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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인간에게 굶주린 고독한 군상들

카슨 매컬러즈(Carson McCullers)는, 1950년을 전후하여 마치 무슨 반란이라도 일으키다시피 일제히 맹활약을 개시한 미국 남부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그 총수는 윌리엄 포크너였는데, 그가 194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작품인 《성단》이나 《음향과 분노》 등, 그의 걸작의 태반을 1930년을 전후하여 섰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비평가에게만 인정되었을 뿐, 남부라는 고리타분한 지방의 로컬 칼라를 강렬하고 과장된 수법으로 그리는 데카당스의 작가로서 취급되고 있었다. 그의 걸작들이라는 것은 다 절판 상태에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그에게 노벨 문학상이라는 것은, 미국의 일반 독자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의 뜻밖의 사건으로서, 그런 대작가가 있었나 하고 부랴부랴 그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 당시의 실정이다. 이러한 포크너의 재인식, 나아가서는 때마침 눈부신 활동을 시작한 남부계 작가에 대한 주목이라는 기운이, 이번엔 <남부 문예 부흥>이라는 어마어마한 표현을 낳았다. 경박하다고 탓하기보다, 과거가 희박한 국민의 콤플렉스라고 이해해야 하리라.

남부파의 작가에는 포크너를 필두로, (연령순으로 들어 보면) 캐더린 앤 포터(Katharin Ann Porter), 캐롤라인 고든(Caroline Gorden), 로버트 펜 워렌(Robert Penn Warren), 유도라 웰티(Eudora welty), 카슨 메컬러즈(Carson McCullers), 투르먼 케포오트(Truman Caport),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 플러너리 오커너(Flannery O'conner) 등이 있다. 이 중 포터, 고든, 웰티, 매컬리즈, 오커너는 여류작가이다. 이렇듯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아마 남부라는 특수한 지방에 대한 이해나 애착이 남성보다도 여성 쪽이 더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같은 여류작가인 마거릿 미첼의 소설 제목과 같이, 남북 전쟁에서의 패배로 말미암아 남부의 영광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되어 버리고, 이후 남부는 미국 전역에서도 가장 후진지역으로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남부라고 하면, 역시 여류작가인 헤리어트 B.스토우의 《엉클 톰즈 캐빈》의 비참한 흑인을 연상하게 되고, 인종문제를 생각하게 되거니와, 이 문제를 포함하여 과거가 가장 농밀하게 숨쉬고 있는 지방, 시간이 우울하게 침체하고 있는 지역이 이곳인 것이다.

남부의 지방 신문을 읽어 보면, <우리 남부인>이라는 말이 당여한 말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씌여지고 있음을 흔히 본다. 뉴욬의 대신문의 논조는 <북부인>의 편견의 대표로서 종종 신랄하게 공격되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 백 년이나 되는 데도 아직껏 그 유한(遺恨)이 남아 있나 싶어 남부인의 <끈덕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잿더미로 화한 일본에 온 포크너는 <일본 청년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태평양전쟁에 진 일본과 남북전쟁에 진 남부를 동렬에 놓고 논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집 뜰 안에까지 북구의 점령구닝 쳐들어 온 남부" 쪽이 훨씬 더 가혹한 꼴을 당했다고 했다. 이 말에는 실의에 찬 일본 청년들에게 위안이나 동정 이상의 것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흑인문제도 그 밑바닥에는, 단순히 흑인 자체에 대한 혐오나 모멸뿐만 아니라 북부인으 처사에 대한 반발이 깊숙이 깔려 있다. 이를테면, 남의 집 제사 지내는 방에 엉뚱한 녀석이 구둣발로 불쑥 들어와서는 이쪽 실정이나 관습은 무시하고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하고 이질적인 의례준칙을 강제 집행했다는, 그런 울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부인의 북부인에 대한 반감은, 남부인들로 하여금 북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진취적인 생활양식을 외면케 하고, 전통적인 남부 특유의 생활양식 속에 몰입케 하는 구실을 했다. 그래서 남부에는 마치 시계추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으되 시계바늘은 정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독특한 분위기와 생활의 리듬이 조성·정착되었다고 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아무튼, 매컬리즈는 이러한 남부의 분위기와 남부 사람들의 생활의 리듬을 가장 선명하게 그려낸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매컬리즈는 고향인 남부 내륙의 지방색을 십분 살려서 남부의 전통과 체험에 바탕하는 지방주의적인 작품만을 썼다. 그 무대는 으레
그러나 이들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세계는 의외의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다. 또한 작가의 내면의 렌즈를 통해 그려진 일상적인 사건이나 서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은 극히 개성적인, 특이한 음영을 지니고 있어서, 매컬러즈가 이니고선 그릴 수 없는 소세계를 이루고 있다. 매컬러즈는 이 소세계 안에서 미국의 현실을 응시하고 거기에 사는 서민의 진짜 모습에 육박하는 것이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서의 작가의 관심은, 인간 생활의 내면에 쏟아지고 있는 동시에, 남부의 사회적·인종적 문제에도 걸쳐 있다. 그리하여 작자는 현대의 미국이 지니고 있는 현실적·정신적 곤란과 불안의 병소를 보여 준다. 또 《바늘 없는 시계》는 백혈병이란 선고를 받고 죽음의 공포 속에 사는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인종문제라는 커다란 벼에 걸려 있는 남부의 병상진단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매컬러즈는 남부의 전통을 딛고 있었던 지방주의 작가인 동시에, 미국의 현재의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던 작가였다고 할 것이다.

