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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물 속 흐릿한 시야로 바라보던 세상-책 페인트를 읽고
글쓴이 신채이 우수상

올해 추석,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늦은 시각 잠시 들린 홍대의 불빛들은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추석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빨간 원피스에 검은 가방을 멘 사람, 청바지에 슬리퍼 차림인 사람 등 다들 제각기 다른 옷으로 꾸미고서 바쁘게 걸어 나가는 사람도, 천천히 느긋하게 거리를 즐기며 나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소리, 번쩍이는 음식점 간판, 빵빵 거리는 차들의 소음을 즐기고 있자니 자꾸만 그런 소리들이 나에게 압박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사람들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각자를 위해 조각된 공간에 알맞게 자리 잡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페인트]의 주인공 제누도 마지막에는 홍대에서의 사람들 같이 느껴졌다. 그는 사회에서 국가 보육원 출신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나가지 않으려면 무조건 부모를 선택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노는 자신을 누군가에게 맞추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것 같다. 그는 꽤 괜찮은 부모를 만났음에도 제노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용기와 자신감,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믿음과 신념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부러운, 존재이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그가 마치 나폴레옹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누와 다르게 우리 청소년들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재단 당한다. 부모님에 의해, 선생님에 의해, 혹은 친구들에 의해. 제 코가 석자인지도 모르고, 모두들 남의 삶에 발 들이려 한다. 나 또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영향은, 부모님에 의해 칠해진 페인트는 그저 흰 색이었다. 어떤 색을 발라도 색 본연을 더 확연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아름다운 색을 칠하는데 바탕이 되는. 부모님은 항상 나 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자신의 인생에서 겪은 후회들을 자식에게 고백함으로 인해서 더 나은 판단을 할 능력을 키워주셨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페인트로, 나만의 그림을 그려나가라고.

 

이런 도움을 받은 나에게도 나는 미성숙한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갈매기의 꿈]을 읽었을 때였다. [갈매기의 꿈]에서 주인공 조나단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태어난 갈매기 같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진리에 따라,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그가 나에겐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새 학기가 되어 자기소개의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란을 한참이고 바라만 보다가 결국엔 제일 무난한 영화 시청하기, 글쓰기를 기입하는 나에게는 말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특목고, 자사고 중 어느 곳을 갈지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중 3이 다가올수록 나에게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냥저냥 무난하게 살아가던 나라는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커다란 돌멩이 같다. 아니, 내 마음을, 심경을 잔인하게 강압적으로 자극하니 도끼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다재다능함을 요구하지만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욕심 많은 나 자신에게 나라는 존재는 불안감을 선물하기만 한다.

 

불안감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난 책 [페인트]에서 불안이라는 악하지만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악당과 무력이 아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힌트를 얻었다. 그 힌트는 어쩌면 제누가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제누도 처음부터 조나단처럼 확고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 있던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점점 자신을 감싸고 있던 허물을 조금씩, 천천히 갉아 없애며 성체가 될 준비를 했다. 완벽한 성체는 아니지만, 애초에 완벽한 성체란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도 제누처럼 점점 더 나은 존재에 가까워지는 단계에 놓였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도 허물을 벗을 용기가 생기는 것만 같다.

 

난 이 책을 읽고 인간다운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살아생전에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이야기했다. 진정한 나를 찾는 일. 난 이것이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 하물며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내 인생의 조언자일 뿐 손을 널리 뻗쳐 내 삶의 조종자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성장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인의 입김으로 만들어진 한낱 모조품, 혹은 조각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두고 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까? 눈물과 허물로 가려져 뿌옇게 변한 시야에서 나와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할까 궁금한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나무인형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앞으로 보게 될 다채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난 오늘 처음으로 나의 허물을 살짝 벗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