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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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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한(교사)
오늘은 여러분에게 내 장인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처가집과 뒷간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아들 없이 딸만 여섯을 둔 집의 맏사위라는 무거움이 내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장인 어른에 대한 인간적 존경과 그 분이 보여주시는 배움에 대한 끝없는 정열 때문입니다. 그 분은 작년 2월,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올해 7월부터는 대만의 문화대학이라는 곳에 2년간 초빙교수로 가 계실 예정입니다.
나는 평소 주말이면 내 아들을 데리고 처가를 즐겨 찾곤 합니다. 아들에게 외할아버지가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뒷산에 올라 가벼운 운동을 하시고는 줄곧 서재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으시는 모습. 평생 외길로 학문과 교육에만 매진해 오신 분이기에 한 점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셔서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시는 분. 손때 묻은 책들이 뿜어내는 은은한 서향이 가득한 서재에서 한 촉 난초처럼 고고하게 앉아 수불석권(手不釋卷)하시는 노학자의 모습을 나는 내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언젠가 장인 어른은 내게 편지 한 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원주에서 작품을 쓰고 계시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온 편지였습니다. 장인 어른은 3부로 된 대하소설 <토지> 15권을 꼼꼼히 읽으시고 작품으로부터 받은 감동은 물론, 작품 속에서 작가가 저지른 작은 실수 -예컨대, 등장인물의 이름이 잘못되었다든가, 지명의 혼동이 있다든가 하는 부분들을 일일이 지적하셔서 박경리 선생께 편지를 띄웠던 모양입니다. 작가로부터 온 답신은 이처럼 나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르겠다. 참으로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설책을 읽으시면서도 온 정신을 집중하고 면밀히 따져 보시는 학자적 자세가 내게는 놀라움으로 와닿을 뿐이었습니다. 나 역시 <토지>라는 작품을 읽으려고 몇 번인가 시도는 해 보았지만 그 스케일과 내용의 방대함에 주눅이 들어 1부 5권만을 읽고 포기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문을 즐기는 자와의 사귐은 마치 이슬비 속을 걷는 것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고, 책 읽기를 꺼리는 자와의 사귐은 마치 뒷간에 오래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운 냄새가 옷에 배는 법이라고 율곡 선생님은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항상 나의 부족함을 책 속에서 찾아 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이 나의 인생 모두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 앞에서 우리 모두 겸허해 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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