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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감에 취약한 한국사회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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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정부나 민간단체가 추진하려는 여러 정책의 실시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違和感위화감”의 조성여부일 것이다. 이 점은 단지 주요 일간신문에서 “위화감”이라는 단어로 기사검색을 해보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패는 국가 기강과 관련된 문제이며, 국민을 실망시키고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사회 위화감마저 조성한다…
재계와 정부가 5만 원, 10만 원권 등 고액권 화폐 발행여부를 놓고 또 다시 설전을 벌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변화된 국민경제 규모에 걸맞게 고액권 화폐의 발행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재차 촉구했다. 재경부는 이에 대해… ‘고액권 화폐는 국민적인 위화감을…
민간기업의 경쟁원리를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4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목표관리제(MBO)는 용도폐기단계에 와 있다… 정부는 아예 올해부터 지급대상을 상위 50%에서 70%로 확대하고 금액도 200∼50%에서 150∼50%로 축소했다. 위화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용인시는 최근 건축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입주하는 모든 단지에 대해 건물 외벽에 건설업체 명칭 및 아파트 브랜드의 표기를 금지하고 시가 지정한 고유명칭만 사용하도록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시 건축과의 한 관계자는 ‘위화감을 없애고…
정부는… 공기업에도 민간의 우수인력을 수혈할 방침을 세웠으나 공기업들이… 위화감 등을 들어… 협조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현행의 공적 의료보험제도와 별도로 민간 의료보험제도 추진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관련 사회단체들은… 공보험과 사보험간의 위화감이 증대되며…
정부가 담배값을 상당폭 올렸다…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을지 여부도 고려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전북지방 경찰청 김용백 청장은 8일 ‘그 동안 교통 외근경찰들이 써온 검정색 선글라스가…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이를 쓰지 말도록 각 경찰서 교통경찰관들에게 지시했다.
위에 인용한 기사들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위화감”이 얼마나 다양한 면에서 無所不爲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즉, 정부가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위화감”이 조성되기 때문이고, 고액권의 발행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위화감”이 조성되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또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려고 했던 성과상여금과 연봉의 차등지급도 “위화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후퇴했고, 민간의료보험제도 추진 방침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추진조차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담배값을 올리는 데도 “위화감”을 배려하여야 하며, 검정색 선글라스가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교통경찰에게 쓰지 못하도록 지시한 데 이르러서는 약간 코믹한 느낌마저 들고,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건물 외벽에 건설업체의 명칭 및 아파트 브랜드의 표기를 금지하도록 한 데에 이르러서는 과연 우리가 자유로운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교육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위화감”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32만여 교육공무원에 대한 성과 상여금제가 예정대로 이달 말 시행된다… 한편… 교사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반발이 예상된다.
요즘 각 대학 자유게시판은 ‘입시 상담소’를 방불케 한다… 많은 합격생들이 자유게시판을 이용하는 이유는… 대학생들의 생생한 조언을 듣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용인캠퍼스와 서울캠퍼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돼 연일 시끄럽다’
여자 고등학교 실업계열 학생들과 인문계열 학생들의 교복 속 블라우스 색깔을 다르게 착용하게 한 교칙으로 인해 학생들의 불만과 함께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규정은… 위화감 조성 우려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시급히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포항지역 학부모들이 고교평준화에 팔을 걷어 붙였다… 학부모회는… ‘사교육 폐해와 학교간 서열화에 따른 위화감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이르면 현재 중학교 2학년생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2002학년도부터 성남… 등 수도권 6개 지역의 고등학교가 평준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개발원은… 고교 서열화로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폐해가 심각하고…
지방대 육성을 위해 지방대 대학원 및 대학 졸업생을 지방자치단체의 6∼7급 공무원으로 특채하도록 권장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철회를 요구하는 등 하위직 공무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 공직사회에 형평성 결여와 위화감 조성 등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라며…
