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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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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얼마전 한 가족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이 땅에 반 세기가 지나도록 민족 분단상황의 일천만 이산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이 시대의 비극을 우리들로 하여금 또 한 번 절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필자는 그 보도를 지켜보면서 바로 그 가족들이 탈출을 감행했던 것은 어쩌면 필자가 젊은 시절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의 주인공 이명준이 껶었던 '인간다운 삶에 대한 끝없는 희망과 도전'의 결단이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최인훈 역시 고향(1936년 함북 회령 출생)을 떠나서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월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와 함께 서두에 제시한 일가족 탈북 사건과 소설 "광장"의 내용을 연관시켜 보면 일련의 상황이 무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싶다.
본래 이 소설은 발표할 때부터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작가 최인훈의 출세작으로서 그 후로 꾸준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1959년 "자유 문학"지를 통해 등단한 그는 이외에도 단편 '웃음소리', '정오',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장편 '회색인'등 다수의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고, 상당 기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얼마전 장편 "화두"를 발표하여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자유당 정권 하에서라면 감히 이런 소재가 구미에 당기더라도 다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1960년 10월 작가 최인훈이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광장"은 원래 중편소설이었는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컸던지 몇 차례 거듭된 개작 작업을 거쳐 장편 소설로 완성되었다.
물론 4·19이후 사회의 변화도 있었겠지만, 당시 금기시되었던 남북의 대립을 정면으로 파헤쳤다는 것과 분단 상황에서 처음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 이 작품은 주인공 이명준이 인간적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인 "광장"을 찾기 위하여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상황 하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 사회에서의 안온한 삶에 대한 꿈이 깨지면서 전개된다. 그는, 북한으로 넘어가 거물급 남로당원이 된 아버지로 인해 밀실에서 심한 고초를 당하게 되면서 남한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과 타락한 현실을 체험하고 남한 사회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민족의 비극을 통감한다.
그는 오직 인간적 확증을 얻기 위하여 밀실이 아닌 광장을 찾으러 윤애라는 사랑하는 여인도 버리고 월북을 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 사회에서 공화국으로부터 인정받는 혁명 투사라 여겼던 아버지의 모습과 생활을 보고 실망만 하게 된다. 북한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허구 속에 구호와 허위만 가득찬 곳이었다. 이명준은 그 곳에서 환멸을 느끼면서 역시 북에도 진정한 광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자신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은혜와의 사랑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꿈을 갖지만 그 사랑도 전쟁중 은혜가 죽음으로써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다, 이윽고 전쟁은 끝나고 그는 석방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의 선택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는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인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처절한 안간힘이었다. 그러나 그는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갈매기를 바라보며 은혜와 그 뱃속의 아이를 떠올리고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남한과 북한에서 체험한 현실이 상실감의 연속이었고, 남북 그 어느 쪽에서도 인간 본연의 자유와 의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명준은 한없는 절망감 속에서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명준이 겪어 나가는 아버지와의 갈등, 민족의 현실, 인간적 고뇌, 두 여인과의 사랑 등을 통하여 이데올로기는 결국 인간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개념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이 사회에 사는 젊은 지성인이라면 한 번쯤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아가 민족적 고통을 낳게 된다는 것도 그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우리의 자유 의지를 옭아매는 수단이 된다는 것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 왔다. 사실 한 시대의 제도와 명분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참 많이도 경험해 왔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탈이데올로기화해 가고 있는데도 우리 민족은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60·70년대를 배경으로 월남한 한 가족이 권력 세력에 의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 소설을 근래 발표한 적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해결되지 못 한 이데올로기 문제가 남아 있음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품에 나타난 시대 배경의 그 불행했던 과거를 떠나서 작가가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보여 준 이명준의 바다에의 죽음을 문학적 상징과 관련하여 해석을 시도해 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흔히 문학적 상징에서 물은 재생 또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 단어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명준의 바다에서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재생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한 시대의 그늘에서 방황했던 지식인 이명준의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탄생을 희구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시대를 산다. 앞을 바라보며 분주히 살고 있다. 당연히 앞의 시대도 내다볼 수 있어야겠지만 지나간 시대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은 현재의 것이지만 현재의 문제는 지나간 시대가 남긴 것이고 그 해결 또한 지나간 시대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에 진정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한 시대 한 현실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무언가 외치고 갈구했던 이명준의 의지와 꿈을 다시 한 번 최인훈의 "광장"에서 만나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서주홍(시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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