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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리산 등정기-"낙엽에 시상(詩想)을 그리며 "
글쓴이 常天
가리산 등정기
"낙엽에 시상(詩想)을 그리며 "
2003. 11. 2
글쓴이 常天 허응만

1. 산행의 의미
늦가을 정취를 맛보며 지난날의 아쉬움을 달래보고 자신의 삶에 흔적을 보듬어 보고자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 위치한 「가리산(-해발 1,051M)」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2. 산행의 배경
'불법대선자금 모금'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법안 상정을 위한 한나라당의 집요한 요구와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검찰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 중동에선 '이슬람안식일'을 맞아 후세인 추종자들의 유도탄발사로 인한  미군 헬기추락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과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불안한 치안을 고려하여 일부 나라에선 참여의사를 번복하여 파병취소 또는 관망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우리 정부당국자는 파병문제에 대해 미국당국자간의 막바지 조율에 임하여 5천명 선에서 민간인과 군 병력을 활용한 지원에  가닥을 잡고 있는 듯하다. 또한 부동산 급등 및 투기근절대책을 '부동산 공개념'의 조속한 도입을 통한 서민생활 안정을 꾀하려는 당국자의 물밑 작업이 윤곽을 드러나고 있다. 3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 일에 대한 당사자들의 초조함을 더해가고 있고, 환절기를 맞은 각종 안전사고(교통 및 건설 등) 인명피해가 날로 심각하다는 뉴스로 장식하고 있었다.  참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들의 본연을 찾아보고자 한다.  

3. 출발의 의미
희미한 안개가 낮게 드리워져 하늘은 흐리고 침침한 기운이 감도는 아침이다. 찌푸린 하늘은 밝은 기운보단 침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일정이 변경되어 등산한지 2주일만에  잡힌 것이다. 피로가 덜 풀린 탓일까 몸이 무거운 듯하다. 아침에 여장을 꾸리고 기다리는 버스로 나섰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질 않는다. 일전의 산행이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갖가지 행사(평택시 건강달리기 대회, 집안친지 결혼식 등)에 참여하느라서 인 듯하다. 간만에 보는 얼굴들이 보일 뿐이었다. 30분 가까이 되어서 절반만을 태운 채 열 댓 명의 회원들로 회장과 재무담당 등 행사관계로 불참임을 밝히는 총무님의 김빠진 넋두리로 출발의 의미를 둘 뿐이었다. 썰렁한 채로 맞이하는 출발분위기에 마음 한켠에 쓸쓸함이 머무는 감정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일행 중 대야산 등정에 끝까지 혼신의 등산을 마치신 오십대 중 초반임에도  등반대열에 동참하신 회원님들께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지는 낙엽이 아닌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4. 등산을 떠나며
막바지 가을 등산을 떠남인 듯 슬쓸한 심정이다. 곁에 다정다감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선 지 무언가를 놓고 온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살면서 이처럼 울적한 기분이 드는 것은 계절의 탓도 있는 것일까? 묘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박 고문님'의 밝은 표정과 총무님의 반가운 얼굴을 대하면서도 "오늘은 참여하신 분이 열여섯 분입니다요."라며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맥풀린 듯한 표정을 짓질 않는가. 실로 이러한 현상은 이따금씩 발생하였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밝은 표정보단 어두운 면이 많이 서려 있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텅 빈 들녘만이 늦가을의 풍경을 더하고 있었다. 쓸쓸한 떠남의 빈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이해인 님의 싯귀가 내 마음에 머물고 있었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詩: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텅빈 안성 들녘을 지나며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자연의 이치에 새로움이 터 오고 있었다. 있음과 없음의 교차 속에서 삶의 흐름을 대신하고 있었다.  '김용화 님'의 낭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대와의 가을]
詩: 김용화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가을이 가득하므로
감동하며 지내리다

