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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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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몰락하는 인간 군상
어느 화가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모델을 찾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올 십자가를 받아들이려는 예수의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런 얼굴을 찾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헤매다가 그는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 느껴지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 그림을 한참 동안 완성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는 그 그름을 마저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인물은 다 그렸는데,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의 모델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은 30냥에 스승을 팔아 넘긴 배신자의 얼굴에는 고민과 탐욕과 갈등이 있어야했다. 여러 곳을 찾아다니고 여러 사람을 만난 끝에 그는 모델이 되기에 적당한 사람을 하나 찾아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람은 바로 예수 얼굴의 모델이었다. 오랜 세월 세파에 시달리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그의 얼굴은 그렇게 변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네 삶이 세상의 거친 물살에 휩쓸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까지 흘러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한 인간의 삶은 혼자 흘러가는 작은 물줄기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채만식의 장편 소설 『탁류』는 인간들의 얽히고 설킨 삶의 모습, 시대와 사회에 얽혀 타락해 가는 인간의 모습, 부조리에 가득한 삶의 모습을 그려 낸 소설이다. 『탁류』는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인간의 추한 뒷모습과 몰락의 과정을 날카롭게 그려 낸 작품으로 그 사회와 주변 인물과 자기 내면이 이루어 내는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더러운 물결에 휩쓸린 삶
정 주사는 군산 미두장(쌀 투기 시장) 하바꾼(밑천 없이 투기하는 사람)이다. 일찍이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군 서기 노릇도 했지만 승진도 못하고 쫓겨나 있는 재산을 다 팔아 빚을 갚고 군산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은행, 미두 중매점 등을 다니다가 미두꾼이 되고 결국에는 하바꾼이 되고 말았다. 식구들은 주렁주렁 달려 있으나 벌이가 시원찮아 하루하루 식량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정 주사의 딸 초봉이는 제중당 약국의 점원으로 일한다. 자태가 고와 은행원 고태수도 초봉을 탐내고 제중당 약사도 초봉을 좋게 본다. 초봉 자신은 자기 집에 하숙하고 있는 승재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승재는 병원 조수이지만 의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고, 또 어렵지 않게 합격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태수는 은행 돈을 몰래 빼내어 미두를 하지만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하숙집 주인인 한 참봉의 부인 김씨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초봉과 결혼할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다. 그의 옆에는 탐욕스럽고, 성품이 고약한 장형보가 늘 따라다닌다.
승재는 인품이 온화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돈 없는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가끔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찬사를 받기도 한다.
이러는 동안 정 주사에게 혼담이 들어온다. 태수가 김씨 부인을 중매쟁이 삼아 초봉에게 혼인을 청한 것이다. 혼인 비용도 대고, 친정집에 사업할 밑천이나 대준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정 주사 내외는 솔깃하고 만다. 태수의 빤질빤질한 모습이나 불성실할 것 같은 느낌은 뒤로 미루고 혼인을 서두른다.
초봉의 혼인 소식에 승재는 실망을 감출 수 없어 하숙까지 옮긴다. 그러던 중 성병에 걸려 찾아온 환자가 바로 초봉의 약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미움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성실하게 치료를 해 준다.
태수는 결혼을 위해 은행 돈을 빼내는 등, 들킬 때 들키더라도 쓰고 보자는 심사였다. 결국 결혼식이 치러졌다. 태수가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을 때 형보는 형보 대로 초봉에게 흑심을 갖고 자신이 초봉이를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는 태수의 사기 행위를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고 자신이 초봉을 차지하려는 꿍꿍이에 정신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태수가 김씨 부인을 찾아간 틈을 타 남편 한 참봉에게 전화를 건다. 태수와 김씨 부인의 불륜의 장면이 발각되어 둘은 한 참봉의 매 타작에 맞다 죽고 만다. 형보는 이 틈에 초봉을 범하고 태수가 저질러 온 일들을 까발린다.
