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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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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京植(서울대·영문학 교수)
1. 본문에 관하여
세익스피어 극단은 《태풍(The Tempest)》을 1611년 2월 1일에 와이드 홀에서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활자화된 것은 제1의 2절판(1923)에서이다. 이 극은 여기에서 맨 첫 번째의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1의 2절판 본문을 위한 원고는 랄프 크레인이란 필생이 공연에 쓰려고 셰익스피어의 초고를 전사(轉寫)한 전사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져 있다. 막, 장의 구분이 완전히 되어 있다.
2. 소재의 출처
셰익스피어는 《태풍》의 줄거리를 어느 한 가지 출처에서만 가져오지 않는 듯하다. 즉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① 줄거리의 이야기와 유사한 것들이 이탈리아 문학과 기타 다른 문학에도 있는 것을 보면 현존하지 않는 어떤 출처가 있는 듯하다.
② 실베스터 조든이 조지 사머즈 경, 윌리엄 스트래치, 토머스 게잇즈 경 등과 더불어 1609년 버지니아로 항해하고 돌아와 출판한 《일명 마술의 섬이라고도 하는 버뮤다 섬의 발견》(1610년 늦가을)은 태풍으로 배를 잃은 선원들이 버뮤다 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섬은 공기가 맑고 양식이 풍부하지만 이상한 소음 때문에 귀신들과 악귀들이 난무하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었다. 이들은 10개월간 이곳에서 머물면서 두 척의 배를 건조하여 이를 타고 1610년 5월 목적지인 버지니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조든은 다시 1610년 7월에 윌리엄 스트래치와 더불어 항해에 올랐고 이 이야기를 후자가 그해 늦게 《토마스 게잇즈 경의 난파와 시체 회수에 관한 참다운 보고서》에서 하고 있다.
③ 《태풍》의 줄거리와 유사한 것이 안토니오 드 에스클라바에 의한 《스페인 이야기집》에서 발견된다.
④ 곤잘로가 2막 1장에서 묘사한 이상국가는 몽테뉴의 수필의 하나를 변역한 것과 같이 읽힌다.
⑤ 셰익스피어가 하크류트의 《주요 항해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도 《태풍》에 들어 있다.
3. 극의 줄거리
마술 연구에만 탐닉하는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는 나라일을 동생 안토니오에게 맡겼다가 나폴리의 알론조 왕의 도움을 받은 안토니오에게 공국(公國)을 빼앗기고 작은 배를 타고 표류하게 된다. 곤잘로가 배에 양식과 공작의 마술지팡이, 마술옷, 마술책을 넣어준 덕분에 캘리밴이란 괴물이 점유하고 있는 섬에 상륙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프로스페로는 캘리밴, 에어리얼, 기타 공기와 물의 요정들을 하인으로 거느리고 살아간다.
그는 마술로 그의 원수들이 그 섬으로 지나가게 됨을 알아내어 에어리얼을 시켜 그들을 섬으로 데려왔다. 에어리얼은 이들을 서로 흐트러뜨려 퍼디난드 왕자만을 프로스페로의 동굴로 노래를 불러 유인해온다. 아버지 이외에는 사람을 본 일이 없는 딸 미랜더는 미남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을 너무 쉽게 얻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왕자에게 인상을 쓰며 장작패기 등 혹심한 일을 시킨다.
알론조, 안토니오 등의 일행은 왕자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상심해 있다가 에어리얼의 노래에 잠들어 버린다. 그러나 왕의 동생인 세바스챤과 프로스페로의 동생인 안토니오만은 자지 않고 잠든 왕과 곤잘로를 살해하여 왕위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를 간파한 에어리얼이 잠든 사람들을 제때에 깨워놓음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한편 또 다른 곳에서는 왕의 익살꾼인 트링큘로가 캘리밴을 만나고 이에 만취된 주방장 스테파노가 합세한다. 캘리밴은 그의 술을 먹어 보고 맛에 도취되어 그를 추종할 것을 맹세한다. 이들은 프로스페로를 살해하고 섬을 차지할 흉계를 꾸민다. 이것은 에어리얼에 의해서 프로스페로에게 보고된다.
미랜더와 퍼니난드가 사랑의 맹세를 나누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프로스페로와 에어리얼은 만찬을 차려서 왕의 일행이 먹으려는 순간에 사라지게 함으로써 그들을 곯려 준다. 에어리얼은 이들이 프로스페로에게 저지른 죄를 질책하여 드디어 알론조는 뉘우치게 된다.
