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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앞으로 전진 [뒷 이야기]
글쓴이 최자인
"맴- 맴- "
여름방학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몸이 녹아내린다.
난 지금 내가 짝사랑 하는 오빠에게 추천 받은 책을 읽고 있다. 꼭 읽으라고 부탁 받았기에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또.... 어느덧 망상 세계와 작별을 고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그 뒤로 어떻게 됬냐고?
지금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교실 문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는데도 손이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내가 전학생도 아닌 데 왜이리 떨려야 되는 걸까. 하지만 먼저 용기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내 안에 있는 그녀가 말해줬다.

"드르륵-"
"얘,얘들아. 안녕-!"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이 시선들도 모두 견뎌내야 하겠지. 이 정도는 문제 없다. 할 수 있어.
자리에 가자 내 앞 자리인 경연이가 멀뚱히 쳐다본다.
"윤아야, 안녕."
"어?어... 그래, 안녕."
모두 내가 변한 것에 대해 얼떨떨 하겠지. 괜찮다. 그게 정상이니까.


점심시간이 되었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윤아가 책상을 옮겨 내 옆자리에 앉는다.
"아, 저기- 그게- 어-(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하지?)
"괜찮아, 그냥 옆에서 밥 먹으려는 거 뿐이야."
윤아가 나에게 싱긋 웃어줬다. 아, 너무 기뻐.
"고마워.."
서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채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밥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던제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야 되지 않을까?
"아, 윤아야. 그게- 사실-.. 오늘 학교 마치고.. 그게..."
"학교 마치고 뭐?"
배에 힘을 주고 힘차게 말하는거야.
"나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
아차, 힘이 너무 들어가버렸다. 또다시 아이들이 날 빤히 쳐다본다.
"뭘 그런걸 가지고, 같이 먹으러 가자!"


우린 대학교 쪽으로 가 인기 많은 떡볶이 집에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경연아."
"으,응?"
"너 되게 달라졌다."
어라, 이럴 때 무슨 대답을 해야되지. 잘 모르겠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그래? 난 잘..잘 모르겠는데? 하하하-"
"아니 그 왜, 너 원래 중 2병 걸렸었잖아. 인제 졸업한거야?"
지금 이 녀석 뭐라 말하는거지. 중 2병? 중 2병? 나에게 중 2병?
"그런 거 아냐!"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러자 윤아는 먹던 떡볶이르 놔두고 까르르 웃어댔다.
"하하하하하- 너 뭐야, 인제보니 꽤 귀여운 녀석이잖아? 다행이야. 진짜 다행이야."
윤아는 포크를 잡고 떡볶이 국물을 휘젓더니 나지막이 얘기하였다.
"나, 친구 아닌 친구면서도 너 되게 걱정했었어. 나도 예전에 너랑 비슷했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래도 졸업 했으니 정말 다행이야. 정말이지- 기뻐."


그렇게 윤아와 떡볶이를 먹은 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눈물이 흘렀다.
"아아- 나, 누군가한테 영향을 끼쳤었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흑....기뻐.... "
망상 속에 빠져 누구한테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내가 사실 다른 한 명에게 영향을 끼쳤었다니 생각치도 못한 일이였다. 그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였다.


집에 가까워 지자 그녀가 외쳤다,
"밝게 인사하는 거 잊지 마!"
"응, 알고 있어. 걱정 마."
문을 열고 신벌을 벗었다.
"다녀 왔습니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도 날 휘둥그레 쳐다보기만 하고 인사를 받아주시진 않았다.
괜찮아. 날 봐주신 것도 기쁜 일이니까.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단했다.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하는 느낌이라 해야되나?


어느 날, 내가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왔는데 이번에도 아이들이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난 부끄러워하며 인사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경연이가 멀리서 뛰어오더니 날 꼭
끌어안고 외쳤다.
"경연아! 되게 이뻐졌다! 머리 자른 거야?"
"으,응... 머리가 너무 지저분한 것 같애서..정리만 했어...이상해...?"
"아냐아냐아냐! 너무 좋아! 나보다 이뻐서 질투날 정도인 걸! 단발 진짜 잘 어울린다!"
이쁘다니, 그런 말 처음 들어본다. 이쁘다란 말은 연애인들이 듣는 언어가 아니였던가?


내가 머리를 자르고 태도가 갑자기 바뀌어진 도혁이.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준다.
"요새 너 좋아보여. 머리 자른 것도 어울리고."
그는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가볍게 흘려넘겼다. 두근두근 거렸다.
"아, 응. 고마워..." 볼이 빨개진 게 들통날까봐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날,
"경연아, 안녕. 오늘 숙제 있었던가?"

그 다음날,
"경연아, 오늘 따라 교복이 어울리는 것 같다-?"


그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경연아, 오늘 음악 수행평가 치니까 같이 연습하자!"


