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글쓰기대회 > 대회참여 > 백일장대회

대회참여

제목 설렘
글쓴이 서지훈 우수상

  설레임이 설렘이 되는 건 언제쯤일까.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이 비극의 연속을 멈출 수 있을까. 매일 같이 100개를 넘는 설레다‘--’의 습격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지만, ‘--’를 소지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책임감 없이 ‘--’가 남발된다. ‘--’의 습격으로 설레다설레이다가 되고, ‘데다데이다가 된다. 이미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단어들이, 단지 발음하기 쉽다는 이유로 파괴되고 유린당한다.

  ‘--’를 장난감 다루는 감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맞춤법을 지키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받아적는 사람들. 어릴 적의 친구가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빨간 산타클로스 인형. 입에 넣기에는 크고, 말랑말랑했다. 손에 쥐었을 때는 천하를 거머쥔 것만 같았다. 그때는 천하가 뭔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답했을 리 없다.

  나는 그 친구를 함부로 다루었고, 그 친구는 곧 더러워졌다. 하루는 침 범벅, 하루는 흙 범벅. 그래도 그 친구는 빨 수 있었다. 하지만 ‘--’? ‘--’는 세탁기에 넣을 수도 없잖아. ‘--’도 마찬가지로, 하루는 흑연 범벅, 하루는 잉크 범벅. 앞자리 남자애가 설레이다라고 잘못 쓴 것을, 뒷자리 여자애가 데이다라고 잘못 쓴 것을, 몰래 화이트로 가려본다.

  ‘--’는 가정 파괴범. 설레다의 를 갈라놓고, 데다의 를 갈라놓는다. 거참 설레는 짓이라며 설레다가 빈정대고, 까딱하다가는 손 델 수 있다고 데다가 협박하지만, ‘--’도 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사실 ‘--’는 평소에 와 교류가 없고, ‘와도 그다지 친하지 않다.

  심지어 ‘--’는 자신의 역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하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자기가 끼어드는 바람에 음절들 사이의 교류가 끊기고, 평화가 무너진다고 여긴다. 자신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불쌍한 ‘--’는 오늘도 제가 다 망쳤다며, 이불 속에서 훌쩍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를 연쇄하며, 비극의 연쇄를 끊고자 한다. 나 먼저 맞춤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최종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설레임을 설렘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게 그토록 중요한 일이냐고. 맞춤법, 그까짓 거.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 아니냐고. 분명한 건, 설렘을 설레임으로 잘못 쓴다고 하여, 한글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든가 맞춤법 체제가 무너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03년에 출시된 동명의 아이스크림이, 뒤늦게 설레임에서 설렘으로 바뀌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서는, 실제로는 별반 일하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에게만 맞춤법을 제대로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일상을 유지했다. 사실은 나 역시 묻고 싶었던 것이다. ‘설레다설레이다로 쓰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데이다데다로 고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뜻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언어라는 건 결국 사람이 편하라고 만든 거잖아. 잘못된 단어 하나가 문장 전체를 어지러뜨리는 일은 별로 없다고 보는데. 뜻을 잘못 알고 쓴 단어 및 오탈자 하나 때문에 작품의 품질이 달라지는 일도 거의 없다고 보는데.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맞춤법이라는 건 그렇게 중요한 거야? 끝내 나는 친구의 질문에 답해주지 못했다.

  ‘--’는 애써 말했다. ‘설렘설레임이라고 표기해도 된다고. 그렇게 마음 졸일 일이라면, 편한 대로 하라고. 어차피 언어라는 것은 사람의 창조물이고, 언어를 파괴하는 이 역시 사람일 거라고. 적자생존, 결국에는 강한 말만이 살아남고, 약한 말은 모조리 절멸할지 모르겠다고. ‘--’는 아쉬운 듯이 덧붙였다.

  마음이 아팠다. 편하지 않은 말과 편한 말. 약한 말과 강한 말. 똑같은 문장구조의 반복. 한정된 어휘량. 지금도 봐, 할 말이 없잖아! 문장이 유려하게 읽히지 않고, 뚝뚝 끊기잖아! ‘--’를 볼 면목이 없다. 면구쩍고, 죄스럽다. 하지만 나는, 쓰던 글을 완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외려 설레임이 표준어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흐름에 항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함께해보자. 설레는 마음으로.


이전글
상 받는 날
다음글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