매컬러즈는 1917년 조지아주의 콜룸부스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이머 스미드, 즉, 그녀의 구성(舊姓)은 스미드이고, 매컬러즈라는 성은 결혼 후에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장차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음악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하이 스쿨 시절부터 유진 오닐에 경도, 그녀 자신도 희곡을 쓰기 시작해서 오닐을 모방한 어둡고  공상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 당시 오닐은 《지평선 저 너머》《느릅나무 그늘 밑의 욕망》《애너 크리스티》 등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미국 극단의 제1인자가 되어 있었다.

열 일곱 살 때,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끝내 버리지 못한 그녀는,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들어가고자 뉴욕으로  나왔다. 그런데 뉴욕에 도착한 다음다음 날, 수업료로 마련한 돈을 지하철에서 몽땅 잃고, 그녀는 부득북 줄리어드 진학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갖가지 작업을 전전하면서 컬럼비아 대학의 야간수업을 받는 한편. 문학수업을 다시 계속했다. 그리하여 2년 후에는 <스토리>지에 단편 둘을 실을 수가 있었다.

스무 살 때, 그녀는 리브즈 매컬러즈와 결혼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40년, 최초의 장편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출판했다. 이 작품은 그 해 출판된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큰 상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에 대해 매스컴은 '남부의 요정', '천재소녀적인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에 필적' 등의 표현으로 대서특필하고, 비평가들은 '개관적으로 쓰는 훈련을 쌓은 주관의 작가', '강렬한 개성, 특이한 감수성, 심오한 통찰력, 강인한 설화력을 겸비하고 태어난 선천적인 예술가'라고 격찬했다. 그녀의 작품은 곧 유럽 각국에 번역 소개되었는데, 영국의 여류 시인이자 비평가인 에디스 시트웰은 그녀를, '위대한 시인의 눈과 마음과 감각을 구비하고, 동시에 위대한 산문작가의 구성과 성격형성의 감각을 겸비한 작가'라 하고 , 문호 앙드레 지드는 '미국의 기적'이라고 경탄했다 한다. 아무튼 이 1작으로 당시 불과 스물 세 살이었던 매컬러즈는 일약 대작가의 지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매컬러즈의 작품 세계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1937년 가을에서 1939년 여름에 걸쳐, '여름은 길고, 추운 겨울은 짧은, 하늘은 항시 유리처럼 파랗게 빛나고 태양은 이글이글 불타는' 남부 대륙의 한 조그마한 공장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예수와 비슷한 풍격을 지녔으며 벙어리인 은기(銀器) 조각사 존 싱어, 음악에 심취하고 있는 꿈많은 새침데기 소녀 미크 켈리,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매하는 과격분자인 뜨내기 제이크 블라운트, 니그로인종의 우생학적 개량과 사회적 지위향상을 사명으로 알고 있는 광신적인 흑인 의사 베네딕트 코플랜드, 회의주의자이고 성적 불능자인 식당 주인 비프 브래넌 등인데, 이들 각자의 생활환경과 에피소드가 3부 25장으로 엮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다 표제가 말하고 있듯이,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이며 고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를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 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고독감은 계속해서 그들을 괴롭히고, 그 때문에 그들은 광포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고독감을 달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 주기 않기 때문이다. 이쪽 의사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화가 필요 없는 벙어리 싱어를 찾게 되고, 그를 유일한 이해자로 믿게 되며, 그에게서 외로운 마음을 구제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싱어는 또 싱어대로, 같은 벙어리이며 정신박약자인 친구 안토나포울로스만을 열애한다. 그러다가 안토나포울로스가 정신병원에서 병사하자 싱어는 그 뒤를 좇아 권총 자살을 해 버린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정신적인 구원의 신처럼 여겨졌던 그도, 사랑의 대상을 일게 되자 동시에 자기의 존재이유도 읽고 죽음을 택하는, 나약한 의존적인 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벙어리인 싱어는 충분히 리얼리티를 부여받으면서도, 하나의 개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징으로서, 사회로부터 고립하여 마음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실한 인간의 고독을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매컬러즈가 이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서로서로 마음을 통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고독감, 서로서로 마음을 통하고자 하는 어려움, 그 기도가 좌절되었을 때의 절망감, 그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 등이 아닐까 한다. 