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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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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숙
오늘 우리가 함께 가볼 곳은 중국 근대 문학의 아버지 노신이 쓴 『 아큐정전(阿Q正傳)』입니다. 노신은 호적과 함께 중국 신문학을 개척한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입니다. 특히 그는 단순히 문학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몽매한 중국 민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아큐정전』은 노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그의 제1단편집 『눌함』에 수록되었던 것입니다. 신해 혁명 전후의 미장이라는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최하층 날품팔이꾼 아큐의 전기라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먼저 간단히 소설 줄거리를 보기로 합시다.
♣ 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에 있는 토곡사 (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시골 사당)에서 살았다. 고정된 일거리도 없어서 남의 집 품팔이를 했다. 하지만 아큐는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미장에 사는 사람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었다. 아큐는 호가 나거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그래도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어!" 하는 정신적인 승리법으로 버텨 나갔다. 아큐는 가끔 돈이 생기면 노름판에 갔지만, 따본 적은 없었다.
하루는 왕대머리 털보랑 다투고, 기분이 나빠 선술집에 갔는데 선술집 앞에서 여승을 만났다. 평소 여승을 보면 욕을 해대던 아큐는 여승의 볼을 꼬집으며 놀려댔다. 그러자 여승은 "이 씨도 못 받을 아큐놈아!" 하고 울먹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아큐는 갑자기 여자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씨 댁에서 일을 하다가, 여자 하인 오마에게 와락 덤벼들어 "나하고 자자!" 하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해 아큐는 크게 곤욕을 치르고, 마을에서는 아무도 그에게 날품팔이 일을 주지 않게 된다.
얼마 후 아큐는 잘 차려입고, 돈을 가진 채 나타났다. 동네 사람들에게 허풍치며 으스댔지만, 실은 좀도둑이 된 것이었다. 때마침 혁명 당이 일어나던 때라, 아큐는 스스로 혁명을 하기도 걸심한다. 혁명이 되고 나면, 자기가 갖고 싶은 건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큐는 조씨 댁의 약탈에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총살을 당한다.
잘 들었습니까?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아는 것도 없이 으스대고, 그러면서도 제멋대로 살아가는 주인공 아큐의 모습이 눈에 그려질 듯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혁명당원을 자처했으나 도둑으로 몰려 총살당하는 아큐와 혁명 앞에서도 끄덕도 하지 않는 마을의 지주 조씨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면서, 신해 혁명의 좌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고,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법'으로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아큐. 이 아큐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어, 이 소설을 읽은 당시 중국 사람들은 아큐의 모델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봉건적 유습이 남아 있는 몽매한 중국 구시대의 모습을 이만큼 잘 묘사한 작품도 없습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중국 근대 문학의 출발을 알리고 있습니다.
자, 현실에서는 늘 패배하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이겼다고 생각하는 아큐. 아큐는 무기력하고, 관념적인 중국 민중을 나타낸다고 하겠는데요, 작품 속에서 아큐가 어떻게 '정신적 승리법'을 구사하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미장의 건달패들은 아큐를 만나면, 놀려대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합니다. 이럴 때마다 아큐는 늘 당하기만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요.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거나 다름없어. 이놈의 세상은 돼먹지 않았거든.' 그리고는 승리를 얻은 양, 득의 만만해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큐가 떠벌리자, 건달들은 아큐를 더 심술궂게 그를 골리게 됩니다. 그 장면을 봅시다.
♣ "아큐, 이건 자식놈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 자,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두 손으로 자기 변발을 움켜쥐고 고개를 꼬며 말했다. "버러지를 때리고 있는 거야! 됐지? 나는 버러지야. 이래도 놔주지 않을래?" 그러나 버러지라고 해도 건달패들은 놔주지 않고 그대로 가까운 곳 아무 데로나 끌고 가서 대여섯 번씩이나 쿵쿵 머리를 박아 주고는 득의 양양해서 가버렸다. 그들은 아큐가 이번에는 단단히 혼쭐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10초도 안 돼서 아큐는 자신이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을 경멸한다는 걸 빼면 남는 것은 '첫번째'라는 것이다. 장원도 첫째가 아닌가?
"네 놈 따위가 대체 뭐야?"
아큐는 이런 묘한 방법으로 원수를 갚고는 금세 기분이 좋아 져서 선술집으로 뛰어들어 가 술을 몇 대접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말다툼도 하고는 승리감에 취해서 기분 좋게 토곡사로 돌아와서는 아무 데나 자빠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어떻습니까? 실제로는 일정한 직업은 없고, 마을의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그날그날 연명하는 처지이지만 자기 혼자서는 누구보다도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아큐는 그야말로 자기 환상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쨌든 아큐는 늘 승리하며 살아갑니다. 아큐는 마을의 지주 조씨 댁과 한 가문인 체하여 뺨을 맞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자신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졌다고 느낍니다.
