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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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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문화의 결산
단테 알리기에르(Dante Alighieri)는 이탈리아가 낳은 최대의 시인이다. 그러나, 포스콜로(Foscolo)이래 엘리어트(Eliot)에 이르는 수많은 비평가들은 단테가 단순히 이탈리아인에 국한되는 인물이 아니라 유럽인이었다는 사실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 그는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괴테와는 달리 유럽 전체의 문화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유럽인이었다. 혹자는 이 같은 사실을 중세 라틴어에 가장 가까운 단테의 언어가 갖는 위력 때문이라고 한다. 단테가 사용한 토스카나 어(현대 이탈리아어의 모체)가 지닌 보편성은 그 당시 전 유럽의 에스폐란토라 할 수 있는 라틴어의 그것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그리스도 교의 이념이 끈적끈적할 정도로 농후한 단테의 작품들에서 전 유럽인은 같은 혈맥 속에 흐르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잇는 것이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이 무한한 난해성을 지닌 얼굴로 유럽인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임을 인정할 때, 문화적 샘물이 전혀 다른 우리에겐 오죽할까?
따라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신곡》을 접함에 있어 가능한 많은 것을 알아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우리다.
1.격동기의 생애
단테알리기에리는 격렬한 대립의 틈바귀에서 혼란 속에 허덕이는 시대의 빛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1256년 5월 하순경 피렌체에서 출생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당시의 피렌체는 베네치아와 더불어 유럽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다. 금융과 통계렌체는 베네치아와 더불어 유럽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다. 금융과 통계술에 힘입어 도시가 커다란 부를 향유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향유 속에서 인간성은 도탄의 길로 치닫고 있었으니 부와 이간성의 역 비례 현상은 오늘날 산업적 소비사회에서만 갖는 전유물이 아닌 성싶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단테의 생애와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삶을 더듬어 볼까 한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내적 기록과 외적 기록에 의거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단테의 삶에 대해 말함에 있어 당혹 감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외적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단테는 자기의 인생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다시 말해서 작품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것 이외 자서전 같은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커다란 제한성을 갖게 된다. 작품을 떠나서 이 불후의 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록을 전해주는 것은 고작해야 복카치오(Boccaccio)의 《단테의 삶》과 빌라니(Villani)와 콤파느니(Compagni)의 《연대기》정도이다. 전자는 비록 그가 최초의 단테 학자이긴 했으나, 이미 그와 단테와의 시간적 차이가 반세기나 되었고 그동안에 단테는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거의 잊혀져 가는 편이었기에 그의 생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극히 간접적인 정보에 의해서 기록한 정도이고 후자들의 작품들 속에선 단테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조명이 아니라 당시 피렌체 사회에 투영된 단테의 모습이 약간 보일 정도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점을 제공하는 《새로운 삶》과 《한영》《신곡》을 중심으로 하여 작품들을 통해서 그의 생애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단테의 집안은 귀족의 혈통을 받고는 있으나 이미 몰락해 있었다. 그이 아버지는 알리기에로 디 벨린치오네(Alighiero di Bellincione)이고 어머니 벨라(Bella)라고만 알려졌을 뿐 그 이상은 더 알 수가 없다. 그의 조상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은 《신곡》에서 자세한 언급한 (<천국편>15곡) 캇치아구이다(Cacciguida)인데, 그는 쿠르라도(Currado)3세 치하에 기사가 되어 2차 십자군 원정 때 전사했다. 단테의 유아 시절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라파치알루피(Lapa Cialuffi)라는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가정에서 라틴어 교육을 처음에 조금 받은 것 같다. 그러다 나중에 가서 산타 크로체(Sante Crace) 수도원에서 3학과 (문법·논리학·수사학)와 4학예(산술학·음악·기하학·천문학)를 배웠다. (<지옥편>4곡 19행 주석 참조). 그 중에서도 수사학은 그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과목이다. 《신곡》에 의하면, 그에게 수사학을 가르쳐 준 이는 브루넷토 라티니(Brunetto Latini)였다. 그리고 다음의 ……세상에서 어는 때나 그대는 인간이 영생하는 법을 가르쳤었소 (<지옥편>15곡 84~85)라는 구절로 보아서 그는 수사학뿐만이 아니라 단테에게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입혔음이 분명하다. 또 일설 하면 단테가 볼로냐의 대학에서 수하학을 공부했다고 하나 정규 과정을 이수했던 것은 아니다.
단테는 라틴어 이외 프랑스어와 프로방스어에 정통했으며 음악·춤·노래·그림·법률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이 모두를 대부분 독학으로 습득했을 것이다. 그가 18세 되었을 때, 구잇토네 다렛초(Guittoned' Arezzo)의 영향을 받아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고전 연구를 끊임없이 계속했다. 특히 베르질리우스는 그에게 최상의 시인이었다. 또 구이도구이니첼리(Guido Guinizelli)의 새로운 시작법 등도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시적 삶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점은 베아트리체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강요된 유랑 생활이었다. 특히 전자는 더욱 의미 깊은 점을 갖고 있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ㅂㄹ도로 취급하겠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을 무렵에 아렛초의 기벨리니들과 캄팔디노에서 혈전을 벌인 다음 피사에 대항해서 싸우는 전쟁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고뇌에 떨어져 있다가 아리스토텔레스, 치체로, 보에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구이도 카발칸티와 우의를 다져나가면서 자신의 고뇌를 극복해 나갔다. 그 뒤 또다시 사회는 윤리적인 쇠퇴의 시기에 휩싸이게 됐지만 단테는 자신을 잘 지켜나갔다. 그리하여 1285년경에 젬마 도나티(Gamma Don-ati)와 결혼하여 세 아이(넷이라고 전해 오기도 함)를 갖게 되었으며, 그 아이 중 둘째인 피에트로는 아버지 단테의 문학을 깊이 연구해서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혼란 속에서 태어났다. 단테가 결혼을 하고 나서 곧 이어 정치 활동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궬피 당과 기벨리니 당의 피비린내나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전자는 중산층을 옹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후자는 상류층의 대변자였다. 지아노 델라 벨라(Giano della Bella)에 의해 착수된 이 두 당파간의 화평을 위한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분쟁이 계속되다가 궬피 당이 득세하게 되었다. 단테도 이 궬피 당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그는 철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인물이었던지라 정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교황이었던 보니파티우스 8세의 신정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산 지미니아노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보니파티우스는 토스카나 지방을 교황청에 예속시키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 때가 곧 1300년으로 추산된다.
