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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즘

지은이
앤소니 기든스
출판사
새물결
페이지수
311
대상
이 책의 미덕은 얼핏 한줄기 유행을 휘몰아치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는 섹슈얼리티 문제를 땅으로 끌어내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는 데 있다. 섹슈얼리티를 살믜 역사와 현재의 지형도 속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 성찰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미디어 서평 지식의 새 광맥 새 내용 새로운 스타일 이성에서 욕망으로, 정신에서 몸으로. 졸지에 유목민 신세가 되어버린 지식인들은 1990년대 이후 이곳저곳에 지식의 탐침을 찔러대면서 새로운 노다지를 찾아 이동해 갔다. 문화 연구와 미시사는 이론적 지렛대가, 프랑스에서 밀수입한 포스트구조주의가 인식의 도움닫기 판이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인식론적 지도는 크게 물결쳐 새로운 광맥을 연이어 발견하게 됐다. 이렇게 사유의 지형이 바뀌는 곳에서 새로운 내용, 새로운 스타일의 책들이 탄생한다. 이것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출판에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의 동력이다. 앤소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은 오늘날 지식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고틀의 전환을 엿볼 수 있는 한 구체적 증거이다.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파고드는 지식의 새로운 에너지를 만끽하게 해준다.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02/04/27 장은수 (출판사 황금가지 편집부장)>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설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사랑을 주제로 한국근대소설사를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그러나 사랑,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발설하기조차 곤란했던 상황에서 문학을 사랑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연구 기간동안 다녔던 와이드너도서관은 넓고 복잡해 초록색,붉은색 등의 줄로 길을 표시해놓았었다.그 줄을 따라가면서 나는 한가닥 실에 의지해 미궁을 헤매던 테세우스 심정이 되곤 했다.사랑을 주제로 그렇게 많은 책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사랑을 주제로 문학을 연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보다도 나에게 더 절망적이었다.그 엄청난 책의 종류와 양에 압도돼 멍하니 고서의 먼지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어느날 나는 분연히 도서관을 뛰쳐나와 서점으로 갔다.그리고는 비교적 낯 익었던 저자 앤서니 기든스의 책을 발견하고 즉시 사서 읽기 시작했다.겨우 가라앉았던 책멀미. 누구나 한 번은 사랑을 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행복,몰아,증오,외로움,수치감에 홍역을 앓는다.그리고 어찌됐든 우리는 그 감정을 담보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족이란 제도를 유지한다.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이 사랑을 한 번이나 진지하게 펼쳐놓고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던가.기껏 논의되는 사랑은 외설 내지는 좀더 발전한다해야 성적 억압 등 페미니즘 측면에서 거론되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푸코 등 성에 대한 학문적 성과를 관통하면서 자기성찰의 입장에서 근대를 보는 방식을 섹슈얼리티의 측면에도 유연하게 적용하는 기든스의 주장은 경이적인 것이다. 피임이나 시험관 아기 등의 기술로 섹슈얼리티가 재생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현대에 있어 성은 인간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로 변모한다.인간 감정이 제도에 의해 묶이기보다 개인이 각자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것을 결정한다.여기서 사랑은 신비의 영역에서 내려와 친밀성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그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분리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이제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공적 영역뿐 아니라 개인 관계에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섹슈얼리티 또한 인간관계 문제인 것이다.이제 현대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제도나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서로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고 서로 개방되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사랑 또한 상대의 개별성을 존중해주는 바탕에서 상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든스는 푸코의 분석에 힘입고 있으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마음을 놓게 하는 부분이다.근대라는 제도 속에서 사랑 또한 감시와 통제의 영역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음을 분석하는 푸코의 그 철저함은 정말 이 세상이 악몽이라는 절망감만을 우리에게 줄 뿐이다.반면 기든스는 자기 감시가 자기 반성과 성찰의 출발이 될 수도 있음을 비춘다. 그렇다.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게 적대적이고 모든 것이 허구이고 가짜라도 그래도 이 세상은 내가 발딛고 서있는 곳이고 그 어둠을 더듬거리며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그 자기 성찰의 노력을 ‘사랑’의 영역에서 추구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은 과연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끌어안는 이 혼란과 시행착오를 우리 모두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불안과 변화를 견디기보다는 주어진 틀을 지키는 방식의 편안함과 효율성에 우리 삶이 더 견디기 쉬울 수 있다.<국민일보 01/10/23 최혜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