이 인간의 고독은 그녀의 작품을 일관하는 주제로서, 특이한 감각표현과 함께 그녀의 문학세계의 주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고독에 대해서는 비단 매컬러즈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의 작가들이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고독한 인간의 모습은, 다른 어느 작가의 작품 소에서보다도 미국 작가의 작품 속에 많이, 보다 절박한 모습으로 타나난다. 미국 작가들이 이 고독에의 관심은, 현대의 미국 사회와 개개인과의 트러블이, 다른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도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매컬러즈의 비극적인 인간관도 획일화·비개성화를 요구하는 현대의 사회와 창조적인 개성을 요구하는 개인과의 마찰이라는 미국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 성싶다. 따라서 그 작품 속에 그려져 있는, 인간애에 굶주리고 고독에 몸부림치는 인간군상은 작가 자신의 분신일 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가 지니는 내적 곤란이나 좌절의 투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내적 곤란을 매컬러즈는 불구나 기형적인 인물, 병자나 병자라는 인상을 주는 우울한 인물을 통해 표현코자 한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그녀의 작품에는 벙어리나 곱사등이나 사팔뜨기, 변절자·정신박약자·성적 불능자 등 이상한 인물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이들의 그로테스크한 외관이나 기괴한 짓거리는 셔웃 앤더슨의 작중인물이나 마찬가지로, 왜곡되어 좌절한 내적 생활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강렬하고도 정묘한 리얼리즘에 일관하는 작품이다. 작자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미크나 코플랜드의 가족 묘사는 특히 빼어나, 작품을 빠져나와서 실제로 살고 있는 듯한 현실성을 띠고 있다. 또 작자의 깊은 공감과 이해로써 그린, 학대받는 민족 니그로의 생활은 남부의 백인 대 흑인의 반복·갈등의 진실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긋한 음악적인 리듬이 은은히 울리고 있는 듯하다. 이 리듬은 아무리 극적인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멎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의 단편에서 한층 뚜렷이 느껴지는 특색이다. 구성에도 다분히 음악적인 데가 있다. 전 25정은 각 장이 마치 연가곡의 각 노래에도 같은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2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연가곡의 어느 가곡을 픽업하여 듣더라도 독립곡으로서 들을 수 있듯이 어느 장을 펼쳐 읽더라도 독립된 단편으로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특색이라기보다 특이한 점이라고 해야 하겠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낸 그 이듬해, 매컬러즈는 중편 《금빛 눈에 비치는 것 》을 발표했다. 남부의 군대 영내에서 중성적 장교의 그의 사랑하는 병사를 살해하는 이야기인데, 이것 역시 사랑의 대상을 잃은 자의 비극이 그 주제이다. 이 작품에서 매컬러즈는 부조리한 사건을 일으켜 놓고서 거기에 일체의 설명을 붙이지 않는 식의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은 5년 뒤에 낸 중편 《결혼식 참례자》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 프랭키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고 여행길에 오른다. 소녀는 결혼식에 매혹된다. 결혼식 참례의 전후에 겪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소녀가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프랭키도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미크처럼 작자 자신의 분신이라고 보아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작자 자신이 1950년에 각색했는데, 그 공연 성적이 좋았을 뿐 아니라 희곡으로서도 성공작이었다. 소설의 대화가 애초부터 교묘하게 씌어진 것이 연극으로서 성공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1952년에는 영화화하기도 했다.

1951년, 매컬리즈는 작품집 《슬픈 카페의 노래》를 출판했다. 표제의 중편 외에, 앞에서 쓴 세 편이 수록되고 단편 여섯 편이 더해진 집대성적인 책이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미 43년에 <하아퍼즈 바자아>라는 잡지에 발표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것을 그녀의 대표작으로 보는 비평가도 있다. 이 작품의 무대도 역시 남부의 한 벽지이다. 광활한 사막의 한복판 같기도 한 곳, 외계에서 소외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는 곳, 문명과는 완전히 절연되어 있는 곳이다. 주요 인물은 욕심 많은 사팔뜨기의 거녀(巨女) 미스 아멜리아, 그녀의 10일간의 남편인 악당 마빈 메이시, 미스 아멜리아의 사촌뻘이 된다고 자처하고 불쑥 나타난 곱사등이의 변절자 라이먼 등이다. 이 밖에 서로서로 의사 소통을 불허하고 저마다 본능대로 살아 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 3마일 밖의 철도공사를 하고 있는, 한 쇠사슬에 묶인 열 두 명의 죄수가 배경과 같은 존재로 등장하여 황량감을 더해 준다. 아멜리아는 남편 메이시를 집에서 몰아내고 집을 독차지한다. 여기에 곱사등이 라이먼이 나타난다. 그녀는 곱사등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까지 된다. 그런데 곱사등이는 감옥에서 나온 마빈에게 홀딱 빠져 그 뒤만 따라다닌다. 그러고 있는데 쫓겨난 남편 메이시가 들어온다. 그녀는 메이시와 대결한다. 메이시를 때려눕혀 완전히 승리하려는 찰나에 곱사등이가 그녀를 공격하여 싸움을 역전시키고 메이시와 더불어 마을을 떠난다. 절망 속에 혼자 남은 그녀는 자신을 폐옥 속에 유폐시켜 버린다. 그 때 죄수들의 노래가 들려 온다.

