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흥부·놀부의 인물 평가
|
<흥부전>을 통하여 역사적 함의를 파악하려는 이 새로운 시각의 노력에서 연구사적 선편을 잡은 이는 조동일이었다. 그는 [흥부전의 양면성]이라는 글에서, 우선 <흥부전>이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 작품이 '고정적 체계면'과 '비고정적 체계면'이라는 구조적 양면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전자는 설화적 모태 구조로서의 견고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판소리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의 독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장면의 확장과 수축이 자유자재로울 뿐 아니라, 각 장면과 장면 또는 부분과 부분은 서로 긴밀한 연계성이 없어 독자적으로 설정되고 또 연행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사례를 흥부와 놀부의 상이한 신분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즉 같은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양반 출신, 놀부는 천인 출신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신분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당연히 논리적 자가당착으로 지적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이 그러나 판소리 양식의 구조적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점은,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를 탐색해 가는 조동일의 작업이 이 상이한 신분관계의 포착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흥부는 몰락양반의 표상으로, 놀부는 신흥하는 천부의 표상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흥부와 놀부 사이의 갈등은 이미 있어 온 사회·문화와 앞으로 있어야 할 사회·문화 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질서의 표상인 흥부와 새로 신흥하는 질서의 표상인 놀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일련의 역사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 금전을 최대한 숭배하고, 재산이 무한히 확장되어 나갈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놀부식 사고가 새로운 힘을 가지고 현실적 승리를 구가한다. (필자 가점)
…… 선량한 군자이되 고생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흥부는 긍정되고 해학의 대상이 된다면, 탐욕스럽고 악하다는 점에서 놀부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풍자된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현실관계의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기는 해도 보수적인 견해라 할 수 있다. (… 중략 …) 흥부가 지닌 몰락 양반의 무능을 조롱하며 놀부의 진취적인 능력에 친근감을 갖는 관점은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대두하는 새 세력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필자 가점)
이상의 진술을 통해 볼 때, 비록 가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흥부 쪽보다는 놀부 쪽에 편향되고 있는 연구자의 심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더구나 흥부의 인간상에서 연역된다고 할 수 있는 '도덕률, 특히 유교도덕률을 대변하는 것'이 '표면적 주제'임에 반하여, 놀부의 인간상에서 연역되는 바로서 '천부의 대두로 가난해진 양반과 모든 기존관념이 얼마나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이면적 주제'라고 하고, 표면적 주제보다는 이면적 주제에서 보다 깊은 역사적 함의를 찾고 있는 연구자의 자세에서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이러한 조동일의 견해에 대하여 이론을 제기한 이는 임형택이다. 그는 [흥부전의 현실성에 관한 연구]에서, 우선 놀부, 흥부의 신분관계에 관하여 놀부와 흥부가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즉 놀부는 "상승된 경영형 서민부농의 한 반영"인 반면에, 흥부는 "소작의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상실하여 품팔이꾼으로 전락된" 빈농으로 파악하였다. 또 그는 이 글에서 조선조 후기 농촌사회가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이행됨에 따라 제기된 모순과 역리현상에서 흥부전의 주제의식을 파악하려 하였으며, 특히 "흥부라는 인물이 피나는 노력에도 굶주려야 되는 반면에 놀부라는 인물이 악질적인 행위에도 부자로 잘 살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임형택 역시 사회경제사적 시각에서 작품을 투시하고 있고, 또 문제를 풀어가고 있음은 조동일의 경우와 다를 바 없지만 작품 구조를 일정한 통일 원리에 따라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따라서 놀부·흥부의 신분을 동일한 서민계층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두 연구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놀부·흥부의 인물을 평가하는 시각에서도 두드러진다.
두 인물에 대한 임형택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놀부는 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놀부의 반도덕적 반사회적 성격은 봉건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역사적으로 일정한 진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역사의 변화과정에서 나타난 암이며, 배제되어야 할 요소이므로 놀부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는 이익추구열이 지나쳐 배금주의자가 돼 버린 것이다. 돈벌이 그것이 곧 인생이고, 무한히 부를 축적하는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결국 놀부는 무한한 이익추구열 때문에 자멸한다…….