차가운 바람 한줄기에도
가을이 풍성하므로
내 마음 황금 들녘입니다

가을비 내리는 날엔
더욱 가을에 젖고 젖어
그대를 기다리리다

어쩌면 가을에 젖기보다
그대에게 늘 젖어 있어
풍성한 가을이겠지요
따스한 가을빛 내리는 날
그대에게로 스며들고 싶습니다

이 혹독한 계절에는
살고자하는 사랑은 죽고
죽어야하는 슬픔은 계곡을 이룹니다

중부고속도로를 따라서 펼쳐지는 들녘은 겨우살이 준비에 분주한 농부의 손놀림과 일전의 여주선이 지나던 빈 교각만이 덩그러니 놓여진 채, 가을의 연가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시인' 도종환 님'의 가을 내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가을 사랑]
詩.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들꽃에 이는 밝음이 있기에 항상 그리워하며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지난날의 추억이 아련한 그림자로 피어나는 그리운 계절입니다.  '김용택 님'의 시상이 떠오릅니다.

[너무 먼 당신]
詩: 김용택

초승달이 저녁 하늘에 걸리고
풀벌레가 밤을 새워 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멀고
저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내게 너무 무겁습니다
금 새 질 달 보며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강에 쉼 없이 흐르는
물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산과 들에 내리는
비이고 싶습니다
당신의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나는 아침 이슬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마음 가장 자리에 앉는
눈송이이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 앞에 달빛이고 싶고
잠든 당신의 곁에 머무는 바람이고 싶고
물가에 앉아 물 보는 당신의 그 마음을 거드는 나는
잔물결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세상에 당신을 가두고
당신의 세상에 내가 살고 싶습니다.

비닐하우스와 텅빈 들판에 이따금씩 흩날리는 바람만이 마지막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만남과 이별]

곰살스레 만지는 햇살
둥그런 얼굴을 마주하고
따사로운 정을 남긴다.
공상에 머문 햇살
그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내마음을 남긴다.

중게중게
허리두른 아낙네
하나둘 정담으로 추억을 사른다.
햇살에 피어나는 얼굴은
웃음으로 번지어서
한쪽눈을 사르르 윙크하고
말이 없다.

밝음은 구름에 가려져 어둠이 나린다.
때깔에 물든 옷감
주름에 젖어 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
힘에 겨워 서투른 솜씨로
텅빈 가슴을 채운다

산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을 초목에 비춰보고 앙상하게 매달린 빛바랜 잎새를 보며 산에 오름을 즐기는 것이 있으리라. 도종환 시인의 '산 오름' 정서가 머문다.

[산을 오르며]
詩: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가을을 담는 우리들의 마음처럼 늘 변함없이 곁에 머물길 빌어본다. 어느덧 횡성 교차로  중앙고속도로를 접어들었다. 주변에 아직도 물이 짙게 드리워진 채 말라진 낙엽으로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사랑으로 머물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런 사랑이고 싶습니다]
詩: 양현근

사는 일이 쓸쓸할수록
우리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파란 풀잎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직은 켜켜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온기없는 손금들만 저리 무성할수록
제 몸을 스스로 밝히는
불땀좋은 사랑
서로의 젖은 어깨 기대며 돋아나는
들풀들의 단단한 노래가 부럽습니다

치렁치렁 내걸린 어제의 훈장과
오늘을 매단 장식이 아니더라도
지상의 엉성한 일상을 빠져나와
젖은 하늘을 다독여 줄
그런 진득한 사랑하나 키우고 싶습니다

부질없는 소주 몇 잔에도
외짝가슴은 이리 따뜻해지는 것을
쉬이 덥혀지지 않는 세상을 지나
오래도록 수배중이던 사랑
이제 그 섬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근처의
그런 사랑이면 족할 듯 싶습니다.

피안의 언덕은 먼동 트기 전이고
극락정토 예서 멀어도
아직은 모든 것이 극진한 탓입니다
기억하건대
세상은 아직 파란 풀잎입니다.
    
