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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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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京植(서울대·영문학 교수)
1. 본문에 관하여
기록상으로 제일 오래된 이 극의 공연 일자는 1602년 2월 2일이다. 그러나 이 극은 1623년 제1의 2절판에 비로소 활자화되었다. 제1의 2절판 본문을 위한 원고는 공연 대본에 근원을 둔 것으로서 공연 대본 그 자체이거나 그 전사본(轉寫本)으로 보인다.
2. 소재의 출처
존 매닝검이 1602년 2월 2일 이 극을 관람하고 그의 일기에 "《실수 연발》 혹은 플라우투스의 《메나에크미》 같은 극인데 이탈리아의 《잉가니》(Inganni)에 더욱 흡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작가 미상의 《속은 자들》(Gl'Ingannati)이《십이야》와 비슷한 데가 많기 때문에 매닝검이 이것과 혼동한 것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작가 미상의 이 극은 1543년 불어판이 나왔고 1554년에 반델로가 이야기로 꾸며내었다. 이를 다시 벨리포리스트가 번역한 것은 1571년이었다. 이 이야기는 바나베 리치가 다시 그의 《군직이여 안녕!》(1681)에 수록한 이야기의 하나인 《아폴로니어스와 실라》에서 취급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올리비아와 오시이노, 바이올라와 세바스챤의 이야기가 나왔다.
영국에서도 《속은 자들》의 플롯이 1564년경 공연된 《도깨비들》에서 이용되었고, 라틴어로 쓴 이야기의 극이 《라엘리아(Laelia)》란 제목으로 1595년 에섹스 백작을 모시고 케임브리지에서 상연되었다.
이렇게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 많이 읽혀지고 무대에 올려진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셰익스피어는 《십이야(The Twelfth Night)》을 엮어낸 것이다. 그러나 앤드루 경이 올리비아에게 구혼하는 일이나 세사리오에게 결투 신청하는 일, 기타 마리아, 페스테, 토우비 경, 에이규치크 경 등이 말볼리오를 계략에 빠뜨려 우스운 꼴로 만드는 일 등의 곁이야기는 주로 셰익스피어의 독창적인 것이 많다.
어쨌든 《속은 자들》, 바델로, 리치, 셰익스피어에 다 등장하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은 연인, 하인으로 변장한 여주인공, 그녀의 쌍둥이 오빠와 제 2 의 여주인공이다. 또 이들이 갖고 있는 네 가지 공통적인 요소는 여주인공이 주인에 대해 은밀한 사랑을 품는 것, 하인으로 가장한 그녀가 주인을 위해 제2의 여주인공에게 심부름을 다니는 일과 이 일이 오히려 그녀를 제2의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쌍둥이 오빠가 나타남으로써 얽힌 사건이 풀리는 일 등이다.
3. 극의 줄거리
아주 닮은 남매 쌍둥이 세바스챤과 바이올라는 일리리아 해안에서 난파로 갈라진다. 상륙한 바이올라는 세사리오로 변장하고 오시노 공작의 하인으로 들어간다. 이 공작은 올리비아를 연모하나 그의 청혼은 거절된다. 하인 세사리오가 실은 그를 사랑하는 바이올라인 줄 모르는 공작은 하인을 올리비아에게 보내 계속 청혼한다. 이 심부름을 바이올라에게는 무척 괴로운 것인데 더욱 난처한 것은 올리비아가 자기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올리비아의 집안에는 그녀의 집사 말볼리오, 그녀의 무책임한 토우비 벨치 경, 그녀의 어릿광대 페스테가 있다. 토우비 경은 앤드루 에이규치크 경과 더불어 주로 술로 소일한다. 부유하나 어리석고 용기 없는 앤드루 경은 올리비아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토우비 경에게 술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익사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바이올라의 오빠 세바스챤은 안토니오란 선장의 구조로 목숨을 건져 선장과 더불어 일리리아에 온다. 안토니오 선장은 돈지갑을 세바스챤에게 주고 헤어진다.
올리비아는 이제 노골적으로 세사리오에게 사랑을 표시하게 되었다. 앤드루 경이 실망하여 일리리아를 떠날까 염려한 토우비 경은 그를 충동하여 세사리오와 결투하게끔 만든다. 겁쟁이 앤드루 경과 여자인 세사리오는 내키지 않는 칼을 뽑는데 이때 안토니오가 갈려들어 세사리오를 구한다. 그는 세사리오가 세바스챤인 줄 착각한 것이다. 그는 이 나라의 원수인지라 관헌에 붙잡힌다. 그는 세사리오에게 돈주머니를 달라고 했으나 후자는 전자를 본 일조차 없다고 말한다.
