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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진실, 그 모든 것 2
글쓴이 최자인
" 참으로 서글픈 추억이네.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 현실과 망상에 구지 차이가 있을까? 난 말야, 아무리 현실이 나에게 매몰차고 힘들어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충분히. "
"나한테 혹시 연설할려고 하는 거면 그만둬. 현실 외면한지 오래니까. "
그녀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 곧바로 말을 이었다.


" 나의 존재는 곧 너의 존재, 너의 존재는 또한 나의 존재이지. 난 너의 마음에서 태어난 존재야. 현실을 외면하고 있으면서도, 망상의 세계에 행복하게 살고 있어도 한편으론 현실을 언젠간 마줘봐야 되는 사실에 갈등을 느끼는 마음이 바로 나야. 나도 현실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게 아냐. 너처럼 현실이 무서워. 언젠간 마줘봐야 된다는 사실이 매일 마다 스트레로 느껴지고 두렵고 창피해. 현실에서 나의 몰꼴이 얼마나 추한지 상상도 하기 싫지."


그녀는 바로 선 채 눈을 감고,
" 나의 모습은 추하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몰꼴이 말이 아냐. 자기 혼자서 피해 의식을 느끼고 피해자라 생각하지.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불쌍한 아이로 여겨지는 거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교류를 하고 싶은 욕망이 타오르는 만큼 너의 스트레스도 쌓이는 거야. 넌 그런 것을 못하니까. 답답해 미치겠지. "
"그만..."
" 불쌍한 아이야. "
"그만해..."
" 외롭고 쓸쓸한 아이야. "
"그만... 그만 ...."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야."
"그만해...! 제발... 그만... 그만해줘... 제발... 부탁이니까... 제발...흑..."
눈물이 나왔다. 나 자신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니. 가슴에 말 하나하나가 후벼 팠다. 칼로 심장을 베고 또 베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아파서, 살갗이 불에 타오르고 가슴이찢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추한가. 이런 모습이 진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사랑받고 싶었어.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었어. 내가 힘들어 하면 곁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돼. 그냥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주기만 해도 감사할 정도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싶었는데...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었어. 숙제도 배껴보고 같이 혼나서 벌도 서보고 싶었고, 학교를 마치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싶었어.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밥을 차려주고 다녀왔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어. 시험을 못 쳐서 혼나보고 싶었어. 같이 장보러 나가고 싶었어... 그리고... 그리고....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맥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잊었던 상처가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프고, 아프고, 아파서 슬펐다. 단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게 그렇게나 큰 욕심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평소처럼 하는 행동들을 나는 왜 못 하는 걸까 싶어서 짜증이 났다.
사랑 받고 싶은 것 뿐인데.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싶었을 뿐인데. 그게 죄인 걸까.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꼭 끌어 안아줬다.
" 그러니까 이제부터.,.. 같이 해내보자.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고, 숙제도 서로 배껴보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가는 거야. 집에 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도 해보는 거야. 부모님이랑 같이 저녁도 먹어보고. 그렇게... 그렇게 해보는 거야. "

등 뒤가 축축했다.
아마도 그녀의 눈물이겠지. 날 위해 울어준 거 겠지. 아아, 따뜻해. 너무나도 따뜻해.


"흐...흐흑...읍....흑..... 같이....하는거야...흐흑....흑... 같이...."
"처음엔 많이 어려울꺼야. 힘들꺼야. 내가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도 않 받아줄지 도 몰라.
그러면 넌 또 다시 생각하겠지. 나 정말로 불쌍한 아이일지도. 그냥 나 혼자 망상 속에 살껄. 그래도 걱정마. 언젠가 꼭 이뤄질테니까. 계속 믿는거야. 둘이서 노력해보는거야."


눈물 때문인지 그녀는 흐릿해졌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
"난 너 안에 계속 있을께. 안녕-"


아아, 이런 감정 익숙치 않아. 따뜻해. 온 몸이 초콜릿처럼 녹아버릴 정도로 따뜻하다.


난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혼자 남아 펑펑 울었다.
현실에서의 아픔을 다 털어내듯이 울었다. 서러워서 우는 게 아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아픔을 씻는 것이다. 그리고 앞을 나가는 것이다.


눈을 감고 망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얌전히 기다린다.
여기는 내 세상, 언젠가 또 다시 찾아올지도 몰라. 그치만 괜찮아. 걱정 안 해.
힘들 때 다시 또 오는 거야. 그리고 지금처럼 아픔을 털고 현실에 가는거야.


빛이 서서히 나의 몸을 감싸고 난 기억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매일 밤 지구를 구하는 꿈을 꿧던 일, 트와일라잇 소설을 읽으면서 혼자서 뱀파이어가 된 상상을 했던 일, 도혁이와 윤아가 같이 걸어갔던 걸 질투하고 도혁이에게 협박전화를 했던 일, 공책에다 도혁이와 내가 결혼을 한 뒤 이야기를 적은 일 등등 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내 머릿 속을 스쳐갔다.


" 망상 세계야, 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