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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참여

제목 나의 벗, 느티나무
글쓴이 박소영 최우수상

 딱새와 참새, 뻐꾸기의 지저귐이 가득한 새벽이다. 하늘은 옅은 푸른빛과 하늘거리는 구름으로 마치 수채화를 풀어 놓은 풍경이다. 아직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함과 조심스러움, 자연스러움과 신성함이 깃든 시간이다. 새벽 특유의 냄새, 정취는 모두 여기서 오는 것일까.. 까치도 이제 막 울기 시작해 은밀한 새벽 안으로 아침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밖의 느티나무는 아직 잠이 더 오는 눈치인데 참새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일어나라고 성화를 부리니 마지못해 눈을 뜬다. 예정에 없던 손님, 바람이라도 오는 날엔 느티나무 이파리들이 살랑거리며 즐거워한다.

  나는 요즘 주방에 서서 식사를 하는 일이 잦다. 개수대 뒤편에 난 작은 창으로 보이는 느티나무 때문인데, 티브이를 보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것보다, 그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며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 중 개중에 괜찮은 건 그에게 꺼내 의견을 묻기도 한다. 그는 언제나 담담히 들어주고, 조용히 침묵을 지킨다. 위로도 조언도 하지 않는 그의 묵묵함이 그 자체로 내겐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된다.

  어릴 적부터 느티나무는 내게 큰 의미를 가진 존재였다. 마을 중심에 있던 나무도, 강가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던 나무도 모두 느티나무였는데 어쩐 일인지 여럿이보단 혼자 서 있는 일이 많아 시선에도, 마음에도 더 쉽게 닿았다. 오랜 시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더 많았겠지만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나무보다, 곱게 치장한 꽃나무보다, 내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했던 건 언제나 느티나무였다. 하굣길에 문득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빛 사이로 이파리들이 종처럼 흔들거리는 것 같았고 나는 무슨 계시라도 받을 듯이 엄숙한 자세로 혼자 경건해지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를 하곤 했는데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내심 초조하고 불안했었다. 기도 내용도 별 특별할 게 없었다. 무언갈 바라는 소원을 비는 게 아니라 그저 감사하다고, 감사하다는 말만 올렸던 것 같다. 어릴 적에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지금에 와서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언제나 내어주는 자연의 은혜, 그들이 빚어내는 은혜와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게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강가에 있는 느티나무는 낮고 단단한 가지가 많아 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었는데 거기 앉아 강가에 내리는 해 질 녘을 보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직 모르던 내게도 큰 감흥을 주었다. 그러다 밥때를 놓치고 늦게 들어가면 할머니께 혼나기 일쑤였지만, 마음만은 은혜로 가득해 말대꾸 없이 묵묵히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서 시골을 떠나고 직장인이 되면서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느티나무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일 년 전쯤 시내 외각으로 이사를 하게 됐고, 빌라 뒤쪽으로 오래돼 보이는 주택이 있었는데 그 집 마당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유난히 바람이 좋은 날이었고, 나는 그 창가에 기대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글을 썼다. '바람이 많은 날이다. 낮은 데나 높은 데나 시선이 가는 어디나 푸른 바람이 분다. 느티나무 초록들이 바람에 나부끼면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한 어떤 언어가 들리는 것 같다. 생생하게 살아있으라는 가르침 같기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그 순간에 조용히 넋을 둔다. 가만히, 가만히 그렇게 있는 순간에 마음 깊은 데서 평안을 느끼는데 이럴 때 나는 행복하다. 오후 느지막이 커튼을 밀어내며 들이닥치는 햇살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다. 특별한 대접을 하지 않아도 그저 바라보면 손님 쪽도 내 쪽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햇살이 등을 어루만지며 내 긴장을 푸니 바람에 일렁이던 느티나무가 안심이라도 하는 듯 지그시 웃는다. 오래전 벗을 만난 듯이 반갑다고 눈인사를 건네니, 나는 항상 있었다고 화답한다.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일을 그만둔 뒤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어떤 날은 그저 한가롭고 편안했지만 어떤 날은 적적하고 불안했다. 그러면 그때마다 나는 창가에 서서 가만히 느티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때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할 느티나무를 바라보면 모든 감정에서 조금은 초연해졌고, 담담해졌고, 마지막엔 삶에 대한, 지금 이 시간에 대한 감사와 찬양만이 남았다. 오로지 감사와 찬양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