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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기행문

제목 그림은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심리치료사
글쓴이 정지은
그림은 예술이다. 하얀 백지 하나에 정성을 담아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이런 따뜻한 예술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대구에 오게 되었다. 바로 ‘세계명화체험전시회’로 말이다.
나는 주말에 우리 가족과 함께 ‘세계명화체험전시회’를 보려고 대구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처음 대구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을 때 ‘세계명화체험전시회’라고 크게 적혀있었고 그 옆에는 그 유명한 다 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있었다. 그것을 보자 왠지 모르게 빨리 들어가고 싶어졌다. 2층에 올라가자 전시회 입구에는 여러 화가들의 사진과 필체가 있었다.
그런 뒤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르네상스’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서 다 읽지는 않았다. ‘르네상스’란 ‘재생’, ‘부흥’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과,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인간 중심의 미술 경향을 말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에 역사수업을 할 때 배웠던 내용이라 이해가 쉬웠다. 또 수업시간에 책으로만 보던 그림을 직접 보니까 느낌이 더 생생했다.
그리고 여러 그림을 보았다. 그 중에서 나에게 다가온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았다. 매번 책과 신문에서만 보던 그림이 내 눈앞에 있는 게 신기했다. 또 티치아노가 그린 누드화 ‘우르비노의 비너스’도 보았다. 이 두 그림은 책에서 본 것이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옷을 그리지 않았을까? 아무리 옛날이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르네상스 시대 때도 옷은 분명히 있었을 텐데…….’하고 말이다. 그 의문은 내 스스로 해결했다. 르네상스 시대 때는 인간 중심의 미술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유명한 이 그림,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았다. 이미 익히 보았던 그림이라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나리자’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해 그 부인인 엘리자베타를 그린 초상화라고 알고 있다. 물론 이 그림이 실제 다빈치가 그린 그림은 아니다. 실제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엄마께서 말씀해 주셨다. 문득 우리의 ‘직지심체요절’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것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각 여러 나라에서 소중한 유물을 가져온 프랑스가 좀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런 다음 17, 18세기의 미술을 관람했다. 프랑스의 고전주의 작가,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보았다. 이 그림 역시 누드화였다. 난 아무리 사람의 몸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도 이렇게 많은 그림에 옷을 그리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전시관에 있는 그림들 중 옷이 없는 그림은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와 17, 18세기 때가 심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시대의 화가였다면 이렇게 그릴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지나가다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들어왔다. 바로 반 고흐의 ‘해바라기’였다. 이 그림은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따라 그리기’도 해 보아서 뚫어져라 쳐다본 적도 있는 그림이었다. 그 이외에도 ‘별이 빛나는 밤에’도 보았다. 이 그림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인데 그 이유는 별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천문학적인 지식이 없었다. 그런데도 빈센트 반 고흐는 관찰을 열심히 해서별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으로 보아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 같다. 고흐는 살아있었을 땐 힘든 삶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작품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된 화가이다. 예술의 위대함이란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이 있는가 보다.
늘 항상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림들도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림으로 심리를 치료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왜 그런지 알겠다. 그림은 행복해지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보면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적으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림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