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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단편 ] 요구르트 사세요!
글쓴이 이담비
나의 어릴 적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요구르트가 함께였다.
빨대를 콕 뽑아 쪽쪽거리며 맛있게 먹었던 그 추억.
무엇보다도 소중한 기억은, 당연히 학교 정문 앞에서 새콤달콤한 사랑을 파는 우리 엄마가 아닐까 싶다.


약, 7년 전의 일이다.
"여기~~ 요구르트 하나에 오십 원입니다요~~ 사세유!!"
아무리 어머니가 학교 정문 앞에서 외쳐도, 지나가는 학생들은 아무도 요구르트를 사지 않았다. 다들 손에 수입산 커피를 한 캔씩 들고 있을 뿐.


"여기, 요구르트 10개요."
한 꼬마가 오백 원을 넌지시 내밀었다.
"야~ 여기서 파는 거 먹는 거 아니야!" 그 아이의 엄마는 철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저 만치로 가버렸다.
"아니, 엄마~ 이 요구르트 맛있어요! 엄마, 제발? 목말라!! 목말라!!"
"집에가서 오렌지 주스 마셔!"
"아이~ 엄마. 엄마!!"
아무리 아이가 징징대도, 그 아주머니 귀에는 아무말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엄마를 흘겨보며 쓱 지나쳤다.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우리 엄마는 꿋꿋하게 제자리에서 사랑을 팔았다.


"유~ 산균~이 가득한 요구르트 있습니다! 하나에 오십 원~ 사세요!"
"여기, 야구르트 1개만요."
"예이~ 예. 고맙습니다요~."
손님은 오십 원을, 마치 거져주는 양 탁 던지고 가버렸다. 그걸 보는 나 역시도 언짢았는데, 엄마는 어땠을까, 여쭤보니 그저 함박웃음을 짓는 엄마였다.


하루는, 나와 내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논술학원에 가는 길이였다.
"아줌마, 여기 요구르트 7개요." 나와 목말랐던 친구들은 요구르트를 벌컥 들이켰다.
"어이구~ 우리 딸도 왔는데. 깎아줄게요. 200원만 내."
"딸?" 내 친구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당시 어렸던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하필 그 다음 날, 진로수업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적어보자."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방과후 선생님이라고 적어서 냈다.
"야, 나람아. 너네 엄마 요구르트 장사하시는 거 봤는데? 그리 적어!"
싫어싫어, 다 싫다고! 속으로 몇 번을 외쳤는지를 모른다.
"선생님, 애! 거짓말해요!!"
내 인생에서 짝꿍이 그리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안 좋은 일들은 다 겹쳐서 일어나는지,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있는 공개수업에 대한 통신문을 받았다.
가정통신문을 숨기려고 했지만, 마침 그 날따라 가방이 꽉꽉 찼기에, 손으로 들 수 밖에 없었다.
"나람이, 우리 딸!! 그거 뭐니?"
"으응. 아무 것도 아니예요."
"가정.. 통신문이라 적힌 것 같은데? 아니니?" 한 번 보면 안 될까?"
엄마는 내 손에 꽈악 쥐고 있던 통신문을 가져가시고, 열어보셨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다리를 탁탁 떨면서,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공개수업이 있다는구나. 다음주 월요일에. 엄마도 가는 거구나~ 알았어!"
"하...." 나는 그 일주일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우리 엄마는 월요일 공개수업에 오셨다.



"자, 우리 귀하신 학부모님분들을 모시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곳에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람아~~. " 엄마는 내 이름을 크게 외치셨고, 모두들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친구들과 선생님께 요구르트를 돌리시겠다며, 요구르트 한 박스를 가지고 오셨다.
다들, 맛있다고는 했지만, 입 발린 칭찬일 뿐이였다.



"야야, 너네 엄마, 요구르트 판다며? 오십 원~~ 오십 원~~ 세균 요구르트!!"
그 애의 짖궂은 말에,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그 당시, 너무나도 화가 나 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탁 잠구고,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한참 울고 있는데, 엄마가 방문을 지그시 여시더니, 다가오셨다.
"나람아, 왜 울어. 울지 마, 우리 딸."
"하, 몰라, 모른다구!! 다 엄마 때문이야!!"
"뭐가 엄마 때문이니? 우리 딸."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엄마는 소원이 있다면, 우리 예쁜 나람이랑 우리 가족이랑 행복하게 사는거야. 알았지?"
"아.,. 몰라요, 몰라."



