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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락산등정기-"암반에 자아(自我)를 새기며"
글쓴이 常天
도락산 등정기
"압반에 자아(自我)를 새기며 "
2003. 10.19
글쓴이 常天 허응만

1. 산행의 의미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지난날의 산행을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함이요. 나아가 건강한 자아(自我)를 얻기 위해 충북 단양의 월악산 자락인「도락산(道樂山)-해발 964m 」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2. 산행의 배경
노무현 정권의 '재신임문제'와 ' SK 그룹'의 회계장부조작으로 불법 조성한  수백억 대의 비자금으로 정치권에 정치자금 기부문제로 국정혼란이 가중되고, 취업 경쟁율이 수백대 일을 넘는 등 청년실업문제로 어수선한 일상이다. 이러한 후유증으로 취업을 못하거나, 수능시험이 다가오면서 심각한 시험에 대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하철 플랫폼(승강대기대)아래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안타까운 사연과 해외에선 중동 '이라크'에 대하여 미군이 '후세인 정권'을 강압 점령하였건만, 게릴라식 자폭테러와 매복공격으로 매일 수명씩 미군병사가 사망하고, 이에 당황한 미국 당국자들은 뒤늦은 '유엔의 이라크지원 결의안을 상정결의'하고, 각 나라에 이라크 과도정부수립을 위한 치안유지에 필요한 군 병력 지원을 호소하는 하는 등 어수선하다. 이에 지속적인 미국의 파병요청을 받은 정부 당국자는 '이라크 파병문제'로 정치권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여론몰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급격한 부동산 투기바람을 잠재울 묘책을 짜느라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기나긴 긴 장마로 멍든 들녘은 '힘 빠진 추수'로 울상이다. 잠시 마음을 재우고 산행 길에 자신을 돌아보고 새날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함이다. 이에 걸맞게 동삭산악회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하고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유서 깊은 '도락산'을 찾아보고자 한다.
3. 출발의 의미
화창한 아침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하늘과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이 무르익어감을 실감한다. 산행에서 먹을 먹거리를 분주히 채비하고 집을 나섰다. 상쾌한 기운을 맞는 날씨 덕에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기다리는 등산 회원들은 버스 문전에 서성이며 하나둘 달려오는 회원들의 그동안 안부를 전하며 정겨운 만남을 하고 있었다.  추석이다 무엇이다 해서 이런저런 사연으로 산행을 못한 분들은 오늘은 큰마음 다잡고 산행을 하러 나오는 듯했다.  그 동안 한 마을에 머물건만 같이하질 못한 반가운 얼굴들이며 새로운 분들도 가족 그리고 꼬마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늘 가까이서 산악회를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박 고문님'을 비롯한 모든 임원진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곤 버스에 올랐다. 일행 중엔 그 동안 평택시의 밝은 거리와 깨끗한 환경을 조성키 위해 밤낮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윤 종우' 계장 내외분도 같이하고 또한 타지에서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달려오신 분도 있었다. 매우 고마울 뿐이다.  
4. 등산을 떠나며  
38번 국도를 타고  안성을 지나 장호원 들녘을 가르고 있었다.  평택에서 제과점을 운영하시는 일행 중 한 분이 손수 호떡 빵을 준비하시어 모든 회원들에게 '나눔'을 베풀고 있었다. 생활이 어려운 시기에 갖가지 '요기 거리'를 준비하여 베풀어 오고 있는 것이다.  들녘엔 지난여름 저온으로 인한 냉해와 지루한 장마, 그리고 태풍「매미」로 인한 농작물의 저 성장으로 인해 곡물수확이 예년만 못한 현실에서도 농부는 한 알의 낟알이라도 거둘 양, 분주히 추수에 여념이 없었다. 버스는 어느덧 안개가 낮게 드리워진 '천둥 산'을 지나고 있었다. 길가에 머무는 나뭇잎은 누렇게 얼룩진 잎으로 탈색되어진 채 펼쳐지고 있었다.

