사르트르는 이후 1950년경까지 매우 다채로운 활동을 펴 나간다. 그는 《무덤없는 죽음 Morts sans Sepulture》(1946) 《공손한 창녀》(1946), 《더러운 손 Les Mains Sales》(1948) 등의 희곡을 썼으며, 《내기는 끝났다 Les Chemins de la Liberte》(1947), 《톱니바퀴 L'Engrenage》(1948) 등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또한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e》의 제1권인 《철들 무렵 L'Age de Raison》(1945), 제2권 《유예(猶豫) Le Sursis》(1945), 그리고 제3권인 《영혼 속의 죽음 La Mort dans l'ame》(1949) 등의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히면서, 지식인의 행동에 관련된 문제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사회내 개인의 진상을 밝히고 있다. 이와 아울러 이 시기에는 평론가로서의 활동도 의미가 있는데, 보들레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서인 《보들레르 론 Baudelaire》(1947), 평론집 《상황 I Situation I》(1947), 시와 음악을 통한 참여문학의 가능성을 시사한 《검은 오르페우스 Orpheenoir》(1948), 《예술가와 그의 양심 L'Artiste et sa conscience》(1950), 참여문학의 대표적 문학서인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 등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는 이 시기에 직접적으로 정치활동에도 뛰어든다. 이미 1941년 포로에서 풀려난 뒤, 메를로 퐁티 등과 함께 '사회주의와 자유'(사르트르는 이 단체를 통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사르트르가 독일군의 스파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지드나 말로 같은 문인들조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10월에 조직은 해체되고 만다.)라는 정치적 저항단체를 조직한 적이 있었던 사르트르는 1948년에는 알트만, 로젠탈, 루세 등과 함께 '민주혁명연합(Rassemblement Democratique et Revolutionnaire)'이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한다. 이 당의 정강은 사회주의, 반 드골주의, 반 스탈린주의, 반식민주의였는데, 이로 인해 당신의 드골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듬해 사르트르는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처음의 결성 취지에서 벗어난 이 단체에서 탈퇴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이 시기 사르트르의 가장 중요한 저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참여문학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어떠한 문학활동이 진정한 참여이며, 작가는 어떤 방향으로 참여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당위적인 논제를 담고 있다. 이 이론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자유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최대한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현실을 초극해 나가야 한다는 그의 세계관이 흐르고 있다. 사르트르가 정의하는 문학은 계급 없는 사회에서의 전적인 자유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가는 혁명적 노력과 일치하는 것이며, 그것을 독자에게 알리고 호소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정신에 입각해 과거의 문학작품을 비판하고 앞으로의 문학활동에 방향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사르트르가 공산주의 문학관에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완전한자유가 보장될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만 문학의 존재 의의가 있다는 명제와 문학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정치나 정당에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엄격히 구별한다. 그는 무엇보다 문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사르트르의 이러한 주장, 특히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변혁의 융합이라는 주장은 일종의 이상주의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했음인지 사르트르는 후일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에서는 집단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진상을 규명하며, 사회 변혁의 기반으로서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행동하는 지성과 '문학'으로의 복귀

