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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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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京植(서울대·영문학 교수)
1. 본문에 관하여
이 극은 셰익스피어의 첫 전집인 제1의 2절판(1613)에서 처음으로 활자화되었다. 이보다 20년 전쯤인 1594년에 그 극과 흡사한 제목을 가진 극 《어느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4절판으로 출판된 일이 있었다.
이 두 극의 관계에 관해서는 왈가왈부가 많았으나 오늘날 셰익스피어 본문 비평가들은 《어느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의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나 그것을 관람했던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엮어 낸 판, 따라서 질이 나쁜 소위 악4절판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보다 먼저 씌어진 것이며, 이것은 결코 그 이전에 나온 다른 작가의 작품을 셰익스피어가 후에 개작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2. 소재의 출처
이 극의 소재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과 마찬가지로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서사시인 아리오스토(1474∼1533)의 희극 《I Suppositi(變身들)》가 조지 개스코인의 영역판 《The Supposes》으로 읽혀지고 있었다. 이것의 줄거리는 하인으로 변신하여 집주인의 딸에 접근하는 연인으로부터 펼쳐진다. 이 연인의 하인은 거꾸로 주인이 되어 그 집주인의 딸의 구혼자로 위장한다. 그 이유는 다른 구혼자들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하인으로 변신한 그의 주인의 목적을 달성시키려는 데 있다. 딸의 아버지는 그의 청혼을 보증설 수 있도록 부친을 데려오라고 하여 위장한 아버지를 마련하여 내세워야 될 찰나에 그의 도령님의 진짜 아버지가 도착하여 진상을 밝혀낸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혼사에 찬성한다.
이 이야기를 셰익스피어는 그의《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비앙카를 대상으로 펼쳤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페트루키오와 캐더리너의 결혼 문제를 결합시켰다. 셰익스피어는 비앙카와 캐더리너를 자매 관계로 만듦으로써 이 두 이야기를 아주 교묘하게 연결하여 재미있는 희극을 만들어냈다.
셰익스피어는 아리오스토에게만 신세를 진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극의 모델을 그가 참고한 것은 페트루키오의 종복으로 내세운 그루미오와 루센쇼의 하인 트래니오가 플라우투스의 극 《Mostellaria(幽靈)》에 나오는 두 종복의 이름이라는 사실에서도 명백해진다. 아리오스토 자신이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작품들을 번안하여 내었고 《I Suppositi》도 이들 번안물의 하나이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는 아리오스토를 통해서 고대 로마의 희극의 영양을 어차피 간접적으로 입고 있는 것이다.
3. 극의 줄거리
패듀어의 부호 뱁티스터는 두 딸을 두었다. 장녀 캐더리너는 사나운 처녀로 널리 알려졌는데 반하여 차녀 비앙카는 아주 처녀다운 성격의 소유자여서 많은 청혼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뱁티스터가 큰딸을 시집 보내기 전에는 결코 둘째딸을 출가시키지 않겠다는 데 있었다.
피사 출신인 대학생 루센쇼는 비앙카에 연정을 품고 그 뜻을 이룩하고자 그의 하인 트래니오와 옷을 바꾸어 입고 비앙카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려 한다. 이밖에 청혼자 그레미오와 호텐쇼는 우선 캐더리너와 결혼할 남자를 힘모아 찾게 된다. 마침 호텐쇼의 친구 페트루키오가 베로나에서 와 그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친구는 캐더리너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준다.
결혼 지참금이 많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진 페트루키오는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는 사나운 <들고양이>, 소크라테스의 부인만큼이나 지독한 캐더리너를 구혼하여 처로 맞겠다고 맹세한다. 페트루키오는 약은꾀와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캐더리너의 무례한 퇴짜의 말에 굴하지 않고 그의 전략을 수행해 나갔다. 즉 그는 캐더리너가 예의 바르고 상냥한 여인이며 말이 좀 느릴 뿐이라고 감언이설을 계속 퍼부었고, 이 결과 그는 그 다음 일요일에 결혼하기로 날짜까지 잡아 놓게 된다.
이때부터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일은 시작된다. 페트루키오는 결혼식 날 늦게 나타나 신부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함으로써 신부에게 큰 모욕을 준다. 그것도 허수아비 같은 옷차림에다가 다 죽어 가는 말을 타고 나타난다. 예식장인 교회에서 그는 미친 사람모양 욕지거리를 막 해대고, 주례를 위협하고, 신부에게 입맞추어야 될 절차 때에는 온 교회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로 키스를 한다. 이것은 페트루키오가 결혼 잔치에 참석하는 것도 거절하며 격렬하게 항변하는 신부를 그 형편없는 말에 태워 시골집으로 데려가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집으로 데려가는 도중에도 길들이기는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는다. 페트루키오는 말들을 비틀거리게 하여 신부를 진흙 속에 빠뜨리며, 신부를 잘못 모셨다고 하인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해서 신부는 하는 수 없이 흙탕물을 다시 건너와 그의 팔을 붙잡아 구타를 중단시켜야 했다.
길들이는 일은 여기서도 중단되지 않는다. 일단 집에 도착하자 페트루키오는 신부를 위해 마련된 음식을 던져 버린다. 신부가 먹기에 합당하게 요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주문했던 신부 옷도 형편없이 만들어졌다고 되돌려보내고 밤에는 침대가 신부에게 부적당하다면서 이불을 내던지는 둥 밤새도록 행패를 부려 신부가 잠을 잘 수 없게 한다.
이와 같은 길들이기는 효과를 보아 캐더리너는 이제 지쳐 버려서 남편이 하라는 대로 무엇이나 하게끔 되어 버린다. 완전히 길들여지자 페트루키오는 신부를 처가로 데려 간다.
한편 루센쇼는 비앙카에 대한 구애가 성공하여 마침 그때 도착한 아버지를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어 결혼으로 골인할 수 있게 된다. 비앙카의 구혼자였던 호텐쇼는 어느 미망인과 결혼하게 되어 세 쌍의 결혼잔치가 벌어진다. 신랑들간에는 어느 신부가 가장 고분고분한지 알아보는 내기가 붙었다. 이 내기에서 패트루키오는 캐더리너에게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에 관한 강의까지 하게 함으로써 자기가 셋 중에서 남편을 가장 잘 순종하는 아내를 거느린 사실을 만장에 증명한다.
4. 극의 의미와 문제점
이 극의 뜻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의지 및 성격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여자가 졌다. 페트루키오가 캐더리너를 다룰 때 사용한 <브루탤리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여자가 패배하도록 만든 것만으로도 특히 오늘날의 여성 해방운동 지지자들은 작가를 <메일 쇼비니스틱 픽>으로 규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까지 흥분할 것이 못된다. 하나의 소극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을 형식적이나마 주인으로 인정하고 대한다면 그 다음부터 마음대로 남편을 요리할 수 있다는 모럴이 들어 있는 극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말도 만족스러운 것이 못된다면 불가불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기실 극중의 극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길밖에 없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서극(Induction)으로 시작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셰익스피어의 36편 중 서극을 갖고 있는 것은 이 이외에 《헨리 4세, 2부》가 있고 서극에 유사한 프롤로그를 갖고 있는 것은 《헨리 5세》, 《헨리 8세》, 《트로일러스와 크리시더》 정도이다. 그러나 다이얼로그로 이루어진 서극을 갖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극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 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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