가리산은 산림청에서 자연휴양림( 1995년 지정)을 조성하여 갖가지  편의 시설이 한창 설치 중이었다. 산림의 효율적 관리와 활용을 통한 계몽적 성격의 삼위일체형 레저 문화를 이끌어내는 산림청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정상 봉우리는 사람의 '가리마'를 가른 듯하고 흰 구름이 걸쳐진 모습에 찬사를 불러내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브리지스'의 시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詩. 브리지스

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찾으며 또한 숭배하느니
그보다 더 찬미 할것이 무엇이랴
사람은 바쁜 나날 속에서도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영예로운것

나 또한 무엇인가를 창조하여
아름다운 창조를 즐기려 한다
그 아름다움이 비록 내일 오게 되어
기억에만 남아 있는
한낱 꿈 속의 빈말 같다고 해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산을 찾는가보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적 아름다움을 찾아서 말이다. 이는 산을 오르는 즐거움이 있어 더욱 좋다. 그대로 놓여짐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자 함이련다. 만남을 통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헨리 롱펠로우' 시상처럼 말이다.

[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詩: 헨리  롱펠로우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나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에 별같은 사람을 만나고싶다.

온갖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림없이
언제나  제 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싶다.

언제나 마음을 하늘로 열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싶다.

오늘 거친삶의 벌판에서
언제나 청순한 사람으로 사는
사슴같은 사람을
오늘 만나고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화해와 평화스러운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싶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싶다

아침 햇살에 투명한 이슬로 빤짝이는 사람
바라다 보면, 바라다 볼수록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싶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 않으면서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하나
고이 간직 하고싶다.  

입구에서 정산을 하고 산림욕장 숙소공사가 한창인 입구를 지나자 '발바닥 맛사지 황톳길'을 조성하느라 분주하였다. 산책길을 따라 올라서니 낙엽송군락이 듬성듬성 황금색 단풍으로 형상을 이룬 채  졸참나무 잎새는 바람으로 낙엽되어 산야에 흩뿌리고 있었다. '정호승 님'의 낙엽으로 시상이 머물고 있었다.

[가을에 당신에게]
詩: 정호승

낙엽 하나 떨어지면
온 세상에 가을이 오듯
목숨 하나 떨구고
온 세상에 사랑이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 나라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올바르게 사는 일을 가르치기 위하여
올바르게 죽는 일을 가르치는
그를 따라서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밤마다 둥근잎 느티나무 아래 앉아
별들의 종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기도하는
사랑의 계절을 이 땅에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아름다워라.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언제나 눈물 너머로 보이는 이여
끝끝내 인간의 사막을 걸어간
걸어서 하늘까지 다다른 이여
그를 따라 사는 자는 아름다워라.

낙엽에 사연을 묻으며 우리는 하염없이 한해의 덧없이 지나옴을 후회와 다짐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좁다란 산행 길에 쌓이는 낙엽을 밟으며 한 가닥의 추억으로 사기고 있었다.

[낙엽에  시상(詩想)을 그리며]

하나 둘 정담이 머무는 곳
바람결에 흩날리는 사연을 안고
알알이 맺히는 정을 사긴다.
누가 무어라 한들 그것은 개의치 않으리라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하여 머물뿐…

떨어지는 낙엽마다  시를 남기고
마음을 심는다 온산야에…
정갈한 맘으로
사쁜히 즈려밟는 걸음마다
시정(詩情)을 띄워서 추억을 새긴다.

걸음걸음
시를 쓰고 추억을 남기어 가을을 뿌린다.
산야에 시를 남겨 뿌려두고 마음을 심는다.
이 다음에 그리워하며 부를이름으로
한걸음 한걸음
가을을 부르는
햇살에 머무는 시상으로
낙엽을 적는다.  