바로 이 해에 단테는 피렌체를 다스리던 6인 행정 위원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피렌체는 또다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궬피가 흑당과 백당으로 갈려졌기 때문이다. 백당은 교황청과 단지오 왕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피렌체의 독립을 지켜나가고자 하였고 흑당은 일종의 기회주의에 편승하여 당시 세력이 드세던 교황의 계획을 전개하였다. 단테는 백당에 속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단테는 로마에 파견된 사절단에 끼여 그 곳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에나에 이르렀었다. 백당은 픅당에 의해 구축되었다. 그리해서 단테도 교황의 분노를 샀기에 하는 수 없이 세 가지 벌을 선고받게 되고 궐석 재판을 받았던 것이다. 선고 내용은 벌금 납부, 2년간의 귀양살이, 공민권 박탈이었다. 그러나 단테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겐 무기한의 추방령이 내려지고 재산 압수령이 발동되었다. 이리해서 그의 끝없는 유랑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단테는 동료들과 더불어 유랑 생활을 하는 도중에 무력을 서서라도 다시 그리던 고국에 돌아가려는 시도를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채 그는 홀로 베로나에 가서(1304년)바르톨로메오델라비고, 파도바, 룩카, 파리 등지를 배회하며 처참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동안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극히 비정했고 탐욕과 악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1310년 아르리고 7세가 로마 제국의 권위를 재건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 내려왔을 때 단테는 포를리에 있었다. 이 기회를 틈타 그는 독일계의 황제인 아르리고(헨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피렌체를 비난하는 포문을 열면서 한편으로는 그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단테는 이 탄원서에서 아르리고를 평화의 사도이며 자유의 수호자로 칭송하며 토스카나 지방을 공략하라고 하였다. 단테는 아르리고를 제국을 다시 부흥시킬 적격자로 보았던 것이다. 이 일로 해서 피렌체는 1311년 추방당한 백당들에게 일대 사면권을 주었을 때 단테는 제외했던 것이다. 어언 2년이란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아르리고는 로마에 와 황제의 위에 올랐으나 끝내 피렌체를 제 휘하에 넣지 못하고 1313년 갑자기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단테의 꿈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얼마 동안 카센티노에 가 밧티폴레 백작 집안에 기거하다가 베로나에 돌아가 볓 년 동안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1315년 피렌체는 또 한 차례 사면령을 내려 유랑자들을 불러 들였다. 단테도 자기의 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면 돌아갈 수 있었으나, 그는 명예롭지 못하다고 수락하지 않고서 오히려 비난을 퍼부었다. 피렌체의 흑당은 이에 분노를 머금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궐석 재판을 단행하였다. 단테는 라벤나에 돌아가 구이도 노벨로의 비호를 받으며 《신곡》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단테는 이 《신곡》이 출판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영예롭게 피렌체에 귀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믿었다. 이런 점을 그는 《신곡》속에 잘 나타내고 있다.
나로 하여금 여러 해 동안 야위게 할 정도로
하늘과 땅을 손잡게 하였던
거룩한 시가, 저들에게 싸움을 거는 이리들을
내가 원수로 여기며, 어린 양으로 잠자던
저 아름다운 양 우리 밖에서 나에게 빗장을
걸던 포악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생기거든.
나는 벌써 다른 목소리와 다른 머리털을
지닌 시인으로 돌아갈 것이며, 내 영세의
우물에서 면류관을 받게 된 것이다.
―<천국 편> 25곡 1~9
어쩌면, 이 작품의 명예에 힘입어 금의환양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벨로의 사신이 되어 베네치아에 다녀와 라벤나에서 1321년 9월 14일 56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지금까지 단테의 삶을 대강 살펴봤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단테의 유물이라곤 한 점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의 삶을 정확하게 알 길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 그지없다. 외적 기록이란 것도 변변치 못하니까 말이다. 글쎄, 단테의 유물로 실감나게 하는 것은 라벤나이 산 피에르 맛지오레 성당 한 모퉁이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는 그의 무덤인 것 같다. 피렌체엔 소위 <단테의 집>이란 것이 있기는 하나 시인의 손때가 묻은 것은 하나도 있을 수 없고 심지어는 그의 필적이 담긴 종이 한 장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렌체는 라벤나에게 단테의 무덤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나 라벤나는 "너희는 단테를 싫다고 쫓아냈던 게 아닌가? 단테는 실로 라벤나의 시인이다!"라고 공박하고 있다. 비록 무덤이야 라벤나에 있지만 단테는 피렌체 사람임이 분명하다.
2.《새로운 삶》에 대하여
이 작품의 원명은 Vita Nuova이다.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문제되는 제목이다. 이탈리아에서도 Nuova라는 형용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논란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생>이라고 번역했으나 적합하지가 않아 <새로운 삶>이라고 했다. Vita Nuova의 두 낱말의 뜻을 보다 가깝게 표현하리라 믿는다. 《새로운 삶》은 《향연》과 더불어 《신곡》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거론되는 책이다. 흔히 이 세 작품을 <3부작>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들이 서로 깊은 유대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곡》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이 작품들을 논의해 본다 함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Vita Nuova》는 단테를 베아트리체에게 얽어맸던 사랑을 이상화하고 신비화한 시와 산문으로 되어 잇는 이야기로서 시인이 그의 친구 구이도 카발칸티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초기의 단테를 이야기해 주는 결정적인 것인데, 4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 실린 산문은 시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시의 의미를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1283년~1293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여기 실린 서정시들은 각각 다른 경우에 씌어진 것인데 나중에 다시 정리한 것으로 생각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관계는 뒷부분에 가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가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략하게 언급할까 한다. 단테는 아홉 살 되던 해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 그는 또다시 그녀들 만난다. 이 때 그녀는 단테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준다. 그녀는 이 인사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테는 근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지나 않을까 하여 다른 여자들에 대한 시를 읊기 시작한다. 일종의 가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이를 진정인 줄 알고 분노를 머금는다. 단테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제부터 다른 연인들에 대한 찬미를 멈추고 다시금 베아트리체, 오직 그녀만을 친송하며 신성한 상징으로 끌어올린다. 이어 단테는 심한 병고에 시달린다. 혼수 상태에서 그는 환영을 보게 된다. 어떤 여인이 천사들의 합창 속에서 하느님께로 의기양양하게 승천하는 환영이다. 그녀가 곧 베아트리체의 변모된 모습일지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녀는 단테를 이끌어 위로 올려놓으며 기묘한 모습을 보여 준다.
《새로운 삶》은 사페뇨가 지적하듯이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의 이상화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전기적 요소로 보느냐 kslaus 우의적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시인의 경험에 본거를 둔 요소드리기는 하나 전기 이상의 어떤 상징성을 내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품은 초기에 이루어진 것이니 만큼 미숙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곡》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해설서보다 더 훌륭한 면을 지니고 이는 자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단테는 《새로운 삶》이나 《향연》에 남긴 시 이외 약 50편의 시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들은 《시들》이라는 제목으로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 분류되었는데, 여기서도 베아트리체에 대한 찬가와 또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 추모의 정을 읽을 수 있다.
3.《항연》과 소품들에 대하여
이 작품은 《새로운 삶》의 계속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숭고한 마음과 일치되는 숭고한 사랑을 주로 다룬 《새로운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적인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벌써 시인으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1304~1307)의 산물이다. 단테는 원래《향연》을 서문 이외 14장으로 구분 지어 쓰려고 했으나 다 완성하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현재 나아 있는 것은 앞부분 4장(서장을 포함해)과 우의적 성격을 띤 세 편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철학도가 참조할 수 있도록 백과사전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Convivio란 <정신적 연회>를 의미한다. 이 작품 속에 실려 있는 시들은 음료이며 산문은 음식을 가리킨다. 단테는 이 향연의 즐거움을 가능한 한 대중들도 맛볼 수 있도록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쉬운 이탈리아어(라틴어가 아니라)롤 썼던 것이다. 이 작품은 단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알베르토 마뇨처럼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각자들의 학설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윤리, 철학,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단테는 이《향연》에서 드디어 고양된 산문체(방언으로 된)를 완성한 것이다.《새로운 삶》에서 시작했던 것을 이 작품에서 정립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산문체 역시 중세의 수사학에 바탕을 둔 것임을 첨언할 필요가 있겠다. 단테를 가리켜 중세의 마지막,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중세의 뿌리에서 영양을 취하여 세 시대의 잎사귀를 싹터놓았다는 데에 있다. 이는 곧 다른 것들은 제쳐놓는 다해도 《새로운 삶》과 《향연》의 산문체 하나만 갖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단테가 언어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긴 사실은 그의 《속어 수사학》에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정치이론서인 《제정론》과 더불어 라틴어로 쓰여 있다. 전자는 이탈리아어에서 문어를 개발하려는 의도하에 단테가 로망스의 계통을 깊이 연구한 결실이고 후자는 그의 정치사상을 피력한 책이다. 이 두 작품도 단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 외 단테가 남긴 소품들은<서간문> <전원시> <물과 땅의 문제>이다. <서간문>은 몇 편 남지 않았으나 특히 그 중에서도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에게 보낸 것은 천국편의 소재를 밝혀 주며 아울러 우의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어 중요하게 취급된다. <전원시> 역시 시의 형태를 빈 서간문인데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과 땅의 문제>는 당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죽기1년 전에 썼으니 《신곡》을 쓰면서 간간이 구상한 듯하다.