[떡갈나무에 머무는 가을연가]
지난여름
손등에 적어 논 당신이여!
푸른 엽서에 묻어둔 사연을
와! 이제사 건네나요.
탈색돼 버린 엽서는
비애(悲哀)의 서글픔으로 다가옵니다.
반가움보단
슬픔이
나에겐 너무나 커 보입니다.

엊그제 변치 말자
다짐하였는데…
어느새
정겨움이 떠나는 당신이구려!
거세게 일던 바람에도 묵묵히 지키던 당신이
살랑 이는 가냘픈 소슬바람에도
힘겨워 몸 떠는 당신이네요.

마지막 여명(餘命)을 태우는 숨결처럼
헐떡이는 모습에
눈물로 새우는 밤입니다.
나에게 희망되고
용기 주던 당신이었는데…

내 곁에 머뭄이 지친 듯
가냘픈 몸매는
살랑 이는 바람결에도
힘이 겨운 듯
이별의 노래를 부릅니다.

탈색돼버린 엽서 한 장
머뭄 사랑 적어놓고
만남 이별 사기 어서
당신 곁을 맴돕니다.
정든 님은 늘 곁에 머물 거라고∼
천둥 산에 메아리칩니다.

'오웬 핸리'의 '마지막 잎새'에 이는 서정(抒情)이 마음에 타오르고 있었다. 나무와 잎새가 묵묵히 곁에 머물며 삶을 꾸린 혈육이 가을이란 문턱에서 마지막 생이별의 한(恨)을 부여잡고 바람에 흔들리는 자태(姿態)는 처연한 가을의 연가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구불구불 천둥산 자락을 지나 박달재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박달재 사랑을 남기며 ]
금봉아!
난 널 사랑한다고
밤마다 불러보던 내가 왔구려!
삶이 애달파도
사랑만은 변치 말자던
박달이가 왔소이다.

달밤에 수놓던 사연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떠난 님이여!
보고파서 뜬눈으로 지샌 밤
산야(山野)에 초목(草木)으로 뿌려서
애절한 당신 사연
오래∼오래∼ 전하리라.

여름 가고
가을 오면
온다던 님이시어!
낙엽만이
사연으로 내 곁을 맴돕니다.
탈색(奪色)돼 가는 흔적만이
추억으로 아롱져 머뭅니다.

애달픈 사연이 서려있는 박달재를 지나니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서리는 듯하다. 주막집 딸년(금봉)과 과거보러가던 '박달'선비와의 못 다한 애절한 연가를 아쉬워하는 듯 천둥 산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어 제천 I/C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단양으로 치달았다. 버스 안 일행들은 가을의 상념(想念)에 젖은 듯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며 일상을 잊고 있는 듯했다. '박 고문님'의 열성에 찬 안전운전을 통하여 우리는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공(時空)을 제공받고 있음에 다시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가을 색이 짙어 가는  중앙고속도로 주변을 감상할 즈음,  이름모를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환기구와 조명등이 터널을 지키며 돌아가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며]
어둠이 내리면
그을린 주마등이 내 곁에 머문다.
둥그런 착상에 안기어
마음으로 다가온다.
밝음을 선사하듯
다가오는 그대

저며오는 어둠의 공포를
광명의 빛으로 피어나
내 곁을 머물 지고
지나는 사연을 간직한 채
너는 알고 있겠지.
가슴에 묻어두고
묵묵히 지키는 벗이어서
늘 가까이 있어도
같이 있질 못하는 이 마음을
너는 알고 있겠지.

바람에 실려 온
매연을 안고
기름 냄새 풍미하는 너가
이곳에 머물어
불편타 말 한마디 아끼는 너로 구나.

지나는 사연들을 가슴으로 묻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  깊은 뜻
이곳에서 머물리라.