태수의 장례를 치른 후 초봉은 군산을 떠나 새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서울행 기차에서 제중당 약국을 하다가 서울로 이사간 박제호를 만나면서 모든 일이 뒤틀려 버리고 만다. 제호는 히스테리가 심해진 부인을 친정에 보내 놓고 일 때문에 군산에 들렀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는 초봉이 겪은 일들을 두루 전해 듣고 이제는 처녀도 아니요, '헌 계집'이니 호락호락해 보여 함부로 대한다. 초봉은 자기 운명이려니 팔자거니 하는 생각에 별 반항도 못하고 제호의 첩이 되고 만다. 얼마 후 초봉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 열흘 만에 형보한테 겁탈당하고 다시 보름 만에 박제호를 만났기에 누구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딸을 낳고 만다.
박제호는 자기에게 알뜰살뜰 정을 주지도 않는데다가 아이한테만 관심을 쏟는 초봉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또 부인도 돌아온다고 하여 이래저래 초봉을 떼내 버릴 궁리를 한다. 그때 형보가 나타나 태수가 자기에게 초봉을 맡겼다느니, 아이는 자기 아이라느니 하며 초봉을 내놓으라고 한다. 제호는 잘됐다 싶어 초봉에게 등을 돌린다.
초봉은 악에 받쳐서 형보와 살기로 결정하고 자기네 친정집 식구들이 살 만큼 밑천을 타낸다. 정 주사 집은 딸 덕분인지 구멍가게라도 내고, 정 주사는 돈 몇 푼이라도 쥐면 미두장에 달려가 날리곤 한다.
형보의 손아귀에서 지옥 같은 날을 보내는 초봉은 마음 한구석에 늘 죽어야 겠다는 생각, 형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산다. 그녀의 희망은 딸 송희뿐이었다.
초봉의 동생 계봉은 서울로 올라와 백화점 점원 노릇을 하며 경제적인 자립의 꿈을 키운다. 초봉의 마음 속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승재는 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개업을 한다. 그의 마음에는 어느덧 계봉이 흔들림 없는 연인으로 자리잡았다. 승재와 계봉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초봉의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겨 형보의 검은 손에서 벗어나도록 돕기로 한 날, 초봉은 형보를 죽이기 위해 약을 사온다. 집에 들어설 때 딸 송희를 괴롭히는 형보를 본 초봉은 미친 사람처럼 형보를 때려, 죽이고 만다.
초봉은 계봉과 함께 나타난 승재의 속 마음을 모른 채 승재에게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자기 앞에 닥칠 고난의 날을 맞이하려 한다.
1930년대를 대변하는 미두장터
채만식은 이 소설에 '탁류'라 이름붙였다. '더러운 물결', '더러운 강' 이라는 뜻이다. 작품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 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강을 묘사한 것처럼 이 작품도 전개되면서 사람살이의 온갖 추함을 다 담아 낸다. 등장 인물들은 강을 더럽히는 오물과도 같다. 선한 주인공들이 겪은 세파 역시 그렇다. 교육을 받고 군 서기까지 지냈던 아버지 정 주사는 은행원을 거쳐 미두 중매점, 회사원을 거쳐 미두꾼에서 하바꾼으로 전락한다. 신분만 전락한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가져야 할 염치와 교양도 점차 사라져 간다. 이와 함께 맏딸 초봉은 가난, 흉계, 탐욕, 추한 행동, 살인 등 사람살이의 온갖 더러움에 휘말려 파멸해 간다. 이 흐름이 바로 탁류의 기본 줄거리이다.