4.《신곡》에 대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신곡》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모든 소품들은 직접적으로 《신곡》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어떤 것은 너무 독특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다라서 모든 작품을 논해 볼 필요도 없고 또 어는 한 사람이 그의 전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힘든 일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신곡》에 이야기를 고정시켜 보자.
이 작품은 원래 Commedia(희곡 혹은 희극)라는 제목만 갖고 있었다. 이것은 비극(tragedia)에 상응되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러한 제목을 붙였는가? 이를 설명해 주는 그의 서간문(칸그란데 델라 스칼라에게 보낸)에 의하면 <슬픈 시작>에 이어 <행복한 결말>에 이른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든 이 Commedia에 의하면 형용사 Divina를 첨가한 자는 복카치오이다. Commdia가 취급하는 시재(詩才)의 숭고함과 고귀한 시형에 매료되어 이거야말로 단순한 Commdia가 아니라 신성한 희곡(Divina Commdia)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뒤부터 이 작품은 계속 오늘날과 같이 불리는 것이다.
우스운 얘기 같지만, 이런 가정을 해 본다. 단테에게 유랑 생활이 없었다면 <신곡>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이야기를 한다고 탓하지는 말 일이다. 왜냐하면, 단테에게 있어서 당시의 시대상은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괴로움에 시달리고 분노에 몸을 태우며 혈기찬 정신으로 싸움터에 나가고 마침내 하느님을 찾는 소망에 열을 올리면서 윤리적·종교적·정치적인 관심을 갖고 깊은 연구에 몰입하게 되었던 단테, 그에게 《신곡》을 쓰는 일이란 다분히 교훈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인류를 죄의식에서 해방시키고 영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게 하는 의도적인 목적의식이 심오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단테는 인간들이 지옥에서 받고 있는 벌의 제 양상과 연옥에서 죄를 정화하고서 천국에 오르는 섭리의 역사를 깨닫게 하는 시적 귀결을 내세운 것이다.
《새로운 삶》의 결말 부분을 보면 단테가 《신곡》을 오래 전부터 구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첫 일곱 곡은 피렌체에 있을 때 썼다가 유량 생활을 하면서 다시 고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단테는 "인생 길 반 고비에"라고 지옥편의 첫 구절을 장식하는데, 이는 1300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정작 착수된 것은 《향연》의 집필을 제쳐놓고 난 1307년쯤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리하여 지옥 편과 연옥 편은 1314년 이전에 탈고되었고 나머지는 1321년, 즉 그가 죾 직전에 끝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곡》은 세 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편은 서로 깊은 유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또 각 편은 모두 33곡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옥 편엔 작품 전체에 대한 서곡이 있으니 34곡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들은 합하면 백 곡이 된다. 그리고 《신곡》은 모두가 삼연체에 11음질로 구성되어 있으니 참으로 묘한 설계 하에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각 곡의 길이는 일정치 않으나 대개 140행을 약간 넘는다. 작품 전체는 1만 4천 23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곡》은 3이라는 숫자를 매우 중요시한다. 이는 단테가 《새로운 삶》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위일체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단테는 또한 10이나 그의 배수를 의미 있게 여기는데 이것은 <완전>을 뜻한다.
그 뿐이 아니다. 지옥 편에서 벌받고 있는 영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기반을 둔 이론에 따라 부절제, 폭력, 사기의 세 가지 순서에 따라 분배되어 있고 연옥 편의 정죄 하는 영혼들은 선과 악의 개념에 바탕을 둔 채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천국 편의 영혼들은 불완전한 영혼들·활동적인 영혼들·명상적인 영혼들로 나누어져 있다. 또 지옥의 원들은 4의 배수인 아홉 개로 되어 있고 연옥의 비탈도, 천국의 하늘도 역시 아홉 개로 되어 있다(단 지옥 입구와 연옥 입구 그리고 정화천을 생각하면 각각 열 개로 되어 있는 셈이다). 또 지옥의 문지기들도 아홉명, 연옥의 천사들도 아홉 명, 천국에 있는 천사들의 품급도 아홉 가지이며, 지옥 입구에서 단테를 가로막는 짐승들은 세 마리, 단테를 인도한는 시인들도 베르질리우스, 소르델로, 스타티우스 등 세 사람이다. 3과 9 그리고 10과 100의 숫자가 끝없이 작용한다. 이거야말로 시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다.
단테가 《신곡》에 적용하고 있는 천문한과 신학은 철저히 중세적인 것이다. 지구는 우주 복판에 부동의 상태로 있고 그 주위에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뒷날 모진 탄압 끝에 자신의 학설을 부정하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기절할 노릇이지만 단테 시대엔 정설로 여겨졌던 진리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이기에 여기 그 요지를 밝혀 둔다. 지구를 가운데 두고 도는 것들은 공기의 권들, 불의 권 그리고 아홉가지의 하늘들이다. 이 하늘들은 정화천인 엠피레오안에 예속해 잇는데 이것은 부동의 상태에 있다. 그리하여 엠피레오에 가까이 있는 하늘은 빨리, 멀리 있는 하늘은 느리게 지구 위를 맴돈다. 적도는 지구를 두 개의 반구로 나눈다. 북반구 복판에 예루살렘이 있고 남반구 복판에 연옥의 정죄산이 있으며, 예루살렘의 반구 밑에 지옥이 있다. 그리하여 그 밑으로 깊이 들어가면 루치페르가 곤두박질해 있는 땅의 복판이 있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한다. 다시 말해서 루치페르가 반기를 들고 하늘로부터 쫓겨나기 전에는 지구가 남반구에 있었는데 나중에 가서 루치페르와 거리를 두기 위해 가운데 연옥의 산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언급했든이, 중세적인 천문학과 신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1권 2면 도판 참조),
이제 각편에 대해서 논의하기에 앞서 잠시 다음의 구절을 음미해 보자.
우리네 인생 길 반 고비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처해 있었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지옥 편> 1곡 1~6
본문의 주석에서 설명하듯이 이 시기는 1300년이다. 이 때 그는 어두운 숲이라는 죄의 세계에 처해 있었다 하며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숲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세 마리 짐승이 가로막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 때 인간 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베르질리우스가 신학의 상장인 베아트리체의 보냄을 받아 시인을 구출하는 것이다. <신곡> 전체의 지속 시간은 일주일이다. 1300년 7일부터 14일까지로 부활주일 금요일부터 다음 목요일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다. 지옥에서 3일, 연옥에서 3일, 천국에서 하루의 시간이 소요된다.