가는 길가에 시인 윤동주님의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와 노천명 시인의 '사슴'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널빤지에 적어놓아 지나는 산객들의 마음에 가을의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달랑달랑 매달린 채 힘겨워하는 갈잎을 보노라니 세월의 덧없음을 알 듯하다. 내 마음 갈 숲에 머물며 지난날의 해맑은 서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詩: 이해인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 잎 두 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오

낙엽 빛깔 닮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워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 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계곡은 가물어선지 물 흐름이 빈약하고 암석들이 아무렇게나 지난 장마에 휩쓸린 듯 어지러이 흩어져 볼폼 없이 놓여져 있었다. '장구실' 골짜기를 따라서 설치된 지 오래인 듯 속이 썩어 흐물 거리는 불안정한 나무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난간을 지나며]

산객의 마음이 머무는 난간에
지나간 세월을 본다.
수없이 지났을 발걸음
땀으로 얼룩진 손때를 남긴다.

기우뚱기우뚱
내 곁을 지나면
너의 몸에 기운을 돋우고
사뿐히 기대어
지난날을 헤아려 너의 얼굴을 본다.

늘 변함 없는 모습으로
반기는 심상을 이끈다.
잠시 머물며 지나는 당신을 벗삼아
불러보는 정겨움을
너는 오늘도
이곳을 지키며 내일을 맞이하겠지.
가리산 정상을 바라보고
우리들을 말하겠지…

산 계곡을 파고들수록 졸참나무군락과 인공 숲을 조성한 낙엽송군락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커다란 나무로 양분되어 있었다. 오를수록 낙엽은 길가에 수북히 장식을 한 채로 우리들의 산행에 가을의 심상을 불어넣고 있었다. '송해월 님'의 시상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 너를 놓으려 한다]
詩: 송해월

이제 너를 놓으려 한다
태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던 간밤엔
기도하는 이처럼 골방에 앉아
내내 생각했다

이전에도 없었던 감정의 사치
그 외에 무엇이 더 있다고
늘 가슴이 젖어
햇살이 쨍한 날에도 코끝이 찡하고

고운 하늘빛
수면 위로 여울지는 물 그림자 위를
냉랭하게 쓸고 가는 가을 바람처럼
앓는 소리로 울던 쓸쓸한 날들
이제 너에로 부터 돌아서려 한다

너는 절벽이다
너는 애초부터 바다 한가운데
아름답게 떠있는 절벽의 섬

네 안에서 종종 절벽을 만날 때마다
네 속에 있는 또 다른 길들을 찾았지만
끝내 이르는 곳은
어쩔 수 없는 절벽이었다

난 아찔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투신하지 않으련다
네가 만약 동산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 열매
한 입만 베어 물게 했더라면
아니 아니

일행은 세월의 만남과 이별의 만감 속에서 아쉬워하는 발자국의 흔적을 말없이 남기고 있었다. 만남 속에서 맺어진 인연이 헤어져야만 하는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느새 몸엔 땀 내음 그윽하고 흥건히 젖어 든 몸매를 추스느라 애를 태우는 일행들의 모습에서 산행을 통한 고뇌의 환희를 만끽하며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계곡에 잠시 머물며 차가운 계곡 물에 손을 씻으며 깊어가는 가리산의 풍치(風致)에 젖어 있었다. '서정윤 님' 시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대를 사랑하는]
詩: 서정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빛나는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따스한 가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와 잎, 뿌리까지 모아서
살아있는 나무라는 말이 생깁니다.
그대 뒤에 서 있는 우울한 그림자,쓸쓸한
고통까지 모두 보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전부로 와 닿았습니다.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그대가 완벽하게 베풀기만 했다면
나는 그대를 좋은 친구로 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대는 나에게
즐겨 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 두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이 될 수 있겠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가다 쉬며 나름대로의 준비한 간식거리로 산행의 피로를 달래주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제공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보며 나누는 즐거움이 이곳에 머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참으로 즐거운 산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는 길 자락에 고목으로 급조된 조잡한 통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대면서 숨가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서로 격려의 말로 깊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
詩: 원태연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부터
그것이라도 바래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며
슬프디 슬픈 사랑으로 기억 속에 남아
그 가슴 촉촉히 적시울 수 있게 되기를
이룰 수 없게 된 사랑을
대신해 바래야 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 눈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기를
참으로 부질없음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으며
진작부터 그런 바램으로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애원이라도 하며 바래야 했다.