우리는 흥부를 봉건사회 말기이며 보수적이고 반시대적인 낡은 유형으로 처리해 버린 점에 반대한다. 흥부를 무기력하며 게으르고 현실에 어두운 자로 보아 넘긴 태도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 없다. (……) 흥부는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 흥부는 긍정적인 인물로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형택은 놀부가 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배금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역사 진보과정에서 나타나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제되고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흥부는 봉건사회 말기의 반시대적인 낡은 유형이 아니라, 오히려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취적이고 능률적이면서도 비양심적인 배금주의자보다는 비록 가난하고 비능률적이지만 양심을 잃지 않고 성실히 살려는 인간상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임형택의 글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놀부·흥부의 신분관계에 관해서이다. 그는 두 사람이 다 동일한 서민층이라고 하였지만, 아무래도 작품 실상에는 부합되기 어려운 주장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흥부는 문자를 쓰기 좋아하는 식자층일 뿐 아니라 관습적으로 예의와 염치를 숭상하고 유가적 생활규범을 준행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상택은 <고전소설의 사회와 인간>에서 놀부·흥부의 신분관계를 '획득신분'의 차원에서 풀이한 바 있다. 즉 흥부전의 작가군이 신분을 설정함에 있어서, 부모로부터 선험적으로 물려받은 '귀속신분'이 양반인가 천인인가의 여부는 별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회변동이 그만큼 심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양반 중에도 정치·경제적인 몰락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는 빈민에 속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천민 중에도 부를 축적하여 고대황실에서 풍요를 누리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동일이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를 밝히는 자리에서 "사람의 지위는 귀천에서가 아니라 빈부에 의해 좌우되도록 되었다."고 지적한 점은 바로 이러한 사회 현실에 부합된다.
그리하여, 작자층이나 독자층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놀부·흥부의 귀속신분이 양반인가 천민인가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스스로 확보한 현실적 신분, 즉 '획득신분'인 것이다. 획득신분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부의 축적에 성공한 놀부는 말할 것도 없이 특권층에 해당되는 것이고, 온갖 품팔이꾼으로 영락하여 심지어 매품까지 팔아야 했던 흥부는 올 데 갈 데 없는 극빈 천민에 해당된다. 즉, 획득신분의 차원에서 보면, 놀부가 상층에 해당되고 흥부가 하층에 해당되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식의 심부에 자리한 놀부·흥부의 신분은 그러한 시각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부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흥부의 유산권을 탈취한 것과 같은 극악한 반윤리적 행위는 지탄되어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는 일차적으로 반도덕적인 수탈계층과 도덕적인 피탈계층 사이의 갈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연구자가 피력한 글의 요지였다.
지금까지 주로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를 사회경제사적 시각에서 천착한 경우의 논의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시각의 연구사적 의의는 일제가 쳐놓은 식민(지) 사관의 그물을 걷어 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임은 위에서 이미 진술한 바이다.
그런데 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일제적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 이루어지면서 학계의 일각에서는 연구방향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서대석은 [흥부전의 민담적 고찰]에서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에 관한 탐구로부터 시선을 돌려, 주로 민담과 소설의 장르론적 類同性과 차이점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인물의 성격·이야기의 유형·배경·주제 등의 제측면을 대비 고찰하면서 진행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주로 흥부와 놀부 두 인물에 관하여 개진된 견해를 살펴보겠다.
그는 우선 흥부·놀부의 명명법에 착안하고 있다. 그들의 姓은 '박가'일 수도 있고, '연가'일 수도 있고 아예 성이 없을 수도 있는데, 박가는 '박타령'과 관계가 있고 연가는 제비와 관계되는 극히 우발적인 명명이어서 그들의 혈통이나 신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 흥보 놀보의 ○보式 이름은 민담에서 흔히 보이는 먹보·울보·잠보 등과 관계되는데, 홍보는 흥한다는 의미에서, 놀보는 논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의 명명에는 민담식의 평민적 발상법이 반영된 것이어서 그들에게서 일정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연구자의 탈역사주의적 연구시각이 간파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흥부전>의 중심 갈등이 "생존과 현실의 대결"로 나타난다 하고, "놀부는 현실적 제반사항의 일부이지 결코 전부는 아닌 것"이라고 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담적 고찰을 통하여 그가 파악한 흥부 놀부의 인간상은 어떤 것인가. 우선 그는 흥부라는 인물을 지극히 부정적인 인물로 보고, 놀부라는 인물을 상대적으로 비호하는 입장인 듯이 보인다.
