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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마당을 나온 암탉

지은이
황선미
출판사
사계절
페이지수
200
대상
알을 낳아도 품을 수 없었던 양계장 닭 잎싹이 폐계들이 버려지는 곳에서 살아남아 청둥오리 새끼인 초록머리의 엄마가 된다. 초록머리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을 할때 같이 가슴아파하고 초록머리가 다 자라서 동료들과 남쪽으로 떠나는 것을 고통스럽지만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잎싹은 '진짜 엄마'가 된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것을 이루러지는 잎싹읭 삶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미디어 서평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안데르센은 백조의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오리를 상상했다. 황선미는 오리의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암탉을 상상한다. 이질적인 것의 끈끈한 결합, 그것은 현실에서 항상 배척되기 때문에 또한 인간 상상력의 정수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잎싹'이 품어서 탄생시킨 야생 오리 새끼를 보고 수탉은 말한다. “볏에 대한 수치야! 꼴불견 암탉 한 마리가 우리 족속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구나. 해의 목소리, 해를 닮은 볏에 대해서 감히! 이런 어리석은 암탉 같으니라고!” 여름이 끝나 가는 어느 날 잎싹은 `초록머리'라 이름 붙인 자신의 새끼 오리가 하늘을 힘차게 나는 것을 보고 독백한다. “닭은 날개를 포기해 버렸어. 어째서 볏을 가진 족속이라는 것만 기억했을까? 볏이 사냥꾼을 물리쳐 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위기에 처한 초록머리를 구해주고 나서는 대화하는 듯한 목소리로 또 혼자 말한다.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잎싹은 `나그네'란 이름의 청둥오리와도 진한 우정을 나누었고, 초록머리를 친자식처럼 키웠으며, 자신의 피와 살을 집요하게 노리는 사냥꾼 족제비와도 역설적으로 `사랑스런 천적'의 관계였지만, 결국은 혼자 남는다. 이 세상 모든 것과 살갗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마찰 속에서 연명해 왔지만,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자유라는 말이 무색하리 만치 혼자 걷는 길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환한 해방을 맞는다. 보랏빛 파노라마 속에 잠겨 있는 모든 것을 굽어볼 수 있는 환한 해방을. 이제 이 책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어른의 설명이 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을 해치지 않으려면 쉽게 설명하려 들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설명은 무엇인가를 쉽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듣는 사람이 어려운 것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쉬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득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설명 없는 강요' 아니면 `쉬운 설명'의 유혹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면 읽기가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동화에서 글과 그림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고전 작품에서도 서로 뗄 수 없는 짝을 이루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캐롤의 글과 테니얼의 그림, <위대한 마법사 오즈>에서 바움과 덴스로 등이 좋은 예이다. 이 흥미로운 전통이 최근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한겨레신문 책의 발견 00/9/4 김용석(철학자)> 이 장편동화의 주인공은 '잎싹'이라는 이름의 암탉. 잎싹의 소망은 스스로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직접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닭장 안에 갇혀 사는 잎싹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 알을 낳으면 곧바로 주인이 가져가버리고 그럴 때마다 잎싹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심지어 껍데기가 여물지 않은 알을 낳기라도 하면 주인은 그걸 집어 던져 버리곤 한다. 언제 알을 품어 볼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다가와 철조망 문을 열고 잎싹을 마당으로 끌어냈다. '아 드디어 마당이라는 자유의 세계로 나가는구나. 이제 알을 품어볼 수 있겠지.' 마당의 아카시아나무 잎사귀가 예뻐 보여 이름도 잎싹이라 지었던 것인데... 하지만 주인의 손에 끌려간 곳은 닭 오리 등을 버리는 헛간이었다. 밤이 되면 족제비가 와서 닭과 오리를 잡아 먹는 곳. 두려움에 떨던 잎싹은 천만다행으로 나그네 청둥오리에 의해 구출된다. 마당으로 돌아온 잎싹. 아카시아 나뭇잎은 싱그러웠지만 잎싹의 마음은 우울하기만 했다. 마당은 더 이상 자유의 공간이 아니라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어디론지 떠나고 싶었다. 정처없이 들판으로 향하려 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소리. 자신을 구해준 청둥오리 소리 같았다. 그러나 두려웠다. 그래도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청둥오리는 없고 푸른 빛이 감도는 알 하나가 외롭게 놓여 있었다. 청둥오리의 알이었다. 어미 청둥오리는 먹이를 구하러 갔고... 감싸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잠깐 동안의 망설임. 그러나 마음을 먹었다. '어미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저 알을 품어 줘야지. 비록 내가 낳은 알은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바라던 일 아닌가.' 잎싹은 소중히 청둥오리 알을 가슴에 품었고... 초등학생이 읽으면 좋을 장편동화다.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 어려움을 헤치고 자신의 소망을 실천하려는 의지 등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시원스런 터치에 담백한 색채의 수채화가 감동의 깊이를 더해준다. <동아일보 00/06/10 이광표 기자> 심오한 주제, 박진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 독특하고 뚜렷한 등장인물의 캐릭터 등이 돋보이는 어린이 장편 동화. 저자는 <나쁜 어린이표>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은 동화작가다. 암탉 잎싹은 직접 알을 품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양계장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미 알을 낳을 수 없는 노계. 대신 청둥오리의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자신의 알을 대신 품어준 잎싹을 족제비가 공격하자 알의 엄마는 대신 목숨을 바쳐 잎싹과 알을 보호한다. 새끼 청둥오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던 잎싹은 족제비가 또 공격해오자 족제비 새끼를 잡고 "오리를 죽이면 새끼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해 위기를 모면한다. 냉혹한 사냥꾼 족제비도 실은 모성에 우는 존재였다. 그러나 애지중지 키운 청둥오리는 본능에 이끌려 키운 어미를 떠나고 잎싹은 결국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삶의 진정한 가치, 그 가치를 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악할 수 없다는 것 등 어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담고 있다. - 김태훈 기자 ( 200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