터널의 오묘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일 듯하다. 지나는 사람들의 사연을 지켜보듯 다가서는 터널 안 천장에 부착된 '조명등'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듯하였다.  감격한 마음으로  흥분하는 기운도 자신의 터널입구 들어가기 전의 '협소적 두려움'이 조명등으로 사라지며, 터널 밖의 광명이 또 다른 '트여진 해방감'과 함께 밝음을 선사하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 드디어 단양I/C를 나와 단양군 '대강면내'로 접어들었다. "이곳엔 천연 암반수로 막걸리(동동주)를 내려서 술맛이 최고!"라며 일행 중 한 분이 내려서 한 다발의 동동주 막걸리 병을 움켜쥐고 사들고 오질 않는가! 일행들에게 한 병씩 나누어주며 산행 길에 함께 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참으로 베푸는 산행 길이었다. 우리가 살며 이처럼 삶의 여정을 같이할 때마다 서로의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구석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한다. 우리는 통칭 '찡하다' 하지만 말이다. 이윽고 단양 언저리를 돌아 구불구불 계곡 길을 싸고돌 무렵  많은 산객들의 차량들로 길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매표소'라는 푯말과 '월악산 국립공원관리소'임을 밝히는 현수막들이 환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매표소 입구에서 정산을 하고 길가에 하차하였다. 계곡엔 다양한 돌로 나뒹굴고 있었는고, '갈수기(渴水期)'를 맞아선 지 계곡 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대로 하천에 놓여진 자연석들이 자연미를 더하고 있었다.

[계곡에 흐르는 자연미]
널브러진 너가 있어 좋다!
일부러 놓은 것도 아닌데
너만은 질서를 찾아
아름다움을 일구는 구나!
널찍한 기운을 내어서
물살에 실려와 머문 곳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내가 놓은 것도 아닌데…

뒹굴뒹굴 굴러서
너가 보고파서 왔다오.
이제사 너는 나를 찾는구나.
아뿔사
몸 사려 찾았건만
너를 보질 못해 애태웠소.
바람처럼 떠도는 사람아!
듬직한 기운을 달아서
내 곁에 머뭄이 어떨는지.

반짝이는 밤하늘엔
헤아리는 수많은 별을 보며
너만을 생각 했수.
아름다운 미(美)를 생각하며…
삶의 진실이
너에게 있기 때문이라오!

자!
자연에 이는 철학을 담아서
우리들의 삶의 찬가를 부르자.
이 생명 다하는 순간에도
아름다울 이름으로∼

일행은 가방 끈을 걸러 매고 학교를 가는 양으로 삼삼오오 짝을 이룬 채 산행을 재촉하고 있었다. 많은 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오름에 산행의 체증(?)을 느끼는 듯하다. 저마다 삶의 찬가를 부르기라도 하려는 듯 앞다퉈 정담을 나누며 오르고 있었다.

[오가는 즐거움이 있어라!]
정담(情談)이 머무는 곳
오가는 산객마다 즐거움이 있어라.
털털한 몸맵시가 좋아서
너와 함께 함이다.
좁다란 길에서
만나는 정 있어 이곳을 찾는가보다.

길가는 즐거움이 머무는 곳
반기는 정(情)을 두고 가려무나!
늘 가까이 한다고 말하려 해도
너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이곳을 불편타 하였지.
길가는 즐거움으로 삶을 노래한다고
깨달음이 있다고 말하였던가.

길이 있어 도(道)가 있고
깨달음이 있어 락(樂)이라 하였던가.
즐거움을 아는 깨달음이라
진정으로
마음으로 도락(道樂)에 머물도록 하는가보이!

많은 산객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곳을 머무는 듯하다. 조선조 재상이요 학문적 위상을 드높이던 유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이곳에 머물며 널브러진 바위와 소나무에 매료되어 좁다란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길가의 오묘한 돌과 나무에 매료되어 즐거움을 얻고 학문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다."하여 도락산(道樂山) 이라 불렀다 한다.  오를 무렵 조용한 자그만 암자가 눈앞을 가르고 있었다.