도혁이가 원래 이런 남자였던가. 조금 혼란스러워졌지만 친하게 지내니 기분은 좋았다.
한 번은 도혁이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경연아, 이번 주 토요일 날 영화 보러 가자! 요새 재밌는 영화가 많이 나왔거든."
"응! 갈께! 꼭 갈께!"
도혁이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다니. 요새 너무 행복하다 싶을 정도로 주위가 밝아진다. 그래서 불안함이 느껴지는 걸까.


토요일 아침, 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였다.
하얀 나시 원피스를 입고 머리엔 삔을 꽂은 다음에 롤로 머리 끝을 말았다. 한 번도 안 쓴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마지막으로 갈색 샌달을 신었다.
이런 게 여자아이의 생활이란 걸 몸 속 깊이 느껴진다. 행복 전율이 타오른다.

영화관 앞에서 도혁이를 만나 영화를 보았다.
재밌다는 영화라 했지만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 이런 밀폐된 공간 속에서 도혁이 옆에 앉아 영화를 같이 보다니. 행복해서 두려울 정도다.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행복에 젖어있을 무렵,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도혁이는 영화를 보면서 자꾸 내 몸을 쓰다듬었다.
머리에서 부터 어깨를 지나 허리에 갈 쯤 난 무심코 소리를 질러버렸다.
"시, 싫어- !"
"경, 경연아-!"
영화관을 뛰쳐 나와 곧장 집으로 향해 달렸다.
눈물이 자꾸 솓꾸쳤다. 가슴에 숨이 차오르고 쓰렸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였는데, 이런 게 아니였는데!"


'띠리릭-"
'다녀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 안으로 들어가 몸을 떨었다.
"내가 알던 도혁이가 아냐. 내가 알던 도혁이는... 도혁이는... 흐흑...흑.... 으흑...흡..."
" 경연아? 울고 있니?"
"흑... 나... 다시 돌아갈래... 내 세계로 갈래... 나 도저히 못 참겠어...흑...."
" 경연아, 어디가 아파?"
" 몸 구석 구석이 아파. 도혁이 손이 지나갔던 자리는 더 아파. 따끔따끔 해. 가슴이 쓰리고 숨 쉬는게 힘들어. "
" 왜... 아파?"
그 질문에 난 스스로 깨달았다. 내가 알던 도혁이는 도혁이가 아니란 것을.
" 내가 알던 도혁이가 아니였어... 무뚝뚝 하면서도 챙겨주고 자상한 도혁이가 좋았는데... 난 그런 도혁이를 좋아했던건데... 내가 좋아한 도혁이는... 도혁이가 아니었던거야..."
" 그렇구나. 많이 슬펐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어때?"
"지금은... 지금은 아주 조금 괜찮아졌어."
어, 정말로 괜찮아졌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가슴이 쓰린 건 한 층 더 나아졌다.
"이렇게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상처는 나을 수 있는거야. 힘들다고 해서 피하기만 해선 안 돼, 사람은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행복한 일도 겪으니까 말야."


일요일.
난 윤아에게 어제 있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 그 녀석, 나한테도 그랬어. 은근히 사람 기분 나쁘게 스킨십 한단 말이지. 잘했어. 그럴 땐 큰 소리로 싫다 하고 빠져나오는게 최고야. 나 같으면 한 방 더 먹이고 왔겠지만. "
경연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내 상처는 계속 아물어 갔다. 이런 게 바로 친구구나.


다음 날 학교에서 도혁이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걸려 했지만 그 때 마다 윤아가 날 지켜주었고 나도 싫다고 강력하게 말하였다. 윤아는 나에게 좀 더 세게 말해라 했지만. 이 정도면 됬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 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나날이 지나갈수록 친구들은 나에게 조금씩 말을 걸어주고 웃어준다.
아직 숙제 베끼는 건 못 해봤지만 좀 더 친해지고 난 뒤 해도 되겠지?
도혁이는 인제 나에게 접근을 안 하고, 다시 난 짝사랑을 하게 될 남자를 만났다.
도서위원 오빠인데 대출할 때 마다 자상하게 대해주고 예의도 바르다.
거기다 이번주 주말엔 그 오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계획이다.
아, 집 얘기를 깜빡할 뻔 했다.
아직 인사를 잘 받아주시진 않 지만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엄마가 밥을 차려주시는 것이다. 내가 장을 보고 난 뒤 반찬거리를 사오면 엄마가 밥을 차려주신다. 정말로 기쁜 일이다. 행복한 일이다.



다시 여름방학인 지금의 시점이 되고,
방학마다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긴 하지만 책도 많이 읽고 있다.
" 경연아, 안녕. "
"어, 오빠. 안녕하세요! "
" 바빠서 내용까진 못 얘기 하겠고 이 책 읽어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
멀리서 오빠 친구가 오빠를 부른다.
'꼭 읽고 나한테 연락해!"


그리고 지금,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맨 밑에 누군가 적은 글을 읽는다.
그것은 분명 오빠가 적은 글. 오빠 글씨체이다.

" 좋아해, 경연아. "

난 핸드폰을 든 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이 되자 오빠가 '여보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말해버렸다.

"저도요, 오빠."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이었다.