매컬러즈는 이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도 인간비극 내지는 비관적인 인생관을 짙게 풍기고 있다. 아멜리아가 자신의 폐옥에 홀로 유폐되어 버리는 경우도 그렇고,  범죄로 일신을 망쳐 버리는 마빈 메이시의 경우도 그렇고, 변절한 끝에 남과 자기를 동시에 파멸시켜 버리는 라이먼의 경우도 그렇고, 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본능대로 황량한 밤과 낮을 묵묵히 살아 갈 뿐인 마을 사람들의 경우도 그렇다.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카페의 폐쇄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의 붕괴를 상징하고 있다. 또 거녀와 악한이 숙원을 풀기 위해 구경꾼들이 몰려든 가운데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작중인물들의 냉혹·비정·무관심·무책임한 모습은 현대 사회의 한 단면 같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가 치고 받고 한다는 다분히 희극적인 장면인데도 섬뜩한 것을 느끼게 된다. 매컬러즈의 그로테스크하고 쇼킹한 소재의 비극적 처리는 뭔가 인간의 業이라 할까, 原罪라 할까, 그런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바늘 없는 시계》가 나오기까지에는 10년이 소요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신병으로 몸이 부자유스러워 《바늘 없는 시계》는 하루에 한 페이지밖에 타이핑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찍부터 흑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정을 지니고 있었던 매컬러즈는, 남부의 학교에서의 흑인 차별이 헌법 위반이라는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을 때, 이 문제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선과 악에 관한, 편견과 인간의 존엄성의 긍정에 관한 작품>을 쓰겠다고 미리 말하고 이 작품을 썼다. 그런 만큼 이 작품에서는 종래의 고독이라는 주제가 흑백문제와 인간의 자기발견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그 무대는 여전히 조지아주의 소읍이다. 주인공 말론은 백혈병이라는 선고를 받고 있는 약재사다. 매컬러즈는 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살고 있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형해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 하여금 빈사상태에 있는 늙은 남부를 상징시키고 있다. 즉 <인종병>이라는 불치의 중병에 걸린 남부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백혈병에 걸린 약제사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바늘 없는 시계》를 <문제 소설>이라고 보는 데엔 문제가 없지 않다. 이 작품은 센세이셔널한 사건소설이 아님은 물론, 실상보고적인 상황소설도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심각하게 그려져 있지만, 역시 거기에는 부드러운 음악적 리듬이 은은히 울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연방 화폐를 모아 그 가치회복을 꿈꾸는 노판사의 괴이하고 익살스럽고 어리석은 짓거리마저 매컬러즈는 풍자적으로 보지 않고 여유 있는 유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제의 절실함과 중대함을 깊이 인식하며 남부인으로서 살아 온, 남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지니는 여유 같은 것이 그 밑바닥에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20대부터 중병에 시달리고 늘 죽음과 맞대면하면서 살아 온 그녀의, 터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삶의 슬기와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매컬러즈는 이 《바늘 없는 시계》를 쓴 6년 뒤에 마침내 영면한다. 이 작품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일찍부터 문학적 명성을 얻은 사람치고는 작품 수가 너무 적은 것 같지만, 그녀가 20대부터 중병을 앓고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살아 온 것을 감안한다면, 이만한 작품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은 의지력과 집중력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이 점에서 돌이켜볼 때, 제 1 작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서의 고독과 죽음의 주제는 예지적·예감적이었다는 느낌이다. 이후의 그녀의 실생활은 이 주제의 그림자 밑에서 보내졌으니까 말이다. 불구자나 병자에 대한, 체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감도 제 1 작 이래 일관하고 있는데, 이러한, 어느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사사로운 주제가 달콤한 감상이나 눈물겨운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도 매컬러즈의 비범한 억제력을 엿보게 한다. 매컬러즈는 한 인간으로서도 위대했던 것이다.


[安東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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