[암자에 비는 용(龍)자]
님인들 무엇 하랴.
서글픈 연가를 부르는가.
이곳에 정일랑 붙여두고
즐거움을 나누소서.
불타는 정열로 용트림에
자신을 태우고
하늘로 향하는 배움 주소서

하늘 나는 용마(龍馬)로
상아탑(象牙塔)을 쌓아서
삶의 즐거움이 있어라!
자, 우리 이제는
깨달음을 향한 발걸음으로
당신 곁에 머물어
즐거운 산행으로 맞아주소서∼

암자 불상 뒤엔 '용트림의 형상'을 한 채로 신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신선 '용(龍)'은 신성한 영역을 뜻하는 우상의 으뜸을 이루는 신이다. 따라서 왕이나 황제의 표상은 언제나 용(龍)과 함께 동일 시 하였다. 따라서 왕이나 황제가 사용하는 모든 물상은 반드시 '용의 형상'을 그려 넣었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 불도의 예를 해본다. 이어 약수물을 한 모금 적시곤 산행을 계속하였다. 여름에 잦은 비로 인하여 초목의 연약한 잎새로 성장해서 인지 단풍으로 머물지 못하고 낙엽으로 땅에 머무는 지라 앙상한 가지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따금씩 매달린 흔적만이 쓸쓸한 가을임을 표할 뿐이었다. 바닥은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소나무뿌리에 뒤엉킨 채  공존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삶의 처절한 애정을 보는 듯하다.

[암반을 벗 삼아서]
얽힌 타래 풀 듯
내려앉은 폼 상(象)이 단아(端雅)한 내음을 풍긴다.
처절한 삶의 형상을 우려내 듯
그윽한 자태(姿態)를 남긴다.

그윽한 몸 향을 지키려
너 곁에 머물거늘
어이해서 그대는
내 길을 막는가요.
찾아가는 길손은 나보고
찬사(讚辭)를 불러대어
산야(山野)에 칭송하는데 말이죠.
목말라 애태우는 이내심정 알랴마는
물 길 찾아 구만리(九萬里)
당신 몸속을 헤맨다오.
힘들어서 한숨짓고
몸매는 뒤틀어서
숨통이 쥐어온다.

지나는 벗들은
내 몸보고
함성을 질러대건만
어이해 당신은 몰라주나요.
나는 여기 머물거나
물 떠다 건네주오.

암반에 뒤엉킨 나무뿌리의 생명력에 놀라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뒤엉킨 모습은 자연이 건네주는 천하 명품(天下名品) 그 자체였다. 산객들은  가파른 암벽과 뒤엉킨 나무뿌리를 발판 삼아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거운 산행을 통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암' 선생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번잡한 일상은 산행을 통한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오를 즈음 헉헉대는 모습이 '후련함'을 토해내고 있는 듯했다. 바닥엔 떨어진 낙엽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가을은 낙엽을 머금고]
가을에 남긴 사연일랑
한 손 그득 담아서
풍덩풍덩
산야에 뿌리어서
너의 소식 전하마.
잔잔한 너의 미소를 머금고
처량(凄凉)한 기운을 돋운다.
나 너 곁을 떠난다해도
너 곁에 머물지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솔솔한 바람결에
지난날의 추억으로 남겨서
한 줄기 삶의 궤적(軌迹)을 적는다.
지난날의 회고(回顧)를 못 다한 사연이라 부름에
아쉬워 아쉬워서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의 고별을 때깔 옷 고쳐 입어
화려한 삶의 찬가를 부른다오.
지나간 못 다한 사연일랑
살포시 내어 밀어
새날에 돌아와 나누리.

잠시 주변에 머물지니
차가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기운을 달아서
너에게 힘이 되리라.
싸늘한 기운에 내 몸을 누운다.
당신 품으로∼.

일행은 산등성을 넘고 어느덧 정상의 발치를 밟고 있었다. 정상 언저리엔 화강암으로 커다란 동산을 이룸에 감탄사의 연발이다. 듬성듬성 돋아난 소나무는 세월의 흐름을 표하는 듯 자연미를 바위와 함께 '절묘(絶妙)한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질 않은가. 아름다운 천상미(天上美)를 이루고 있었다. 펼쳐지는 산야의 풍치(風致)에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젖어드는 땀방울은 잔잔한 바람결에  씻기 우고 있었다. 세월의 영생(永生)을 표하는 듯 껍질이 하얗게 드러난 고목(枯木)이 바윗돌에 조아린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고목(枯木)에 얼굴을 묻고]
그리움을 남긴 채
백발 되어 머무는 곳
고뇌(苦惱)의 과거를 담는다.