왜 채만식은 공주 곰나루부터 시작하는 강물의 흐름을 소설의 첫 부분에 담아 냈을까? 맑게 시작하다가 온갖 혼탁함에 뒤섞여 더렵혀지는 강물의 모습, 탁류가 쏟아져 들어오는 군산의 실태는 넓게 말하면 1930년대의 우리 나라 모습이다. 특히 미두장은 일제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군산의 미두장은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곳이었다. 쌀값의 변동을 노리고 투기하는 사람도 많아 많은 사람들이 쌀 투기에 손을 대 망하곤 했다. 정 주사가 한없이 몰락한 것도, 고태수가 은행 돈을 횡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도 결국 이 쌀투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초봉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된 것도 이 미두장터 때문이다. 초봉에게 불행을 안겨다 준 가난, 남편 태수의 처참한 죽음, 악인 장형보, 무능한 아버지가 모두 이 미두장0터와 관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작품 첫 부분에 배경으로 등장하고 뒤에 가서는 잘 나오지 않는 이 미두장이 등장 인물들을 엄청난 불행으로 빠트리는 원인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불행이 개인의 성격이나 운명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작품 첫 부분에 장황하게 강물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역시 그런 점을 보여준다.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강을 이루듯 개개인의 삶이 모여 혼탁한 물줄기(탁류)를 이룬 것이다. 그것은 역사와 맞닿아 있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채만식이 그려 낸 부정적 인간형
채만식은 이 소설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보여 주었다. 깨끗하던 강물이 탁류로 변하듯 많은 인물들이 몰락과 타락의 길을 걸어간다.
그가 그려 낸 첫번째 유형의 인물은 정 주사 같은 무능한 인간형이다. 그가 군 서기에서 하바꾼으로 몰락해 간 것은 그의 탓만은 아니다. 세상 물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그 사회의 희생자였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지 못했다. 딸을 희생시켜서라도 뭔가 이루어 보려는 탐욕과 이기심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딸이 불행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미두장에서 돈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비록 악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추함을 느낀다.
두 번째 유형은 악인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장형보를 비롯, 고태수, 박제호 등 가해자의 자리에 선 사람들이다. 장형보, 고태수, 박제호의 순으로 악행의 정도가 다르고, 악행의 동기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다른 사람, 특히 여성, 즉 초봉이의 인생을 짓밟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 초봉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최대의 피해자이며 희생자이다. 순결한 영혼을 가졌던 한 처녀가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고, 남의 첩이 되고, 노예 같은 생활을 한다. 초봉이 불행해지는 과정을 꼼꼼히 따져 보며 우리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사회의 제도, 사람들의 의식을 생각할 수 있다. 초봉의 불행은 크게 보면 그 시대, 그 사회의 탓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가정의 희생자였다. 맏딸이라는 책임감, 효도라는 허울 등이 그녀를 불행으로 빠뜨렸다. 또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자였다. 여성을 하나의 노리개나 상품쯤으로 여기는 남성들이 또 다른 원인이었다. 그리고 초봉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잘못된 의식도 문제였다. 물론 한 인간이 거친 세상의 물결을 자신의 의지로 이겨낸다는 것은 어렵다. 때로는 그 물결이 인간의 힘을 넘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봉에게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을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와 저항이 부족했다.
사회가, 가족 제도가, 남성이 그리고 초봉 자신의 내면이 모두 초봉을 불행으로 이끌어 갔다. 그 모두가 탁류였다.
이런 인물 사이에서 끝끝내 파멸하지 않는 인간형이 있다. 승재와 계봉이가 그들이다. 승재나 계봉 모두 그리 좋은 여건을 갖지는 못했다. 승재 역시 가난했고, 의술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려는 그의 이상은 오해를 받곤 했다. 혼자 힘으로 자선을 베풀기엔 힘이 모자랐다. 계봉은 또 어떤가? 초봉의 희생 때문에 약간은 시련에서 비켜갈 수 있었지만 그에게도 세상의 유혹과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거친 물결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결이 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한 개인의 노력에 그친다는 점에는 한계가 있지만 승재에게는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숭고한 봉사 정신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과 같은 힘이다. 계봉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이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과 의지를 가졌던 것이다.
