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글쓰기대회 > 대회참여 > 백일장대회

대회참여

제목 제자리를 지킨다는 건
글쓴이 오유성 최우수상

제목 : 제자리를 지킨다는 건

 

 동물의 반대말은? 식물이라고? 동물은 움직이지만,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우리 집 앞에는 살구나무가 있어. 나는 이 살구나무에 살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 요새 살구는 초록색 옷을 입고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온 종일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새가 앉아도 살구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꺼야.

 그런데 말이지, 살구가 처음부터 초록색 옷을 입었던 건 아니야. 천천히, 아주 느리게 연두색에서 초록 옷으로 갈아입었어. 살구는 신기하게도 내가 보고 있을 때는 움직이지 않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조금씩 옷을 더 입었어.

 살구한테는 또 웃긴 것이 있어. 얘는 연두 옷을 입기 전에 먼저 꽃부터 피는 거야. 누가 옷도 입지 않고 화장을 한다고 생각해 봐. 너무 웃기지 않아.

 살구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꽃을 피웠어. 살구가 세상을 연분홍색으로 칠하니까 진달래와 개나리가 함께 빨강 노랑 색칠을 거들어주고, 벚꽃도 질세라 잇따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지.

 나도 살구의 꽃이 반가웠지만, 나보다 더 반겨하던 친구가 있었어. 바로 꿀벌이야. 아직 쌀쌀한데도 옷도 입지 않고 화장부터 시작한 살구는 겨우내 살구꽃 피기만을 기다렸던 꿀벌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급했던 것일까. 살구꽃들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는 꿀벌들을 보면서, 그때 살구라는 이름이 떠올랐어. 꿀벌들을 살려주는 살구나무라는 뜻이야.

 사실은 살구에게 이름 붙여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작년 겨울방학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처음 보았던 살구는 다른 나무들과 구분할 수 없었어. 벌거벗은 겨울나무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 그냥 막대기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때는 관심도 없었거든. 내 마음도 막대기 같아서 말이야. 예전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왔고, 새로 전학 갈 학교도 낯설고 두렵더라고.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낯선 학교에 가는 길에서 막대기 같던 나무 하나가 내게 살며시 꽃을 피워 주었어. 그 다음 날은 조금 더 크고 많이 피었고, 그러다가 어느 날 꽃다발을 함빡 안겨 주었지. 그 나무를 지나쳐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게 꽃다발을 흔들어 주는 것 같았어. 마치 우리 엄마처럼. 뒤 돌아볼 때마다 엄마도 항상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거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 알지. 아마 살구는 절대 술래가 될 수 없을 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난 다음 아무리 빨리 휙 뒤를 돌아봐도 절대로 살구가 어디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가 없거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살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거야. 어느 새 꽃이 진 자리에서 연두 새싹이 자라고 점점 짙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성해졌으니까.

 누가 식물이 안 움직인다고 했을까, 저리 잘도 움직이는데. 지난겨울이 오기 전에 살구는 옷을 다 벗고는 제자리에서 추위를 참아냈어.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우고 잎을 띄우겠지만 혹시나하면서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우리 살구는 튼튼하게 새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웠어. 겨울 내내 아무도 모르게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겠지.

 올해 다시 만난 살구는 더 이상 막대기도, 그냥 나무도 아니었어. 나의 소중한 친구야. 오늘 아침에도 살구는 작은 새를 시켜서 나를 불러냈어. 창문을 열었더니, 살구의 손바닥 위에 앉아있던 작은 새가 날아가더라.

 어제는 엄마하고 가평에 있는 용추계곡에 갔다 왔어. 나는 계곡에서 다슬기도 잡고 조약돌 댐도 만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고, 엄마는 물이 차갑다며 개울가에 앉아만 있었지. 실컷 놀다가 너무 조용하면 엄마가 어디 갔을까?’ 불안하기도 해서 엄마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엄마는 살짝 웃어주었어. 우리 엄마는 제자리에서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마치 나무처럼 말이야.

 나무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야. 아마 세상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없겠지. 이제 나는 나무를 보면 우리 엄마가 보여.

다음글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