세사리오가 아주 허약한 것을 눈치챈 앤드루 경이 그를 추격하나 이번에는 세바스챤이 나타나 앤드루 경을 부상시키며 친구를 도우러 달려온 토우비 경도 부상시킨다. 올리비아가 이때 끼어 들어 세바스챤을 세사리오로 잘못 알고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신부를 불러 결혼식을 올리다.
오시노 공작은 변장한 바이올라와 다른 수행원을 거느리고 올리비아의 집 앞에 나타난다. 이때 마침 공작의 관헌들이 안토니오를 호송해 왔다. 안토니오는 세사리오가 그에게 구조된 젊은이이며 그의 돈지갑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세사리오의 부인을 오시노 공작이 지지한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세사리오를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신부를 불러 증언까지 시키자 오시노는 세사리오에게 화를 낸다. 이때 토우비 경과 앤드루 경이 피를 흘리면서 나타나서는 세사리오에게 당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더욱 사태가 혼란에 빠진다. 마침내 바이올라의 쌍둥이 오빠 세바스챤이 나타나 신비를 풀게 된다. 공작은 그의 하인 세사리오가 실은 자기를 사랑해 온 아리따운 여인이란 사실을 알고서 올리비아를 세바스챤에게 양보한다.
한편 곁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는 공작 부인에게 달린 사람들에게 너무나 거만하게 처신하여 이들의 미움을 산다. 올리비아의 시녀 마리아는 토우비 경과 공모하여 말볼리오를 곯려 준다. 즉 올리비아의 필적을 위조하여 편지 한 장을 써 가지고 말볼리오가 보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놓는다. 편지 내용은 올리비아가 말볼리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며 만약 이 고백에 응답하려거든 노란색 양말을 신고 대님을 십자로 매고 자기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미소를 지으라고 하였다.
이 계략은 성공적이어서 올리비아는 말볼리오가 미쳤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며 마침내는 그를 어두운 방에 수감시킨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페스테는 목사로 변장하고 어두운 방에 나타나 말볼리오를 무자비하게 괴롭힌다.
토우비 경은 말볼리오를 함정에 빠뜨리는 데 수훈을 세운 마리아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네놈들 모두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외치는 말볼리오 이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가운데 막이 내린다.
4. 극의 의미와 문제점
우선 제목의 뜻부터 알아보자. 제 12일밤이 크리스마스로부터 열 두 번째 밤 곧 1월 6일인데 이 주현절(Epiphany)축제일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있어서는 크리스마스만큼이나 큰 축제일이었다. 그런데 이 극이 갖고 있는 부제(副題)은 이 극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던 셰익스피어는 별 상관 않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속은 자들》의 서곡에 (구주의 현현한 날 밤, 혹은 제 12일 밤)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셰익스피어는 극의 제목을 여기서 가져온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 극이 1601년 1월 여왕을 방문한 브라치아노 공작인 돈 발렌티노 오시노를 위해 제 12일 밤에 공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가 이 극에서 사용한 수법은 매닝검도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실수 연발》에서 이미 쓴 수법이다. 즉 상사현(相似形)인 쌍둥이가 빚어내는 사건의 얽힘이 또 그로 인해서 풀리는 것이다. 다만 《십이야》에서는 《실수 연발》에서와 달리 쌍둥이 형제가 아니라 쌍둥이 남매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하인으로 변장한 처녀가 사랑하는 주인을 위해서 주인이 사랑하는 다른 여자에게 청혼 심부름을 다니는 수법도 셰익스피어는 이미 《베로나의 두 신사》에서 사용한 바 있다. 《사랑의 헛수고》에서 짝사랑의 고통으로 죽는 여인에 관한 말을 듣는 일, 《베니스의 상인》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돈을 빌려다 주는 테마와 유사한 것도 《십이야》에서 볼 수 있다. 《당신 좋을대로》의 어릿광대와 가수는 《십이야》의 노래하는 어릿광대에 해당하며, 《헛소동》에서 비어트리스와 베네딕이 남의 술책에 속아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십이야》에서 말볼리오가 계략에 속아 올리비아를 사랑하는 것과 유사하다. 토우비 경은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에 나오는 포올스타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앤드루 에이규치크 경은 슬렌더의 발전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십이야》는 그 이전의 희극들에서 일차 사용한 수법들을 셰익스피어가 다시 한번 종합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학자는 《십이야》를 "창조의 걸작이 아니라 반복 사용의 걸작"이라고 했다.
