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선택 > 권장도서 > 청소년

권장도서

반세기의 신화

지은이
리영희
출판사
삼인
페이지수
401
대상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어진 부분은 역시 통일,남북 관계에 대한 논의이다. 민족분단 이후 남,북한은 각각 하나의 가치관만을 강요받아왔다. 저자 리영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저서를 통해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왔다.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는 책의 부제와 같이 남한만이 '선'이라는 분별없는 선악설의 이분법적 사고를 깨트리고, '진실'로 믿어왔던 온갖 '거짓'들의 정체를 밝혀서 반세기 동안 극도로 왜곡되어 왔던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자 하는 데에 저술 목적이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통일을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하는가? 분명한 것은 남과 북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통일의 방향성을 제고하기 위한 '통일의 도덕성'과 다시 교단에 선 전교조 교사들을 위한 '학생들에게 남북 문제와 통일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등은 인식의 참된 변화를 위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부분이다. 끊임없이 진실을 파악하고자 한 저자의 학문적 성과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미디어 서평 `사상의 은사(恩師) / 시대의 선구자이자 반도의 살아있는 지성 / 우리들의 전위와 후방`. 고은 시인이 89년 12월 리영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의 회갑을 맞아 헌정한 「송시」(頌詩)의 한 구절이다. 고시인의 표현대로 리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74년) 이후 <우상과 이성>(77년), <분단을 넘어서>(84년), <역설의 변증>(87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94년), <스핑크스의 코>(98년) 등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의 저서를 통해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왔다. `책을 통한 의식화의 교사` 역할을 해온지 올해로 25년째를 맞는 리교수가 펴낸 비평집 <반세기의 신화>는 우리시대 논객(論客)의 식지않은 문제의식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리교수는 새 비평집을 낸 목적을 `민족분단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문제에 관해 우리들이 `진실`일 것으로 믿어왔던 온갖 `거짓`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남한에서 권력을 장악한 위정자들은 반세기동안 국익이란 미명하에 반공을 앞세워 거짓을 진실로 교육하고 법으로 강요해왔다. 또 역대정권의 극우·반공주의·외세의존적 체제는 `남쪽 사회는 선(善), 북쪽 사회는 악(惡)`이라는 2분법적 사고에 중독된 수많은 사람들을 양산해냈다. 과연 남쪽 사회는 선이고 북쪽사회는 악인가. 리교수는 남한을 `부정부패와 타락, 비인간화가 극에 달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물신숭배의 병`을 앓고 있는 사회`로 규정한다. 게다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쪽 동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자는 말만 나오면 `빨갱이`나 `용공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국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면 `좌경`이란 딱지를 붙이는 곳이 남쪽 사회다. 북쪽 사회는 어떤가. 그는 `북한은 집권세력이 제도화된 허위의식으로 주민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폐쇄사회`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리교수는 `북쪽사회에는 가난하지만 나눔의 미덕이 남아 있고 겨레의 문화와 관습을 아끼려는 정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남북한 어느 쪽도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다`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각자 자기사회의 「악」의 요소를 냉엄하게 인식하고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별없는 선악설을 넘어 남북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부터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 Ⅲ」을 근거로 `남한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다`고 강조해온 리교수는 지난 6월 서해교전 사태와 관련, `북방한계선 남쪽이 우리 영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유엔군과 북한이 맺은 정전협정에 따르면 남북 사이의 서해수역은 어느 쪽도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공백지대라는 것이다. 리교수는 `남북한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고수하기는 커녕 추악함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의 체제와 이념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는 남북한 모두가 `휴전선 남과 북에는 천사도 없고 악마도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인간의 얼굴」을 되찾을 때 통일은 앞당겨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경향신문 99/09/28 박구재 기자> 우리에게 `통일`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우리는 통일논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마치 자신은 `천사`요, 상대방은 `악마`인양 반세기를 지내온 남북한. 금세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현실을 매섭게 비판한 비평집이 출간됐다. 저자는 <전환시대의 논리>, <분단을 넘어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을 통해 남북·민족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리영희(李泳禧·70)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이번에 출간한 책은 <반세기의 신화-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남북문제에 관해 진실일 것으로 믿어온 온갖 거짓의 정체를 밝혀보려 했다`면서 `거짓과 우상과 신화가 난무했던 20세기는 가고 21세기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의 인민만이, 강요당한 민족분단이 가져온 신화와 우상의 거짓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다`고 우리의 몰역사적인 현실을 꼬집는다. 이 책은 총3부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남·북한의 선악설을 넘어서`는 과연 우리에게 통일의지가 있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특히 남한의 경우 거짓을 강요했던 광적인 극우·반공주의·외세의존적 폭력체제가 사라진 지금도 `인식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예수·부처의 신도임에도 굶고있는 북녘동포를 돕자는 말만 나오면‘빨 갱이’‘용공’‘철부지’ 등 매도의 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분별없는 `선악설`의 이분법적 사고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결론은 저자가 40년간 남북문제를 ‘관찰·연구’해온 결과이자 실향민의 한스런 감성까지를 담은 것이어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제2·3부는 저자가 ‘통일시론’ 등에 발표한 논문들을 중심으로 엮은 것으로 저자의 비판적인 통일·역사관이 돋보인다. 