아큐가 굴욕스럽다고 느끼는 것도 모두 자기 생각 속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비웃는 마을의 왕털보에게 얻어맞을 때나 가짜 변발을 한 전영감 아들에게 얻어맞을 때는 아주 굴욕스럽게 느끼니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큐에게는 아주 중요하기도 합니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렸으니까요. 아큐는 봉건 시대의 여성관을 그대로 지녔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함께 알아봅시다.
♣ 아큐는 본래 올바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가 훌륭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남녀 유별'에 대해서는 비상하게 엄격하였다. 이단--젊은 여승이나 가짜 양놈 같은 무리--을 열심히 배척하는 정의감도 있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무릇 젊은 여승이란 으레 중놈과 사통하는 것이며, 여자가 혼자서 밖으로 싸돌아 다니는 것은 남자를 유혹하려는 것이다. 또 남자의 여자가 둘이서만 으슥한 곳에서 수작하는 것은 반드시 수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을 보기만 하면 징계하려고 흘겨보았다. 어떤 때는 큰 소리로 몇 마디 "벌 주는 말"을 해주었고, 때로는 인적 없는 곳이면 뒤에서 돌을 던져 주었다.
어느 날 아큐는 여승을 희롱하다가, 자기에게도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갑자기 느낍니다. 그래서 조씨 댁에서 일하다가 여자 하인 오마에게 갑작스럽게 달려듭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얻어맞고 쫓겨나고, 다시는 그 집에서 일을 못하게 되니까요. 아큐의 여성관은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정말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온 1920년대의 중국을 생각하면, 아큐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인격적인 만남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평등하고 민주적인 건 아니지만 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이지 아주 크게 변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좀 돌려 보면 중국 고사에 나오는 여자들, 상나라의 달기, 주나라의 포사 등등의 여자는 그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였습니다. 그만큼 중국 사람들 뇌리 속에는 '여자는 요물'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아큐도 또한 다를 게 없었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되어 아큐에게는 그나마 있던 허드렛일마저도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도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술도 외상으로 주지 않지요. 배가 고픈 아큐는 절에 있는 밭에서 무를 훔쳐 먹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미장에서 종적을 갑춥니다.
그 해 추석이 지났을 무렵, 미장에 다시 나타난 아큐는 신수가 아주 훤했습니다. 돈도 많이 갖고 있구요. 궁금해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큐는 자기가 여태껏 성 안의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인 영감이 너무나도 "개 같은 자식"이라 다시는 그 집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지요. 그러면서 성 안에서 혁명당이 목 잘린 이야기를 합니다.
이래서 아큐의 명성은 미장에서 아주 높아집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큐는 그 동안 좀도둑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 안에서 훔친 물건들을 싸게 팔아 돈으로 바꾸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 대목을 읽어 봅시다. 조씨 댁에서의 일입니다.
♣ "아큐, 밖에 가서 돈을 벌었다지?"
조씨는 뚜벅뚜벅 걸으면서 눈으로는 그의 전신을 훑어 봤다.
"잘됐군, 아주 잘됐어. 그런데……네게 헌 물건이 좀 있다지? ……가져 와서 보여줄 수 있겠나……다름이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해서……."
"추칠수에게도 말했습니다만, 다 팔았습니다."
"다 팔았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팔았지?"
"친구 것이라서 별로 많지가 않았습니다."
조씨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큐, 다음에라도 물건이 생기면 먼저 우리 집으로 가져오게나."
"값은 섭섭지 않게 쳐서 줄 테니."
수재가 말했다.
아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이 나가 버렸다. 그가 새겨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조씨는 퍽 실망했다. 화도 나고 걱정도 돼서 하품하는 것까지도 잊어버렸다.
수재도 아큐의 태도에 매우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이 개새끼를 조심해야겠다, 또 지보에게 분부를 내려 미장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원한을 사게 된다. 하물며 이런 장사치야 "매는 둥지 아래 것은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우리 마을은 걱정될 게 없고, 다만 밤중에 문단속만 잘하면 된다고 하였다.
먹을 게 없고, 살길이 막연해서 좀도둑이 된 아큐. 하지만 사람들은 그 덕을 좀 보려고 오히려 야단들이지요.
우리는 이 에피소드에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범죄는 주위 환경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큐는 무식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지만, 먹고 살 것이 있었다면, 허드렛일이라도 늘 할 수 있었다면, 좀도둑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아큐의 도둑질을 꾸짖거나, 올바로 깨우치기보다는 물건 좀 싸게 사는 맛에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큐는 좀도둑이지만, 그 물건을 사는 사람들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심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만 '손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기본적인 윤리, 도덕성마저 잃은 상태지요.
