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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제목 미래의 사랑하는 딸에게
글쓴이 강유미
안녕, 엄마는 과거에 있어. 편지를 쓰는 시간은 ‘현재’이긴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후는 그냥 아주 그리웠던 과거일 뿐이겠지.
갑자기 웬 쌩뚱 맞은 소리인가 싶겠지? 올해는 2013. 네가 태어나기 오래전이지. 이건 미래의 나의 사랑스러운 딸한테 열 아홉살의 엄마가 보내는 편지야.^0^ 이런 이모티콘 쓰는 것도 몇 살이고 나이를 먹어 주름살이 군데군데 배겨진 나에게는 어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넌 엄마의 이런 낯선 행동이 오글거려서 손발을 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몰라. 미래에도 오글거리다 이런 단어가 유행을 탈까? 또 어떤 신조어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지금은 ‘행쇼’ 이런 유치한 줄임말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어. 우리 엄마는 아주 신세대라서 이런 단어들 다 알고 계시는 데, 나도 너랑 소통이 잘 되는 신세대 맘이 되도록 노력해볼게.
엄마라는 이름을 달면은 꼭 엄청 어른 스럽게 행동해야 될 것 같지만 마음은 아직 열아홉살이라서 이 편지가 묘하게 어색하고 그렇네. 사실 나는 내 열아홉이, 내 젊음이, 내 청춘이 다 가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아. 초등학생 때도 고등학생인 나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의 엄마가 된 나를 그려본다는 건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야.
우리 엄마를 보면 꼭 그렇거든. 김명희란 이름 석자를 대신한 채 유미 엄마로만 살고 있는 것 처럼만 보여.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미 엄마’ 라고 불리거든. 그럴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물어도 보았어. “엄마, 엄마는 사는 게 진심으로 행복해요?” 조금 심오한 질문 같아 보이네.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했어. 성실하고 잘생긴 아빠와 결혼하고, 말 잘듣는 유미 같은 딸을 둬서 또 원하는 거 다 이루고 살아서 행복하다고 대답하셨어. 하지만 과연 나는 어떨까? 너의 엄마로 사는 게 나 강유미의 인생을 버리고 사는 거란 생각은 들지 않겠지만 그 어떤 허무함 없이 널 위해서만 올곧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아직 열여덟이라 잘 모르겠어. 사실 좀 무섭기도 해. 지금 당연하게 손에 쥔 젊음이 모래처럼 시나브로 빠져나간다는 게.게다가 난 살짝 이기적인 면이 있어서, 우리 엄마처럼 닭다리 두 쪽을 다 너에게 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생선 가시를 다 발라서 내 입이 아닌 네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는 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예쁜 옷 보면 내가 입고 싶지 딸 생각이 먼저 들까, 갖고 싶은 걸 다 양보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런 내 솔직함이 너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네가 열아홉이 되면 혹은 네가 이런 엄마를 이해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 편지를 반드시 전해줄거야. 지금의 내가 엄마의 젊은 시절이 궁금한 것처럼,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너에게도 이른 시절 네 아이에게 편지를 써보라고도 시킬거야. 이거 마치 타임머신 같을 거 같지 않아? 자신의 추억을 위해서 쓰는 거기도 하지만, 뭐랄까. 내 딸이 미래를 먼 것으로만 느끼지 않고 가까운 것으로 느끼면서 준비해갔으면 하는 마음도 커. 엄마의 미래도 이렇게 성큼 성큼 다가왔으니까.
성숙한 척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고등학생도 그렇게 철이 많이 든 나이는 아니야. 예전에 흥행한 인터넷 소설 뭐 귀여니 소설 이런 거보면 막 열여덟살부터 연애하고 하길래 열여덟이 엄청 큰 어른 인 줄 알았는 데 그냥 뭐, 똑같아.
난 너에게 울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물론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건 알아.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봐도 우리 엄마는 정말 군더더기 하나 없는 최상급 엄마거든. 마치 품질로 매기는 것 같아서 어감은 좀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사실 난 정말 잘컸어. 바르고 곧게. 자기 자랑 같지만 음 난 욕도 잘 안하고 못된 친구들이랑 어울린 적도 없고 막 나가본 적도 없고 엄마한테 대든 적도 거의 없고 집을 나가거나 하는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그런 짓들 싹 다 안했어. 엄마 속이 상할테니까. 사실 내가 잘 큰게 아니라 엄마가 날 잘 키운게 맞아. 하지만 난 너를 그렇게 잘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울 수 있을까? 엇나가지 않게.
너는 아들로 태어날까? 딸로 태어날까? 엄마는 딸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도 외동딸로 자라서 너도 외동딸로 키우고 싶어. 예쁜 옷도 샤랄라 하게 입혀주고 말이야. 이 편지 읽고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싶다하면서 왜 실천을 안해! 이러면 안돼. 엄마는 네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고, 비로소 너를 맞게 되면 누구보다 널 행복한 딸로 만들어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할거니깐.
너의 이름은 고운 순수 우리말 이름으로 하고 싶어. 아니면 좋은 뜻이 담겨있는 한자로. 엄마 이름의 뜻은 부드러울 유에 아름다울 미란다. 부드럽고 아름답다니, 정말 좋은 표현만 가득하지? 이름을 부르면 엄마 아빠의 사랑이 느껴져서 아주 좋아. 흔하지 않고, 인상 깊게 남을 수 있는 또 너의 성격과 얼굴에 걸맞을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줄게. 그럼, 미래에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