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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위로의 칼날
글쓴이 김현진

 평소 누군가가 힘들 때 응원이나 조언들로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섰던 나는, 나에게 기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네가 힘든 걸 이야기할 때 나는 언제나 그 감정들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게 좋은 말들을 건넸다. 나를 참 좋아해주는 사람이라서,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더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조언들을 비아냥거리기만 하던 너에게 점점 환멸나기 시작했다.


 너는 점점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게 아니라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어른 같다, 생각이 깊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나도 아직 열일곱의 어린 사람일 뿐이었다. 투정까지 받아달라고 찡찡거리는 너를 보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었다.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을 꽉 막을 때마다 진정시켰다. 내가 너의 마음을 안아주지 않으면 네가 잘못될 것 같아서. 정말로 힘들어서 나를 찾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나의 감정들을 풀어내면 그저 가볍게 넘기는 네 모습 또한 싫었다. 나도 속상하고 힘들 때가 많은데 자신의 이야기만 풀어내고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네가 야속했다.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만 했더라도 여기까진 안 왔을 것이다. 처음과 다르게 나 혼자만 너에게 진심인 게 싫었는데, 자존심이 목구멍을 콱 막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의 성향이니까. 성향이 다른 건 잘못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원래부터 어려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너와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렇게 1년이 지나가며 다양한 생각들이 들었다.

    

 너의 말들 속 아직도 외모지상주의에 미쳐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 급을 매기고 평가하는 내용들이 들어갈 때마다 한심하고 불쌍해졌다. 신념처럼 박혀 있는 네 생각들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외모지상주의에 아직도 머물러있기에 자신을 더 싫어하게 되고, 결국 그래서 네가 우울하다는 것을 모른 채. 네 우울은 전부 네가 만든 거라는 걸 모른 채 세상만 탓하는 너를 보니 참 어린 애 같았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내 감정을 차분히 조심스럽게 글로 담아 보냈다. 하지만 너는 단답을 쓰며 너에게 계속 고민하고 보낸 내 시간과 마음을 모두 짓밟았다. 너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졌기에 난 대답을 하지 않았고, 며칠 뒤 너한테 먼저 연락이 온 걸 보고 기가 찼다. 평생 안 읽으려고 했는데 친구가 눌러버려서 어쩔 수 없이 답장 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여전히 삐딱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는 네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결국 참고 참았던 화산이 터지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넌 언제나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조언했던 말들은 하나도 듣지 않은 채 변함 없는 네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증오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나였지만 이번엔 날카롭게 네 말들에 대답했다. 넌 자신이 잘못해도 남들이 자신의 잘못을 꼬집는 걸 싫어했고 그 사람을 증오했다. 넌 그게 잘못 되었다는 걸 모르니 내 말이 곱게 들렸을 리가 없겠지.


 넌 난독증이 있는지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고, 토종 한국인이면서 이해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도중에 팍 지쳤다. 말해봤자 못 알아 들을텐데 내가 하나하나 짚어 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끝까지 자신에게 사과해주길 원하며 거친 말을 내 뱉던 너에게 사과했다. 진심으로 미안한 게 아니었다. 너랑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넌 더 짜증만 낼테니까. 내가 사과를 해주고 입에 발린 말을 하자 그때서야 나를 생각해주는 척 대하는 걸 보면서 역겨울 지경이었다.


 그 때 이후로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건네는 네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읽지도 않았는데 읽었는데 왜 답장 안하냐면서 화를 내는 네 모습을 보니 이젠 무서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집착이라는 생각은 안한 걸까. 평소 나는 이모티콘으로 대화가 끝나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그러지 않았다고 하며 나에게 변했다고 말하는 넌 정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너와 인연을 끊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해졌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난 더 이상 너와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싫다는 말보단 최대한 상처 받지 않게 말하기 위해 차분하게 보냈다. 하지만 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자는 거냐는 식으로 답했다. 정말 글을 못 읽는 건지, 아니면 정확하게 말해주길 바라는 건지. 결국 내 진심을 말했더니, 넌 끝까지 나를 비꼬았다. 원래 싸우고 나서 더 깊어지는 거 아니냐고. 넌 그동안 안 그런 사람들만 만났냐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는 잘 풀고 다 지내왔지만 그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했기에 가능했던거다. 하지만 넌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변하기만 바라는데 이 관계가 무슨 수로 유지될 수 있을까? 너라서 안 되는 거지, 내가 평소에 그런 사람은 아니다. 끝까지 여린 척을 하며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며 차라리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와 이런 싸움을 반복하며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매우 편하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까지 느낀다. 한 가지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그럴수록 몇 안 남은 사람들도 다 떠나갈 거라는 걸.


(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