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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은 왜 스포츠에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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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왜 스포츠에 미치는가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이 예고되었던 지난 9월 28일 새벽 4시, 15승을 염원하듯 아파트 단지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경기는 중계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PC통신에 들어가 보았더니 밤을 꼬박 샌 찬호 팬들의 경기 전망 메일이 벌써 백여 통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2시, 월드컵 최종 예선 한·일전이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졌다. 원정지의 '붉은 악마들'과 함께 '위대한 성전'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일상을 망각하고 거대한 집단 마취 상태에 빠져들었다. 후반 38분 동점 골과 3분 뒤에 역전 골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은 일종의 이성적 '판단 중지' 상태에서 정복자로서의 폭력적인 도취감에 빠졌다. 대중은 28일 새벽부터 밤까지 야구와 축구라는 원기에 사로잡혀 온갖 편집증과 우울증, 과대망상증과 정신분열증에 빠져버렸다. 28일에 있었던 2개의 빅 이벤트야말로 스포츠로 인한 대중의 음성적(자기 허탈감)이고 양성적인(집단 도취)심리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아니었을까?
스포츠가 생산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
박찬호의 메이저 리그 활약상과 월드컵 예선전을 계기로 국내에서 스포츠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스포츠 열기는 70,80년대의 상황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가령 유신 독재 시절 창설된 '박스컵'은 아시아권의 3류 국제 축구 대회와 마찬가지로 독재형 국가들이 자국 국민을 상대로 베푸는 일종의 민족 근대화 계획이자, 스포츠를 통해 독재의 정당성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적 지배 정책의 의미가 강했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고만고만한 상대국을 누르고 박스컵에서 우승하는 광경을 지켜본 대중은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을 터인데, 이때에 대중의 쾌락은 그 자리를 베풀어준 정권의 폭력성과 대체된다. 말하자면 박스컵과 같은 의도적인 이벤트에서 표출되는 대중의 광기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생산한 것이다. 80년에 출범한 프로야구 역시 컬러 텔레비전 조기 방영과 함께 5공의 문화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초창기 프로야구는 선명한 '지역 분할'과 정치적 폭력성의 '대리 보상 게임'이라는 구도에서 대중에게 하나의 '의도한 볼거리'가 된 셈이다.
물론 스포츠를 즐기는 대중의 광기 어린 행동 자체가, 지금이 과거보다 더 순수하다거나 더 폭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스포츠 경기와 대중의 심리 반응이 연결되는 방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현재 대중의 스포츠 열기는 전적으로 박찬호와 월드컵 한·일전에 의해 고조된 것인 만큼 그것은 두 가지 콤플렉스에서 말미암은 대리 만족적인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생산했다.
쾌락을 온전히 즐기기 시작했다
거대한 메이저 리그 시장을 정복한 박찬호의 승리는 약소 민족이 미국에 대해 느꼈던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탈 콤플렉스 과정이며, 한·일전에서의 승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졌던 역사적 억압에 대한 탈 콤플렉스 과정이다. 그 탈 콤플렉스 과정에 대중의 심리는 이제 국가 내부 체제의 단계에서 외부 체제의 단계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최근의 이러한 현상이 국제적인 빅 이벤트가 집중된 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충분치 못하다. 매스컴의 과잉 보도에 기인한 거품 현상이라는 지적도 어색하다. 적어도 이번의 스포츠 열기를 체감하면서 한 가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점이 있었다면, 바로 스포츠를 그 자체로 즐기려는 '자기 쾌락에 대한 온전한 배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마니아 '붉은 악마들'이 보인 자기 민족적인 행동은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스포츠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 한 사례이다. 스포츠 이벤트는 언제나 외부의 정치·경제·문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하나의 잔치요 카니발이다. 문제는 스포츠 자체를 탈 정치화하고 탈 경제화하려는 대중의 끊임없는 카니발적인 자발성이 아닐까.
<열림논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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