반짝이는 발자욱을
뜰 안에 남기어 갔건만
돌아본 흔적 없이 발치만을 남기어
홀연히 떠나 버린 님이여!
발치에 옭매인 사슬만이
내 곁을 맴돌 뿐
가까이서 이 몸을 추스르던
너의 자태는 보이질 않는 구려.
내 주변에 머문다고
손세며 다짐하던 너였는데
병든 내 몸을 보더니만
말없이 떠난 자리
삭막만이 머물고
삭정이로 허연 속살 드러내어
세월이란 역정(歷程)으로
지나는 영혼을 담는다.
그윽한 몸 향(香)을 담아서
지난날을 헤아린다오.

일행은 갈래길에서 엉거주춤 둥그러니 앉은 채 산행 요기를  하였다. 다양한 저마다 준비한 음식들로 정겨움을 함께 하였다.  '상선암'을 바라보며 쇠밧줄과 난간으로 이어진 곳을 지나자 '중선암'이 펼쳐진다. 바위벽에 돋아난 소나무 자태는 저마다 독특한 형상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혼을 앗아가고 있었다. 펼쳐지는 정취에 젖어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이 없다. 처연한 자연의 섭리에 그저 말없이 따른다 하였던가. 자연경관에 매료된 듯 산객들은 내려갈 줄 모르고 멍∼한이 서서 자신을 잃은 듯하다. 이러니 '등산체증(?)'이 생길 수밖에…. 천천히 그것도 그냥 제자리에 서있는 듯, 밀려 내려가는 듯 하다. 저절로 주변의 '자연감상'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었다. 하선암을 거쳐 내려올 무렵 바윗돌에 돋아난 초목이 고사목과 함께 세월의 형상을 말하는 듯 갈라진 틈 사이로 지키고 있는 모습에 또 한번의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큰 선돌 바위'란 푯말이 있고 소나무의 자연분재(?)가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

[바위벽에 기대선 세월]
초연한 자태가 좋아서
이곳에 머뭅니다.
지루하지 않으나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고단한 일상에 조용히 머물 뿐입니다.
한가로운 한 낮에도
목이 탑니다.
그을린 손등엔
갈라짐만이 내 곁을 머뭅니다.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몸속을 파고듭니다.
손 시려 할 때도
차가운 냉기만을 건네 줄 뿐
따스한 온기는 없습니다.
손 비비려 해도
조여드는 발치에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몸부림에
뒤틀린 몸매가
일그러진 채
세월의 나이를 더해갑니다.

성찰(省察)의 시간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말없는 묵상(默想)에
그저 조아릴 뿐입니다.
폄훼(貶毁)하지 않는
청명(淸明)함으로
번뇌(煩惱)를 씻어 봅니다.

속절없이
애태우던 사연들이
회한(悔恨)의 눈물 되어
마음으로
가슴으로 지워집니다.
하나 둘∼

이 몸은
해맑은 기운으로
영롱(玲瓏)한 자태로 피어납니다.
영겁(永劫)이란 이름으로
다시금 세월의 나이를 더해갑니다.