곳곳에 번득이는 독설과 비웃음
"조소(嘲笑:비웃음)와 악매(惡罵:욕하고 꾸짖음)로 묻혀진 눈물과 한숨의 기록." 『탁류』가 처음 나왔을 때 붙여진 광고문이다. 광고문처럼 이 작품은 날카로운 풍자가 번득이는 소설이다. 풍자(諷刺)란 어떤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비웃음, 멸시 분노의 감정 등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방식이다.
이 같은 풍자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냉정하게 비웃으며 그를 비판한다고 해 보자. 그와 친하거나 그의 심정을 다 이해하고 헤아린다면 풍자는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관찰할 때 풍자가 가능하다. 채만식은 자기가 살던 1930년대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의 타락상과 부조리를 볼 수 있었다. 그가 풍자하고 있는 것은 염치 없이 타락해 가는 그 시대였으며,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무능한 정 주사가 자기 딸을 태수와 결혼시키면, 자기가 돈푼이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목이며, 겉으로 고상한 척하는 태수가 김씨 부인과 몰래 만나고, 성병에 걸려 승재의 병원을 찾는 대목에서 우리는 쓴웃음을 짓는다. 박제호가 초봉을 만나 자기 첩으로 삼는 과정에서 보여 주는 능그러움과 음흉함, 형보와 만나 초봉을 내주는 뻔뻔함 등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흔든다. 작가의 비웃음에 공감하며, 비웃음과 조롱을 넘어선 울분을 느끼기까지 한다.
작가는 주인공인 초봉에게도 냉정하다. 한 예로 초봉이가 태수와 결혼한 뒤 자기 생활에 만족하지는 못하나 그런 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표현한 대목이 있다.사실 초봉이는 승재를 못 잊어하는 번뇌가 있기는 있으면서 그러나 이 새로운 생활 환경이 불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기쁨이 발견됨을 따라 명랑한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제웅이 제가 제웅임을 모르고서, 제단 앞에서 제단의 아름다움에 취해 기뻐하는 양심에 틀림이야 없지만…….
이렇게 초봉에게조차 거리감을 둠으로써, 우리 판단이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준다. 작가가 초봉의 입장에서 작품을 써 나갔다면 우리는 초봉의 잘못된 운명이 모두 초봉을 둘러싼 인물들의 탓이거니 하면서 그녀의 불쌍한 처지에 눈물이나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웃음 섞인 작가의 글을 따라 가며 초봉에게 동정하면서도 냉정한 판단을 하게 된다.
풍자 정신으로 시대를 비판한 작가, 채만식
풍자를 통해 1930년대 사회와 인간의 탐욕과 모순을 파헤친 채만식은 1902년 6월 17일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는 백릉(白綾) 또는 채옹(采翁)이다. 중앙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귀국했다. 『동아일』, 『조선일보』 기자를 지내면서 1925년 『새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의 풍자적인 단편 소설을 발표하다가 『조선일보』를 사직하고 소설 쓰기에 전념한다. 『탁류』, 『천하태평춘』(후에 『태평천하』로 제목을 고침), 『치숙』 등 풍자적인 소설을 계속 발표했다. 그는 지식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어려운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은 소설과 풍자를 통한 세태 묘사의 소설이 그것이다.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이 앞의 것이라면 『탁류』나 『천하태평춘』이 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광복 뒤에 『여자의 일생』, 『황금광 시대』 등의 작품을 남긴 그는 1950년 6월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제 식민지라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으나 채만식은 그 특유의 풍자 정신으로 시대를 비판하며 작가적 양심에 충실했다. 그는 자기 시대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표현해 간 사람이다. 그는 문학 속에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추함과 탐욕을 그려 냈다. 그는 현실의 추함을 들추어 내면서 역설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희망을 보여 준 작가이다.
탁류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던지는 물음이 바로 채만식의 작가 의식과 맞닿아 있다. 결국 살인으로 비참한 복수를 하고 끝맺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작가는 '서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보름간의 문학여행/동녁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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