언제나 어김없이, 엄마는 학교 정문 앞에서 요구르트를 파셨다.
찬 바람만 쌩하니 불었고, 사람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계셨다.
그러더니, 어쩐 일일까.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요구르트를 갑자기 팔지 않으셨다.



방에서 학습지를 풀고 있는데, 엄마가 부르셨다.
"나람아, 이 엄마가 야구르트 파는 거.. 부끄럽지?"
그리고는, 난생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람아.. 이 애미가 원하는 거는, 행복하게 사는거야. 어떻게든."
"...네.."
"너도 알잖아. 우리 집 어떤지." 그렇다, 나는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었고, 베트남 출신인 엄마는 마땅히 돈을 벌 기회가 없었기에, 요구르트를 판 것이였다.
"너도 아빠 있으면 좋겠지, 나람아."
"뭐... 그냥..."
"미안해.. 야구르트나 팔고. 딸 부끄럽게 하고."
"아니예요, 엄마. 괜찮아요."
"우리 딸밖에 없어.. 이 엄마가 미안하고 또 미안해. 우리 딸 조금 있으면 중학교 가야하는데 공부도 못 시켜주고.."
"아니예요, 엄마가 항상 응원해줘서 좋아요."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셨고, 울먹거리셨다.
엄마 눈치를 봐가면서, 방으로 들어가서 학습지를 폈지만, 그날따라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우울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더니, 내 친구들이 무슨 일인지, 다들 요구르트를 하나씩 사고 있었다. 엄마는 또 다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좋아보였다.
"아주머니, 저는 요구르트 많이 사갈게요! 40개요! 반 애들한테 주려고요!!"
"아줌마, 저는 1학년인데요. 저 방학숙제 때 요구르트로 탑 쌓을 거라요. 1000개 주세요. 사실 제 친구들도 숙제 해 갈게 없대요. 돈은 우리 엄마가 낼거예요! 자!"
그 꼬마 아이랑, 그 아주머니랑 우리 엄마, 셋 다 함께 웃었다.
"아주머니, 저는 요구르트 얼려먹을 거예요. 얼려먹으면 양이 조금 줄어드니깐, 많이 사갈게요! 지금 돈이 없어서 10개만 사고, 있다 학원 끝나고 애들이랑 더 사러 올게요!"
"아주머니, 좋은 일 하시네요. 저는 배가 불러서 요구르트는 안 사지만..." 그 아주머니는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셨다. 엄마는 괜찮다며 극구 손사래를 쳤지만, 기어코 주셨다.
"아줌마. 사실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어요. 이제 여름이잖아요. 100개 사두고 먹어도 되죠?"



이렇게 손님이 갑자기 너무 많이 몰려, 요구르트가 떨어지자, 엄마는 하나에 300원으로 가격을 올리셨고, 대신 맛좋은 약과를 300원으로 덤으로 파셨다.
"아줌마. 이 약과도 맛있어요! 약과 스무 개랑 요구르트 서른 병 주세요.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 거예요."
"아주머니, 저는 오늘 생일이어서 파티 하려고요! 요구르트 마흔 병이랑, 약과 마흔 개 주세요!!"
"오냐오냐~~. 생일 축하해."
"아줌마, 이 언니는 왜 이렇게 예뻐요? 아줌마 닮았어요."
"하하. 아줌마 딸이어서 그런가보다. 하하하."
"요구르트도 완전 짱!! 맛있어요. 아줌마."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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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토록 원하던 대학교의 학생이 되고, 공부방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이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부자였죠?" 중학교를 앞두고 있는 유미였다.
"마음은 부자였지~. 크크."
"아니요, 선생님은 잘 컸을거 같은데.. 저는요. 엄마가 그러는데 형편이 좀,. 안 좋아요. 사실 빚도 갚아야 한대요. 엄마도 일 하긴 하는데.. 저 너무 힘들어요. 공부도 마음대로 못 하고.. 하...."
"유미야, 이거 마시면서 내 이야기 들어볼래?" 나는 유미에게 요구르트를 넌지시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