어지러운 일상을 탈출하는 시간입니다. 대자연의 철학을 잠시 탐닉해보노라니  지난날의 속절없이 뛰놀던 나약한 기운이 참회(懺悔)로 거듭나고 있질 않은가. 이처럼 좋은 일상을 같이 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들의 만남을 더욱 빛냄이 아닐까. 천천히 하산하며 중간중간 놓여진 계단과 암석들로 '발 아파옴'이 더해가고 있었다. 쉬엄쉬엄 가다보니 어느덧 해는 서편 산중턱마루에 기대고 있었다. 일행들 후미에서 이런저런 세상사 상념(想念)에 젖다보니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난간을 건너 하산을 재촉하였다. 난간은 철 빔으로 설치하고 나무상자로 주변을 애워 싸서 나무로 놓여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자연 친화적 조성물 설치·관리를 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토속 음식점에서 주인인 듯한 중년 남성분이 단아(端雅)한 섹스폰 연주로 '맛깔스런 써비스(?)'를 하고 있어 발길을 멈췄다.  주변 산객들은 걸쭉한 막걸리와 버섯파전으로 곁들여 '하산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고, 연주가 끝날라치면 '앵콜∼'함성과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이에 정성을 다하는 듯 힘들여 섹스폰 연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울려라, 섹스폰이여!]  
뿌움∼뿜∼ 뿜∼
터질 듯 밀 듯
울리는 장단에
속 시원함 불러내어
가슴을 우려내는 구나!
입가에 머무는
볼기장단 뿜어오고
거친 호흡은
한 입에 머물러
후련함을 토해내는 구나.

곁들여진 전자올겐 장단은
내 마음 별이 되어
동심(童心)을 우려낸다.
화음으로 피어서
섹스폰 소리에 가을이 저문다오.

뿌움∼ 뿜∼ 뿜∼
쁘뿌음∼ 뿜우움∼
걸쭉한 한잔 술에
미소를 머금어서
잔잔한 즐거움 있어라.
가을에
이 가을에
삶의 노래를 부른다.

섹스폰 연주에 넋 잃고 바라봄에 나를 잊고 있었다. 참으로 선율이 흐르는 음률은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줌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어 하산하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산행 중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하산 길로 달려가선 더듬더듬 찾아 돌아왔다. 일행은 버스 안에서 찾아서 무사히 돌아온 분에게 환영의 뜻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다림]
차칵∼ 차칵∼
손 모아 창밖을 본다.
어스름이 내면(內面)을 스치며
설레임에
콩닥∼콩∼닥∼
심장은 멈출 듯
고요한 침묵(沈默)이 흐른다.
지켜보는 눈가엔
어느새 짓눌린 자국이 인다.
보일 듯 말 듯
서성이는 불빛은
어둠을 타고 흐른다.
홀연히 떠남을 아쉬워하며
넋 놓아 바라본다.
희미한 그림자가
골목을 헤매일 듯
어스름이 찾아든다.

놀란 눈을 휘둥그레
밝혀본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것을…
공연한 심성을 깨우나보다.
내면에 숨겨진
어둠이 찾아들고
침잠(沈潛)이 깨진다.

***,*** 야!
헐떡이는 숨결 따라
심장이 고동친다.
하지 못할 감정이 북받쳐
파르르 떨리운다.
온몸에 흐르는 전율(戰慄)은
홍조(紅藻)를 띠우고
흐르는 핏기를 세운다.

휘∼잉∼,휘잉∼
불현 듯 나타난 형상!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님 이라고!?
님∼이라고요∼.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안도의 숨으로
반가움이 서려들고
사르르 잠이 든다.

일행들의 무사귀환 기도하며 기다린 보람이 있어 더욱 좋았다. 모쪼록 서로가 이해하고 베품의 미덕이 존재함을 절감하며 늦은시간 감내해준 산악회원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피곤한 몸매를 차창에 맡긴 채 수안보 -충주-장호원을 거쳐 늦은 시각 평택으로 돌아왔다.

5. 등산을 마치며
이번 등산은 독특한 체험을 한 듯하다.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깨닫고자 하였던 등산이리라. 반가운 만남을 통한 일상의 번잡함을 달래주고 새로운 도약의 힘을 얻고자 하였던 우리들이기에 더욱 뜻깊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할 수있어 좋았다. 서로의 불편을 참고 이해해주려는 동삭 회원님 들의 무궁한 발전을 빌어본다.  늘 같이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시는 모든 분들게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3. 10.19
가을이 저무는 밤
常天 허응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