중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만을 유학 자유화 대상으로 한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조기유학을 전면 자유화하려던 올해 초 방침에서 많이 후퇴한 것이다… 계층간 위화감 조성 등 사회적 부작용이 야기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교육공무원에게 성과에 따라 상여금을 차등 지원하려던 정책은 시행하기도 전에 “위화감” 조성을 염려하는 교사들의 반발로 그 시행이 무기한 연기됐고, 여고생들이 착용하는 블라우스 색깔도 “위화감”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대학교에서도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방대 육성책으로 내놓은 교육부의 한 방침도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강한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더군다나 많은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교육의 성과를 일률적으로 저하시키는 하향평준화라고 비판받고 있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도 결국 “위화감”을 조성하기 않기 위해 지금까지 실시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실시하기로 한 것을 보면 “위화감”의 그 막강한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을 조장하고 차별화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할 것으로 여겨지는 스포츠, 문화 부문도 “위화감”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는 없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스포츠 전문지들은… 박찬호에 대한 기사를 많이 싣는다. 주로 그의 내년 연봉 액수에 관한 것으로 장기계약에 대한 천문학적 액수를 예상해 보도한다. 이에 대해 일부 독자들은…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현대 구단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선수든 위화감을 조성할 정도로 비싼 차는 몰 수 없도록 제지한다…
장장 8개월을 끌어온 손혁(27, 해태)의 트레이드 거부 파문이 지난 28일 결국 ‘해태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울러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을 지닌 그가 1억 원에 이르는 연봉을 마다하고 야구 포기를 선언했을 때… 여러 동료들이 심각한 위화감과 자괴감을 느꼈다는 점도 손혁이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할 부분이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13일 서울 명동 일대에서 환경부 등의 후원으로 ‘내복이 모피보다 좋은 7가지’ 이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에너지 절약캠페인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녹색연합은 또 내의이기 때문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으며… 내복의 장점이라고 나름의 ‘내복 예찬론’을 폈다…
외국의 악기 판매상이 국내에서 고가의 외국산 바이올린 경매를 개최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음악계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이번 경매가… 일반 서민들에게는 위화감마저 조장할 수 있다는 것 등이 부정론자의 이유이다…
박찬호 선수의 연봉 액수에 대한 보도도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으므로 자제를 해야 하고, 또 선수들 자신도 동료들 사이의 “위화감”을 고려해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 아예 한 프로야구 구단은 ‘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비싼 차를 몰지 못하도록 제지한다.
외국의 高價 악기에 대한 경매도 “위화감”을 우려하는 부정론자들의 반대가 심해 찬반양론이 분분한 실정이다. 더군다나 한 시민단체가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내복입기운동’을 벌이면서, 내복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위화감”의 위력의 절정을 보는 듯한 느낌과 아울러 우리 사회에 끼치는 그 무소불위의 영향력에 압도되어 아연 실색할 지경이 된다.
과연 위화감이란 무엇이고, 어떤 경우에 생기는 것이며, 왜 우리에게 그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또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이고, 21세기 한국 사회와 우리의 일상적 삶에 順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逆기능을 할 것인가? 이런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문화적인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에서 고려해보려고 한다.
위화감은 조화가 되지 않아 일어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정서
“조화가 되지 않는 어설픈 느낌”(국어대사전, 금성출판사, 1991) 또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 일어나는 어색한 느낌”(동아새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91)이 위화감이라고 대표적인 국어사전들은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위화감은 조화가 되지 않아서(잘 어울리지 않아서) 발생하는 어설픈(어색한) 느낌’이다. 이 정의를 보면 위화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요인을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화감은 조화가 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어떤 상태가 조화가 되지 않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첫 번째 요인은 知覺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엇보다 먼저 위화감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조화롭지 않다고 주관적으로 지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조화롭지 않다는 지각 자체가 없다면 위화감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첫 번째 요인은 위화감이 발생하게 되는 先行條件을 규정해준다.