참나무엔 푸른 이끼 되어 세월의 덧없음을 표하는 듯 홀연히 지나는 산객의 마음을 앗아가고 있었다.

[기 다 림]
詩. 모 윤 숙

천 년을 한 줄 구슬에 꿰어
오시는 길을 한 줄 구슬에
이어 드리겠습니다.

하루가 천 년에 닿도록
길고 긴 사무침에
목이 메오면
오시는 길엔
장미가 피어
지지 안으오리다.

오시는 길엔
달빛도 그늘지지 않으오리다.
먼 나라의 사람처럼
당신은 이 마음의 방언을
왜 그리도 몰라 들으십니까?

우러러 그리움이
꽃피듯 피오면
그대는 저 오월강 위로
노를 저어 오시렵니까?

중턱에 이를 무렵 계단식으로 조성하여 산사태를 방지하려는 흔적이 엿보이는 졸참나무군락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자연림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일행의 마음을 끌고 있었다.  옹이 박힌 참나무 가지는  뒤틀려 엉클어진 형상을 이룸에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듬성듬성 기생식물인 '겨우살이'가 질긴 생명력을 키우며 참나무에 빌붙어 계절에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푸른 색채 줄기를 띤 채 매달린 모습에 그저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척박한 생존환경을 홀씨로 옹이된 채 썩어 가는 참나무 가지에 번식하고 나무의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묘한 감정이 일고 있었다.

[나로 인해 아파하지 마라]
詩: 이정하

내가 그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그대에게 아픔만 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차마 그대에게 다가설 수는 없지만
내 안에서 그대를 추억하고 내 안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는 일이야 어쩔라고요

그리하여 아픔 또한 순전히 내 차지입니다
그대 몫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대가 마음 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혼자 그리워하다가 나 혼자 괴로우면 그만
그대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덤덤 하십시오

그대가 나로 인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가 나로 인해 행여라도 고민스러웁다면

그 자체가 내겐 더 괴로울 뿐이니
그저 내 삶에 스치고 지나가는 한 사람 있었구나

그렇게만 여겨 주십시오
나로 인해 절대 아파하지 마십시오

삶은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던가. 자신이 존재함은 남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이 자신의 힘만으론 아니 되고 이 또한 존재하지 않으리. 항상 내가 존재함은 남의 배려가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는 통상 살면서 흔히 잊곤 한다. 이러한 생활의 논리를 우리는 일찍이 깨닫질 못하고 자신만을 탓하며 지내온 것에 대한 자책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詩: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 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 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민족의 정서를 일깨우던 '한용운 님'의 서정이 가리산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일행은 수북히 쌓여 가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정취에 빠져들고 있었다.

[낙엽을 밟으며]

저벅저벅
사랑을 나눕니다
지나온 삶을 노래합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을
하지만
슬퍼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각사각
사랑을 속삭입니다.
애타게 불러보는
당신을 그립니다.
지난날의 아쉬움이
마음으로 떠돕니다.

우두둑우두둑
다가올 날을
헤아립니다.
아무도 찾아보지 않은…
그러한
만남입니다.

사르르∼사르르∼
온몸을 파고듭니다
다가올 날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대는 새 생명이 잉태하고 있음을
이제사
마음으로 헤아리나 봅니다.  