또 이 극은 극 전체가 애수적인 분위기에 싸여 있다. 이것은 이 극의 첫말로 알 수 있다. 음악이 사랑의 음식이라면 계속 연주하거라. 사랑의 음식을 너무 과도하게 받아 포식하여 식욕이 병들면 죽어 없어지겠지. 그 곡을 다시 한번! 쓰러져 죽는 듯한 가락이군.
또 이와 같은 분위기는 올리비아와 오시노란 두 주역이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들은 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시노는 사랑 혹은 짝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빠를 잃은 올리비아는 그저 언제까지나 상복을 입고 애도의 정에 묻혀 살고 싶어한다.
올리비아의 어릿광대(fool)인 페스테도 기가 빠져 있다. 그의 노래들도 우수의 색채가 들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십이야》는 감상주의자들이 이루는 희극이라고 부르기에 족하다. 오시노와 올리비아는 자기 기만의 사람들이다. 즉 자신들의 감상주의에 속은 자들이다. 이렇게 자신들을 바보로 만드는 이 두 주역에다 셰익스피어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을 병렬해 놓는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바보가 되는 사람들이 이 극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중에 중심인물이 말볼리오이다.
말볼리오도 오시노와 그의 여주인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자기 기만의 사람이다. "말볼리오, 그대는 자신에 대한 상사병에 걸려 있다."고 할 정도이다. 말볼리오는 셰익스피어가 그린 가장 흥미로운 성격의 하나이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고 청교도이다. 그는 권위를 좋아하여 주위 사람에게 거만하게 군다. 이와 같은 말볼리오의 성격은 술로 소일하는 토우비 경에게는 가장 융화가 안 되는 형이다. 토우비가 앤드루, 페스테, 마리아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말볼리오가 들어와 오밤중에 소란을 피우며 음주하는 것을 책하자 토우비 경은 "그대가 정숙하다고 해서 과자와 술이 끊어질 것으로 생각하느냐"란 유명한 말로 말볼리오에게 역습한다. 토우비 경은 일당과 계략을 꾸며 말볼리오를 바보로 만든다. 토우비 경은 이미 앤드루 경을 속여 이아고가 로더리고를 이용하듯 이용한다. 그는 아무런 목적없이 앤드루 경과 세사리오를 결투시키는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토우비 경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말볼리오이다.
청교도적인 깨끗한 도덕관을 지닌 말볼리오는 토우비 경에게 그의 비도덕적인 면을 상기시켜 준다. 이 때문에 토우비 경은 말볼리오를 보기만 해도 증오한다.
말볼리오를 미워하는 것은 토우비 경만이 아니다. 페스테가 위트로 여주인을 즐겁게 하고 있을 때 올리비아는 말볼리오에게 페스테의 농이 재미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말볼리오는 "부인께서 이와 같이 텅빈 녀석의 말을 즐긴다는 것은 놀랍습니다"고 말하여 어릿광대의 원한을 샀다. 마리아도 말볼리오를 가르켜 "청교도인지 뭔지 모르지만 그자는 그때그때 맞추어 나가는 기회주의자요 젠체하는 바보"라고 했다. 말하자면 토우비 경과 그의 일당은 말볼리오를 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고 간주하였다. 공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 이들은 계략의 덫으로 말볼리오를 덮쳐 그를 큰 창피로 몰아넣고 그를 가두어 버리는 데 성공한다.
결국 토우비 경은 세바스챤의 칼을 맞아 그의 비행에 대한 대가를 치른 셈이 되었고 올리비아의 "그가 너무나 억울하게 당했다"는 말은 말볼리오가 겪는 수모를 어느 정도 풀어 준다.
요컨대 말볼리오는 셰익스피어의 빛나는 인물의 하나이며, 《십이야》의 공연이 성공을 거두느냐 실패하느냐가 그의 역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을 정도로 중심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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