흥부는 수준이하의 모자라는 인물이다(p.26)
흥부는 후안무치의 인물이며 무능의 오기만 있는 인물로 나타난다.(p.26)
권력 앞에는 억울한 것도 참고 굴욕도 견디며 만만한 상대에게 오히려 가혹한 흥부는 모자라는 인물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p.26)
형을 변호하고 두둔하는 데는 성인에 가까운 흥부도 환곡을 얻으러 읍내에 가서 이방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먹고살기 위해서 얼마 안되는 금력에 굴복하는 속물이 되는 것을 본다(pp.27 28)
흥부와 신분의식은 돈 삼십 냥의 값어치도 못 되는 것임이 드러난다(p.26)
이상의 언급 사례로 보면 연구자는 흥부를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막가는 인생을 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다.
인물이 무능력하고 수준이하이며 현실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 역시 민담의 주인공에게서 찾을 수 있는 특징이다.(p.30)
형우제공의 윤리의식도, 아전에게 반말하는 것도 사대부의 가치관에서 나타난 것이다. 형에게 공손하고 아전에게 반말했던 흥부는 이조 사대부의 의식으로 무장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만 가지고는 가장 절실한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기한에 대한 본능적 욕구는 논리라는 이성적 판단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p.29)
위의 인용문에서는 흥부를 포함한 민담적 인물들은 그들의 생존을 짓밟는 현실적 횡포 아래서는 아무리 윤리적·지적인 무장이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적으로 무력하고 뒤틀린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이면적 함의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놀부를 비호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 이처럼 계산에 밝은 놀부에게 구걸하러 간 흥부가 당초에 잘못이었으며 구걸을 거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외에 놀부의 악행은 별로 없다(p.41).
놀부가 구두쇠 짓을 하면서 흥부를 구박한 행위는 생존을 위해서 생활에 필요한 재산을 확보하려는 의식에서였다고 본다(p.43).
놀부 또한 각박한 현실 상황 속에서 자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비굴하게 뒤틀리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흥부를 구박한 것과 같은 구두쇠 행위가 불가피했으리라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의 견해인데, 이러한 견해는 만일 현실 상황이 비정하고 무자비스럽지만 않았다면 놀부 역시 인후한 덕망을 지닐 수도 있었으리라는 여운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따라서 결국 상황윤리의 문제로 귀착되는 듯하다.
80년대로 들어서서 우리는 또 다른 시각에서의 연구 성과에 접하게 된다. 이문규는 [흥부전의 문학적 특질에 대한 고찰]에서, 역사나 사회 또는 민속과 같은 문학외적 제측면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고 유기적 실체로서의 작품의 서사구조 자체에 대한 문학내적 접근방법에 따라 작품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순차적 진행과정을 살피면서 그가 밝혀낸 흥부·놀부의 인간상은 다음과 같다.
흥부는 선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흥부는 유교적 이념세계에 부합되도록 형상화되어 있다. 실제로 흥부는 유교적 질서에서 조금도 벗어난 인물이 아니며(……) (p.330)
놀부는 철저한 악인이며 당시의 보편적 가치인 유교적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물이다. 놀부에게 도덕이나 인륜은 아랑곳 없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돈뿐이다. 경제적 이익이 형제의 우애보다 중요하며, 물질적 욕망이 무엇보다도 집요하게 추구된다.(pp.331∼332).
(……) 흥부의 보수적 질서관은 아직도 민중들에게 당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흥부는 그대로 善인 것이며, 놀부의 새로운 가치관은 物慾에 어두운 자의 횡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惡인 것이다. 민중은 물질만 추구하는 놀부를 통매하고 있으며, 항상 보수적 질서 속에 살고 있는 흥부의 편에 서 있다(p.338).
흥부전의 주제는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대립을 통하여 기존 가치관이 승부해야 한다는 민중의 소망을 표현한 작품"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p.338).
위에서 인용한 일련의 진술 내용으로 볼 때, 연구자의 입장은 우선 흥부를 긍정적이고 소망스러운 인물로 평가하는 쪽이다. 그리고 흥부의 의식은 유교이념을 토대로 한, '보수적 질서관'을 지키는 것인데, 민중들은 이러한 인간상을 소망스러운 당위로 받아들인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진단은 조동일이 <흥부전>의 고정적 체계면을 통하여 내린 그것과 방불한 데가 있다. 물론 연구자는 <흥부전>이라는 서사물의 구조총체를 통한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지만, 작품 검증과정에서 이른바 '비고정체계면'의 작품 내적 기능과 그 함의를 과소평가한 느낌이 없지 않다.
♣ 수업중에 읽는 155가지 이야기/교육부 독서지도 정책 연구학교/인천학익여고 자료
- 성산 장덕순 선생 정년퇴임기념논총 - 한국문학사의 쟁점, 집문당 -
|
|
|
|
|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