가을엔 단풍이 있기에 낙엽이 머물기에 낭만이 있다고 하였다. 붉게 물들이던 순간은 짧고 낙엽이 머무는 시간은 길다. 우리는 짧은 여운을 남기려 단풍 찾아 이리저리 휩쓸리며 자신을 돌아보질 못하고 만남과 아쉬움의 탄성만을 부르짖을 뿐이었다. 하지만 낙엽이 머무는 산행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진한 여운을 선사하고 있질 않는가. 낙엽이 머무는 산행이 이처럼 우리들의 상념을 앗아가고 있음은 마음 한구석에 분명 무엇(?)이 존재하고 있음이 아닐까.  한 두 잎새만이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채 텅빈 하늘을 내보이는 졸참나무의 다양한 형상을 바라보며 산행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느덧 일행은 정상 언저리 바위벽에 잠시 머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힘들여 올라와 머물며 함께 하는 산행 도시락의 참 맛은 그 무엇과도 비유할 수 없는 것이리라.  정겨운 만남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이어 노약자의 등산을 금하는 푯말과 함께 엉성하게 놓여진 밧줄을 타고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헉헉대는 몸놀림과 가벼운 신음(?)과 어우러진 등산이 가을 산야를 메아리치고 있었다.

[멈추지 말라고]
詩: 정공량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길은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은 그 어디까지 우리를 부르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내일이 있기에 여기 서서
다시 오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누가 밀어내는 바람일까
흐느끼듯 이 순간을 돌아가지만
다시 텅 빈 오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겨집니다

내일은 오늘이 남긴 슬픔이 아닙니다
내일은 다시 꽃 피우라는 말씀입니다
내일은 모든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먼 길입니다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는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힘들게 올라오니 안개 자욱한 기운이 산야를 드리우고 초목이 바위벽에 뿌리를 엉퀴어 깊게 조아린 모습에 멍하니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유치환 님의 '생명의 절규'가 가리산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생명의 서]
詩: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놀라운 생명력은 일행에게 다시금 삶의 철학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이어 가파른 절벽을 한 가닥 동아줄에 몸을 맡긴 채 막바지 '정상(頂上)'을 도전하고 있었다. 커다란 화강암으로 형성된 돌무더기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의 철학]
詩: 조병화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쉬임 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일행은 잠시 바위벽에 조아린 초목에서 '조병화 님'의  삶의 철학을 가슴으로 사기고 있었다. 이윽고 정상에 오르니,  소양호와 3개 지역(홍천군, 인재군, 춘천시)을 아우르는 산야가 펼쳐지고 있었다.  

[돌의 노래]
詩. 박두진

돌이어라. 나는,여기 절정(絶頂).
바다가 바라뵈는 꼭대기에 앉아,
종일을 잠잠하는 돌이어라.

밀어 올려다 밀어 올려다나만 혼자
이 꼭지에 앉아 있게 하고, 언제였을까.
바다는,저리 멀리, 저리 멀리,달아나 버려,

손 흔들어, 손 흔들어, 불러도 다시 안 올
푸른 물이기, 다만 나는, 귀 쭝겨 파도 소릴
아쉬워 할 뿐. 눈으로만 먼 파돌 어루만진다.

오, 돌.
어느 때나 푸른 새로 날아 오르랴.
먼 위로 아득히 짙은 푸르름온 몸에 속속들이
하늘이 와 스미면, 어느 때나 다시 뿜는
입김을 받아 푸른 새로 파닥어려 날아 오르랴.

밤이면 달과 별 낮이면 햇볕.바람 비 부딪치고,
흰 눈 펄펄 내려, 철 따라 이는 것에 피가
감기고, 스며드는 빛깔들,
아롱지는 빛깔들에 혼이 곱는다.

