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영화 ‘대호’를 보며
작성자 최유진 작성일 2021-03-31
작성일 2021-03-31


                                                                     -악연과 필연 사이-

                                                                                                      정혜교(신현고 2학년)

 

   이 영화를 봤던 날은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날이었다. 영화 처음 시작부분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날 주인공인 천만덕이 총을 호랑이에게 겨누며 시작하는데 그 시작부분부터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씨가 말라버린 호랑이와 일제강점기 당시의 조선인의 만남은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어느 한 곳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서 나는 비참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다름없는 지리산의 산군인 대호는 단지 일본군의 욕심으로 자식과 아내를 잃게 된다. 일본군 사이에 조선인 포수들이 섞여 대호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그들이 일본 편에 서지 않으면 배가 굶어 죽게 된다는 사실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천만덕의 아들은 요즘은 다 일본 옆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기에 더 더욱 그러하였다. 돈에 눈이 멀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아무 죄가 없는 군인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죽이는 대호. 모두가 너무 절망스러워 보였다. 천만덕의 아들 석이도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대호를 잡겠다는 장면과 포수를 그만 둔 한 때 조선의 제일이었던 천만덕이 아들을 말리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결국 석이는 죽게 되지만 그때부터 대호와 천만덕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하였다. 자식과 아내를 잃은 대호와 천만덕이 함께 살아갈 수는 없을까 헛된 희망을 품으며 영화를 보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 둘은 조화롭게 살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던 그 시대와 상황이 그들을 더욱 필연으로 만든 듯하였다.

   일본에서는 대호를 잡기 위해 지리산에 폭탄을 설치하여 차례대로 터트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야생동물들이 죽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본 대호가 울부짖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주 죄 없는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자연이 모두 불쌍해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이 영화는 내게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천만덕과 대호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죽게 된다. 그리고 눈이 와서는 그들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덮어버린다. 떨어진 그 둘의 모습은 대호가 천만덕의 몸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도 그들의 한 평생과 너무 불쌍했던 나날들만을 보여주어서 계속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과거 역사를 보면 왜 인간들은 항상 남을 가만히 냅두질 않는 걸까.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던 간에 사소한 것이라도 정복하려고 하는 인간의 심리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현재도 사소하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선은 너무나도 비참하였다. 나의 나라이지만 이런 영화들이나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기가 십상이다. 천만덕이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하는 장면과 대호가 죽은 새끼들을 핥으며 울부짖는 그 장면은 인간과 동물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신들의 형상조차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이 영화를 보니 동물도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설정상 대호가 매우 영리하고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이 현실과 다를 수 있지만 현실에서도 과거에는 호랑이들이 사냥을 당해 씨가 마르고 가죽만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했던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무엇하나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인생들을 내가 어떻게 뼈 속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영화를 보면서도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픈데 그때 당시에는 얼마나 더 아프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온통 가득 채웠다. 눈이 오는 겨울이면 집 안에서 가족과 함께 앉아 도란도란 있어야 하는데 눈이 세차게 내리던 겨울밤에 모두가 산을 오르며 하얀 산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것이 정녕 인간의 숙명이자 미래에도 계속 될 지옥 같았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은 태어나길 착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보니 사람을 태어나길 악하게 태어나고 겉으로만 티를 안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호가 천만덕에게 달려들기 전 멈칫하는데 그때 대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너무 궁금하였다. 인간을 증오하였을까? 억울하게 먼저 떠나버린 자식과 아내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천만덕과의 첫 만남을 기억했을까.

   대호와 천만덕이 죽고 난 후 그들의 옛날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대호가 어렸을 때 천만덕과 포수들은 대호의 어미를 죽이게 된다. 그의 동료들은 새끼조차 죽이려고 하지만 천만덕은 그들을 살리고 가끔 먹이도 구해다 준다. 대호는 그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어미를 잡지 않으면 가족들이 굻을 위기에 처한 천만덕과 어미를 잃은 대호의 인연은 과연 악연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이 넘는 영화를 이렇게 집중해서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심리 속에서 모두가 평화를 인식하고 슬픈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