1. 지옥편의 구조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이다. 여기 있는 영혼들은 죽을 떄까지 악과 이웃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지옥에 이르기 전에 지옥의 안뜰이라고 하는 컴컴한 들녘에 있는데, 여기 태만한 자들이 놓여 있다. 그들은 전생에 선과 악을 떠나 오로지 자신들을 위하는 일에만 몰두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지금 왕파리와 벌떼에 시달리며 치달리고 있다. 이어 카론이 사공이 되어 지키고 있는 아케론 강이 나타난다. 이 강은 지옥문을 지나 곧 이어 펼쳐지는 지옥 안뜰과 본 지옥을 구분 짓고 있다. 본격적인 지옥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는다. 왜냐면 지옥엔 아홉 개의 원이 있고 그 중 첫 번째는 림보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 다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 들어 있으면 서도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이 림보에는 두 종류의 영혼들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 이전의 위대한 시인, 철인으로서 선행을 많이 했던 자들의 영혼이다. 베르질리우스 자신도 이 림보에 있다. 이 곳에 있는 영혼들은 하느님을 알고자 갈망하지만. 이 갈망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본연의 지옥은 둘째 원의 문턱에 있는 미노스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이 둘째 원에는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쉬지 않고 불에 대는 지옥의 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있는 곳도 바로 여기다. 가엾은 이 두 인물들의 운명에 대해서 단테는 연민의 정을 쏟아 얘기하고 있다. 제 3원엔 탐욕가들이 체르베로스에 의한 고통을 당하고, 낭비가와 인색한 자들이 제 4원에, 제5원에는 스틱스 강의 흙탕물에 잠겨 있는 격노한 자들이 벌받고 있다. 여기까지가 무절제한 영혼들의 벌에 대한 것이다. 단테와 베르질리우스는 플레기아스에 인도되어 세 명의 푸리에가 지키고 있는 여섯째 원에 이른다. 디스의 시가 곧 여기다. 중세기의 커다란 성이 성벽에 둘러싸인 채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중세기의 커다란 성이 성벽에 둘러싸인 채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엔 이교도들이 불에 그을린 관속에 누워 있는 것이다. 이 제6원은 스틱스와 플레제톤 강 사이에 있는 완충 지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의한 죄의 제1부류와 제2부류 사이에 있는 일종의 림보나 같은 것이다. 제7원은 폭력을 사용해 죄를 지은 영혼들이 미노타우로스에 의해 감시를 받으며 벌받고 있다. 이 원은 폭력의 세 가지 형태를 구분 짓고 있다. 즉, 이웃에 대한 폭력과 자신에 대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이다.
사기와 기만을 범한 영혼들은 지옥의 가장 낮은 곳에서 두 부류로 나누어 벌받고 있다. 즉, 제8원에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자를 사기한 죄인들이 있고 제9원에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를 사기한 배반자들이 있다. 제8원은 커다란 노천극장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거기엔 열 개의 굴속에 유혹 자, 아첨꾼, 고성죄인, 점성술 가 와 마술가들, 탐관오리들, 사기꾼 화폐위조가, 위선자들, 도둑들, 사기꾼 집정관들, 모략 가들, 불화의 분열의 씨를 뿌리는 자들, 연금 술가들이 그들의 분수에 맞는 벌을 받고 있다. 제9원에는 배반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코치토스의 얼음 속에 파묻혀 있다. 이 코치토스는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즉, 친족을 배반한 영혼들, 조국과 자기 당파를 배반한 자들, 손님을 배반한 자들, 배은 망덕한 영혼들 등으로 말이다. 땅 한복판(지구의 중심)에는 지옥의 마왕인 루치페르가 있는데, 그는 세 개의 입을 갖고 있다. 이 입들엔 유다, 브루투스, 캇시우스가 들어있다. 루치페르는 입이 세 개이니 얼굴도 세 개인 셈인데, 이것들은 각각 증오, 무력, 무지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를 좀더 깊이 음미해 보면, 증오는 사랑에 대치되고 무력은 권능에, 무지는 지혜에 대치됨을 아는데 사랑과 권능과 지혜는 곧 삼위일체가 표상 되는 것들이다. 단테는 이들을 마지막으로 본 다음 연옥의 해변에 이르는 것이다.
2. 연옥편의 구조
연옥은 정죄와 희망의 왕국이다. 단테는 베르질리우스를 따라서 어는 섬의 해변에 이른다. 공기는 아주 맑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 박혀 감미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여명이 점점 밝아 온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산이 있건만 도무지 무서운 생각이 안 든다. 뱃사공 천사의 조각배를 타고 타베레 강 어귀를 떠나 여기에 이른 영혼들은 모두가 이 산을 올라가며 죄의 허물을 벗어 버리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정죄산을 지키고 있는 영혼은 카토이다. 그는 체사르에게 항복하기않고 공화국의 자유가 종말에 이르는 것을 지켜보며 자결함으로써 치욕을 모면했던 인물로 중세에 이르도록 자유의 규범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그가 비록 신앙을 갖고 있진 않았으나 자살로써 스토아 학파의 윤리에 대한 의무를 수행했었기 때문에 림보나 혹은 자살자들의 고통스런 숲에 있지 않고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이 정죄산도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연옥 입구[혹은 전(前)연옥], 연옥, 지상 낙원이다. 연옥 입구에는 악 속에서 살다가 죽을 무렵에 가서야 회개하고서 구원을 받은 영혼들이 있다. 이거야말로 커다란 모순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두 개의 비탈로 구분돼 있다. 첫째 비탈엔 파문당했다가 죽기 전에 뉘우친 자들의 연옥에 들어가기에 앞서 파문 시기의 삼십 배의 기간을 정죄하고 있고 둘재 비탈엔 회개에 태만했던 영혼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네 인생의 기간만큼 이 곳에 있어야 한다.
단테는 여기서 이러한 상황을 구경하고 난 뒤 정화천(엠피레오)에서 내려온 성 루치아에 의해 연옥 문턱으로 날아서 오른다. 천사가 그 문을 지키고 있는데, 그는 단테의 이마에다 일곱 개의 P자를 칼끝으로 새겨 준다. 이 P자들은 연옥의 일곱 권(圈)에서 정죄해야 하는 주요한 죄를 표상한다. 즉, 오만, 시기, 분노, 태만, 인색과 낭비, 탐식, 애욕 등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차근차근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원을 받게 되고 이어 지상 낙원으로 오를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연옥에서 정죄하고 있는 죄들이 지옥에서 벌받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것임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지옥의 죄들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것이고 연옥의 죄들은 죽기 이전에 회개한 자들의 죄이다. 그러므로 지옥의 죄들은 정죄될 수 없으며 영원히 벌받을 자들의 죄들이고, 연옥의 죄는 구원을 받은 영혼들이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서 연옥에서 정죄하는 것이다. 이 지상 낙원은 지상의 완전한 행복을 상징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교회와 군주국의 보편적인 권력들을 조화시킬 줄 안다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엠피레오에 올라 가기 전에 그들은 지상의 죄를 망각시키게 하는 레테 강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며 정화되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질리우스와 스타티우스의 안내를 벗어나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르는 것이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난해도가 다른 것들보다 더 심한 걸로 여겨진다. 그러나 16 ~ 21곡에 이르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부분을 비교적 쉬운 논조로 독자의 심장을 뿌듯하게 적셔 줄 요소를 품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연옥편>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단테는 자유 의지의 참뜻을 깨우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는 베아트리체의 말을 다음과 같이 듣는다.
……그대가 고백해야 할 것을
부정하거나 입다물어 버린다 해도 그대의 죄다
덜 드러나지는 않는다오. 저 심판관이 아시니까!