어느 땐들 맑은 날만 있었으랴만, 오,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 꼭대기에 앉아,
하늘 먹고, 햇볕 먹고, 먼, 그, 언제,
푸른 새로 날고 지고 기다려 산다

'박두진 님'의 서정을 담으며 물끄러미 자연을 부르고 있었다. 늦가을의 서정은 가리산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산행은 밝음을 선사하는 것일진대 이 어찌 즐거웁지 아니하겠는가. 삶의 흔적을 남기는 즐거움이 있어 더욱 좋았다. 일행은 중석굴'을 타고 내려오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가을의 정취를 뿌리고 있었다. 일행들은 가을 산의 풍미에 젖어 내려올 무렵 앙상한 졸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겨우살이 채취(?)를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행 중엔 활엽수낙엽이 오랜 세월 쌓여서 부식된 '부엽토(腐葉土)'를 배낭에 담아 화분갈이로 활용하여 가리산의 정취를 맛보려는 열정(?)에 놀라고 있었다. 하산 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미끌미끌 해선지 발목이 저미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경치에 매료되어 힘들지 않은 듯 하였다.

[가을길]
詩: 이해인

바람이 지나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살짝 흔드는 가을길
탱자. 시냇물. 어머니

그리운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선 가을길

푸른 하늘을 안으면
나의 사랑이 넓어지고
겸손한 땅을 밟으면
나의 꿈이 단단해져요

이제 내 마음에도
서늘한 길 하나 낼거에요
쓸쓸한 사람들을 잘 돌보는
나무 한 그루 키우려고...

중턱 하산 길에 이를 무렵  잡초가 무성한 주인 모를 무덤(구전에 의하면 '한천자' 묘지?)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며 산행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주변엔 '낙엽송 군락'을 이루어 황금색 단풍을 물들인 채 산행의 피로를 달래주고 있었다. 고단한 몸일 진 대 부엽토를 부여안고 하산하는 여성 회원님의 열정에 그저 놀라고 있을 뿐이었다.  '안도현 님'의 시상에 머물러 봅니다.

[가을 엽서]
詩: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다양한 전설(무쇠말재, 등골산, 산삼 등)이 숨쉬는 계곡을 지나 목마른 몸을 삭이고자 돌 틈 사이에 고여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매우 찼다. 정녕 이곳은 암반에 머무는 물(암반수)인 듯 물맛 또한 매우 좋았다. 진입 주변 언저리엔 다양한 삼림욕장 시설공사로 어수선하였다.  공사에 임하는 관리자 한 분이 ' 내년 3월이면 좋을 거라.'며 또 오길 홍보(?) 하고 있었다.  '이정하 님'의 떠남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우리 사는 동안에]
詩: 이정하

그대가 떠나야 한다길래
난 미리 아파 했습니다.
막상 그대가 떠나고 나면 한꺼번에
아픔이 닥칠 것 같아
난 미리부터 아픔에 대비 했습니다.
미리 아파 했으므로 정작 그 순간은
덜할 줄 알았습니다.
또한 그대가 잊으시라시면
난 그냥 허허 웃으며
돌아서려 했습니다.
그대가 떠나고 난 뒤의 가슴 허전함 중에도
그대를 생각했습니다.
내 가슴이 이런데 당신의
가슴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슬픔을 슬픔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며
아픔을 아픔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저 행복했다고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맑은
눈물 한점 보이고 떠나간 그대
아아~ 그대는 그대로 노을이었습니다.
내세에서나 만날 수 있는 노을이었습니다.  

막바지 가을 여행을 풍미하려함인지 돌아오는 44번국도 주변엔 많은 귀향 차들로 심한 정체몸살을 앓고 있었다. 남한강변로를 따라서 경안I/C를 지나 중부고속도 죽산을 거쳐 평택으로 버스 안의 즐거운 여흥을 즐기며 돌아오고 있었다.

5. 산행을 마치며
이번 산행은 낙엽 따라  시상(詩想)이 머무는 뜻깊은 가을 산행이었다. 다양한 시정(詩情)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의 감정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 곁에 머물길 바라노라. 늘 가까이 머뭄은 삶의 진정한 즐거움이리라.  언제나처럼 베푸는 동삭 회원님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봅니다.  

2003. 11. 2
깊어가는 가을날 낙엽을 밟으며
常天 허응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