두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은 첫 번째 요인이 발생하면 어설픈 느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어설픈 느낌이 위화감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위화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요인, 즉 情緖의 요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부연해야 될 것은 이 느낌이 자동적으로 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요건이 생기면, 위화감이 자동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만약 첫 번째 요건이 성립한다고 해도 어설프거나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면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화감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세 번째 요인은 위화감의 결과이다. 위화감이 발생하면 그 결과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고, 따라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화감의 세 번째 요인인 行動의 요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위화감이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이 세 번째 요인 때문이다. 만약 위화감이 생긴다고 해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거나, 또는 낳는다고 해도 그 결과가 별로 문제가 안 된다면 위화감이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화감은 지각-정서-행동의 세 가지 요인이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거의 자동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어떤 상황이나 대상이 조화가 되지 않거나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각되면, (당연히) 어설프거나 어색한 느낌이 생기고, 그 결과로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이 과정을 역으로 표현하면 위화감이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 규범의 하나는 “부정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어설프거나 어색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적 규범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또 거의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따라서 위화감은 거의 무의식적 수준에서 한국 사람의 사회적 행동을 규제하고, 정책의 시행여부를 판단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위화감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의 산물
우리 문화에서 “調和”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상태가 어울리는 상태인가? 다시 말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대해 어설프거나 어색한 느낌을 가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위화감을 설명하는 데 제일 우선하는 과제일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조화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위화감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한 대표적인 한영사전에서는 위화감을 제일 먼저 “sense of incongruity”라고 옮기고 있다(에센스한영사전, 민중서림, 1995). 이 뜻을 그대로 옮기면 위화감은 “일치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화가 되지 않는 어설픈 느낌’이 위화감이고, 이것은 또한 ‘일치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 두 정의를 함께 살펴보면 우리 문화에서 조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즉, 우리 문화에서 ‘조화는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서로 같고(일치하고), 네가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상황이 서로 같은 것이 곧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화감은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상태가 “나와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 부정적 정서이다. 하지만 단지 나하고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결과를 심각하게 걱정해야할 만큼 위화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위화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다름의 내용이 ‘그가 나보다 더 좋다’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하고 다를 뿐만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좋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위화감을 느낀다. 우리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경우 자존심이 고양되거나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는 것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위화감이 생기는 요인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해야할 점은 우리가 비교하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다. 단지 어떤 사람이 나보다 좋다는 것만으로는 위화감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와 같을 것이라고, 또는 나와 같아야 된다고 지각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나보다 좋을 때 우리는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대부호들이 호화스러운 요트를 타고 지중해연안에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을 접해도 위화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는 나와 같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동일한 연봉을 받아야 하는 내 동료가 나보다 더 많이 받는다면 심각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위화감은 “나와 같아야 된다고 가정하고 있는 대상이나 상황이 나보다 더 좋을 경우 느끼는 부정적 정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위화감은 관계지향적 가족주의의 산물
기본적으로 우리는 남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의 권준수 교수는 “한국인 모두가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강박증세를 공유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는 제정신으로는 살기 힘든 강박적 사회”라고 진단하면서 그 대표적인 증세의 하나로 소위 ‘평등강박증’을 꼽았다. 이 강박증은 남이 앞서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남의 뒷다리를 잡아야 속이 편하다. 또 남이 하는 것을 보면 자기도 해야 속이 편하다. 이것은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정신병리 현상이다(동아일보, 2000년 12월 26일자).
이처럼 남과 다르다는 것에 거의 강박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우리 문화가 “關係지향적 가족주의”에 그 根幹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家訓은 “家和萬事成”이다. 아마도 이 가훈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의 핵심적 요소가 다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국 문화의 핵심은 家와 和이다. 한국 사람들의 心性에 영향을 주는 가장 핵심적인 조직은 가족이다. 물론 어느 문화에서든지 새로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조직이 가족이고,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때문에 가족에서의 경험은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일차적 교육의 場으로서의 가족의 기능은 동일하다. 하지만 가족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이나 기본적인 덕목은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
개인주의적인 서구 문화에서는 個人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최소 단위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조차 個性을 존중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조장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이에 반해서 관계지향적relation-oriented인 우리 문화에서는 개인보다 그 개인이 속해 있는 가족이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단위로 여겨진다. 우리의 언어 관습에서 “나”라는 표현이 가능한 한 억제되고 “우리”라는 표현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 사람들은 모든 사회적 관계를 가족관계의 확대로 느끼며, 동시에 모든 조직을 가족이 확대된 것으로 지각한다.
학교에서 자신과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선배를 “형”이나 “누나”라고 부르거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아주머니”나 “아저씨” 등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죽하면 나라라는 의미의 國에 집이라는 家를 붙여서 國家라고 부르겠는가?
大家族제도 하에서 가족구성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규범은 “和”이다. 다양한 취미와 가치를 가진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집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화목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가족들 각각이 서로 자신의 개성을 키우고 자신을 앞세우며 서로 경쟁한다면 가족의 화합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조장하기보다는 모든 가족이 다 똑같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가치관을 발전시켰다. 즉,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한 가족이 조화를 이루고 화목하다는 것은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동일한 소리, 즉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일치된 견해와 일치된 가치관을 가지고 일치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결과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동일할 경우가 바로 평등이라는 “결과의 평등”에 강하게 집착하게 된다. 이는 “기회의 평등” 또는 “기본권의 평등”이라는 서구의 평등의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서구에서는 개인을 기본단위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달시키는 것을 자아실현self-realization으로 理想化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다고 가정하는 이런 문화 속에서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위화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자신이 ‘차별화’ 혹은 ‘개성화’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를 애써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해야 될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머진200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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