1950년 1월 사르트르는 메를로 퐁티와 공동 명의로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의 열악한 실태를 비난하는 격렬한 글을 쓰는 것으로 격변하는 50년대를 맞이한다. 직접적인 정치활동은 중단하고 문학 창작에 전념을 한다. 《악마와 신(神) Le Diable et le Bon Dieu》(1951)은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희곡은 《파리 떼》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지양하고 극복하는 성격을 지닌다. 주인공 괴츠는 《파리 떼》의 오레스트처럼 우상 파괴의 행동 속으로 투신한다. 그러면서도 오레스트와는 달리 민중혁명의 지도자로서 민중의 삶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런 의미에서 이 희곡은 사르트르의 발전된 참여문학의 가장 진취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1950년대에 들어서 사르트르의 참여문학에 대한 의지는 더욱 확고해지며, 극단적으로 강조된다. 이 무렵 심지어는 작품의 예술적 측면에 대한 최소한도의 고려조차 하지 않고, 사회적 변혁의 수단으로서의 작품의 의미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반공주의(反共主義)를 풍자한 희곡 《네크라소프Nekrassov》(1955)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사르트르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대중에게 영향을 주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효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혁명적 행동과 결부되어 있지 않은 카뮈를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에 중요한 저작 중의 하나인 《성 주네  Saint Genet》(1952)는 타인을 통하여 나타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정화적 반성을 가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자기 지양(自己止揚)의 계기로 삼아가는 한 개인의 궤적을 그림으로써,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실존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 대해서 '아마도 내가 자유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한 책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강경한 문학활동과 함께 사르트르는 이른바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정치적 현실문제에도 열정적으로 관여한다. 특히 1956년부터는 알제리 전쟁에 관한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이 때문에 드골 정부와는 더욱 관계가 악화된다. 또한 헝가리 사태에 대한 소련의 태도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르트르의 문학관은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우선 '참여'에 대한 그의 의미가 유화적으로 확대된다. 즉 단순한 정치적·사회적 참여뿐만 아니라 작품창작에 생명을 내거는 행위도 참여문학으로 해석되어진 것이다. 작품의 사회적인 효용이나 의미를 넘어서서 모든 진실한 문학을 참여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이전까지는 비판해 오던 보들레르, 플로베르, 말라르메, 그리고 푸르스트 등의 작가들도 넓은 의미에서 참여작가라고 재평가된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변화는 사회개혁을 위한 문학의 역할에 대한 의심과 절망에서 연유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이상과는 달리 문학의 힘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문학이 절대적 가치이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며 인간을 변신시킬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상실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르트르는 문학의 역할을 사회적 의미에 한정시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문학의 자율성과 순수성이라는 문학의 본래적 기능에 대해 재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르트르는 다시 문학에 복귀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씌어진 것이 그의 후반기 대표작인 《말 Les Mots》(1963)이다.

사르트르의 자전적 소설인 《말》은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을 담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이 작품은 사르트르 자신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매우 날카로운 자기 비판이며, 철학적 정치적 입장에 대한 자기 분석이다. 1954년경부터 구상되기 시작한 이 자전 소설은 사르트르의 문학적 자아에 대한 최종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지성

1964년 10월 사르트르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진다. 사르트르의 문학적 업적을 생각할 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수상을 거부함으로써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다.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노벨 문학상이 여러 나라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탁되어 있음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이후 사르트르는 문학적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여행과 정치적 활동에 만년의 삶을 투신한다. 그는 프랑스 국내와 세계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 지식인이 보여 줄 수 있는 최대의 열정과 실천적 삶을 보여 준다. 알제리 사태에 대한 계속적인 반대 운동, 1966년 베트남에서 자행된 전범을 재판하기 위해 구성된 '러셀 재판소'에서의 열렬한 활동, 쿠바 사태에 대한 항의, 1968년 5월의 프랑스의 학생운동에 대한 지지, 체코 사태에 관한 소련의 무력적인 개입 비난 등 사르트르의 행동하는 지성은 죽을 때까지 정열을 다한다.

그렇다고 사르트르가 문학적 삶을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었다. 플로베르에 대한 평론서인 《집안의 천치(天痴) L'Idiot de la Famille》(1971)는 만년의 사르트르의 사상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플로베르의 삶과 문학을 통해 한 인간과 시대에 대한 전체상(全體像)과 지식의 총체를 보여 주고 있다.

20세기의 거인 사르트르는 만년에 실명으로 인한 고통으로 괴로움을 겪다 1980년 4월 16일 75세의 일이고 그 장대한 생애를 마친다.

사르트르는 평생을 문학과 사회, 그리고 역사적 현실을 긴밀히 연결지으려 노력했다. 그는 독특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 지성사에 깊은 자국을 새겨 놓았다. 항상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초월하려는 자세, 개인적 실존의 고뇌에서부터 사회적 행동의 윤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마주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탐구, 그리고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밝히고 그에 도전한 끊임없는 의지의 표현 등을 통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이끈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삼성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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