그러나 죄의 고백이 제 자신의 입에서
터져 나오면 우리들의 법정에서는
바퀴가 칼날에 대해 거꾸로 돈다오.
아무튼 그대, 그대의 과오를 부끄럽게
여기에 언젠가 또 세이렌의 소리를
들어도 더더욱 굳세어지기 위하여
눈물의 씨앗일랑 떨구어 버리고 들어주오.
그러면 땅에 파묻힌 나의 육신이 어찌하여
엉뚱한 곳으로 그대를 가게 했는지 알게 되리오.
―<연옥편> 31곡 37∼48
다시 말해서 죄를 속속들이 고백해야 하느님의 의지를 좇을 수 잇는 자유 의지를 구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베아트리체는 "하얀 너울 위에 올리브 띠를 두르고……푸른 망토 밑에 싱싱한 붉은 빛으로 옷을 입고" 단테에게 나타나 그를 천국으로 안내한다.
3. 천국편의 구조
나는 앞에서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라고 말했다. 천국은 이와 정반대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천국은 빛과 춤과 노래와 완전한 환희와 완전한 덕이 있는 왕국이니까 말이다. 여기 있는 영혼들의 본거지는 정화천이나 단테가 도착하자 그에게 축복의 여러 계층을 알려 주기 위하여 각각 그들에게 적합한 지역으로 내려가 그를 맞는다. 우리는 천국의 여러 하늘들에 있는 복자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받는 축복이 다르다고 믿는 수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천국에 있는 복자들은 똑같은 축복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지는 곧 하느님의 의지이고 또 그러기에 그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질서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아홉 개의 하늘들이 지구를 주축으로 하여 돌고 있는데, 이 하늘들엔 천사들의 좌정하고 있다. 아래로부터 위로 등급에 따라, 안젤리(천사들,) 대천사(大天使)들, 권천사, 능천사, 역천사, 주천사, 좌천사, 지천사, 치천사 등이다. (이 천사의 등급에 관해선 <천국편>28곡 후반부의 주석을 참고할 것). 가장 느리게 돌고 있는 하늘인 월천에는 하느님께 행한 서원을 이루지 못한 영혼들이 반사된 영상처럼 나타나 있다. 그들은 불완전한 영혼들이다. 그런데 활동적인 영혼들은 불완전한 영혼들처럼 하나의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둘째에서 여섯째 하늘에 널리 분배되어 있다. 둘째와 셋째 하늘엔 절제, 넷째 하늘엔 지혜, 다섯쨰 하늘엔 힘, 여섯째 하늘엔 정의를 뜻하는 천사들이 있는 것이다. 명상적인 영혼들은 일곱째 하늘에 있다. 두 번째 하늘인 수성천에는 자신의 명성을 남기기 위해서 선을 행하였던 영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환희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빛살들처럼 자그마치 형체를 띠고 나타난다. 영혼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은 셋째 하늘 이후부터이다. 여하간 천국의 영혼들은 정화천(엠피레오)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모습을 다시금 취하게 되고 그 전에는 빛 속에 가리워져 있다. 셋째 하늘인 금성천에는 나중에 하느님께 향하게 될 인간적인 사랑을 강렬히 느꼈던 영혼들이 축복받고 있다. 그들은 이제 조금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빛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또 하느님을 인식하면 할수록 더더욱 사랑의 열기에 싸이고 신비적인 환희를 갖게 돈다. 넷째 하늘인 태양천에는 지혜로운 영혼들이 단테와 베아트리체 주위에 두 겹을 이루고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그 뒤에 이어지는 화성, 목성, 토성의 하늘들에 있는 영혼들은 상징적인 형상을 띠고 있다. 화성엔 신앙을 위해 전투하는 영혼들이 거대한 십자가를 이루고 있는데,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사라지셨다 한다. 목성에는 의로운 영혼들이 노래를 부르며 정의와 제국의 상징인 독수리를 이루고 있으며 토성에는 명상적인 영혼들이 금계단을 조용히 오르고 내린다. 이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 여덟째 하늘인 항성천에서 단테는 그리스도의 사도들로부터 신학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즉 신앙, 소망, 사랑 등에 관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예수님의 승리가 승천하는 것을 본다. 원동천인 아홉째 하늘에서 단테는 아득히 멀리 자리잡고 있는 한점을 보게 되는데, 그 점은 곧 하느님을 상징한다. 바로 이 점에 한 점을 보게 되는데, 그 점은 곧 하느님을 상징한다. 바로 이 점에 하늘과 모든 자연이 달려 있으며 그 주위에는 하늘을 움직이는 천사들의 아홉 합창대가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돌고 있다.
단테는 이제 활동적 삶과 명상적 삶의 모든 것을 두루 살펴보았으니 최고의 하늘이라 할 정화천(엠피레오)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모든 복자들의 진정한 보금자리다. 여기서 시인은 하얀 장미꽃을 이루고 있는 복자들을 보며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고 <태양과 다른 모든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관상하게 된다. 그리하여 가장 완전한 평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천국편은 신학의 해설 같은 느낌을 준다. 하느님의 의지를 완전하게 터득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가장 실감나게 해 준다.
지금까지 《신곡》의 구조에 대하여 살펴봤다. 이 구조를 잘 알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그 어떤 해설보다 좋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흔히 《신곡》의 3편을 두고 말할 때, 그 3편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며 지옥편이 우수하다느니 천국편이 우수하다느니 하고 떠드는 경우가 있다. 각 편이 지니는 어렵고 쉬운 점을 들 수는 있으나 각 편의 질을 따진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왜냐하면 이 3편은 통합체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볼 대 우리는 《신곡》 전체에 들어 있는 감정을 보다 깊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곡》은 인간이 소유하는 감정의 깊이와 높이를 완전히 담은 조화 있는 건축인 것이다. <지옥편>은 조각 같고, <연옥편>은 회화 같으며 <천국편>은 음악 같으니 이 모두를 통합체로 볼 때 그것은 조화 있는 건축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곡》을 읽을 때 글 뜻에만 국한하지 말고 글 저 너머에 있는 더욱 깊은 의미를 포착하라고 한 단테 자신이 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단테의 생애와 작품들을 대략 살폈다. 특히 《신곡》은 그 구조면을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앞에서 《신곡》이 《새로운 삶》의 계속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왜냐하면 두 작품이 고루 이 영원한 여성인 베아트리체와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말미는 이걸 분명히 나타내 준다.
(……) 그러기에 삼라만상이 의지해 살고 있는 하느님께 내가 몇 년 더 사는 것이 기꺼운 일이 된다면, 나는 그녀(베아트리체)에 대해 이제까지 다른 어떤 여인에 대하여 말한 바 없던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 뒤에 나의 영혼이 그 여인, 다시 말해서 세세 영원히 축복 받으실 하느님의 용모를 영화롭게 알현하는 저 축복 받은 베아트리체의 영광을 보러 갈 수 있는 것이 자비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새로운 삶》 산문 42
그러니까 《새로운 삶》을 마치면서 단테는 미래에 《신곡》을 쓰겠다고 다짐했다는 의미다. 사실 베아트리체를 이해하지 않고 단테를 읽으러 하면 무용할 것이라 여겨진다.
베아트리체는 시인 단테의 영원한 여성이다. 그저 막연한 연인이라거나 혹은 시적 영감을 주는 시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여인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선의 대변자이자 그 집합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극히 불명료한 단테의 생애에 얽힌 일화에 얽매여 그녀와 시인과의 관계를 단순히 세속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분석하려 함은 쓸데없는 노력의 낭비다. 그럼 여기서 《새로운 삶》의 두 구절을 읽어보자.