노신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서로 먹고 먹히는 1920년대 중국의 상황, 그리고 비참한 민중의 생활을 희화화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큐는 헉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우러러보는 조씨 댁이나, 거인 영감이 벌벌 떠는 것을 보고 혁명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자, 이때의 아큐 심정이 어땠는지 그 대목을 찾아 읽어봅시다.
♣ 아큐는 혁명당이라는 말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다. 그 해에 혁명당을 참수하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디서 주워들은 의견인지는 몰라도 혁명당은 반역이라고 생각했다. 반역이라면 그를 괴롭히는 것이니까 "심각하게 증오" 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100리에 이름을 떨친 거인 영감까지 그렇게 무서워한다니, 그도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미장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이란! 아큐는 더욱 신이 났다.
"혁명이란 것도 괜찮은데." 아큐는 생각했다.
"개 같은 놈의 세상, 뒤집어엎어라! 빌어먹을, 우라질...........나도 혁명당이나 돼야지."
아큐는 요사이 용돈이 궁하던 참이라 속이 대단히 못마땅했다. 게다가 대낮에 빈 속에다 술을 두 대접이나 들이켰으므로 더 빨리 올랐다. 걸으면서 생각하노라니 더욱 마음이 들떴다. 어찌된 영문인지 혁명당이 바로 자기인 것 같고 미장 사람들이 모두 자기 포로인 것 같았다. 너무도 신나는 나머지 무심결에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반역이다! 반역이다!"
미장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아큐는 스스로 혁명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신해 혁명 때라는 것은 앞서 말했지요. 좀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지요. 그런데 아큐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자기를 주눅들게 하는 거인 영감이 두려워한다는 걸 듣고는 마음 속으로 혁명당이 되기로한 거지요.
앞에서 아큐는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실패할 때마다 '정신적 승리법'을 쓴다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혁명당이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마장 마을 사람 전부가 자기 손아귀에 있다고 신나 합니다.
"좋았어!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얼씨구절씨구!"
그래서 자신이 혁명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연줄을 맺으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던 중에 마을의 조씨 댁이 약탈을 당합니다. 아큐는 자기도 이런 짓을 해보고 싶지만, 두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아 못하지요.
아큐는 토곡사로 돌아와서는 투덜댑니다. 연줄이 없어서 혁명을 못 한다는 거지요. 이때의 상황은 정말 우스꽝스러운데, 함께 보기로 합시다.
◈ 토곡사는 더 깜깜했다. 그는 대문을 잠그고 자기 방으로 더듬어 들어갔다. 한참 누워 있으려니까, 겨우 정신이 들었다. 또다시 생각이 떠올랐다.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이 확실히 왔다. 그런데도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무수히 들어냈는데도 내 몫은 없다. 이건 전부 그 빌어먹을 가짜 양놈 때문이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내 몫이 없을 수 없지!
아큐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마침내 원통함을 참을 수 없어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 놈만 혁명하냐? 개 같은 가짜 양놈－좋아! 혁명해라. 혁명은 목이 잘리는 죄목이니까, 내가 고발해야지. 네 놈이 문안에 끌려들어가 목이 잘리는 꼬락서니를 봐야겠다－온 집안이 목이 잘린다－찰캌!찰캌!"
아큐에게 혁명은 공인된 도둑질에 불과하지요! 그 도둑질에 자기가 끼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혁명을 반대하게 된 것입니다.
아주 우스꽝스럽게 그렸지만,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아큐 뿐 아니라, 아큐로 대변되는 중국 민중이 혁명을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혁명이란 사회 제도가 바뀌고, 인간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동안 자신들을 마구 부리던 힘있는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그들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었지요. 그들은 지나치게 억압을 당한 나머지, 타오르는 적개심밖에는 아무런 인간적 생각이나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단지 이해 관계의 관점에서만 혁명이라는 걸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합시다. 나흘 후, 아큐는 조씨 댁 약탈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쓰고 성 안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없는 아큐. 아큐는 자기가 붙잡혀 온 이유가 '혁명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아큐는 패거리를 지어 약탈한 혐의로 총살을 당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아주 우습기 짝이 없는 인물 아큐. 노신은 이 아큐라는 인물을 통해 그날그날 무기력하게 살아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온갖 자부심을 지닌 중국 민중을 그려냈습니다. 그 당시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한 시대의 특징, 한 상황의 특징을, 한 특징적 인물을 통해 그려내는 방식을 문학 용어로 리얼리즘이라고 합니다. 리얼리즘에서는 아큐와 같은 인물을 '전형적 인물'이라고 합니다. 아큐의 행동, 아큐의 사고방식, 아큐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신해 혁명 당시의 무자각한 민중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노신은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아큐는 우스꽝스럽고 비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노신의 중국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이 숨어 있습니다. 중국인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좀더 건강하고 현실적인 생활을 할 것을 은연 중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름간의 문학여행-동녘 刊-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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