프로스페로는 왕자와 딸에게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무도극을 보여준다. 프로스페로는 이를 갑자기 중단시키며 에어리얼을 시켜 그를 죽이고 이 섬을 차지하려던 배반자들을 처벌한다.
에어리얼은 주인의 옛날 원수들도 프로스페로의 동굴 앞에 유인해 온다. 이들에게 프로스페로는 신분을 제시하고 동생에게는 공국을 되돌려 달라고 하고 세바스챤에게는 왕의 살해 음모에 경고를 발하고 뉘우치는 알론조에게는 그의 아들과 미랜더가 장기 두는 광경을 보여준다. 프로스페로는 그의 마술을 던져 버리고 왕과 그의 일행을 하루 저녁 그의 동굴에 초청한다. 에어리얼에게 내린 프로스페로의 마지막 명은 내일 아침 나폴리와 밀라노로 돌아가는데 알맞은 해상의 조건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4. 극의 의미와 문제점
《태풍》에서 선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복수와 처벌 대신에 용서와 관용과 화해가 있고 절망과 암흑 대신에 희망과 빛으로 넘치는 이 극은 우리로 하여금 생을 찬미하고 인생은 역시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이란 긍정적인 면을 만끽시킨다. 인간 세계가 제아무리 불완전하고 사악하며 찬탈 등 무수한 분쟁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미랜더와 더불어 "인간이란 실로 아름답구나! 오, 찬란한 신세계여, 이처럼 멋진 사람들이 많다니!"하고 외치게 된다.
이 작품은 무수한 알레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알레고리는 프로스페로의 두 하인인 에어리얼과 캘리밴이 형성하는 알레고리이다. 만약 인간이 불가분의 정신과 육체로 된 개체라고 한다면 인간은 영혼, 사랑 등 정신적 혹은 천사적인 면을 상징하는 에어리얼과 육체, 욕정 등 동물적인 면을 상징하는 캘리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의 캘리밴을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이를 제거하지 않는 한 인간 세계에는 살인, 찬탈, 골육상쟁, 강간 등의 비인간적인 추태와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완전히 제거하는날 이것은 인간의 최고의 승리가 되며 곤잘로가 서술한 바의 이상향이 탄생하는 것이다.
프로스페로는 몽둥이와 사랑을 수단으로 그의 캘리밴을 구원했다. 이것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는 인간이 자신을 에어리얼 곧 천사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한다고 해도 캘리밴, 곧 동물의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 인간의 원위치인 천사와 동물의 중간 위치로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예가 프로스페로의 경우이다. 프로스페로는 원수들을 완전히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을 때 <눈은 눈으로>의 식으로 복수하지 않고 그들을 용서한다. 그는 끝까지 뉘우칠 줄 모르는 동생 안토니오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용서한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용서이며 따라서 기독교적인, 신적인 절대적인 용서인 것이다.
무조건 용서하고 동시에 과거의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식의 이 용서는 시들고 병든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인간을 거듭나게 만든다.
이 인간의 거듭남은 미랜더와 퍼디난드, 두 젊은 남녀의 결합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 승화시키어 혼돈에서 찬란한 질서의 신세계를 창조해 냄으로써 《태풍》의 <최고의 기적>을 보여준다.
에어리얼과 캘리밴의 알레고리 이외에도 우리는 많은 조그만 알레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곤잘로는 충성을, 알론조, 세바스챤, 안토니오 등은 반역을, 미랜더는 순결 혹은 기적을, 퍼디난드는 완벽한 연인 등을 나타내는 인격화된 추상들이다. 이와 같은 많은 알레고리로 해서 《태풍》은 인간의 마음만큼이나 풍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해진다.
《태풍》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에어리얼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종횡무진으로 다니며 심부름을 한다는 점에서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퍽과 유사하다.
《태풍》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것이 구조적이라는 것이다. 《실수 연발》을 제외하고는 시간과 장소의 일치를 셰익스피어가 지킨 유일한 작품이다.
끝으로 《태풍》은 합작으로 밝혀진 《헨리 8세》를 빼면 셰익스피어의 제일 마지막 작품이다. 사람들은 프로스페로가 그의 마술을 바다 속 깊숙이 넣어 버리는 행위를 극예술에 대해 작별을 고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풀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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