내가 태어난 이래 빛의 하늘이 자체의 공전에 따라 아홉 차례 똑같
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맘에 그리던 영광스런 여인이 내 눈 앞
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
녀를 베아트리체라 불렀다.
―《새로운 삶》2
그런 뒤 앞에 기록한 바와 같이 이 거룩하신 여인이 나타나신 이래
정확히 아홉 해가 될 만큼 많은 날들이 지나 그 마지막 날에 이르
렀을 때 이 찬탄할 만한 여인이 두 명의 고귀한 여인들 사이에 아
주 하얀 옷을 입고 내게 나타났다. (……) 나에게 덕스러운 태도로
인사하였다.
―《새로운 삶》3
이것이 곧 시인이 그녀와 갖는 직접적인 관계다. 그것뿐이다. 두 번 만났다는 사실, 그게 얼마나 대단하단 말이겠는가? 그러나 두 번째의 만남에서 그녀가 던지는 인사는 시인에게 선과 행복 그리고 구원의 개념을 터득하게 하는 원천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베아트리체는 미, 덕, 지혜의 상징이고 영원한 여성의 이미지를 갖게 되며 아름답고 새로운 천사이자 아직 인간화되지 않은 신성을 지녔으며 실현되지 않은 이성이라고 한 데 상티스의 평이 옳다 하겠다.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삶》에 나오는 유명한 소네트를 읽을 때 합당성을 찾게 된다.
나의 여인은 지극히 온화하고 성스러워
사람들에게 옷을 띠어 인사할 땐
허마다 부들거리며 굳어지고
눈들어 쳐다볼 수 없다네,
칭송을 들으면서도, 소박하게
단장한 채 걸어가는 그녀,
지상에 기적을 보이려
천상에서 내려왔는가.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감미를 주는
그녀, 기쁨이 넘친 듯 보이기에,
그 감미를 맛보려지 않는 자 터득 못 하네.
그녀의 입술 언저리에
사랑이 가득한 숭엄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하며
사람에게 속삭이듯 말하네, 한숨지어라!
―《새로운 삶》 26
지극히 온화하고 성스런 여인은 시인 단테의 여인이요, 그가 갈구 하는 사랑하며 선인 베아트리체이다. 선을 의식하는 마음 속엔 감미와 환희와 숭엄한 정신이 자리잡는다. 단테에게 있어서 가톨릭 교적인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사랑의 주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윌의 산문시인 한용운의 무상의 불도에 다다르기 위하여 님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님>이 지니는 의미와 단테가 찬미하는 여인의 그것과는 다르게 여겨진다. 전자에겐 잃어버린 조국으로 동일시될 수 있고 후자에겐 전술한 의미를 지닌 베아트리체이다. 그러나 이들 양자는 선이라는 근본한 적이며 발생학적인 근원에 있어서 서로 통하는 점을 공히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사랑과 여성 찬미의 주제는 단테가 이처럼 초기 작품을 비롯해서 《신곡》에 이르기까지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것은 단테가 독창적으로 맨 처음 주도한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청신체라 부르는 형태의 시를 썼던 시인들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주제이다. 11세기의 프랑스와 프로방스에서는 일종의 수도원 문화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경향의 기사문학과 연애시가 발표되었다. 그러다 십자군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겁고 고답적인 중세의 종교문학적 특성이 빛을 잃고 이상의 방향을 종교로부터 행복의 추구로 돌림과 아울러 기사도 정신이 생겼고 그에 따라 여성 찬미론과 연애론이 시와 산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한 시칠리아 학파에 전래되고 다시 중부 이탈리아 지방인 토스카나에 소개되었다.
구이니첼리와 카발칸티에 이어 단테에게 이러한 정신이 파급되었다. 그의 《새로운 삶》은 바로 청신체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구이니첼리와 카발칸티의 시에 나타난 여성 찬미 혹은 칭송이 어떠했나 살펴보는 것도 좋으리라. 먼저 구이니첼리의 시를 한 구절 옮겨 보자.
새가 숲 속의 푸르름 속에 보금을 이루듯
사랑은 숭고하고 온화한 마음에 깃든다.
숭고한 마음 없이 사랑을 이루지 않은 자연,
사랑 이전에 그러한 마음 지어 놓지 않았다.
사랑의 태양은 생기기 전과는 달리 생겼다 하면 곧이어
찬란한 빛을 발하였고
타오르는 불의 열기와
너무나 똑같은
사랑의 숭고함 속에 깃든다.
―구이니첼리, <숭고한 마음>에서
이 시인이 보는 사랑은 곧 숭고한 마음 속에 깃들고 삶의 근원이라 할 정도로 찬란한 빛을 지닌 생명력을 갖고 있다. 그가 이 시의 하단 부에서 노래하는 여인은 곧 천사이며 사랑은 숭고한 마음과 동일한 것이다.
청신체 시인들이 사용한 gentile라는 뜻은 현대어와는 달리 "온화, 숭고, 고귀한"의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단테도 사랑과 숭고한 마음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라와 숭고한 마음은 같은 것이다(Amor e il cor gentile sono una cors).
―《새로운 삶》 20
단테의 이와 같은 사상은 구이니첼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사랑에 있어 그 표현이란 필수적인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순수한 관조에서 생긴다. 청신체의 거장 구이니첼리에 의하면, 여성의 미란 정신의 내적인 미를 밖으로 찬란하게 노출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외모의 조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숙한 기품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성이란 섬광 같은 눈및에서 그 참모습이 보여진다는 말이다. 누이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또한 구이니첼 리가 작품에 그리는 여성미란 도덕직인 것으로써 카펠라누스가 성적 본능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열정을 순화시켜 주고 변형시켜 준다. 사랑의 욕망은 심미적 관조에서 생기며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의 성향에 대해 복종함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연인의 품위있는 정신에서 완전한 하겠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헌신적인 노력의 보상을 얻는다든지 혹은 연인과 호흡을 같이 한다고 느낀다면, 그는 매우 커다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청신체 시파의 여인은 신성을 지녔기에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곧 행복을 획득하는 것과 같다고 구이니첼리는 생각한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여성은 실재의 여인에 그치지 않고 성자의 상징이며 동시에 천사의 양상을 띠게 된다. 따라서 그 여인에 충성하는 마음의 소유자는 종교적 숭고함을 갖게 된다.
한편 카발칸티의 시들은 당시 풍미했던 철학과 일반 학문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사병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여겨진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사랑이란 영혼의 힘이나 기능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에 연관된 영혼의 일부 혹은 그 힘에서 흘러나오는 자질이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영혼의 일부란 감수성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영혼의 이성적인 특질보다는 감각적인 특질을 더 중요시 여긴다. 또 감각적인 영혼은 육체의 완전함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성적인 정신에서가 아니라 감각적인 정신에서 발생되기에 육욕에 대한 갈망으로 간주되며, 그 때문에 이성의 능력을 마비시키는 열망이라고 카발칸티는 믿었다. 이와 같은 비관론적인 애정 윤리를 단테는 용납하지 않는다. <피에르라>는 시를 썼던 짧은 기간에는 단테도 카발칸티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전반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그와 같은 생각을 배척하였다. 《신곡》이 최고도의 사랑과 이성을 인식하고자 하는 시인의 승리와 희열에 찬 시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연옥편> 마지막 부분에서 베아트리체가 일시 방종했던 단테를 꾸짖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잠시 동안 비관론적 윤리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게 된 자신의 심정을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내고 있다.
