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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윤리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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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범서
우리 문명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발전이 이룩한 물질적 성과에 대해서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의 정신적 요소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그것을 필요로 하는 만큼 분명하게 마음에 간직하지 않는다.
슈바이처는 현대 문명의 위기의 근원적 원인이 물질적인 면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서 정신적 면, 다시 말해서 윤리가 발달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우리는 그의 이 같은 진단 방식을 지금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總體的危機)'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윤리성의 회복과 윤리적 성숙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인간에게는 왜 윤리가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밝히고, 또한 우리는 어느 방향을 향해서 윤리를 교육하고 도야하며, 문제 극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인지를 탐색하려고 한다.
인간의 삶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생물적 삶의 차원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 삶의 차원이다. 생물적 삶의 차원을 생존적 삶이라고 부를 수 있고, 정신적 삶의 차원을 실존적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이 같은 두 차원을,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심리학자 프롬이 지어 준 인간 욕구의 두 가지 구분에 의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프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욕구가 있는데, 그 하나는 생존적 욕구요, 다른 하나는 초생존적 욕구이다.
생존적 욕구에는 식욕, 수면욕, 성욕 등이 속한다. 이 중에서 식욕은 좀더 넓고 복잡하게 의식주와 관련된 물질적 욕구로 이해되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초생존적 욕구에는 이성적(理性的) 욕구, 심미적 욕구, 사랑, 자유, 창조에 대한 욕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은 생존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생물로서 살아 남을 수가 없다. 그러나 초생존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살 수가 없다.
생존적 욕구, 곧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그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지만, 만일 인간의 삶이 생존적 욕구의 충족에만 집착하여서 초생존적 욕구, 곧 정신적 욕구의 충족을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면 공허하고 비참해진다.
그런데 오늘 우리 나라의 실정은 어떤가? 물질에만 집착하고 정신은 망각하고 있지 않는가? 실존적 삶은 망각하고 생존적 삶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삶은 곧 윤리의 상실이요, 윤리의 상실이 지금의 '총체적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우리가 실존적 삶 곧 인간다운 삶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실된 윤리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존적 삶에만 집착하고 치중할 것이 아니라, 실존적 삶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후자, 곧 삶의 정신적 차원이 전자, 곧 삶의 물질적 차원을 통어하고 지배하여야 한다. 그런데 실존적 삶은 곧 윤리적 삶이다. 윤리가 빈약해질 때 실존적 삶이 빈약해지고, 윤리가 타락할 때 실존적 삶은 위협을 받는다.
생존적 삶과 실존적 삶에 관한 고찰을 전제로 하여, 오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혼란을 극복하고, 상실된 윤리성을 회복하기 위한 윤리적 교육과 사회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여 보기로 하자.
자각적 삶
소크라테스는 "성찰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해 볼 때,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은 각자의 자아를 실현하고 각자의 인생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삶은 자아 실현의 활동인 것이다.
자아 실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으로 두 가지의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 하나는 가치관이며 다른 하나는 독립성이다. 가치관이란 가치의 올바른 위계 질서를 말하며, 독립성이란 인격의 주체적 독립성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가치의 위계 질서부터 고찰하자. 가치에는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의 욕구 구분을 빌려 표현하면 생존적 가치와 초생존족 가치가 있다. 인간은 이 두 가지 가치를 함께 필요로 하지만, 그 두 가치가 올바른 질서를 유지할 때라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사회와 문화가 건전하게 번영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고 질서가 거꾸로 될 때는 개인의 삶은 불행해지고, 사회와 문화는 타락하고 부패하여 결국 망하고 만다.
그러면 가치의 올바른 위계 질서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정신적 혹은 초생존적 가치가 상위를 차지하고 물질적 혹은 생존적 가치가 그 밑에 속하는 질서이다. 이와는 반대로, 물질적 가치가 상위를 차지하고 정신적 가치가 망각되거나 또는 무시되어 버리고 말 때 쾌락주의와 향락주의가 삶을 지배하고 그 결과 퇴패(頹敗)와 비윤리가 실존적 삶과 사회를 위협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근원적 원인은 바로 이 같은 가치 전도요, 그로 인해 초래된 과소비, 퇴패, 부패, 및 범죄이다. 지금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의 수립이다. 이를 위해서 가정, 학교, 종교, 정부 등 전사회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주체적 독립성을 고찰하자. 지금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독립성의 결여, 다시 말해서 자신의 소신과 원리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의 부재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와 그 분위기에 순응하기만 하지 자기의 신념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만 살피지 자신에게는 충실하지 못하다. 자극에 반응하는 자아만이 있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자아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병폐에서 벗어나서 주체적 독립성을 가지고 자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존적 삶
윤리란 타인과의 관계의 도리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원리인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윤리적 혼란은 바로 더불어 사는 질서의 혼란이요, 윤리성의 상실은 더불어 사는 의식의 상실이다. 오늘 우리 국민은 자기밖에 없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타인에 대한 의식이 없고, 더불어 사는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 우리 국민이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악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도 못 살고 너도 못 살게 되고 만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란 다름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의 수준이요, 국민의 성숙도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의 성숙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공존적 삶의 의식과 능력이다.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인간의 사회성,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 현저하게 사회의 제약을 받고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를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로 개선하고 개혁하지 않고는 윤리성을 회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물론,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그것들을 운영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각자가 자각적 삶과 공존적 삶의 능력이 발전하고 성숙하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 한, 사회가 합리적이 되고 정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합리적이고 적합한 정책과 제도를 개발하고 그것을 능률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둘째,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과 부패를 근절하고 추방하여야 한다.
셋째, 공정한 공권력이 건재하여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여 도덕 생활을 뒷받침하고 수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지금은 사회적 고속 변화(高速變化)의 시대이다. 나라가 단시일에 발전할 수도 있지만 몰락할 수도 있다. 우리 나라의 지금의 윤리적 혼란과 후진성이 시정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우리 나라는 파국적 위기를 맞이할 위험성이 크다. 더 늦기 전에, 우리 국민 각자는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윤리성의 회복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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