특히 지난 6월 ‘서해교전’이후 논란이 된 `북방한계선`과 관련, `남·북 사이의 서해수역은 어느 쪽도 합법적으로 관할권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수역`이라면서 `남북한은 이 수역에 대한 성격규정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판의 칼날은 언론(인)에게도 사정없이 가해진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신문·방송은 섣부른 국가안보 와 국가 지상주의의 `유일사상`주술에 꼼짝없이 묶여 선전·선동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며 원인을 냉전의식의 잔재, 광적인 반공사상,맹목적 애국주의,미국의 국가이기주의와 패권주의,민족간의화해보다 대립을 부추기는 습성 등에서 찾았다. `휴전선 남과 북에는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 어느 쪽도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니다. 통일을 위해 각자 자기사회의 악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남북한이 함께 변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근본사상이다. <대한매일신문 99/09/27 정운현 기자> 통일문제에 관한 비평집이라고 할만한 이영희(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교수의 저작 <반세기의 신화>는 크게 두 개의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는 이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통일담론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글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통일문제에 관한 북한의 교조적인 태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란 곤혹스러움이다. 대표적인 글이 ‘주체사상의 이데올로그 황장엽과의 대담’이다. 대담은 시종 날 선 어투로 진행되었다. 황씨는 격정에 못이겨 책상을 두들기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지만 이교수의 대응도 예사롭지 않다. 문제는 두 사람이 모두 통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지만 서로 만나는 부분이 없다는 데 있다. 마치 그간 무수히 전개되었지만 공소한 말잔치로 끝난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이 대담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일까. 책에서 굳이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근본적인 남북한의 차이`는 사유방식의 차이로 읽힌다. 마치 전근대인과 근대인이 만나서 서로 다른 사유방식으로 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황장엽과 이영희로 대표되는 `남북한 지식`의 차별지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대담은 대화였지만 서로의 주장으로 그친다. 황씨는 언제나 국가 권력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려고 했던 인물로서,통일 또한 국가권력을 통해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황씨의 통일방식은 힘이 센 남한이 북한을 `고립시켜서 붕괴시켜야 한다`는 쪽이다. 이교수는 국가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자 했으며 체제가 가진 통제방식과 싸우려고 했던 비판적 지식인의 전형이다. 통일방식에서도 국가가 문제가 아니라 각 개인의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전개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황장엽씨가 국가권력의 변화에 기대고 있는,전형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전근대인이라면, 이교수는 정부 주도의 통일 방식에 근본적인 회의를 가진 근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쪽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만들어낸 `왕조 시대의 사람`이라면 한쪽은 끝없이 근대인이고자 하는 `자유로운 지식인`이다. 이 통일문제를 다루고 있는 `황장엽과의 대담`이 보여준 성과라고 한다면,`남북한의 차이`를 요약하는 대표적인 벽이 바로 이 전근대와 근대적 인식문제란 점을 명실공히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교수는 이후 글들에서 통일은 특정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부분은 책의 두번째 주요한 관점이다. 어떤 점에서 이교수의 주장은 ‘국가주도 통일무망론’이라고 할 만하다. 국가권력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사회 각 개인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그런 방식의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란 것이다. 나아가 남한 각 사회구성원의 통일에 대한 태도변화가 없다면 차라리 ‘평화적 상태에서의 잠정적 분리’가 더 나을 수 있다란 논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편에 걸쳐서 의미심장하게 깔고 있다. 책의 또다른 핵심 에세이인 ‘통일의 도덕성’은 바로 그런 형식이 아니라 내용,‘결을 들여다보자’는 통일담론이다. `50년 동안 각기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온 두 개의 사회가 다시 하나가 되자는데 어떻게 한쪽만 변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가…. 북한이 남한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남한의 얼굴을 한번쯤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도 통일이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는 경고의 문장이다. 섣불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쟁점사항도 몇가지 있다. ‘북한동포의 것은 북한동포에게’란 글은 통일 이후 북한에 대한 재산권을 다룬,대단히 미묘한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이교수는 이 글에서 독일방식,즉 분단 전의 동독에 대한 서독 주민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방식을 부정한다. 두번째는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란 에세이에 실려 있는 이교수의 문제제기다. 이 에세이 또한 지난 서해교전에서 드러났듯이 분단 이후 50년에 이르는 기간의 ‘관행’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세번째 쟁점은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가 아니다’란 글이다.이교수의 입장은 ‘정전협정 당사자 논쟁’과 맞물려 있는데,이 또한 정전협정에 대한 원론적 해석이란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분단 50년이 흐른 현실을 놓고 어떻게 남북한의 분쟁을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비판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통일에 대한 태도를 다루는 책`에서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간 나온 통일담론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제안이 통일방식, 통일정책을 다룬 것이라면 이교수의 책은 통일에 대한 남한 사람 각 개인의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다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문제는 책의 논거가 `남북한 공히 바뀌어야 한다`란 명제에 매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교수의 입장은 `남한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남한불인정 문제나 남한의 발전과 남한의 관행을 무시하는 북한의 입장에 대한 지적이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은, 책을 `통일 문제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과도한 우월감에 대한 경종`이란 차원에서 읽게 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문화일보 99/09/29 배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