지혜로운 여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
타인의 눈을 기쁘게 하며,
마음에 행복한 일을 그리게 한다.
때로는 마움 속에 오래 남아
사랑의 영혼을 일깨워 준다.
― 《새로운 삶》 20
사랑의 숭고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영혼의 미를 통해서 선에 접근한다는 초기의 정신을 되찾은 것이다. 또 이것은 베아트리체에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그럼 도대체 이 여인이 시인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인가?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하였지만 여기 좀더 자세히 밝혀 보자. 단테의 전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가 자서전을 남겼다거나 후세의 전기 사가들이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적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단테의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방법과 《데카메론》의 저자이자, 초기의 단테 학자였던 복카치오의 《단테의 삶》을 통하는 방법이 있다. 복카치오가 쓴 이 책에서 베아트리체에 관한 부분만 간추려 옮겨 보자.
오월 초하루, 아름다운 꽃들이 회사하게 덮인 피렌체. 귀족인 포르티라니 가문은 축제를 베풀어 명망있는 사들을 초청한다. 그들은 가족들까지 데려와 행복한 시간을 같 이 나눈다. 알리기에로 씨도 아들 단테를 데리고 간다. 단테는 여기서 포르티나리의 귀엽고 예쁜 딸 비체를 보게 된다. 그들은 아홉 살쯤 됐다. 어린 단테의 눈에 들어오는 비체는 천사 같았다. 축제의 호스트인 포르티나리의 딸인데다가 워낙 아름다운 비체인 지라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칭송한다. 단테는 이 천사 같은 비체를 사모한다. 그러부터 단테에겐 비체를 보는 것이야말로 기쁨이요 위안이요 행복이다. 그러나 비체는 다른 사람고 결혼한다. 단테는 마음으로만 그녀를 동경해 왔는데 이 동경은 시인의 가슴에서 분출하여 많은 시에 뿌리바근다. 단테가 비체를 처음 만난 후 9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 녀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마음의 여성인 그녀를 만난 단테는 당황활 정돌 커다란 기 쁨에 사로잡힌다. 비체가 다소곳하게 인사한다 이 인사에 그만 단테는 희열을 느낀다. 방황하던 자에게 광명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을 때 비체가 세상을 떠난다. 단테는 그녀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 찢어질 듯한 마음의 고통이 시작된다.
이상이다. 이것은 《새로운 삶》과 너무나 똑같다. 분명코 시인의 내적 기록에 바타응ㄹ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단테의 삶을 알려면 자연히 그의 내적 기록에 의존해야 한다. 그럼 이 내적 기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품 전체를 의미한다. 그 가운데서도 《신곡》과 《새로운 삶》그리고 《향연》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이나 그가 처했던 사회와 연속적인 점에서 해석되기도 하고, 아니면 순수한 문학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어질 수도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사페뇨 교수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같은 의견을 피력해 왔다. 《새로운 삶》을 작가의 자전적 전기문학으로 보느냐 아니면 비유적 픽션으로 보느냐 하는 이 문제는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별로 유용한 것은 못 된다. 왜냐면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정당성과 부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베아트리체라는 인물은 시인의 삶에서 전적으로 끌어왔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녀가 지니는 의미는 너무나 고양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녀가 천사적 위치 더 나아가서는 성모 마리아의 성품과 절대자의 신성을 지녔다. 또 그녀는 선의 집합체이다. 그러므로 그녀에 관한 본질적인 연구는 전기적 성질을 벗어나 순수히 비유적 요소가 점철된 《신곡》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가르켜, <나보다 뛰어난 하나의 신>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인이 베아트리체를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녀가 던진 인사를 받고 난 뒤에, 하느님의 축복과 구원의 의미를 느낀 때문이다. 따라서 가톨릭적 정신에 입각하여 삶을 영위하는 시인에 게 그녀의 인사는 구원이요, 선의 결정체를 터득하는 것이니, 그녀는 단테에게 구원자이며 그리스도의 이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베아트리체를 흠모하는 것이 단테에겐 생의 참뜻이라 하겠다. 베아트리체가 구원자적 존재로 나타나는 것은 《신곡》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소개된다. 그녀는 작품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임물들 중에서 베아르질리우스와 더불어 상대적인 중요성 띠고 있다. 후자는 지옥과 연옥을 편력하는 단테의 길잡이인 반면에 전자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며 영원한 행복과 평화가 깃드는 천국의 안내자이다. 이들 두 인물은 서로 비교를 통해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신곡》 서두를 보면,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처해 있었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지옥편> 1곡 1∼6
<인생길 반 고비>란 인생의 기간을 칠십으로 볼 때, 서른다섯 살을 뜻한다(이는 그의 《향연》에 의한 이론임). 그러므로 지금 이 글을 쓴 단테는 서른 다섯 살이 됐다는 이야기다. 죄와 악의 구렁텅이에서 하느님의 뜻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것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시인은 정치적·도의적 부패의 터전인 피렌체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다가 이제 명상에 잠겨 선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어두운 숲>은 따라서 죄많고 삶과 타락한 피렌체를 표상하는 이중의 비유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삶을 회상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참회를 낳고 참회는 회개를 규정지어 주기 때문이다.
사실 부패한 피렌체는 정치적인 음모와 혼란에 의해 야기되었고 그 혼란과 음모 속에서 단테는 종교·윤리적인 죄의식을 강렬히 느꼈다. 더군다나 휘몰아치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 유랑생활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단테는 이러한 시기에 고전과 철학·신학 등을 깊이 연구하며 항상 구상하던 《신곡》을 다시금 정리했다. 그러니까 인류가 낳은 최대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이 《신곡》은 고통 ·분노·희망의 뒤범벅에서 우러나, 종교적·윤리적·정치적 관심과 주의 깊은 연구를 통해서 얻어진 예언자적 정신에 입각하여 씌어진 작품인데, 이것은 시인이 적절한 시기에 회상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햇볕을 못 봤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인 단테는 시대의 부패와 부정 그리고 인간의 죄에 대해 민감산 반응을 보였고, 인간이 악에서 벗어나 영혼의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가치 있게 선도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랫 환상적 여행기 형식을 빌어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벏다고 있는 인간성과, 생전의 죄를 뉘우치고 난 다음 죽어 천국에 오르기 전에 그 죄를 완전히 씻어 버리기 위해 영혼들이 회개하고 있는 연옥의 모습을 소개하며 또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았던 영혼들이 하느님의 품속에서 평화와 사랑을 구가하고 있ㅎ는 천국의 못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비록 환상 여행이긴 하여도 단테는 하나의 초라한 인간에 지나지 않은지라 죽음 이후의 세계를 편력하는 데에 안내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단테는 지옥에 들어가 자신도 어떻게 해서 그 곳에 들더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당황한다.
나 어찌 거기 들어섰는지 다시 말할 수 없지만
올바른 길 버릴 바로 그 때
무던히도 잠에 취했던 탓이다.
―<지옥편> 1곡 10∼12
이 때 순례자 단테 앞에 표범·사자·늑대가 나타난다. 이 무서운 짐승들은 죄를 낳게 하는 무절제·폭력·오만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기반을 둔 죄의 근원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신곡》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단테는 이들 세 짐승들을 출현시킴으로써 악의 유혹을 비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난관에 부닥쳐서 부들부들 떨면서 방황하고 있을 떄, 어떤 그림자가 나타난다.
내가 낮은 지역으로 서둘러 들어가는 동안
오랜 침묵으로 목이 쉰 듯싶던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었다.
무척이도 황량한 곳에서 내 그 자를 보고
외쳤다. "그대 그림자인가 참 사람인가!
누구든 날 살려 주시오!"
"사람은 아니나 옛날엔 사람이었다.
나의 어버이는 롬바르디아 사람들이었고
그분들은 다 고향이 만토바였다."
―<지옥편> 1곡 61∼69
이글을 읽을 때 우리는 그림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라틴의 시인이자, 시인의 정신적 지주이며, 스승인 베르질리우스이다. 단테는 그에게
날 돌이키게 했던 짐승을 보시오.
오, 이름 높은 성현이여, 내게 도움을 주시오.
저 놈이 나의 동맥과 핏줄을 부르르 떨게 합니다.
―<지옥편> 1곡 88∼90
베르질리우스는 단테의 안내자가 되어 베아트리체의 손에 단테를 넘겨 줄 때까지 그의 여행길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을 약속한다.
단테는 《향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일의 철인으로 생각한다. 그의 우주관·자연관·윤리관·예술관 등은 단테에게 커다란 영향으로 입혔다. 그런데 단테는 지옥과 연옥을 편력하는 데에 있어 어째서 아리스토텔레스를 택하지 않고 베르질리우스를 택했단 말인가? 더구나 그들은 똑같이 림보에 있는 영혼들이 아닌가! 이 질문을 만족시킬 만한 답은 구하기 어렵겠으나 일반적으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아우에르바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이교도적인 시인 [베르질리우스]의 역할은 한편으로 보면 단테가 그에게서 인간 사회의 이상적이며 결정적인 시적 형식을 실현시킨 로마제국의 시인이었다는 사실과, 다른 한편에서 보면, 단테가 중세기의 모든 사람들처럼 그가 신동의 탄생을 노래한 목가시를 해석하여 볼 때,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자가 그였다고 생각한 때문이란 점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베르질리우스가 모든 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던 위대한 시인이었던 고로 그의 서사시 《아에네이스》가 차지하는 문학적 위치는 아주 높았다. 따라서 단테도 그의 문학적 후광을 입어 자신의 작품은 물론 자신의 명성이 그처럼 드높아지게 하고픈 세속적인 욕망이 강렬하게 베르질리우스를 안내자로 택했다는 추측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안내자가 누구이건 그가 가리키는 의미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단테의 안내자로서의 베르질리우스는 인간 지성의 최고이자 이성을 상징한다. 성모의 뜻에 따라 베아트리체가 성 루치아를 움직여 베르질리우스를 <어두운 숲>에서 방황하는 단테를 구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깐 단테가 비록 베르질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순례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사랑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즉, 회개와 속죄를 통해서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질리우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한 모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아우에르바흐의 의견은 참으로 훌륭하다. 베르질리우스는 지옥과 연옥에서 깊은 지식과 고귀한 통찰력을 발휘해 시인을 인도하고 또 그가 갈망하는 바를 풀어 준다. 이 라틴의 시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나 윤리학 등도 통달하고 있기에 단테의 갈망을 넉넉히 풀어 줄 수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초라한 영혼을 잘 인도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
내 이미 여기에 한 번 와 본 것이 사실이어늘
그것은 저 잔인한 에리톤이 망령들을
그들의 육체에 되불어 놓은 마술 때문이었다.
나로부터 살이 없어진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유다의 원에서 한 영혼을 빼내려고
나를 저 담벽 안으로 들어가게 했었다.
그 원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이며
모든 것을 돌리는 하늘에서 가장 먼 곳이나
내 그 길을 잘 아는지라 너는 마음 편히 하라.
―<지옥편> 9곡 22∼30
베르질리우스는 단지 안내만 해 주는 것으로 그의 소임을 다 하기 않고 단테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자세하고도 정확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하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한계성을 갖는다. 그가 연옥에 와서 당황하는 것도 바로 이 한계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능력은 신성을 지닐 수 없는 법, 연옥엔 하느님과 마주 통하는 지상 낙원이 있기에 지옥의 영혼인 그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예를 들면,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없이 괴로운 모습이었다.
―<연옥편> 3곡 45
그리고,
이어 그분이 얼굴을 아래로 숙이고서
마음 속으로 갈 길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연옥편> 1곡 55∼56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리둥절하는 베르질리우스를 지옥에서는 볼 수 없다. 더더구나 눈을 아래로 숙이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 베르질리우스는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연옥은 천국보다는 못 해도 고귀한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곳엔 적어도 천국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망령들이 때를 기다리며 속죄하며 기구하는 곳이기에 영원토록 지옥에 운명지어진 베르질리우스에겐 한없이 힘겨운 안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옥이 지상 낙원에 이르면 단테의 안내는 베르질리우스보다 뛰어난 분이자 가치 있는 영혼인 베아트리체가 맡는 것이다.
또 불 속에서나마 언젠가 복받은
사람들 곁에 가리라는 희망을 안고 있기에
만족해 하는 영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너 복받은 영혼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고 훌륭한 영혼이 하실 것이니
널 그분과 함께 놔 두고 난 떠나리라.
―<지옥편> 1곡 118∼123
연옥을 안내하고 나면 베르질리우스가 나타내는 인간의 이성은 할 일을 다했으니 길을 하느님의 학문(신학)에게 양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의 구절을 읽어 보자.
계단이란 계단은 모조리 우리 밑으로
뻗어져 있었고 우리들은 맨 위층계에
이르렀을 때, 베르질리우스가 날 응시하며
말했다. "아들아, 너는 순간과 영원의
불을 보았다.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곳에 네가 온 것이란다.
지성과 재주로써 널 여기에 이끌어 왔다.
가파르고 비좁은 길을 벗어났으니
이제부터는 네 기쁨을 안내자로 삼거라.
네 이마를 다시 비춰 주는 해님을 보라.
또 여기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풀잎들과 꽃들 그리고 작은 숲들을 보라.
너에게 내가 오도록 눈물로 하소연하던
저 아름다운 눈이 기쁨에 젖어 오는 동안
넌 앉아 있을 수도 그들 속으로 갈 수도 있다.
내 말이나 눈치를 더 이상은 기다리지 말라.
너의 의진는 자유롭고 바르며 건전하니
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잘못을 범한다.
네 머리 우에 왕관과 면류관을 씌운다.
―<연옥편> 27곡 124∼142
아름다운 눈은 베아트리체를 가르킨다.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 루치아를 움직여 베르질리우스를 보냈던 베아트리체이다. 시인이 그토록 그리던 영원한 여성인 그녀가 이제부터는 단테를 직접 안내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다. 단테가 그녀를 대함에 있어 필요한 에비지식들을 갖추게끔 한 자는 베르질리우스이지만, 이제는 그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다. 베아트리체의 출현과 함께 <연옥편>은 대단원을 이루고 《신곡》 전체가 활기를 찾는다. 이제까지보다는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동기가 될 뿐만이 아니라 행복한 결말의 문이 점점 열리기 때문이다. 항상 겁에 질리며 나약하기만 하던 단테에게 힘과 용기가 어느 새 생긴다. 그는 이제 에덴 동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아직도 어머니를 그리는 어린애 같은 심정으로 베르질리우스를 찾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이제 라틴의 시인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때 여인의 목소리가 단테의 주의를 끈다.
단테여, 베르질리우스께서 가신다고
아직은 울지 마오, 아직은 울질랑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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